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97화 (197/350)

197화 불굴의 의지 (3)

“콘, 콘틀랑이라는 곳이 어딥니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곳인데요?”

아직 열려있는 교환창에 신고 있던 대도 부츠를 벗어서 올리자, 곧 확인을 마친 열혈거북이가 되물었다.

“저도 모르는 곳이에요.”

“네? 뭐라고요……?”

“사실 저도 예전에 이 설명을 보고 가트웰 산맥을 뒤져본 적이 있어요. 근데 없더라고요. 정상이라고 하는 걸 보면 산봉우리 이름 같은데, 아무데도 그와 관련된 정보도 찾을 수 없더라고요.”

“지금 저랑 장난치…….”

“장난이라뇨? 전 지금, 정말로 진지합니다. 갖고 계신 템을 보고 나서는 더욱 그렇게 됐고요! 한데 어떡합니까? 님께서도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이 게임은 유저들한테 너무 불친절한 게임인걸요.”

길드 생활이나 공성 및 전투에만 몰두하는 유저.

생산이나 채집, 장사 등에만 집중하는 유저.

맵을 탐험하거나 유랑하며 관광만 하는 유저 등등.

타연 유저들이 게임 스토리 위주의 플레이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건 퀘스트가 너무 어렵다는 것.

클리어 난이도 C등급 이하의 퀘스트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힌트나 방향 등이 주어진다.

심지어는 특정 장소나 NPC 등을 명시해주며 안내해주기까지도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높은 등급으로 가면 갈수록, 난이도는 수직상승했다.

단서가 전혀 주어지지 않아 뜬구름 잡듯 찾아다녀야 하는 것은 물론, 운 좋게 달성 방법을 알게 되더라도 클리어 조건이 천차만별이었다.

이렇다 보니 유저들 입장에서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마찬가지.

이게 바로 일루전이 수백만 유저들을 상대할 방법으로 마련해둔, 소위 ‘퀘스트’란 놈의 실체였다.

“…….”

내 반문에 할 말을 잃었는지, 잠시 흥분했던 열혈거북이가 입을 다물었다.

“두 분 대화하는데 갑자기 껴들어서 죄송한데, 혹시 무슨 퀘스트를 하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러자 잠자코 지켜만 보시던 무살 형님이, 멈춰버린 대화를 이어나갔다.

“퀘스트가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페어리 퀸이 목적도 아니고요. 그걸 발견하면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이 필요해서 찾고 있는 겁니다. 분명 페어리 퀸을 만나, 그 부산물을 먼저 얻은 유저를 제가 알거든요.”

“네? 퀘스트 때문이 아니셨다고요? 대체 그 부산물이란 게 뭐길래, 그렇게나 열심히 찾고 계신 거세요?”

“그걸 제가…… 생판 모르는 당신한테 말해줄 이유가 있을까요?”

타연에는 워낙 어렵고 다양한 퀘스트들이 존재하기에, 그 또한 그런 퀘스트 중 하나 때문에 이곳을 배회하고 있다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그가 퀘스트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내가 좀 더 도움을 줄 구석이 있지 않을까?

“자 자, 그럼 이러면 어떨까요? 제가 님 대신 페어리 퀸을 찾아 드릴게요. 그게 목적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어느 정도 안심하고 맡기실 수 있겠죠? 그 대신, 저한테 갖고 계신 불굴의 의지를 파시는 건 어떻습니까? 값은 여러 장사꾼들의 검증을 통해서, 제대로 쳐 드리겠습니다!”

“아, 팔 생각 없다니까요! 몇 번을 말해요!”

“지난 몇 달간 이런 곳만 찾아다니며 헤매고 다니신다는 걸 이미 듣고 왔습니다. 제가 아니었다면 페어리 퀸이 없는 이곳에서 계속 헤매셨을 텐데, 그곳에 혼자 가신다고 찾을 수 있으시겠어요? 저에겐 찾을 방법이 있으니까, 믿고 맡겨보세요.”

“도대체 뭘 믿고 맡기라는 건데요. 이미 한 번 뒤져봤다면서요. 그때 못 찾았던 걸 지금 어떻게 찾겠다는 건데요?”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다르죠. 현재 저희 길드에는 이런 일에 특화돼있는 스페셜리스트가 있거든요.”

예전에 찾아봤을 때는 아직 미오픈 지역이거나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지역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눠보다 보니, 이미 누군가는 다녀온 실존하는 지역이라는 게 밝혀졌다.

없으면 모를까 실제로 존재한다면…… 시간의 문제이지 가능 여부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면 우리 길드에는 ‘그’가 있었으니까.

“누군 길드가 없는 줄 아나……. 아니, 스페셜리스트는 무슨 스페셜리스트야? 타연에 그런 게 어딨다고!”

