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224화 (224/350)

224화 다크 엘프 (3)

하늘 산맥 동부 끝에 위치한 생명의 숲.

그와 맞닿아 있는 산맥 중부에는 거대한 동굴 도시가 존재했다.

드워프들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고향.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용광로와 절대 꺼지지 않는 불꽃이 머무는 곳.

오랜만에 로낙쏜을 다시 방문했다.

[하늘 산맥 중부, 로낙쏜에 도착했습니다.]

따당! 땅!

이곳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담금질 소리.

더불어 예전과 사뭇 달라진 소란스러움이 우리를 반겼다.

몇 배는 더 늘어난 듯한 유저들의 북적거림이었다.

(나: 뭐야? 로낙쏜이 언제 이렇게 인기 많아졌지?)

(당근당근단검: 형은 공틈이랑 바다에서만 사냥하느라 모르셨겠구나? 업데이트 이후로 원래 절반만 오픈되어 있던 하늘 산맥의 이동 가능 지역이 훨씬 넓어졌어요. 물론 저희가 사냥할 레벨대는 아니라 모르실 만은 했지만요.)

(나: 그래? 하긴 확장팩인데 전부 고레벨용 콘텐츠만 업데이트 됐을 린 없지. 내가 너무 중저레벨대 관련 정보엔 관심이 없었구나.)

(당근당근단검: 형이 아주 바빴으니까 그런 거죠. 아무튼 듣기론 이곳에 괜찮은 인던 하나가 발견됐나 봐요. 그래서 여기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유저들이 많이 늘어났대요.)

같은 도둑인지라 조용히 퀘스트하기에는 안성맞춤인 당당이.

원래부터 타연 최고수에 속할뿐더러 내가 모르는 부분에도 관심이 많은 탓에, 녀석의 말대로 나는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힘차고 좋은 아침이군! 그래, 인간이 이곳 하늘 산맥 깊숙한 곳까지 어인 일로 찾아 왔는가?”

“영감님, 혹시 ‘다크 엘프’에 관해 아시는 게 있나요? 아니면 ‘생명의 숲’이나 ‘세계수’는요?”

“오! 세계수를 아는 인간은 오랜만이군! 꽤나 모험 좀 다녀본 인간인가? 물론 나도 직접 본 적은 없네만!”

“그거 말고, ‘엘프’에 관해서 아는 건 없어요? 아니면 ‘쉐도우 나이트’라든지요!”

“빌어먹을 귀쟁이 얘기는 갑자기 왜 꺼내는 거지? 그 벌거숭이들 얘기를 할 거라면 여기서 썩 꺼지게!”

맨 처음 찾아간 아이언 해머 클랜의 마스터, 무락쏜.

그는 엘프나 세계수란 단어에는 반응해도 우리가 찾는 정보와는 관계없어 보였다.

그 후 푸른불꽃 클랜과 골드링 클랜의 마스터들도 만나보았으나…….

역시나 어떠한 키워드를 말해 봐도 무반응이었다.

“헛짚었나 봐. 여기가 아닌가 본데……?”

“온 김에 전부 둘러보고 가죠? 그래도 여기에 드워프들이 제일 많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타연의 퀘스트는 하나같이 모 아니면 도였다.

정말 친절하게 퀘템이나 NPC들을 지칭하거나 위치를 알려주는 ‘하’ 난이도 퀘스트.

혹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맨땅에 헤딩하듯 대륙을 샅샅이 뒤져봐야 하는 ‘상’ 난이도 퀘스트.

그중에서도 보란 듯이 난이도 S급으로 명시된 메인 퀘스트를 진행 중이다 보니, 처음부터 철저하게 뒤지는 편이 나았다.

괜히 시간 아깝다고 무시하다간, 보잘것없어 보이던 NPC가 주요 단서를 갖고 있어 한참을 헤매 다음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젊었을 적엔 나도 엘프를 만난 적이 있었지! 물론 그쪽이 날 먼저 알아보곤 줄행랑을 쳤지만 말이야! 하핫!”

“엘프족의 모습을 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네! 순찰자들은 종종 변장한 뒤, 숲을 나서는 경우가 있단 말은 들어봤네만…….”

“듣기론 세계수는 마나와 정령의 사랑을 받아 절대 불타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던데…… 아무리 그래도 나무인데, 그게 정말일까?”

드워프들의 총본산인 이곳답게, 도시 주민을 포함한 NPC들은 수백 명이 가뿐히 넘어갔다.

하지만 그중 엘프나 세계수와 관련된 정보를 말하는 드워프는 있어도, ‘다크 엘프’와 관련된 정보를 말하는 이는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다 만나보지 않았나? 아무래도 여기 드워프들 중엔 없는 것 같네.”

“그럼 다른 도시에 있는 드워프들을 둘러볼까요?”

“그래야겠지? 어디부터 가볼까나……?”

“앗, 잠시만요!”

“응?”

