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콘틀랑 정상 전투 (2)
“뭐, 뭐야? 왜 다들 나만 쳐다보는데? 그리고 보호? 지금 무슨 말 하고 있는 거야? 귀환이 안 되는 거지, 로그아웃까지 안 되는 건 아니잖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여기 계속 갇혀 있으려고? 너뿐만 아니라 우리 8명도 함께 있는데?”
“얘들아,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다들 축빙 형님과 내 대화를 이해한 눈치였는데, 정작 당사자인 현중이와 축볼 누님은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기색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라챤이가 대신 나서서 설명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현중이 형네 팀은 모를 수도 있겠구나. 형네 팀이 퀘스트에 들어가자마자 드로 형님한테 올림푸스 놈들이 엄청 귓말 보냈어요. 근데 형님은 전부 다 차단 먹이고 대화를 거부했죠.”
“어. 그런데 그게 왜?”
“일이 이렇게 된 걸 보니, 제독은 그때 이미 결심한 거예요. 계속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걸 보니, 우리가 놈들 뜻대로 여길 감추지 않고 공틈처럼 모두에게 공개할 걸 예상하고요. 그래서 우리가 방심하도록 마지막에 수작까지 부렸던 거였죠.”
“그러니까! 그거랑 지금 내가 로그아웃하지 못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라는 건데?”
“지금 보고도 모르시겠어요? 이곳 콘틀랑 산 정상에, 금방 저만큼 모인다는 게 올림푸스만으로 가능했겠어요? 놈들은 작정한 거예요. 앞으로 이곳을 태성 라인과 공유해서 ‘통제 사냥터’로 만들고, 지들끼리 독식하겠다고!”
“……뭐?”
“라챤이 말대로야. 애초에 굳이 라인을 만든 이유가 뭐였어? 지들끼리 좋은 건 다 해 처먹으려고 만든 거였으니까, 페가수스를 얻을 수 있는 이곳을 일반 유저들과 공유할 리가 없지. 제독은 내가 계속 귓말을 무시하자 곧바로 다리우스한테 연락한 것 같다. 나도 제독이 이렇게나 빨리 결단 내릴 줄은 몰랐는데…… 내 실수야. 설마 이곳에선 귀환이 안 될 줄이야…….”
“그럼…… 지금 당장 못 빠져나가면, 나중엔 더 답이 없다는 소리야?”
“나중 일은 모르지만 일단은 그래.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한가롭게 대화 나눌 시간이 없어. 도움을 요청해도 도착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테니까, 더 모이기 전에 당장 나가야 해. 아니면 우리 길드원 대부분이 죽어서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텐데…… 나는 몰라도 너는 무조건 죽게 될 거다!”
콘틀랑 산 정상.
애초에 이곳까지 올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일반 도보로는 절대 오를 수 없는 절벽 포인트가 다수 존재했기에, 대도 부츠를 갖고 있거나 비행 탈 것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마저도 페가수스는 1인용 탈 것이라, 최소한 그리폰이나 와이번 등이 있어야만 했다.
입구 밖에 이미 수백 명이 모였다는 사실을 듣고 난 직후, 모두 태성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짧은 시간 만에 수백 명이나 정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건, 태성이 갖고 있는 ‘그리폰 부대’밖에 없었을 테니까.
(나: 형님, 계세요? 급하게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지옥불: 응? 무슨 일이지?)
(나: 저희가 지금 태성 라인한테 둘러싸여 고립돼서요. 죄송하지만 최대한 빨리 이곳으로 와 주실 수 있을까요? 위치(!) 놈들과 제대로 된 필드전을 벌이시진 않아도 됩니다. 그냥 저희 길드원들 퇴로만 좀 봐주세요!)
(지옥불: 그래, 최대한 빨리 가보마!)
휴포드 산악 마을에서 이곳까지는 제법 먼 편이지만, 비행 탈 것 있다면 단 몇 분이면 올 수 있다.
드래곤 레이드 준비 당시부터 테이밍 몬스터 스킬을 배운 길드원을 다수 양산하고 있는 피닉스.
덕분에 라챤이처럼 와이번 라이더가 된 이도 제법 늘어났는데, 이를 활용한다면 피닉스의 정예들만이라도 순식간에 참전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때문에 지옥불 형님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었으니, 이곳 콘틀랑 정상에서 벗어나는 건 순전히 우리 힘만으로 해내야 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빠르게 전달하며, 짧게 브리핑을 마쳤다.
“……다들 이해하셨죠?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적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까,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늘 그래왔듯, 제 오더보다 본인 판단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하세요. 지금은 임기응변이 더 필요한 순간이니까요!”
“알겠다! 가자, 다 쓸어버리러!”
“넵! 그럼 갑니다!”
