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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20화 (220/350)

220화 생명의 숲 (2)

눈처럼 새하얀 백마 8필.

다른 일반마들과는 외모와 체격부터가 다른 명마들이 2열 종대로 묶인 채 투레질을 하고 있었다.

“와, 이걸 직접 타보는 날이 오다니!”

“그러게요! 아마 유저로선 저희가 최초 아닐까요?”

다들 하나둘씩 은신을 풀며 말과 마차의 화려함에 감탄했다.

타연 속 세상에는 수많은 NPC들이 살고 있다.

중요 NPC나 유저 편의를 위한 NPC들은 일정 위치를 지키고 서 있지만, 이런저런 정보나 잡담을 건네는 주민 같은 NPC들은 달랐다.

유저처럼 마을 이곳저곳을 배회하거나, 인근 숲에서 벌목을 이나 필드에서 농사를 짓는 화전민 등 다양했던 것.

이런 사소한 디테일의 연장선 중 하나로, 마차 또한 빼놓을 수 없었다.

도시나 마을 간을 오고 가는 많은 종류의 마차들.

대부분 짐을 실은 짐마차나 공간이동비를 아끼려는 유저들이 탄 여객마차들이었지만…….

그중에는, 간혹 귀족 NPC들이 타고 다니는 화려한 마차들도 섞여 있어 유저들의 눈을 사로잡곤 했다.

“형님…… 근데 이거 너무 눈에 띄는 거 아니에요?”

제국 귀족의 마차를 타고 이동하면 제국군에게 공격당할 위험은 없겠지만, 오히려 유저들의 눈에는 너무 띌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어차피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정도 마차가 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국에는 종종 돌아다니는 수준이야.”

“그래도 타연엔 워낙 돌아이 같은 놈들도 많아서…….”

“마부부터가 NPC니까 안에 유저가 타고 있을 거라곤 별로 생각 못 할 거다. 걱정 말고 안심해라.”

오직 타연에서 관광만이 목적인 유저들을 위해, 간혹 유저가 직접 운영하는 이두 마차 정도는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고위 귀족들이나 타는 화려한 마차 안에 유저가 탔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자, 타시죠. 갈 길이 멉니다.”

“넵!”

팔두마차답게 워낙 거대한 마차인지라, 길드 전원과 카이저 형님 커플이 탔는데도 네다섯 자리가 남았다.

푹신한 의자와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마치 버스를 대절해 놀러가는 듯한 기분으로, 우리는 제국의 영토로 접어들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조심하던 때와 달리, 당당한 대로를 달려서!

* * *

“진짜 넓기는 넓네요.”

“이거 컨디션 조절이 되려나? 좀 쉬고 재접속해서 진행하는 게 낫지 않겠어?”

놀러가던 분위기도 잠시.

무려 2시간 넘게 지속된 여정에,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저 가만히 타고만 있으면 됐지만, 공간이동이나 비행 탈 것만 타던 고레벨들로선 오랜만의 여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출발 때부터 옆에 나란란히 앉은 축볼 누나와 라푼젤은, 지금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떠들며 깔깔대고 있었다.

‘연우도 우리 길드였다면…… 저기 껴서 같이 즐거워했겠지?’

잘 지내는 모습을 확인했건만 괜스레 신경 쓰였다.

그저 외롭게 고생하지 말고, 이렇게 함께 모험을 했으면 하는 생각에.

“이번이 마지막 검문소다.”

“와, 드디어 도착인가!”

긴 성벽이 보인다 싶었는데, 어느새 국경이었다.

창밖으로 삼엄한 제국군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우리가 지나가자 절도 있게 경례해 왔다.

“도착은 무슨. 아직 조금 더 가야 해.”

“진짜 지치네요 지쳐. 이러다 사람 잡겠어요.”

“조금 전 전해 들은 건데, 어제부로 다리우스가 398을 찍었단다.”

“네? 정말요?”

“그래. 좀 전에 랭킹 게시판이 업데이트 됐잖아. 이제 녀석이 400렙을 찍을 날도 며칠 남지 않았어.”

옆에 앉은 라챤이와 현중이가 나누는 내용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번 퀘스트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대탐이와 기파랑이야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들떠있는 것은 물론, 당당이도 왠지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덜커덕!

그렇게 출발 이후 한 번도 멈추지 않던 마차가 드디어 정지했다.

