소설리스트

득템왕-141화 (141/350)

141화 추적 (2)

돌에 새겨진 마법진이 아닌, ‘돌’ 자체를 수리한다.

무기나 방어구 중에는 특수한 돌 등을 가공한 아이템도 있으니, 대장장이를 찾아가 보라는 조언이 상당히 그럴싸하게 들렸다.

“역시 당당검 님이십니다! 틀려도 손해 볼 건 없으니까 바로 찾아가 볼게요!”

“길마님. 이번 건 저도 참여하게 됐으니까, 시공의 틈새로 입장하게 되면 저도 꼭 함께 가는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혹시 업적 ‘자격을 갖춘 자’는 획득해 두셨나요?”

“몇 달 전쯤, 퀘스트를 하나 하다가 우연찮게 얻어뒀어요. 제가 못 들어갈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분명 초월종 몬스터 토벌이나 S급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업적이었는데…….’

역시 업적 획득 붐을 일으켰던 장본인답게, 도무지 솔플론 얻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업적도 그의 컬렉션에 이미 들어와 있었다.

“먼저 달켄한테 다녀올 테니까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봐. 그놈으로 안 되면 로낙쏜에는 함께 가보든가 하자.”

“옥케이!”

“간만에 하는 퀘스트라 그런지, 왔다 갔다 바쁘시네요. 조심히 다녀오십쇼!”

그 말 그대로 타연 전역을 쏘다니느라 정신없을 지경이었다.

여하튼 수배 중이라 가기 힘든 제국의 수도를 향해, 다시 한번 훼라리를 타고 날아올랐다.

* * *

쉬이이- 탓!

다시 한번 찾은 오스타그 최대 규모의 대장간, 은도끼의 지붕 위로 착지했다.

벽을 타고 창문을 통해 들어가자 이번엔 다행히도 유저들이 몇 명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게, 달켄은 퀘스트와 연관된 유저들을 제외하곤 너무 고등급의 템들만 제작하는 NPC라 찾는 이가 적은 편이었다.

장사꾼들로 치자면 VIP만 상대하는 놈이랄까?

“이번만은 제발 좀!”

“인마, 바랄 걸 바라라! 이게 뽑기도 아니고, 제작하는 데 크리가 뜰 리 있냐?”

하루 만에 다시 찾은 달켄.

그의 앞에는 은신 상태라 내가 온 줄 모르는 유저 두 명이 투덕거리고 있었다.

타연의 입소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은 요즘.

금방 제작만 하고 떠날 것 같아 은신 상태로 잠시 기다렸는데, 곧 그중 하나가 의뢰했는지 달켄이 제작을 시작했다.

“하하하! 그냥 평범한 망치질이네! 금빛은 여지없이 볼 수 없쬬?”

“빌어먹을 세상! 산드로는 레전더리를 제작하다가도 크리가 떴다던데, 도대체 난 이번이 몇 번째 유니크 제작인데 한번을 안 뜨는 거냐고!”

왠지 내 소식을 듣고 필요도 없는 제작에 도전해본 것 같은 뉘앙스에, 살짝이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세상은 원래 될놈될.

나도 예전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접으려고 강화하던 무기가 +10까지 뜬 바람에, 오히려 풀 세트를 맞추게 됐다는 식의 올타 게시 글들.

그걸 읽고 따라 강화하다가, 그들 대신 내가 접을 뻔한 경험들이!

“영감님, 또 찾아왔수다. 혹시 이 ‘귀환석’에 대해 아는 게 있어요? ‘마계’와 관련된 ‘돌’인 것 같은데…….”

소란하던 둘이 떠나자, 다른 유저가 들이닥치기 전에 얼른 은신을 풀고 달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마탑주들에게 말했던 것과 똑같은 키워드를 넌지시 섞어 물어봤다.

