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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56화 (256/350)

256화 대격변 (2)

각 성의 오벨리스크가 무너지면, 남은 시간과 상관없이 그 성의 공성은 즉시 종료된다.

어찌 보면 불합리한 면도 있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만들어졌기에, 그렇게 싸워왔던 방식들.

하지만 지금까지 별문제 없었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동안은 내성문을 뚫는 것조차 힘에 겨웠을뿐더러.

내성 안에서의 국지적인 전투를 수행하며 최후의 병력마저 제거한 뒤에야.

오벨리스크를 무너뜨릴 틈이 나왔으니까.

하지만 그간 타연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타이탄이 등장했고, 대규모 업데이트가 진행됐으며, 비행 펫의 공급 루트가 공개됐다.

이런 상황에서 3년간 반복했던 공성전의 양상만 예측한다는 건, 너무 타성에 젖은 게 아닐까?

그렇게 별 대비조차 하지 않고 이번 공성전을 준비했다면, 당해도 싼 게 아닐까?

점차 하늘을 메우기 시작한 페가수스들.

이쯤이면 놈들도 이곳이 목표란 사실을 눈치했을 테니, 더 이상 몸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훼라리 소환!”

오늘의 공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속도전’.

뒤에 라챤이와 당당이를 태우고 날아오른 뒤, 공성 지역에 아슬아슬하게 속하지 않은 지역까지 이동했다.

그러자 곧 힘찬 나팔 소리와 함께 전체 알림창이 떠올랐다.

[공성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태성’ 길드에게 공성을 선포했습니다.]

[‘올림푸스’ 길드에게 공성을 선포했습니다.]

……………………

[‘태성02’ 길드가 당신에게 공성을 선포했습니다.]

[‘레미제라블’ 길드가 당신에게 공성을 선포했습니다.]

……………………

언제나 그렇듯 공성의 포문을 여는 건 선포 행위.

서로 빠르게 선포를 주고 받은 후, 어느새 뒤따라온 주변의 병력들을 둘러봤다.

“모두 전진!”

붉고 거대한 드레이크.

하얀 페가수스 무리 중에서 눈에 뜰 수밖에 없는 나는, 마치 사령관처럼 진격을 외쳤다.

아닌 게 아니라 피닉스 라인의 모든 지휘권은 내게 양도된 상태.

따라서 무려 1천 기가 넘어가는 페가수스 부대는, 내 명령과 동시에 라켄 성으로 진격해나갔다.

쉬쉬쉭! 펑! 펑!

그런 우리를 향해 성벽 위에 있던 원딜러와 NPC 병사들로부터 공격이 날아왔지만…….

높게 떠 있는 상태라 우리 병력까지 닿는 공격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산드로: 성의 좌측으로 진입하겠습니다! 성을 차지할 화랑 길드는 앞서지 말고, 병력을 최대한 유지해주세요!]

[국선: 네!]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거라 그런지, 어떤 상황인지 한눈에 보였다.

늘 해왔던 대로 내성문 성벽에 주 병력이 배치된 모습.

그것도 열세라 수성에 급급하리라 생각한 피닉스가, 설마 먼저 공성해올지는 예측하지 못한 듯싶었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내성문 앞은 공터나 다름없을 정도로 누구도 얼씬도 하지 않았다.

피닉스 라인의 지상 병력은 전부 각자의 성을 지키고 있었고, 공성은 오직 우리 비행 부대의 몫이었으니까!

“성문은 무시!”

유유히 내성문을 지나치고, 순식간에 주성 앞 광장 상공에 도착한 비행 부대.

성을 차지한 올림푸스답게, 적들에게 비행 펫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천 명씩 뭉쳐다니는 우리에겐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었다.

기동력이 빠른 훼라리를 비롯해, 몇몇 타격대가 놈들이 닿기도 전에 먼저 낙하시켰으니까.

[유머스트다이: 마을로 태성 놈들이 넘어와 계속 날아오른다는 보고입니다!]

