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96화 (196/350)

196화 불굴의 의지 (2)

‘과연 지옥불 형님의 말씀대로, 그가 10강화 레전더리를 갖고 있을까……?’

곳곳에 지인들이 많은 무살 형님 덕분에, 다행히도 그 유저가 아직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출몰 위치까지 특정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때로부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도 레전더리 템이라면 귀하고 비싼 아이템인데, 당시에는 그 가치가 얼마나 대단했을까?

분명 장현수도 그 청년으로 인한 이미지 개선과 마케팅 효과를 노렸던 거지, 그가 실제로 쭈욱 사용할 거란 생각으로 건네준 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에도 매물로 올렸다면, 십억 정도는 우습게 받아냈을 템이니까.

“아직 갖고 계실 거라는 건 확실할까요?”

“아마 그럴 거야. 팔 거였다면 진작에 팔아버렸겠지. 근데 그런 소문은 일절 없었잖아? 말한 것처럼 좀 괴팍하고 여전히 하드하게 게임하는 헤비 유저라, 직접 썼을걸? 나도 너 때문에 이번에 조사하면서 알게 됐는데, 그거 드랍 불가 옵션도 달려 있다는 얘기도 있더라?”

“그래요? 하긴 그런 옵션이 없었으면 진작 머더러들의 집중 타겟이 됐을 테니, 장현수 부사장이 달아줬을 만도 하네요. 암만 그래도…… 저라면 바로 팔아버렸을 텐데 직접 쓸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네요.”

“뭐? 딴 사람은 몰라도 네가 그런 소리 하는 건, 말도 안 되지!”

“네? 제가 왜요?”

“너도 어쩌다 좋은 템 하나를 얻게 됐는데, 그거 안 팔고 똑같이 직접 썼잖아! 모르는 사람들이야 널 운 좋은 놈 취급하고 비하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 그거 하나만으로도 네가 진짜 대단한 놈이라는 걸!”

무살 형님은 내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 만난 사람이라 그런지, 확실히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 주신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늘 낙천적이고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아직도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있진 않는지 반성하게 되는 일침이었다.

“아무튼 여러모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어허! 내가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방금도 말했지?”

“하핫! 넵! 뭐 하십니까? 어서 달리지 않고!”

“이게 또 형님을 갖고 놀리네?”

필드에 나와 있는 터라, 형님과 나는 은신 상태로 이동 중이었다.

한데 아무래도 8성 은신과 5성은 이속 차이가 상당해서, 형님이 날 따라잡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후다닥 도착한 페어리 언덕.

작은 새 정도에 불과한 페어리 종족이 드물게 출몰하는 곳으로, 이름과 달리 이곳의 주된 몹은 페어리가 아닌 몽당 엔트나 폭탄 가시꽃 같은 식물형 몬스터였다.

그리고 그러한 특징답게, 이곳에는 채집 삼매경에 빠져있는 유저들이 곳곳에 깔려 있었다.

“와! 여기서 계속 찾아야 하는 거예요? 장난 아니겠는데요?”

“지금 접속했는지 안 했는지도 확실치 않으니까, 고생 좀 해야 할 거다. 일단 흩어져서 찾아보자. 아이디는 기억하지?”

“네. 그럼요! 찾으시면 먼저 말 걸지 마시고, 귓말부터 주세요, 형님!”

기적 같은 스토리와 아이템 덕분에, 그는 하루아침에 타연 속 유명인사가 되었다.

한데 당시는 레벨이 그다지 높지 않던 시절이라, 워낙 유명해진 플레이가 부담스럽던 그는 레벨 다운으로 아이디를 변경해버리고는 잠적했다.

이제서야 뒤늦게 알게 된 그의 아이디, 열혈거북이.

이것이 바로, 내가 그와 그의 템을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이유였다.

‘확실히 고수들을 많이 알게 된 후부터는 노는 물이 달라졌구나. 그들의 정보망과 인프라를 공유받을 수 있으니까, 어려웠을 일도 별일 아닌 것처럼 해결해버렸네.’

하지만 당시 랭커를 비롯한 최상위 유저들이 그를 가만 놔뒀을 리 없었다.

온갖 수소문과 뒷조사 끝에 그의 새 아이디를 알아내고 꾸준히 접근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불굴의 의지를 판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점차 그는, 모두에게서 잊혀지게 되었다.

(무적살라딘: 드로야, 당장 이쪽으로 와 봐라, 위치(!). 거북이 찾았다!)

(나: 네?)

형님과 헤어진 지 5분.