장장 3시간을 넘게 뒤진 끝에 허탕을 친 데다 다른 길드원들로부터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도통 기운이 나질 않았는데, 당당히는 그렇지도 않은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생각해보니 여기 한 명 남아있었어요! 걔도 마저 찾아본 다음에 가죠!”

“어디? 분명히 한 명도 놓치지 않았는데…….”

“왜 도시 안 말고 밖에 유명한 드워프가 하나 있잖아요. 사람들이 일출 보러 가는 산 정상에요!”

“맞다, 걔가 있었지! 그 노인네 드워프!”

D급 업적 ‘제법 뛰어난 등반가’.

타연 유저라면 거의 대부분 갖고 있는 이 업적은, 이곳 하늘 산맥의 정상에서만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업적을 얻은 유저라면, 다들 그 정상에 있는 한 특이한 NPC를 만나본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훼라리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

그러자 한 드워프가 망부석처럼 동쪽을 향해 서 있는 낯익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련이 많은 아에루쏜>

마침 일출이나 일몰 시간대도 아니라 유저들도 없어, 곧바로 다가가 말을 걸어보았다.

“영감님. 안녕하세요?”

“…….”

“이 드워프는 여전하네.”

처음 이곳을 찾았던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그 탓에 유저들은 그를 가장 나이 많은 드워프로 추측했지만, 묵묵부답 말이 없는 탓에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다.

“혹시 ‘다크 엘프’에 관해서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그래서 큰 기대 없이 물었던 질문.

하지만 곧 우리는, 그의 음성을 듣게 된 최초의 유저가 되었다.

“젊은 인간이여……. 그대가 어떻게 그 저주받은 이름을 알고 있는 겐가?”

“엇, 영감님! 뭐 아시는 게 있는 거예요?”

“저 산 너머에는 여전히 그들이 살고 있겠지……. 그리고 그녀도…….”

그 말을 끝으로, 갑자기 시야가 돌변했다.

“엇, 드로 형, 이건!”

“그래. 우리가 제대로 찾아 왔나 보다!”

오랜만에 경험해보는 시네마틱 영상이었다.

[퀘스트 ‘세계수 회복’에 관한 고대의 기억이 재생됩니다.]

“꺄르르!”

“루루루!”

잔잔하고 평화로운 음악 소리.

아직은 암흑뿐인 화면 속에서 배경음과 함께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점차 시야가 밝아지자,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상상 그 이상으로 거대하고 푸르른 나무.

한 도시를 다 덮고도 남을 만큼 울창한 가지를 자랑하는 세계수의 모습과, 그 주변으로 페어리와 정령들이 춤추듯 맴도는 모습이 연출됐다.

얼핏 보기에도 수만은 족히 넘어가는 엄청난 숫자.

메마르고 적막하기만 한 지금의 세계수와는 전혀 딴판인 모습이었다.

쿠구쿵-!

하지만 그 모습도 잠시.

갑자기 커다란 굉음과 함께, 세계수의 우거진 나뭇잎들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푸드드득!

동시에 하늘을 뒤덮을 것처럼 수많은 새들이 세계수로부터 날아올랐고, 주변을 날고 있던 페어리와 정령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리고 그 직후…….

쿠궁, 쿵! 쿵! 우지끈!

처음 폭발음이 들려왔던 나무 중간 부근에서 연달아 굉음이 울려 퍼졌다.

폭발 부근은 나무의 상부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점차 갈라지더니, 마침내 큰 소리와 함께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콰르르르-!

상당히 먼 곳에서 지켜보는 구도라서 그렇지, 가까이에서 올려다봤다면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대참사였다.

그렇게 피어오른 불길과 부러진 나무줄기.

그 속에서, 무언가가 솟구쳐오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십여 마리의 블랙 드레이크.

그리고 그 위에 타고 회색빛의 인간…….

아니, ‘다크 엘프’의 모습이었다.

“키에엑-!”

드레이크는 훼라리와 비슷한 음성을 토해내며 힘찬 날갯짓으로 세계수를 빠르게 벗어났다.

그런 다크 엘프 중 하나의 품에, 무언가가 소중히 안겨 있는 모습이 클로즈업되면서 영상은 끝이 났다.

다시 게임 속으로 돌아오자, 아에루쏜은 진지한 표정으로 남은 부연 설명을 전해 주었다.

“예전에는 우리 드워프족과 엘프족 간의 사이가 돈독했다고 들었네……. 함께 힘을 합쳐 마계의 침공을 몰아내기도 했고……. 하지만 그날의 사건 이후, 마나의 겨울이 오게 만든 책임을 물어 당시 로낙쏜 다섯 클랜의 마스터들은 영원한 단절을 선언했네.”

“…….”