“귀환석이라……. 허헛! 마계에만 존재한다는 카오스 스톤을 이용하면, 차원을 관통하는 레드 포탈을 생성할 수 있다고 들은 바가 있지.”

“어라? 이 영감님은 뭔가 알고 있네?”

마탑주들에게선 보지 못했던 반응.

특히 ‘카오스 스톤’이라든지 ‘레드 포탈’이라든지,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단어들을 연달아 내뱉었다.

‘레드 포탈이라면 시네마틱 영상에서 봤던 마족들이 침공할 때 튀어나온 붉은 포탈을 말하는 건가? 그럼 제대로 찾아온 거네!’

추가 키워드를 들려줘야 하나 싶어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아쉽게도 그는 같은 말만 반복할 뿐 추가 정보를 주진 않았다.

“허헛! 흔히 볼 수 없는 흥미로운 물건이네만, 난 그저 들어보기만 했을 뿐……. 만약 이 스톤을 다룰 수 있는 장인을 찾고 싶다면 ‘광부들의 낙원’을 찾아가 봐라. 그곳에서도 다룰 수 있을진 모르겠다만, 나보단 나을 게다, 켈켈!”

띠링!

뭔가 이런 소리와 함께 퀘스트가 주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끝내 귀환석을 복구하는 퀘스트는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 온 것만으로도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달켄이 일명 ‘대륙의 지붕’이라 불리는, ‘하늘 산맥’에 있는 유명한 도시를 언급한 것이다.

[축복받은얼굴: 어떻게 됐어? 지금쯤 만나봤을 것 같은데, 걔가 맞아? 혹시 퀘스트 받았냐?]

[산드로: 아니. 아쉽지만 이놈은 아니더라. 근데 마법사들과는 반응 자체가 다른 거 보니,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아. 역시 당당검님, 대단하십니다! 감사해요!]

타이밍 맞게 현중이가 물어와서 대답해 주었다.

물론 내 칭찬에도 당당검은 여전히 채팅창엔 묵묵부답이었다.

[라스트챤스: 그럼 저희 이제 어디로 가야 해요, 형님?]

[산드로: 간만에 NPC답게 힌트를 흘리더라고? 로낙쏜에서 봅시다! 은신이 가능한 분들로 만요!]

워낙 설명이 불친절한 퀘템이라 시간을 허비하게 될까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었다.

손에 잡힐 것만 같은 다리우스.

아직 여유가 있을 거라 방심하고 있을 지금, 시공의 틈새로 빠르게 잠입할 수만 있다면 놈을 잡을 기회는 남아있었다.

대륙 반대편에 있는 곳이라 제법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지만, 난 신경 쓰지 않고 공간이동술사에게 로낙쏜행을 주문했다.

* * *

[하늘 산맥 중부, 로낙쏜에 도착했습니다.]

따당! 땅! 땅!

공간이동하자마자 제일 먼저 여기저기서 은은하게 울리는 망치질 소리가 나를 반겼다.

드워프어(語)로 ‘솟아오르는 용암’이라는 뜻을 지닌 로낙쏜.

이곳은 하늘 산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드워프들만의 중립 도시였다.

아직 하늘 산맥은 절반 정도밖에 맵이 오픈되지 않았기에, 사실상 이 지역을 찾는 유저들은 대부분 로낙쏜에 귀환을 등록하고 사냥했다.

“여전하구나 이곳은……. 아니, 생산 유저들이 늘어서 그런지 더 활기차졌네.”

왠지 모르게 분주히 돌아다니는 유저들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았던 때가 떠올랐다.

매그넘03 캐릭으로 갓 200레벨을 넘겼을 즈음, 당시 업데이트된 지 얼마 안 된 이곳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골드 한 푼이 아쉽던 때라 한참을 걸어서 오긴 했지만!

[업적: 제법 뛰어난 등반가(D)]

* 스킬 및 소환수의 도움 없이 하늘 산맥 정상에 오른 자에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 (체력 +5)

* 업적 효과로 하늘 산맥 지역에서 HP와 MP의 회복 속도가 빨라집니다.

