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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21화 (221/350)

221화 생명의 숲 (3)

“뭐라고요?”

“네? 그걸 왜 이제야 말씀하세요?”

조용한 숲속.

길을 걷고 있는 건 오직 우리뿐이었기에, 카이저 형님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 내용에 모두들 화들짝 놀랐다.

“확실하진 않았거든. 교황은 그저 그런 건지도 모른다…… 란 식으로 추측만 말해줬던 거라. 하지만 근래 황제와 연관된 퀘스트를 진행하면 할수록, 초대 황제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제논 가이룩스.

신마전쟁의 12영웅 중 하나이자, 전쟁 후에는 천년을 이어온 가이라 제국을 세운 위대한 황제.

그리고 그는…… 지금 내가 착용하고 있는 신검 ‘룬 페이토나’의 첫 주인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미쳤네요……. 와 나 닭살 돋는 것 좀 봐!”

“겜 속에서 닭살이 어떻게 돋는다고 오바야? 암튼 이건 나도 첨 듣는 스토리야. 타연에 엘프가 등장하지 않았던 배경에, 이런 비하인드가 숨어있었을 줄이야…….”

대탐이나 무살 형님을 비롯한 내로라하는 타연의 고수들에게도, 정말 의외의 이야기인 듯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네? 그리고요?”

“그 때문에 아마…… 나는 함께 들어가지 못할 거다. 유저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었겠지만, 엘프들은 대대로 제국을 증오하고 있으니까.”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을 수호하는 종족, 엘프.

그들에게 ‘증오’란 단어는 정말 어울리지 않았지만, 다리를 건너온 유저들을 무차별 사살하는 모습을 본 게 조금 전이었다.

“그럼……?”

“업적 때문에 선공은 당하지 않았지만, 아마 난 생명의 숲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걸 확인해 보려고 함께 왔던 거지. 사실 난 8군단 사령관이긴 하지만, 결국엔 현 황제를 쳐야 하는 상황에 있는 거거든.”

사령관이 황제를 친다?

이거 완전 쿠데타 아닌가?

아무튼, 형님이 신창을 얻은 직후 그에 관한 내용을 짧게 언급한 적이 있었기에 크게 놀라운 내용은 아니었다.

다만 마더 트리, 세계수가 NPC에 의해 부러졌다는 사실이 의외였을 뿐.

“일단 들어갈 수 있을지 말지, 빨리 도착해 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가시죠!”

녹음이 우거진 푸른 숲.

마을 경비병처럼 나무 위로 드문드문 보이는 엘프들을 뒤로 한 채, 숲속 깊숙한 곳을 향해 앞장섰다.

* * *

“이제 도착했나 본데요?”

숲속은 특이하게도 몬스터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아름다운 나무들과 꽃들이 넘쳤던 터라 심심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10분여를 걸어 도착한 절벽.

그 아래로 놀랍고 경이로운 광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역시 저 모습이라면…… 마더 트리가 맞겠지? 천 년 전에 부러진 이후로…… 아직 그대로인 모양이구나!”

카이저 형님의 말씀대로였다.

절벽 밑으로 마치 녹색의 바다와 같이 넓게 펼쳐진 숲.

멀리 떨어진 그 한가운데에, 거대한 빌딩과도 같이 높고 두꺼운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크기가 정말 엄청나네요…….”

드래곤 레어가 있는 침묵의 숲에서 본 자이언트 트리보다 족히 열 배는 넘어갈 높이.

하지만 나무는 기둥 중간부터 부러져, 무수히 많은 나뭇잎이 달려있어야 할 가지 부분은 비어 있었다.

그래서 언뜻 보면 나무라기보단, 갈색의 거대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가 됐건, 타연에 저런 오브젝트가 둘이 있을 린 없으니 제대로 찾아온 듯싶었다.

우린 생명의 숲에 입장하기 위해, 서둘러 비탈길을 내려가 세계수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휘-익! 그만 멈추세요!”

그리고 잠시 후.

이 숲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됐다.

음성을 따라 머리 위를 올려다보니, 다른 엘프들과 다르게 레이피어와 경갑옷을 착용한 엘프가 우리를 향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엘프 사냥꾼 티로엔>

다른 순찰자들과 다른 칭호와 이름을 가진 NPC.

아무래도 생명의 숲을 찾는 유저들이 가장 먼저 마주칠 네임드 캐릭인 듯싶어 보였다.

“이곳은 인간의 출입을 금하는 곳. 맹약에 따라 발길을 돌리길 바랍니다!”