“도착했다. 예전에는 유저들에게 여기까지만 허용됐었지.”

국경을 지나서도 한참을 내달린 끝에 도착한 곳.하늘 산맥 어딘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거대한 강줄기.

그 한복판에 그림같이 건축된 아치형의 석조 다리 앞이었다.

“정말 이 너머에 엘프들이 있을까요? 그간 제국이 말해왔던 대로 야만족들만 득실대는 거 아닐까 몰라요.”

“쉿! 목소리를 낮춰! 여기에 우리만 있는 건 아니니까.”

원래라면 다리에 발을 디딤과 동시에 진입 금지 데미지 감소를 받던 터라, 아무도 건너본 적이 없는 곳으로 알려진 다리.

그동안은 이곳에 서서 다리 너머의 땅을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던 곳이었지만, 확실히 업데이트 이후 달라졌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다리 위 곳곳에, 수십 명의 유저들이 각자 자리를 잡은 채 낚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여기숨겨진 낚시 포인트인가 보네요? 쭉 안 보이던 유저들이 여기 몰려있는데요?”

“라챤아, 안 보이긴 뭐가 안 보이냐? 여기까지 우리 마차를 따라온 유저만 해도 몇 명인데?”

화려한 팔두마차가 제국 영토를 돌아다니는 건, 드물긴 해도 이상하지는 않은 풍경.

하지만 귀족 NPC가 타 있을 법한 마차가 국경을 통과하고는, 야만족이 있다는 이곳까지 달려온 건 누가 봐도 수상해 보였다.

그런 탓에, 우리를 따라 몰려온 유저들의 수만 해도 2, 30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거봐 내 말대로 유저가 타고 있었지? 버닝 스타잖아!”

“산드로도 있어! 여기에 뭔가 있나 본데?”

“설마 신규 필드? 이벤트가 있나 그냥 따라와 본 건데 대박이 걸렸다!”

“여기라면 설마 건너편에? 에이, 아무리 쟤들이라도 저긴 안 될 텐데?”

조용하고 한적했던 이곳은, 우리를 따라온 유저들과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유저들이 몰리며 한순간에 시끌벅적해졌다.

[산드로: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 유저들이 계속 따라오면, 정보가 너무 많이 유출되는 게 아닐까요?]

[대탐험시대: 형님, 그냥 다리 건너고 직진만 하시면 됩니다. 그럼 알아서 떨어져 나갈 거예요. 절대 생명의 숲까지는 쫓아오지 못할 겁니다.]

[산드로: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기파랑: 유저들이 다리 위에만 있던 이유가 있어요. 오기 전에 잠시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다리를 넘어가기만 하면 바로 화살 공격이 날아온다고 하거든요.]

[축복받은얼굴: 뭐야? 그럼 우리도 공격당한다는 소리 아냐?]

[대탐험시대: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실 거예요. 다리 너머가 야만족의 땅이 아닌 생명의 숲이 맞다면요....!]

대탐이와 기파랑의 확신에 찬 대답.녀석들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앞장서더니, 가장 먼저 다리 위로 올라섰다.

“역시 지난번에 왔을 때와는 완전 달라졌구나…….”

이미 예전에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모습.

하지만 역시나 미개척 지역 진입 데미지는 없었고, 우리도 대탐이를 따라 전부 유저들을 지나치며 다리를 건넜다.

“어! 어! 위험해!”

“드로 님! 가지 마요! 그러다 죽어요!”

그런 우리 모습에 놀라 호들갑을 떠는 낚시 유저들.

하지만 그들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건너 땅을 밟은 우리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 뭐야? 공격이 없어?”

“이게 뭔 일이지? 왜 쟤들은 멀쩡한 건데?”

“야만족이 사람 가려가며 쏘나? NPC도 고레벨은 알아서 사리는 거야?”

“말이 안 되잖아? 좀 전에도 여기 처음 온 사람 한 명 당했잖아! 잘못 발 디뎠다가 죽은, 그 사람은 뭔데?”

정말 의외의 상황이었는 듯, 족히 50명은 되는 유저들이 다들 한마디씩 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당연하게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유저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쟤들 또 시공의 틈새처럼 뭔가 개척한 모양인데? 멀어지기 전에 나도 따라갈래!”

“낚시고 나발이고 나도 간다!”

자신 있게 우리를 따라 발을 내딛는 유저들.