이런 일에서의 앞장은, 언제나 8성 은신을 가진 내가 가장 적합했다.
길드원들을 뒤로한 채 입구 밖으로 조심스럽게 한 발짝 움직였다.
‘얼씨구? 이 자식들, 뭐냐?’
가장 먼저, 입구 코앞 허공에 쭈그려 앉아 뭔가를 시전하고 있는 몇 명의 유저들이 보였다.
무얼 하고 있나 지켜보니 도둑들이 열심히 덫을 설치하는 중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산 정상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태성 라인 놈들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 들어갔다 나온 그 짧은 새에도 몇십 명은 늘어난 모습.
절벽 한편에서는 수십 기의 그리폰들이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유저들을 위로 나르고 있었다.
‘암만 무시하려고 해도…… 태성은 태성이구나. 단 30분 만에 이런 게 가능한 건, 역시 타연에 이 자식들밖에 없을 거야.’
감탄은 감탄이었고, 할 일은 할 일이었다.
오늘 난, 눈앞에 보이는 모든 놈들을 잡아낼 각오로 전투에 돌입해야 했다.
[산드로: 입구 앞에 덫이 다수 설치됐습니다. 나올 때 조심하세요!]
탓!
투명 계단 바로 아래는 콘틀랑 정상.
그중 계단이 시작되는 흰 암석을 중심으로 뭉쳐있는 놈들을 향해, 과감하게 뛰어내렸다.
[재빠른 몸놀림!]
그리고 허공에서 자버프를 사용하며 은신을 풀었다.
“나왔다!”
“산드로야!”
순식간에 내게 집중되는 이목.
난 그들이 놀라건 말건 상관없이, 지상에 착지하자마자 양손에 들고 있는 검을 무참히 휘둘러나갔다.
최우선 목표는 궁수.
물상 면역에 마법 방어력이 높은 내게, 가장 까다로운 상대부터 줄여나갈 생각이었다.
[마나 쉴드가 2,172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상태 이상 ‘기절’에 저항합니다.]
……………………
퍼퍼펑! 펑!
사실 궁수보다는 즉발 스턴기나 넉백기를 갖고 있는 기사와 전사가 더 많이 보였다.
허나 그들은 잡는 데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크게 위협적이지도 않은 놈들.
무시한 채 단일 타겟 스킬을 섞어가며 궁수 한 명 한 명을 확실히 죽여 나갔다.
피잇!
하지만 근접 딜러들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건, 내 오만이고 오판이었다.
‘뭐, 뭐지? MP가 왜 이렇게……?’
생각보다 마나 쉴드로 경감될 데미지가 빠르게 줄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언지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하! 이번에야말로 진짜 잡을 수도 있겠구나? 이 쥐새끼 같은 놈을!”
“그러게요! 저 자식 당황하는 표정 좀 봐요!”
“크흐흐!”
벌써 수십 명이 넘게 둘러싸인 인의 장벽 속에서, 방금 소리친 녀석의 아이디가 보였다.
일도양단, 그리고 홍길동과 도닥통.
소식을 듣고는 신이 나서 달려왔는지, 나한테 악감정을 갖고 있는 태성 놈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정작 제독은 어디 가고, 이 자식들이 앞에 있는 거지?’
한데 놈들이 휘두르는 공격들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돋보였다.
마치 특별한 장검을 갖고 있기라도 한 것마냥, 은은한 푸른빛이 검신을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마나 웨폰? 어쩐지 갑자기 좀 세진 것 같더라니…….’
설마 벌써부터 이 버프를 실전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버프는 레벨과 상관없이 누구나 주고받을 수 있는 것.
내가 이곳에 있단 사실을 알고 모인 것이었으니, 일단 저레벨이라 할지라도 소속된 인챈터들은 죄다 끌고 온 모양이었다.
“너희들, 꿈이 너무 야무진 거 아니냐? 니들 주제에 무슨 수로 나를 잡아?”
“새끼, 세상이 바뀐 걸 모르네. 아직도 네 마나 쉴드가 무적인 거 같냐? 설마 아직까지도 마나 웨폰이란 게 생긴 걸 모르진 않을 텐데?”
“니 잘난 테크트리도 이제 끝이라고, 짜식아!”
18초 동안 공격력의 12.5%만큼 마나를 뺏어오는 스킬, 마나 웨폰.
나처럼 마나가 데미지를 경감시켜주는 마나 쉴드 테크 유저일수록…….
그리고 놈들같이 공격력이 랭커들이 쓸수록, 효율이 사기적으로 급증하는 디버프였다.
“그런 게 생기면 뭐 해? 어차피 그런 걸 덕지덕지 써봤자, 니들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은데!”
“이익! 궁수는 그만 죽이고, 이제 그만 남자답게 좀 덤벼라!”
