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군단장 레이드 (3)
“말도 안 돼!”
“축굴이 형!”
불길한 기운에 곧바로 무적 스킬을 외친 현중이의 선택은 탁월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끗 차이로 늦어버리고 말았다.
[그림자 밟기!]
하지만 녀석이 늦었다고 나 또한 늦을 수는 없는 일.
난 곧바로 군단장의 뒤로 넘어가 땅에 떨어진 방패, 레벤다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레벤다스(디바인)를 획득했습니다.]
‘휴…… 다행이다!’
계속해서 피를 절반 이상 유지하고 있던 현중이가 한 방에 죽어버릴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순간적으로 죽어버린 탓에, 조금만 더 머뭇댔다면 방패를 줍지 못 할 뻔했다.
[라스트챤스: 드로 형님, 드셨어요?]
[축복받은무빙: 드로야, 먹었냐!]
왜냐하면 길드원들이 하나같이 동시에 루팅을 물어볼 만큼, 간발의 차이로 겨우 줍게 되었으니까!
“이런 행동은 좀 유감이네요. 갑자기 왜 튀어나오셨어요?”
“아! 죄송합니다! 뭔가 드랍 되길래 본능적으로 스킬부터 먼저 나갔어요. 주우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죄송합니다. 산드로 님. 바로 제자리로 원복하겠습니다!”
사람 마음이란 게 다 똑같은 건지…….
3개 팀으로 나눠있던 곳에서 도둑과 마법사 등, 총 4명의 유저가 이동기를 사용해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오직 디바인 템, 레벤다스가 필드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좀만 생각해보면 진짜 멍청한 행동이란 걸 알았을 텐데……. 먹자에 성공하더라도, 우리를 뚫고 포탈까지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리 없잖아?’
괜히 견물생심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니다.
특히 필드 드랍템 획득이라는 행운이 종종 찾아오는 타연에서는, 더욱 조건반사적인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산드로: 다행히 먹었습니다. 일단 레이드에만 집중해 주세요!]
[축복받은얼굴: 와! 개어이 없네! 무슨 데미지가 한 방에 7만이 넘게 꽂혀? 완전 개밸붕 몹 아니냐?]
“지옥불 님! 타이탄 소환하세요!”
7만 데미지?
타연 최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현중이에게 그만한 데미지가 꽂혔다고?
부활한 현중이로부터 중요한 정보가 들려왔다.
비록 아직 랭커급은 아니더라도, 녀석은 각종 템빨로 체력과 방어력만큼은 랭커들을 웃돌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현재 HP는 8만 2천 정도.
설사 풀피였다 하더라도, 이 스킬과 함께 후속 공격이 바로 들어왔다면 그대로 죽어버릴 수밖에 없는 어마무시한 스킬이었다.
“그분의 흔적은 찾을 수 없더라도, 부여받은 권능은 영원할지니!”
“미, 미쳤구나! 방금 쓴 그걸, 또 쓴…… 커헉!”
쉬익- 핏!
또다시 내리꽂힌 검은 번개.
이번에도 역시나, 드랍템을 먹으러 다가왔던 도둑이 맞고는 단번에 죽어버렸다.
‘원샷원킬이라니……. 잘못하다간 이번 레이드가 실패해 버린다!’
최강의 탱커도 버티기 힘든 단일 타겟 스킬.
그걸 난사하듯 남발하기 시작한 군단장의 모습에, 심각한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쿨타임은 8초 정도! 랜덤은 아니고, 가장 가까이 있는 대상에게 사용하는 단일 타겟 스킬 같습니다! 모두 물러나세요!”
순간적으로 파악한 놈의 공격 패턴을 공유하며, 나 또한 뒤로 물러섰다.
이대로면 다음 타겟은 내가 분명할 텐데, 따로 맞아줄 대상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쾅!
군단장이 휘두르던 거대한 장검이 가로막혔다.
지옥불이 소환한 타이탄, 리버스 나이츠의 나이스 블로킹이었다.