매그넘 시절 어렵사리 획득했던 단 2개의 업적 중 하나.

고작 단일 스탯 5만 올려주는 이 D급 업적을 얻고자, 바로 여기 로낙쏜에 방문했었다.

“그땐 참 D급 하나도 그렇게나 얻기 힘들었는데……. 그나마 이것도 이틀을 꼬박 고생한 끝에야 얻었었지. 참 추억이다…….”

산 중턱에 위치한 이 도시의 입구로 나가, 눈 덮인 산길을 오르다 보면 길이 없는 막다른 곳이 나타난다.

그곳에서부터 길도 없는 단 하나의 등반 루트를 찾아 헤매다 보면, 결국 정상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기 위해 꾸준히 찾는 유저가 있을 정도로, 타연에서는 제법 이름 높은 명소(名所) 중 하나였다.

“먼저 와 계셨네요, 형님?”

“왔어? 일단 파티부터 하고 은신 망토 좀 쓰자. 여긴 보는 눈이 많아서…….”

“넵!”

[라스트챤스가 파티에 초대되었습니다.]

금세 공간이동해온 라챤이와 함께 파티를 꾸리고 은신을 사용했다.

태성 놈들에게 동선이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렇게 최대한 조심하는 편이 좋았다.

‘설원에서 힐보따리 파티를 죽이지 말고 못 본 척했어야 했는데……. 하긴 내버려 뒀으면 결국 고르곤 근처에서 마주쳤으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시 기다리자, 축빙 형님으로부터 은신 망토를 빌려온 현중이와 당당검 등이 도착해 파티를 맺고 움직였다.

[축복받은얼굴: 여긴 여전하구만? 어디부터 가지? 역시 아이언해머 클랜장부터 찾아가 볼까?]

[산드로: 그래. 어차피 이곳에 클랜이 3개나 있으니까, 일단 거기부터 차례로 방문해 보자.]

퀘템인 귀환석은 나만 갖고 있지만 굳이 함께 온 것.

그건 운 좋게 시공의 틈새로 향하는 길이 금방이라도 열리게 되면, 그대로 넘어가 다리우스를 뒤치기하기 위해서였다.

무살 형님도 오셨으면 좋았을 테지만, 아쉽게도 ‘자격을 갖춘 자’ 업적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라 빠지게 되었다.

후끈!

도시 전체를 거미줄처럼 관통하는 수로(水路).

그 안을 도도히 흐르는 용암 덕분에, 도시 안은 고도가 높은 추운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기만 했다.

<아이언해머 클랜>

대장간의 간판과 함께, 양손에 망치를 든 거대한 드워프 동상이 우리를 반겼다.

반투명하게 보이는 파티원들과 함께 입구를 통과해, 안쪽 깊숙한 곳 작은 용암 폭포 앞에 있는 가장 큰 모루 앞까지 이동했다.

“어? 뭐야?”

“흠…… 이게 무슨 일인지……?”

한데 익숙한 곳인지 안내하듯 앞서가던 라챤이와, 뒤이어 도착한 현중이가 물음을 터뜨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유명한 녀석이라 나도 구경삼아 한번 들렀었던 아이언해머의 클랜장의 자리가, 웬일인지 텅 비어져 있었다.

“무릭쏜이 어디 간 거지? 유명한 놈이라 자리를 비우진 않는 NPC 아니었나?”

“특이한 일이에요. NPC가 자리를 비우는 일은 3년 넘게 게임해오면서 몇 번 본 적 없었는데……. 그것도 이렇게 마을 안에 있는 NPC가 그런 건 한 번도 못 봤어요!”

로낙쏜에서 가장 크고 역사가 깊은 아이언해머 클랜의 마스터, ‘무릭쏜’.