“아이디를 들으시면 님도 아하 하실 건데요?”

“그게 도대체 누군데요?”

“대탐험시대요.”

* * *

[지웰 성 북부, 휴포드 산악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페어리 언덕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전부 지웰 성 지역에 속한 곳이었구나? 확실히 페어리 퀸이 이 근방에 있을 만은 했네.’

가트웰 산맥 중턱에 위치한 휴포드 산악 마을.

열혈거북이와 헤어진 나와 무살 형님은, 몇몇 길드원들에게 연락하고는 바로 이곳으로 넘어왔다.

피차 바쁜 몸들이니 당장 뒤져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나보니까…… 들은 것보다도 더 까탈스런 유저더라?”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하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이 사람이 왜 이런 성격으로 변하게 됐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러게. 그럴 만도 하더라.”

대탐험시대가 갖고 있는 인지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했다.

어쩌면 열혈거북이와 같은 성향의 유저에게는, 다리우스보다 더 대단한 취급을 받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는, 우리 길드에 대탐험시대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돌변했다.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드디어 제대로 된 대화를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난, 산드로 당신을 싫어하는 편입니다.

-네? 왜요?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되거든요. 제가 처음 목걸이를 얻었을 당시와.

기적 같은 스토리와는 별개로,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이 싫었다고 말했다.

재수 없게 사고를 당하게 된 것도, 천운으로 하반신 마비에서 회복된 것도.

모두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뤄졌던 일들이었기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게임만 한 거였습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감각이 돌아왔던 거고. 근데 사람들은 열광하더군요.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마냥!

물론 처음에는 좋았다고 했다.

다시 걸을 수도 있고, 여러 기부금도 들어오고, 방송과 CF에도 출연해 돈도 벌게 되고.

심지어는 자신을 기념하기 위해 즐겨하던 게임에서 단 하나뿐인 템을 제작해 주기까지 했다.

-한데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점점 돌변하더군요. 질투를 하는 건지, 원래 유명해지면 그런 건지……. 뜬금없이 욕을 하질 않나, 없는 말을 지어내질 않나…… 심지어는 나만 쫓아다니면서 PK를 하는 유저들도 생겨났었습니다. 그 당시엔.

-……어떤 기분이셨을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군요. 저도 비슷한 걸 겪었거든요.

-레전더리 템을 가진 유저가 그 정도밖에 못 하냐는 비아냥도 엄청 받았습니다. 랭커는커녕 레벨이 그게 뭐냐고. 템이 아깝다 어쩐다, 비난하기 일쑤였죠. 난 이 게임을 하는 동안, 예나 지금이나 그따위 것들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죠.

아팠던 사람을 대상으로 정말 그따위 짓을 벌일 유저가 있을까 싶겠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해봤던 나이기에 전부 사실로 느껴졌다.

-허구한 날 템 팔라고 괴롭히는 유저들과 쫓아다니며 죽이려고 드는 놈들. 그 자식들 때문에 아이디까지 바꿨는데도, 결국엔 알아내서 똑같이 반복하더군요. 그래도 안 통하니까, 결국엔 길드원들도 괴롭히기 시작했고요.

그가 아프고 괴롭던 시절, 마치 중독된 것처럼 열심히 게임을 했던 것은 이곳 타연에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회복과 동시에 그것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전 불굴의 의지를 지닌 유저도 뭣도 아닙니다. 그저 그냥 지극히 평범한 한 명의 유저에 불과할 뿐이죠. 원했던 것도 아닌 템을 잘못 받았다가, 한순간에 모든 게 엉망이 돼버리고 말았어요. 저뿐만 아니라…… 제가 힘들 때 함께 위로해주고 기쁘게 해주던 사람들도요. 그걸 만회하고 싶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와 공감대가 형성되어, 이렇게 제법 오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대체 그 부산물이란 게 무언지는 끝내 말해주지 않았지만, 왠지 그가 그걸 얻도록 도와주면 템을 판매해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끝끝내 판매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은 없었다.

타연에 숨겨진 필드를 찾아낸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나와 우리 길드에 도움이 되고 의미 있는 일이었으니까.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공틈에 있다 오느라 시간이 좀 걸렸네요.”

“무슨 소리야! 이렇게 부르자마자 와준 게 어딘데!”

“하핫! 이런 대형 떡밥을 던져주셨는데 어떻게 안 올 수가 있나요? 이런 일이야말로 제 전문 분야인데요!”

공간이동술사를 통해 넘어온 대탐험시대와 기파랑, 그리고 라챤이와 현중이.

이미 귓말을 듣고 한껏 흥분한 상태인지, 넘어오자마자 전부 업된 상태로 한마디씩 말을 건넸다.

“당장 가자! 어디야? 그 콘틀랑이라는 곳이?”