“탱커든 뭐든 타이탄보다 가까이 있으면 무조건 죽습니다! 전 팀 원거리 극딜 모드를 유지해 주세요! 그리고 도둑들은 전부 제게 붙으십시오!”
“넵!”
하지만 솔저급 타이탄으로는 지금의 미친 공격 패턴을 길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따라서 최대한 극딜이 집중될 타이밍!
이속이 느린 탱커들은 몰라도, 도둑들의 검까지 놀리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놈의 스킬이 빠지면, 다가가서 5초만 치고 빠지겠습니다! 잠시 대기!”
쉬익- 핏!
또다시 내리꽂힌 검은 번개.
그걸 보자마자 외쳤다.
“지금입니다! 재빠른 몸놀림!”
각자 그밟과 재림 버프 등을 활용해 순식간에 군단장의 후방에 붙는 도둑들.
다들 레이드라면 해볼 만큼 해본 선수들이었기에, 몇 마디 오더만으로도 얼타는 사람 한 명 없이 전부 빠릿하게 움직였다.
물론 그중에서도 랭커인 무살 형님과 당당검의 무빙이, 유달리 돋보이기는 했다.
챙! 채앵!
조금 전부터 군단장의 어그로는 가장 근접한 유저로 타겟팅되는지, 타이탄을 상대하던 놈이 당당검을 향해 뒤돌아봤지만!
지옥불은 패링 시스템이 적용되는 타이탄의 거체와 대검을 활용해, 군단장의 평타 공격을 최대한 디펜스해 주었다.
‘역시 컨트롤 하나는 일품이시구나!’
직접 타이탄으로 일 대 일 전투를 해본 상대이기에 잘 알고 있다.
거대 길드의 수장 역할로만 비치는 지옥불의 전투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 수준인지.
하지만 그런 그로서도, 반드시 적중되는 특수 스킬만큼은 어찌하지 못했다.
“부길마! 네 차례다!”
2팀의 맨 앞에서 스위칭한 활로 공격 중이던 두바이.
그는 다급하게 들려온 지옥불의 외침에 곧바로 새로운 리버스 나이츠를 소환했다. 그리고는 3번째 적중당한 검은 번개에 지옥불의 타이탄이 역소환되자, 그 자리를 공백없이 메꿨다.
“이제 15% 남았습니다! 조금만 힘내주세요!”
남은 타이탄은 댜크홀스와 축빙 형님의 타이탄 2대.
하지만 이 같은 추세라면 얼추 잡을 만해 보였다.
하지만 모든 레이드가 그렇듯이, 가장 힘든 최후의 구간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버러지 같은 놈들! 여기까지 나를 몰아붙인 건 인정하마! 하지만 너희가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솟아나라! 긴 잠에 빠져있는 나의 부하들이여!"
돌연 공격도 멈춘 채 안광을 밝히며 부르짖는 군단장.
그리고는 곧, 우리가 밟고 있던 분지 곳곳에서 무언가가 지면을 뚫고 튀어나왔다.
<괴수군단 스켈레톤 워리어>
<괴수군단 스켈레톤 아처>
허연 뼈들로 이루어졌지만 장비만큼은 잘 갖춘 언데드들.
우려하던 군단장의 소환 몹 페이즈 단계였다.
‘이게 몇 마리야 도대체!’
물론 예상은 했었기에, 처음 몹들이 소환되는 걸 볼 때는 그저 올 게 왔구나란 느낌만 들었다.
한데 이 정도까지 비상식적으로 많이 소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른 평지인 시공의 나락 분지 안.
이곳이 한순간 소환된 언데드 병사들로 인해, 순식간에 가득 차 버리고 만 것이다.
'이대로 보스 몹 극딜? 아니면 몹몰이? 아니야, 아처들이 있으니까 몹몰이는 안 돼.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병사들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5백 이상.