“발길을 돌리길 바랍니다!”

그의 외침에 따라 복창하듯 따라 외치는 엘프 순찰자들.

계속해서 나뭇가지를 날듯이 뛰어 달려와, 처음엔 몇 명 안되던 그들이 순식간에 수십 명이 되어 우리를 내려다봤다.

“저희는 맹약과 상관없이, 이곳에 출입할 자격을 갖춘 자들입니다! 이 ‘세계수의 뿌리’가 그 증표이니 살펴보십시오!”

이미 오면서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쭉 생각해왔기에, 바로 주나스로부터 건네받은 퀘템부터 꺼내 들었다.

그러자, 확실히 고자세였던 그들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마더 트리의 뿌리는 대대로 일족이 감사의 증표로 선물한 신물……. 그대들의 방문을 허락하고 마을에 알리겠습니다. 허나 숲에서는, 숲의 율법을 따라야만 할 것입니다!”

그 말과 함께, 티로엔과 그의 수하들은 다시금 숲속 어딘가로 사라졌다.

“와…… 진짜 신비롭네요. 몹들만 줄창 나오던 타연 필드에 이런 곳이 새로 업데이트되니까, 진짜 모험하는 느낌이 들어요.”

“딱 봐도 일루전에서 제법 신경 써서 만든 지역인 것 같지? 향후엔 유저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 되겠네.”

평소 말이 없는 당당이도 이런 신규 지역을 모험할 때만큼은 수다쟁이가 되는 느낌이었다.

“너와 파티여서 그런가? 나와 푼젤이도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은데?”

“그럼 다행이죠, 형님. 끝까지 함께 가시죠!”

그렇게 우리는 미지의 지역을 탐사하는 현실 속 탐험가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전진했고 마침내 마더 트리 인근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엘프들의 보금자리, 생명의 숲에 도착했습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너머로 보이는 풍경.

마치 거대한 벽과 같이 거대한 세계수 기둥을 중심으로, 200미터는 족히 넘을 거대한 나무 수십 그루가 원을 그리듯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사이로 엘프들의 나무집들이 보였고, 지상에도 수많은 엘프들이 이리저리 이동 중인 모습이 보였다.

[라스트챤스: 이거 뭐예요? 생명의 숲이라는 게 엘프들 마을 이름이었던 거예요?]

[산드로: 그런가 본데? 하늘 산맥의 로낙쏜이 드워프들의 도시였던 것처럼.... 여기가 엘프들의 메인 지역인 것 같다.]

[축복받은파볼: 진짜 평화로워 보여... 정령들도 전투 대신 저렇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예쁘고!]

생명의 숲이라는 이름답게, 이곳은 지금까지 지나친 숲들과는 다르게 뭔가 신비롭고 활력이 느껴졌다.

나무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몇몇 페어리들도 발견할 수 있었고, 지상에는 여러 정령들이 어린 엘프들과 어울려 뛰놀고 있었다.

“어라? 반응이 없는데요?”

그런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예상한 것과 다르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티로엔이 마을에 알린다고 했잖아. 그래서 그런가 본데?”

“그러면 이대로 마을을 활보해도 괜찮다는 말이죠? 그럼 다들 흩어져서 정보를 수집해봐요! 일단 메치아실이라는 엘프부터 찾아보고요!”

“그래!”

하지만 역시나 게임은 게임.

수백이 넘어가는 NPC들이 실제 같은 반응을 하는 건 무리일뿐더러, 게임은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져도 안 됐다.

앞으로 수십, 수백만 명의 유저들이 이곳을 방문하게 될 텐데, 그때마다 놀란 반응을 하면 더 이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규 지역을 방문하는 유저들이 겪는 묘한 괴리감.

이 역시 타연 최정상에 속하는 극소수만이 경험할 수 있는 에피소드였다.

“저기 혹시 ‘메치아실’ 님이 어디 계신지 아시나요?”

“인간이 이 숲을 방문한 건 정말 오래만이네요…….”

“굵은 가지 ‘메치아실’이 누군지 모르세요?”

“나도 하루빨리 순찰자가 돼서 이 숲을 벗어나 보고 싶어요. 인간들이 만든 도시란 곳을 한번 방문해보고 싶거든요!”

“아, 알겠으니까 쫌!”

그렇게 뿔뿔이 흩어진 우리.

나도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노인 엘프와 어린 엘프한테도 말을 걸어보았으나, 틀에 박힌 정형화된 대사 외엔 일체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당근당근단검: 다들 세계수 쪽으로 와보세요. 마을 안쪽으로요!]