“물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지. 끌끌…… 하긴 우리 드워프들은 언급을 꺼려해, 들을 수는 없었으려나? 사실 세계수를 폭발시킨 것은 우리 로낙쏜의 자랑인 ‘태초의 불꽃’이었네. 다크 엘프가 앞서 우리를 습격한 뒤에 탈취해 갔던 것이지. 결국 서로가 서로의 책임을 물어, 대대로 증오하고 배척하게 된 것이 그날의 진실이네. 내 젊음이 끝나고서야 뒤늦게 알게 되었고…… 이제는 기억하는 이 또한 드무네만…….”

두 종족이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된 계기.

그 중심에 세계수와 다크 엘프가 연관되어 있었다.

씁쓸하게 밝혀진 스토리는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사실 내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지금 내 뇌리에는, 온통 하나의 장면만이 무수히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세계수 묘목과 비슷한 걸 들고 있었어!’

만약 아침에 꿈틀이를 불렀던 대신, 이곳에 먼저 왔다면 몰라봤을 수 있다.

아니, 클로즈업됐더라도 그게 뭔지 모르고 지나쳐버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금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황급히 도망치는 영상 속 다크 엘프.

그의 품 안에 있던 것과 똑같이 생긴 템이 내 인벤토리 안에도 있기 때문에!

“드로 형……. 이제 더는 얘기하지 않는데요? 시네마틱도 뜨길래 단서 제대로 주나 싶었는데 어떡하죠? 그냥 다크 엘프가 폭발시키고 도망친 내용이 전부잖아요. 이러면 저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만 확인한 셈인데요?”

“아냐. 단서는 충분히 주어졌다. 대충 무얼 찾아봐야 할지도 이젠 확실히 알겠어.”

“네? 정말요? 대체 뭘 보고요? 저랑 똑같은 영상 봤던 게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이번 퀘스트만큼은 너보다 형이 더 잘하는 것 같다? 너 접속하기 전에 얻었다는 템 있지? 그거 때문에 알 것 같거든.”

“네? 뭘요?”

혼자라면 죽어도 찾지 못했을 단서들.

하지만 마인드를 바꾸고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투자한 이후부터…….

레이드든 공성이든 퀘스트든, 모든 일이 마치 미리 알고서 준비한 것마냥 딱딱 들어맞았다.

“놈들이 세계수의 정령을 어디에 담아뒀는지 말야.”

* * *

[산드로: 다들 간만에 바람 좀 쐬고 오세요. 로낙쏜에 있는 하늘 산맥 정상에요.]

항상 스토리나 퀘스트 관련에선 가장 못 미더운 취급을 받던 나였는데, 오랜만에 큰소리를 쳤다.

하나같이 잘나가는 최고수들이 아무런 정보를 찾아내지 못하는 동안, 내가 가장 먼저 단서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유저들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차례로 아에루쏜을 만난 길드원들.

모두가 시네마틱 영상 관람을 마치고 난 후, 아베르 성에 모였다.

“그래서 그 세계수 묘목이란 게 사실은 퀘템이었다 이거지?”

“그런 셈이죠. 실제로 심을 수도 있으니까 완전히 퀘템이라고 볼 순 없겠지만, 저희가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데 꼭 필요한 템인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와…… 그럼 채집 9성인 유저가 없었다면 여기서 막혔을 뻔했네? 그리고 그 유저가 생명의 숲에 오기 위해선, 선행으로 영웅의 전당 인던을 클리어했어야만 했고? 이거 엄청 까다로운 조건들이 중첩돼 있었잖아?”

한숨 자고 이제 막 접속한 축빙 형님.

그동안 벌써 이만큼이나 진척된 진행도에 놀라며 연신 감탄했다.

“다 형님 덕분이에요. 형님이 미리 체크해두지 않았다면 묘목이 떠 있는지도 몰랐을 거고, 그러다 사라져서 캘 생각도 못 했다면 한참을 헤맸을 테니까요.”

“그게 왜 내 탓이야. 다 진작부터, 네가 꿈틀이 님한테 투자해뒀던 덕분이지.”

우연이 거듭되면 그건 더 이상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랬던가?

이제는 내가 정말 이 게임의 중심축이자 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점차 확신이 되어 내게 자신감을 불러 일으켜줬다.

어떤 난관이 닥쳐오더라도……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든 다 해결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두 분 다 그만 적당히 하시고요. 이제 저희가 뭘 해야 할지, 그거나 좀 의논해 보죠?”

이런 우리의 모습이 꼴불견이었는지, 현중이가 껴들며 말했다.

“보니까 온전했던 세계수에 있던 정령, 그건 아마 세계수의 묘목을 통해 옮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제국 어딘가에 옮겨 심어졌을 세계수 묘목의 흔적을 찾는 게 순서겠죠.”

“그런 다음은?”

“거기 담겨 있을 정령을 저희 묘목에 옮겨서 가져 오는 것이 퀘스트 공략법인 것 같아요. 물론 그 나무 곁에는, 쉐도우 나이트라 불리는 다크 엘프들이 지키고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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