고작 그것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설마 장난치시는 건가 하는 의심하며 링크 준 곳으로 달려가 보니, 정말로 열혈거북이가 눈앞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 뭐야? 진짜였네요? 어떻게 금방 찾으셨어요?)

(무적살라딘: 한 거 없어. 보이는 것처럼 계속 혼자서만 돌아다니고 있어서, 저절로 눈에 띄더라고! 죄다 채집하는 사람들 틈 사이에 있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필드를 헤집고 다녔다.

지천에 널린 채집 템이야 관심 없을 만도 했지만, 어그로가 끌릴 수밖에 없는 몹들도 잡지 않고 그냥 끌고 다녔다.

특정 필드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는 유형.

바로 보스 몬스터 리젠을 찾아다니는 ‘순찰자’들의 모습이었다.

(나: 여기 필드 보스 뜨는 곳이었어요?)

(무적살라딘: 아니,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이렇게 저레벨 채집꾼들도 몰려와서 북적대는 거지.)

(나: 확실히 특이한 유저기는 하네요. 일단 관찰은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 대화에 나서보겠습니다.)

마음을 굳힌 나는 그에게 다가가 은신을 풀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훑어보느라 바쁜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실례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잠깐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시펄, 깜짝이야! 어, 뭐야? 산, 산드로? 버닝스타의 그 산드로?”

“네, 거북이 님. 그 산드로가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평범한 중갑옷 차림의 전사 캐릭.

초창기 레전더리 템을 소유했던 사람치고는, 그다지 특출나거나 존재감이 느껴지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외형과 달리, 왠지 상대하기 쉽지 않은 인물일 것 같았다.

“날 찾아온 겁니까? 왜요?”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거북이 님이 갖고 계신 아이템 중에 구매하고 싶은 템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아아, 그거? 됐어요. 팔 생각 없으니까 돌아가세요.”

“말씀하시는 거 보니 아직 갖고 계시나 보네요? 어차피 본전이신데, 한번 판매 조건이라도 말씀해 주시는 건 어떠세요?”

“아, 됐다니까요? 팔 거였음 진작에 팔고 겜 접었죠! 오랜만이긴 한데…… 그래도 당신 같은 사람은 수두룩하게 있었으니까, 괜한 힘 빼지 말고 그냥 가세요! 팔 생각도 없지만, 놔둬도 계속 시세가 올라가는 템을 내가 뭣 하러 지금 팔아요?”

생각보다 쉽게 찾아내긴 했으나, 역시나 수월하게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골드야 이제 남부럽지 않게 갖고 있어서 얼마를 부르든 상관없었지만, 아예 거래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하긴, 이랬으니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템을 판매하지 않고 사용했으리라.

“아, 자꾸 따라올 거예요? 안 판다니까요!”

“…….”

“거기 은신 써서 두 분 다 숨어있는 거 알거든요? 욕 나오기 전에, 이제 그만 가시죠?”

그렇다고 포기할 거였으면, 굳이 바쁜 시간을 쪼개 찾아오지도 않았다.

갈 때 가더라도 끝까지 최선은 다해봐야 후회가 없는 법.

일단 무슨 말이라도 꺼내서, 대화의 물꼬를 트려고 계속 노력했다.

“하나만 여쭤보고 싶어서요. 대체 여기서 뭐 하시는 거세요? 뭔가 찾고 계신 게 있으세요?”

“……그건 왜 물어보는데요?”

“제가 도움이 돼 드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래 봬도 제가, 타연과 관련된 일이라면 제법 많이 아는…… 아니, 거의 모르는 게 없거든요!”

또 습관적으로 겸손을 떨려다, 이런 유형의 사람이라면 무살 형님의 말처럼 그게 역효과일 것 같아 허세를 부렸다.

하지만 요즘 내가 퍼스트 클리어한 최상위 콘텐츠들이 제법 많았으니, 마냥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페어리 퀴……니여.”

“네?”

“페어리 퀸이라고요! 혹시 여기서 뜨나 싶어서 몇 주일째 찾고 있었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해서 되묻자, 발끈하듯 소리친 열혈거북이.

하지만 그런 태도에 기분 나쁘기보다는, 그에게서 드디어 반응이 나왔다는 사실이 더 반가웠다.

“아하, 페어리 퀸을 찾고 계셨구나? 근데 여기엔 페어리도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지 않아요? 퀸이 떴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그거야 나도 당연히 알죠! 근데 페어리 퀸이 있다는 건 아는데, 찾을 단서가 없는 걸 어떡합니까? 뭔 놈의 게임이 이렇게 힌트를 아껴서, 유저들을 맨땅에 헤딩하게 만드는지……. 맵은 또 오지게도 방대하게 만들어 놓고서!”