[축복받은얼굴: 응? 왜?]

[당근당근단검: 바깥보다는 안이 메인인 것 같아요. 바로 업적 하나 얻었거든요!]

당당이의 희소식에 다들 서둘러 엘프들을 지나쳐 세계수가 있는 안쪽으로 이동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진짜 어마어마하네. 원래 나뭇잎이 있던 온전한 시절에는, 도대체 얼마나 거대했단 소리야?’

가까이서 올려다보니 수백 미터는 될 법한 높이 때문에 꼭대기가 보이지조차 않았다.

지상과 가까운 곳에는 군데군데 옹이 같은 홈이 파여 있었는데, 그곳에 몇몇 엘프들이 들어 자리 잡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오셨어요? 그럼 여기 와서 나무에 손을 한번 대보세요.”

그런 세계수 밑동 앞에 서 있는 당당이가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그리고 녀석의 말대로 손을 뻗어 기둥에 손을 대자, 곧 새로운 메시지창 하나가 떠올랐다.

띠링!

[업적 ‘세계수 순례자’를 획득했습니다.]

[업적: 세계수 순례자(C)]

* 타이탄 연대기의 근간을 이루는 세계수를 방문했을 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 (체력 +20, 마력 +20)

* 업적 효과로 새로운 활력을 얻습니다. (마나 회복 속도 +10)

“오, C급 업적!”

“옵션이 제법 좋은데? 완전 쉽게 업적 하나를 얻었네?”

“쉽게 얻은 건 아니지.”

다들 밤새워 이곳에 온 보람이 느껴지는 듯, 업적 하나에도 들떠 했다.

하지만 당당이가 알아낸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여기가 도시의 메인 역할을 하는 곳인 것 같아요. 군데군데 물약이나 특이 소모품을 판매하는 엘프들이 있더라고요. 물론 인간들과는 다른 화폐를 사용하는 것 같았지만요.”

“다른 화폐?”

“네. 골드가 아니라 마력석을 요구하더라고요. 이곳 때문에 마력석 시세가 더 뛰려나? 아니면 이 근처에서 마력석이 많이 드랍돼서 폭락하게 되려나……?”

유저들이 기를 쓰고 새로운 지역을 찾는 이유.

거기엔 다른 유저들보다 신규 템과 신규 퀘스트를 앞서서 획득하고 싶은 의도도 빼놓을 수 없었다.

[대탐험시대: 형님, 찾은 것 같습니다. 메치아실요!]

[산드로: 뭐, 정말?]

[대탐험시대: 네. 당장 이곳으로 와보세요! 위치(!)]

하지만 그걸 확인해 볼 시간도 없이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곳을 찾아온 가장 큰 이유.

대탐이가 그걸 발견해 냈기에.

“어? 정말이네? 어떻게 찾았어?”

“지상의 엘프들은 물어봐도 제대로 말을 안 해주길래, 특이한 외형의 나무부터 뒤져봤어요. 아무래도 높은 나무에 사는 순서대로 직책이 높은 것 같더라고요.”

서둘러 위치 링크를 찍어 준 곳에 도착하자 수수한 나무집 안에 범상치 않은 엘프 한 명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엘프들과 다르게 찬란하게 빛나는 백금발.

녹색 눈동자를 빛내는 그의 모습은 도네타의 안식처에서 만났던 하이 엘프, 에랄루실과 꼭 닮아 있었다.

<숲의 수호자 메치아실>

그런 그에게 다가가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인간이 이곳을 방문한 건 오래만이군요. 반갑습니다. 혹시 저를 찾아온 이유가 있나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메치아실 님. 저는 주나스 님의 소개로 이곳을 찾은 산드로라고 합니다. 이 ‘편지’를 한 번 받아보시겠습니까?”

“오…… 주나스의 편지라니……. 그가 아직도 살아 있었단 말인가요?”

“시공에 틈이 생겨 뒤틀림이 있었다니…… 심연의 존재…… 그리고 마계의 위협……. 그렇군요. 그대는 천계에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로군요!”

띠링!

[퀘스트 ‘천계를 향하여’를 클리어했습니다.]

[이어지는 연계 퀘스트 ‘세계수의 회복’을 획득했습니다.]

B급 답게 곧바로 해결되는 퀘스트.

“허나 안타깝지만…… 그러기 위해선 메말라가는 세계수가 회복해야만 합니다. 그대는 저를 도와…… 타락한 다크 엘프들로부터 되찾아 오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퀘스트를 부여받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S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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