녀석은 직업 퀘스트뿐만 아니라 이 하늘 산맥의 지역 퀘스트도 주는 녀석이라 유저들이 많이 찾는 녀석이었다.

세 갈래로 길게 땋은 수염이 인상적이던 드워프.

당연히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찾아온 곳에 녀석이 보이지 않자, 당당검마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단 다른 클랜의 마스터도 찾아가 보죠. 아직 둘이나 더 있으니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분명 이 녀석이 퀘스트를 줄 거라고 예상했지만…… 어쩔 수 없죠. 한번 가봅시다!”

그렇게 도시 서부에 있는 ‘푸른불꽃’ 클랜으로 이동해 보았으나…….

이곳의 마스터 전용 모루도 비어 있었다.

“맙소사! 여기에도 클랜장이 없다고?”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놈들이 없어졌다면 진작 올타에서 난리가 나도 났을 텐데!”

“그러게요. 그런 소식이라면 제가 모를 수가 없는데…… 정말 이상하군요.”

그렇게 다음 차례로 찾게 된 ‘골드링’ 클랜.

이곳은 다른 클랜과 달리 중저레벨 장비들을 주로 만들고 가르쳐주는 터라, 유저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한데 그들을 뚫고 지나가려던 찰나, 예상치 못한 단어를 듣고 멈춰 서게 됐다.

“이게 대체 뭔 일이야? 태성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건데?”

“그러게. 길드창 보니깐 동시에 세 클랜 전부를 공격한 거 같더라. 이미 나머지 두 클랜도 정리됐다고 하더라고.”

‘태성’, 그리고 ‘정리’.

이 두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잠시만요, 두 분! 혹시 잠시만 여쭤봐도 될까요?”

“깜짝이야! 엇! 산드로 님?”

분위기를 보니, 보나 마나 이곳의 클랜 마스터 자리도 비어 있을 터.

급한 마음에 은신의 투명화가 걷히기도 전에, 대장장이로 보이는 유저들에게 다짜고짜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조금 전에 태성 길드원들 스무 명 정도가 이곳에 찾아 왔어요. 그중 랭커도 껴있어서 신기한 마음에 쳐다봤죠. 굳이 이곳에 그렇게 몰려다니는 유저들이 없으니까 이상했기도 하고요.”

“그러길 잠시, 갑자기 그 태성 길드 사람들이 클랜 마스터를 공격해서 죽여버리더라고요? 어떻게 마을 안의 NPC를 공격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근데 여기만 그렇게 찾아온 게 아니었나 봐요. 나머지 두 클랜에도 다들 그 정도 규모로 찾아와 동시에 마스터들을 죽였나 보더라고요. 도대체 태성은 왜 이런 짓을 벌인 걸까요?”

“…….”

친절하게 설명해준 두 유저 덕분에 의문은 풀렸지만, 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너무 뜻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축복받은얼굴: 이런 미친놈들.... 설마 네가 클랜장들을 못 만나게 하려고, 한 발 먼저 와서 죽여버린 거야? 대체 어떻게?]

[당근당근단검: 그동안 NPC를 죽일 방법은 없었지만... 사실 존재했다는 게 밝혀지기는 했죠.]

이 사실이 당당검도 놀라웠는지, 처음으로 채팅에 참여하며 말을 꺼냈다.

유저가 NPC를 공격할 수 있는 수단.

그 유일한 방법이 얼마 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바로 내가 벌였던 오스타그 황궁 습격 사건을 통해!

“이 자식들……. 설마 드워프들한테 전쟁을 선포한 거야? 이 도시 국가, 로낙쏜을 대상으로?”

타연에 아직 단 3개뿐인 국가.

그중 최초의 건국 길드인 태성에게는 언제든지 NPC를 공격할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져 있었다.

바로 국가 간 전쟁 선포.

제국을 상대로도 가능한 일이라 그런지, 중립 도시인 드워프들을 상대로도 가능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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