그야말로 군단장이라는 보스 몹의 이름이 아깝지 않은 물량이었지만, 우리로선 맞서기 힘든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심지어 소환이 재차 이루어질지도 모르니, 제대로 된 타개책을 찾지 못한다면 금세 둘러싸여 전멸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오직 공격대장인, ‘내’가 내릴 선택에 따라서!
“전원 2팀을 중심으로 뭉치세요! 그리고 각자 보유 중인 아이언 골렘을 전부 소환하세요!”
잘못된 선택이어도 어쩔 수 없다.
망설일 시간조차 없던 난, 빠르게 명령부터 내렸다.
불안함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금세 전염되기 십상.
그저 공격대원들은 내 오더만 믿고 전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공격대장인 나는 자신감만을 가득 채워 외쳤다.
“힐 주고 있으니까 일단 오더대로 빨리 2팀한테 붙어!”
"신성한 보호막!"
삼각 대형으로 산개해 있던 3개의 팀이 서두른 탓에, 다행히 고립되기 전에 하나로 뭉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공대원들 주변으로 강화된 아이언 골렘 10여 기가 소환됐다.
이곳에 있는 유저들은 드래곤 레이드에 참여했던 바로 그 멤버들.
따라서 테이밍 몬스터 스킬을 익힌 유저들 또한, 여전히 이 레이드에 다수 속해 있었기에 가능했던 임기응변이었다.
“원딜러들은 군단장 공격을 멈추지 마세요! 탱커 및 근딜러들은 공성하듯 대원들을 보호하면 됩니다!”
떼거지와 같이 몰려드는 언데드 병사들.
그중에는 스켈레톤 아처와 같은 원딜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수를 탄 스켈레톤 라이더도 있어, 철벽이 세워졌다 하더라도 버티는 게 쉽진 않아 보였다.
그러던 중, 급조한 바리케이드 앞으로 공격대원들을 절망케 하는 놈들까지 나타났다.
언데드 중, 중간 보스 격으로 소환된 것으로 보이는 존재들이었다.
<괴수군단 데스 나이트>
크기만 해도 3미터에 달하는 거인 같은 체구.
뼈만 남은 언데드임에도 불구하고 무장한 중갑옷 덕분에 위압감이 철철 넘치는 모습이었다.
한데 그런 데스 나이트가 무려 3기나 난입해, 맨 앞에 있는 탱커를 공격해왔다.
“으악! 힐 좀 줘!”
“뭐야 이 자식들! 소환 몹 맞아?”
데스 나이트는 친숙한 언데드 몬스터 중 하나였다.
많은 유저들이 즐겨 찾는 고레벨 인던 중 하나에서 보스 몹으로 등장하기 때문.
그런 놈이 고작 소환몹으로 나왔으니, 지금 시점에서 군단장 레이드가 얼마나 어려운 난이도인지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가 클리어해야 할 보스 몹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길드원들이 좀 죽더라도 안전하게 갈지 잠시 고민이 들었으나, 곧 떨쳐내고 결심을 굳혔다.
‘어려워졌다고 처음 다짐을 저버린다면…… 날 믿고 맡긴 지옥불 님이 뭐가 되겠어!’
지금은 혼자 솔플만 하던 시절의 내가 아니었다.
한 길드의 마스터일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치열하게 전투 중인 모든 유저들의 공격대장이었다.
그런 내가 그들의 죽음을 발판 삼아 퍼스트 킬에 성공한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레이드에 성공해봤자 기쁠 리 없었다.
오늘 레이드의 공대장으로서……더 이상의 죽음은 현중이와 먹자 도둑, 단둘 외에는 허용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 오더는 없으니, 각자 알아서 하세요! 이제는 저도 킬까지 극딜 모드로 들어가겠습니다!”
칭!
이제는 익숙한 비장의 무기.
단테리오의 팔찌를 가동시켰다.
[스킬 가속 상태가 되어 60초 동안 모든 스킬의 사용 대기시간이 10%로 줄어듭니다.]