“인마, 조용히 안해! 아주 동네방네 소문내려고 그러는 거지?”

“헛! 쏘리, 쏘리…….”

흥분한 현중이를 진정시키며 다 함께 파티를 맺은 뒤, 일단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마을 밖 한적한 곳으로 나왔다.

“대탐아, 혹시 너 콘틀랑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 있어?”

“아뇨. 저도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에요. 사실 가트웰 산맥이 워낙 넓잖아요? 근데 보이기는 하지만, 갈 수 없는 미오픈 지역은 많고……. 사실 그래서 전, 이 지역에는 드래곤 레어말고는 별다른 건 없다고 단정 짓고 있었어요.”

“흠…… 그럼 혹시 당장 짐작 가는 부근이라도 있니?”

“저라고 뭐 달리 뾰족한 수가 있겠어요? 한데 지금은 비행 탈 것이 있으니까 먼저 한 번만 돌아보죠!”

“그럴까? 그럼 라챤아, 넌 기파랑을 태우고 나머지는 제 훼라리에 타세요! 축굴아, 넌 그냥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라! 알겠지?”

“아, 뭐야! 이럴 거면 날 왜 불렀어!”

“하하! 좀만 기다리고 있어 봐!”

그렇게 정원대로 훼라리와 와순이에 나눠 탄 뒤, 우리는 가트웰 산맥 위로 날아올랐다.

휘이잉-

고산 지역 특유의 날카로운 바람이 세차게 맞부딪혀왔다.

“와! 역시 맵 탐험은 비행 탈 것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너도 테이밍 몬스터 스킬 좀 배워 봐. 그러면 타연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많아져!”

“그게 뭐 마음대로 나오는 스킬이어야 말이죠. 저도 특별 스킬 나오는 퀘스트는 3번이나 받았었는데, 전부 다 꽝이었어요.”

뒤에 탄 대탐이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빠른 속도로 산맥 위를 비행했다.

익숙한 와이번 둥지가 있는 봉우리도 들르고, 평소에는 가보지 않는 맵의 끝자락 부근에도 여러 번 도달했다.

[이동 불가 지역으로 진입하여 주기적인 데미지를 입습니다.]

[이동 불가 지역으로 진입하여 주기적인 데미지를 입습니다.]

……………………

“아…… 여기도 더는 못 가는데?”

“형님……. 어느새 저희 산맥을 한 바퀴 다 돌지 않았어요?”

“어? 그런 거 같네?”

“흠……. 그럼 일단 돌아가서 와순이 팀과 만나서 의논해 보죠.”

“오? 그래? 뭔가 감이 왔나 본데?”

“내려가서 말씀해 드릴게요.”

약 30분 넘게 비행만 했는데도 어떤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역시나 대탐이는 뭔가 눈치챈 모양이었다.

다시금 전부를 불러모아 처음 날아올랐던 곳에 모이자, 대탐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파랑아, 너도 뭐 특별히 의심되는 부분은 찾지 못했지?”

“어.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기고 특별한 거 없는 산봉우리만 있던데?”

먼저 기파랑의 의견을 묻는 대탐이.

하지만 역시나 대탐이 말고는 뭔가를 찾아낸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대탐아. 혹시 뭔가 단서라도 찾았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감은 왔어요. 드로 형님이 이걸 눈치채지 못한 게 의외인데요? 저한테 진작 말씀해 주셨으면 금방 찾으셨을 수도 있는데…….”

“뭐? 진짜? 그게 뭔데!”

“형님이 이 단서를 알게 되신 게 뭘 통해서였죠?”

“그야 대도부츠지.”

“바로 그거예요, 대도부츠. 윌리펑이 세상 온갖 곳에 가볼 수 있던 이유가 뭐였죠? 바로 그 부츠에 붙어있는 옵션 때문이잖아요!”

“뭐야? 그럼 일반인들은 올라가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거야? 이 대도부츠를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곳에?”

“100퍼센트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럴 확률이 높아요. 한데 그런 곳이라면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을 이유가 또 없죠.”

“그렇지. 나만 해도 훼라리로 이 산맥을 엄청나게 돌아다녔으니까. 타연에 비행 탈 것이 얼마나 많은데, 뻔히 보이는 절벽 하나를 못 올라갈까?”

내가 어리둥절한 이유도 이거였다.

이미 함께 비행 가능한 지역은 싹 훑어봤으니 알겠지만, 콘틀랑이란 봉우리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한데 그곳이 이미 존재한다고 하니, 도무지 어딘지 감이 오질 않았던 것이다.

“맞아요. 그러니 다르게 생각해 봐야죠.”

“그러니까 어떻게 다르게?”

“형님.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면, 정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뭐라고?”

“콘틀랑……. 제 예상에 그곳은, 아마도 투명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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