“그러셨구나……. 하긴 이 게임이 그렇긴 해요. 그리고 확실히 최상위 콘텐츠로 갈수록 게임을 딥하게 한 사람들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제가 도움드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뭐요? 뭘 어떻게 돕는다는 건데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운 좋게도 찾고 계신 게 제가 조금 알고 있는 거라서요. 대신…… 가벼운 부탁 하나만 드려도 괜찮을까요?”

“알고 있다고요? ……부탁은 또 뭔데요?”

“교환창으로 그 ‘불굴의 의지’라는 템 좀 한번 구경시켜 주시겠어요? 워낙 베일에 쌓여있는 템이라, 정확한 옵션을 알고 계신 분은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열혈거북이가 불굴의 의지를 얻은 히스토리야 워낙 유명했지만, 정작 유일한 소유자였던 그는 템의 옵션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략 몇 가지 옵션을 알고 계시던 지옥불 형님도, 그 정보는 개발사 측에서 흘러나왔던 단편적인 정보라고 하셨다.

“……괜히 거짓부렁으로 날 속이려는 속셈이라면, 앞으로 당신에게는 때려죽여도 안 팔 겁니다! 당신이 산드로라서 믿고 보여주는 거예요!”

“네, 아무렴요. 제가 그렇게 멍청한 놈은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아무리 10강화 레전더리라도 내게 필요 없는 템이라면 아무 의미 없다.

그러니 구매에 앞서 먼저 옵션을 한 번 살펴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확인해보는 것까지는 성공하게 되었다.

<+10 불굴의 의지(레전더리, 목걸이)>

* 방어력 110(+110),

* 마법 방어력 200(+200)

* 모든 스탯 +30(+30)

* 모든 속성 내성 +5%(+5%)

* 초당 HP와 MP 회복 +30(+30)

* 넉백 저항 +50%(+50%)

* 이 아이템은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 이 아이템은 절대 파괴되거나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 영원히 기억될 의지를 보여준 뛰어난 전사를 위해 만들어진 목걸이입니다.

* “우리는 이곳에서, 그 무엇에도 굽히지 않을 불굴의 의지를 목격하게 되었다. 그에게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앞으로도 그는, 절대 쓰러지지 않으리!” -주시자 젠티스-

“헉!”

그리고 난, 올라온 템을 보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내게 레전더리 목걸이가 있단 사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미쳤네 미쳤어……. 타연에 이런 템이 있었다니……!’

10강화답게 레전더리 템치고는 화려한 수치를 자랑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을 다 합친다 하더라도, 단 한 가지 옵션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바로 넉백 저항.

수치가 100%를 찍었다는 소리는, 당연한 말이지만 이 템 하나로 넉백에 면역이 돼버린다는 소리였다.

“왜요? 생각이 바뀌었어요? 하긴 무기나 방어구도 아닌 목걸이니까, 직접 확인하니까 막상 별로라고 느껴지나 보죠?”

“아니에요……. 그 반댑니다. 사는 입장에서 이런 말 해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다는 걸 알지만…… 진심으로 너무 좋네요!”

“네?”

(무적살라딘: 드로야, 그런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잖아!)

(나: 압니다, 형님. 하지만 형님이 옵션을 못 보셔서 그런 말씀 하는 거예요. 이건 뭐 이것저것 잴 게 없는 템이네요!)

이런 성격을 상대하면서 간보거나 숨기려고 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엄청난 옵션에 눈이 뒤집혀버린 나는, 바가지를 쓰더라도 무조건 손에 넣고 말겠다는 생각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말씀해 주시겠어요? 페어리 퀸을 찾을 단서를?”

“물론 말씀해 드려야죠. 아마도 페어리 퀸은 가트웰 산맥에 있을 겁니다.”

“네? 확실해요? 거기도 많이 가봤었는데요?”

“거북이 님께서 먼저 템을 보여주셨으니까, 저도 템을 하나 보여드릴게요. 그러면 믿으실 수 있을 겁니다.”

페어리 퀸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바로 떠오른 곳이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늘 착용하고 있는 대도 부츠에 그에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 “오스타그 궁전의 황제 침소? 미스틱 드래곤 칼 데드라의 전설의 레어? 혹은 가트웰 산맥 콘틀랑 정상에 있는 페어리 퀸의 공중정원? 아들아. 젊었을 적 내 발걸음이 닿지 않았던 장소라고는, 하늘 아래 그 어디도 없단다.” -대도적 윌리펑-

가트웰 산맥의 콘틀랑 정상.

그곳에 페어리 퀸의 공중정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