하지만 그 순간, 우리 앞에 있던 숲속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쉬익! 쉬익!

마법이라도 실린 듯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파공음과 함께 날아든 화살.

데미지가 무시무시한지, 우리를 따라 들어온 두 명의 유저는 찍 소리도 하지 못한 채 바로 죽어버리고 말았다.

[축복받은얼굴: 뭐야? 진짜로 공격이 날아오네? 근데 우리는 왜 멀쩡했던 거지?]

[산드로: 아직도 눈치 못 챘냐? 당장 상태창 열어서 업적부터 확인부터 해봐라. 그럼 알게 될 테니까!]

업데이트 이후, 왜 아직까지 생명의 숲이 탐험되지 않았는지 이제야 이해됐다.

이렇게 진입과 동시에 공격이 날아오니, 당연히 유저들은 이곳을 아직 진입 못 하는 지역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특별한 조건이 필요했고, 이곳은 확실히 생명의 숲이 맞았다.

“맞네, 이 업적 때문이구나! 에랄루실이 줬던 업적!”

하이 엘프의 축복.

고작 B급 업적답게 효과는 둘에 불과했지만, 이동 속도 +5%라는 A급 못지않은 효과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 외에도 한 가지 특별한 옵션이 있었다는 걸 대부분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다.

* 업적 효과로 엘프 종족으로부터 선제공격 당하지 않습니다.

이 땅을 밟기 위해, 어떤 템이 필요하거나 선제 퀘스트를 수행해야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상관없었다.

여기에 함께 온 모든 멤버들은, 전원 다 ‘도네타의 안식처’인던을 클리어해서 이 업적을 획득한 상태였으니까!

“그럼 좀 더 들어가 볼까요?”

그렇게 우리는…… 그저 멍하니 바라만보는 유저들을 뒤로한 채, 미지의 숲을 향해 이동했다.

* * *

다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에 들어서자, 나무 위에서 다리 쪽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엘프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엘프 순찰자>

궁수들에게 인기가 높은 활의 이름에 적힌 존재를 처음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전원 금발로 이루어진 수십 명의 엘프들.

그들에게 다가서서 말을 걸어 봤지만, 우리를 쳐다보기는커녕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뭐죠? 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거죠?”

“생명의 숲과 연관된 엘프들이 아닌가?”

우리의 물음에 이런 경험이 풍부한 대탐이가 대답해줬다.

“원래 반응할 퀘스트를 얻지 않아서 그런 것 같네요. 선행 퀘스트가 있는데, 어찌 보면 편법으로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평범하고 단순한 NPC들은 보통 AI가 높게 설정되어 있지 않거든요.”

“그럼 더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겠네. 그래도 몹들은 없어서 수월하네.”

“그나저나 엘프들이 제국과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네요? 야만족이라는 존재로 포장해 놓고 접근을 차단해 놓은 이유는 뭐지?”

“아무래도 뭔가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드워프들은 흔히 볼 수 있는데 엘프들만 이렇게 숨어 지내는 것도 좀 이상하잖아요.”

길드원들이 다들 고레벨이다 보니, 금세 여러 추측들을 내놓았다.

사실 그동안 제국에는 엘프와 뭔가 연관이 있는 듯한 떡밥들이 종종 보였다.

제국의 대장간에서만 ‘엘프 순찰자의 장궁’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

혹은 오스타그 투기장에서는 투기장 포인트로 ‘세계수의 열매’를 구매할 수 있었던 것 등등 말이다.

도네타의 안식처에서 만났던 에랄루실 또한, 제국의 영토인 영웅의 전당 밑에 갇혀 있었다.

“흠…… 그 질문은 내가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군.”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그저 묵묵히 걷고 있던 카이저 형님이 갑자기 말을 꺼내셨다.

“뭔가 아시는 게 있으세요?”

“드로야, 네가 전에 넘겨준 퀘스트 템을 기억하나? 회색 날개 깃털 말이다.”

“기억하죠, 형님. 그걸 시작으로 연계 퀘스트로 신창을 얻으셨던 거 아니세요?”

“맞다. 무려 5개의 연계 퀘스트 끝에 신창을 손에 넣었지. 아무튼 그 도중에, 교황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정보가 있었다.”

“네? 그게 뭔데요?”

“우리가 가고 있는 생명의 숲. 그곳에 존재하는 마더 트리를 부러뜨린 존재……. 그게 바로 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제논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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