충분히 놈들이 지금같이 기고만장할 만한 비장의 카드는 맞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마나 쉴드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만했으면 됐으려나? 그럼…… 본격적으로 날뛰어 볼까!’
궁수는 충분히 줄였고, 혼자 이 정도 활약을 벌였으면 충분했다.
난 계속해서 검을 휘둘러오는 녀석들을 향해 몸을 돌리며 외쳤다.
“오냐, 지금부터 마음껏 덤벼주마! 루이투스 소환!”
지잉-
허공에 새겨지는 마법진과 소환 이펙트.
그와 동시에 콘틀랑 정상에 로드급 타이탄, 루이투스가 강림했다.
[광휘의 방패!]
[영광의 검!]
먼저 마법 쉴드를 걸고, 평타를 휘두르며 광역기를 날렸다.
“으아악!”
“크헉!”
그러자 태성 라인답지 않게 십수 명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휘날렸다.
얼떨결에 이곳까지 따라왔던, 저레벨의 인챈터인 모양이었다.
“우, 우리가 막는다! 그래 봤자 한 놈! 다들 쫄지 마!”
지잉, 지잉-
일도양단과 홍길동, 그리고 도닥통은 이런 내게 대항하고자 본인들의 타이탄인 티에스 나이츠를 꺼내 들었다.
쾅!
그리고는 내가 휘두르는 검을 세 놈이 달려들어 막아섰다.
“지금이다, 돌격!”
잠시 검을 맞댄 상태로 공격이 멈춰 있는 틈을 타, 허공에 떠 있는 페가수스들이 마침내 활을 거두고 돌격해왔다.
지난번 겪어본 적 있는, 공중에서 펼쳐지는 랜스 차징이었다.
챙! 챙! 챙!
마치 자살 공격을 해오듯 겁 없이 달려드는 페가수스 라이더들의 공격이 차례로 이어졌다.
그러자 루이투스의 체력도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급히 뒷걸음질로 세 타이탄에게 가로막힌 검을 빼며, 허공에 있는 페가수스 라이더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으나…….
쾅!
역시나 세 놈이나 되는 타이탄을 전부 뿌리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제길! 역시 타이탄의 전투 시스템은…… 많이 답답하네!’
아무리 타이탄 간에 급 차이가 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좁은 땅 위에서 검로가 가로막히자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맞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나는 다시 막힌 검을 빼며 타이탄이 없는 방향으로 몸을 빼며 이동했다.
“어쭈, 어딜 도망가? 놓칠 것 같냐?”
이에 바로 뒤쫓아오는 일도양단 패거리들.
단 몇 걸음 만에 정상 끝 절벽에 다다른 나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리고는 달려오는 속도 그대로 검을 휘둘러 오는 놈들의 타이탄을 향해, 아껴뒀던 스킬을 사용했다.
[심판의 전진!]
콰앙! 쾅! 쾅!
티에스 나이츠의 측면을 나란히 부딪치며 전진한 내 몸통!
최강의 전진기이자 넉백기를 자랑하는 내 루이투스와 부딪힌 티에스 나이츠들은, 그대로 옆으로 튕기듯 넘어져 버렸다.
평소였다면 나뒹굴듯 지상에 내팽개쳐졌을 상황.
하지만 놈들이 넘어진 자리는, 땅 대신 허공만이 가득한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으아아-!”
“뭐, 뭐야!!”
“하하! 스트라이크다! 이 자식들아!”
정말 운이 좋게도, 단 한 번의 스킬 사용으로 세 놈 전부 다 떨어뜨리는 데 성공한 것.
워낙 거대한 체구인 타이탄인지라, 떨어지며 허둥대는 추한 모습도 모두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쿵!
그리고 다음 순간.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놈들과 반대로, 하늘 위에서 새로운 타이탄 한 대가 콘틀랑 정상 위로 착지했다.
바로 축빙 형님의 강화된 가이라 나이츠였다.
“오래 기다렸지? 지금부터는 나도 참전이다!”
“기다렸습니다!”
동시에 허공을 날던 페가수스 라이더 하나가, 갑자기 날아온 원거리 공격들에 맞고 순식간에 추락해버렸다.
내가 시선을 끄는 사이, 어느새 투명 계단에 나와 공격을 날린 축볼 누님과 라챤이의 솜씨였다.
픽! 픽!
그중에는 홀로 페가수스를 탄 채, 단검 두 자루를 쉴 새 없이 연사하는 당당이의 비행 모습도 보였다.
“자, 이제 이곳 콘틀랑 정상 위는 저희가 접수하죠!”
“그래!”
나는 축빙 형님의 타이탄과 함께, 다시 태성 라인이 뭉쳐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기파랑의 데스 나이트와 무살 형님이 날뛰고 있는 전장의 한복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