순식간에 차오르는 쿨타임 대기시간.
난 군단장에 앞서, 먼저 데스 나이트들로 버거워하는 탱커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재빠른 몸놀림, 약점 포착.
이 두 가지 스킬만 사용한 채 그야말로 무참히 썰어버리고 말았다.
“허무하도다……!”
“무력하구나……!”
번쩍번쩍.
빠르게 휘둘러진 신검 덕분에, 몇 차례의 신성 데미지 효과가 허공을 수놓았다.
그리고는 2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만에, 데스 나이트 두 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미쳤다…….”
“와…… 눈앞에서 직접 보니까 진짜 장난 아니네…….”
누적되기 시작한 수많은 고등급 업적의 효과와 신검 속성 우위와 데미지.
이 덕분에 공격대원 앞에서 말도 안 되는 딜링 수준을 보여줄 수 있었다.
쉬익- 핏!
하지만 잠시도 머뭇댈 새가 없었다.
막 두 번째 데스 나이트를 잡은 순간, 댜크홀스의 타이탄을 향해 또다시 군단장의 특수 스킬이 떨어진 것.
마침 체력도 얼마 남지 않았었는지, 곧바로 역소환당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그림자 밟기!]
하지만 그렇기에 들어가 볼 타이밍이었다.
난 녀석의 스킬이 빠지자마자 이동기를 사용해 뒤로 이동한 후,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들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난도질!]
최근에 얻은 최강의 공속 버프.
이걸 쓰자마자 놈의 남아있던 체력이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버러지 같은 놈들! 너희의 발악은 아무런 소용없다!”
"솟아나라! 긴 잠에 빠져있는 나의 부하들이여!"
그러자 녀석이 또다시 소환 스킬을 사용했다.
[마나 쉴드가 113,273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MP 칸의 1/4이 한 번에 날아갔다.
녀석의 특수 스킬이 내게도 내리꽂힌 것.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최선의 딜 싸이클을 유지하기 위해 검을 멈추지 않았다.
[마나 쉴드가 15,750의 마법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108,951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
또 다시 8초의 쿨타임이 지나고 내리꽂혔고 내 MP도 이제는 바닥을 거의 드러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내게는 새로 얻은 비장의 방어 수단, 천사장의 망토가 남아있기 때문!
반면 녀석의 피는 2%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녀석으로부터 그토록 듣고 싶던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럴 수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건만…… 이토록 허무하게 내가……!”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군단장.
마침내 녀석을 죽이는 데 성공해버렸다.
“자, 잡았다!”
“군단장이 죽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남아있던 모든 소환몹들이 사라져 시공의 나락 안에는 우리만 남겨졌다.
[업적 ‘마계 군단장 학살자’를 획득했습니다.]
[업적 ‘심연과 조우한 자’를 획득했습니다.]
[‘시공의 너머를 향하여: 메인 퀘스트’를 해결했습니다.]
……………………
늘 그렇듯이 맨 처음에는 수많은 알림 메시지부터 눈에 가득 채워졌고.
[망가진 악마 군단장의 채찍(레전더리)를 획득했습니다.]
[악마 군단장의 숨결(레전더리)를 획득했습니다.]
[악마 군단장의 목걸이(레전더리)를 획득했습니다.]
……………………
그와 동시에 수많은 드랍 아이템들이 내 인벤토리 안으로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고 수준의 필드 보스의 퍼스트 킬 답게, 무슨 레전더리 템들이 잡템인 것마냥 드랍되어 정신없이 줍기 바빴다.
그리고 그중에는…….
“역시 나왔구나! 진짜 힘들었다, 널 이렇게 손에 넣기까지가!”
<광택을 잃은 카오스 스톤(퀘스트 아이템)>
얼핏 봐도 부서진 귀환석보다 훨씬 크고 화려한 선홍빛 돌.
시공의 틈새와 우리 아베르 성을 이어줄 영구 포탈의 퀘스트 템이, 내 인벤토리창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