[산드로: 네, 알겠습니다. 이미 다 도착했으니 다들 동요하지 마세요.]

피닉스 라인 주요 멤버들로 구성된 공격대 채팅창에 실시간으로 보고가 올라왔다.

다른 성들은 대부분 평범하게 수성이 이뤄지고 있었다.

동시에 각 마을 공간이동술사 앞에서 동태를 살피고 있는 보고도 눈여겨 살펴봤다.

라켄 성 하늘을 뒤덮은 페가수스를 보고, 태성이 추가 병력을 파견해왔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넘어와서 우리를 공격할 때쯤엔, 이미 우리가 오벨리스크를 점령했을 테니까.

‘그렇게 너희는…… 이번 공성 내내 우리 뒤만 쫓게 될 거야.’

공성전에 처음 등장한 대규모 비행 부대.

처음 이 전략을 떠오르게 된 계기는 올림푸스 때문이었다.

투 메르타스 레이드 당시 백여 기의 페가수스를 끌고 난입했던 제독.

갑작스러웠던 그들의 참전은, 기민하면서도 뭐라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 많다던 태성의 그리폰 부대가 몇십 기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100기나 하늘을 뒤덮어 버리다니.

그 분위기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기억이 구체화된 것.

그게 바로 1천 기로 이루어진 비행 부대 공성이었다.

“전원 공격!”

워낙 많은 숫자라 마지막 페가수스 무리까지 도착하는 걸 기다렸다.

그렇게 잠시.

전부 모이자 당혹스럽게 올려다보는 태성의 병력을 향하여 사망 선고를 내려주었다.

퍼퍼퍼펑!

공중을 수놓으며 성벽 위로 내리꽂히는 마법들.

내 지시가 떨어지자, 비행 부대로부터 온갖 종류의 폭격들이 쏟아졌다.

“으아악!”

“이게 무슨 일이야!”

“다들 뭐 해? 성문의 병력도 빨리 오벨리스크로 돌아오라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돼버린 지상.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우리가 준비한 페가수스 부대는, 올림푸스와 달리 전부 ‘원딜러’들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한데 전부…… 마법사나 궁수들로만 라이더를 만들어 달라고?

-네, 형님. 탱커나 근접 딜러들이 받는 깃털들도, 전부 원딜러들에게 양보 부탁드려요. 나중에 차차 돌려준다는 조건으로요.

-그거야 크게 어려운 건 아닌데…… 왜 그런 주문을 하는지 물어봐도 될까? 가뜩이나 체력이 낮은 페가수스에 종이 몸들만 태운다니……?

-그래서 그런 거예요. 제가 비행전을 벌여본 결과, 아무리 본체가 강해도 페가수스가 죽으면 그대로 낙사당하더라고요. 그러니 탱커나 근접 딜러가 페가수스에 타봤자, 크게 의미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적들에게도 페가수스나 그리폰이 있을 텐데, 버텨낼 수 있을까?

-그래서 최대한 많이 준비해달라고 부탁드리는 거예요. 원래 뭉치면 뭉칠수록 다가가기 힘든 게…… 원딜러들 특징이잖아요? 그냥 비행 부대가 아니라, 아주 비행 요새가 돼버리는 거죠. 지상에 폭격을 퍼붓는!

조금은 특별한 비행 부대의 비밀이 바로 이것이었다.

사실 올림푸스 비행 부대의 기동성과 전략 가치는 높게 평가할 만했다.

하지만 그들이 대부분 ‘탱커’들로 이루어졌다는 건, 내 눈에는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수십 명 단위의 차징이 무섭긴 했지만, 적어도 백 단위로 뭉쳐 다닐 거라면 오히려 원딜러로만 구성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그런 구상은, 마침내 이곳에서 처음으로 실현됐다.

“신화 나이츠 소환!”

오벨리스크를 지키는 유저들 중 타이탄 보유자도 있었는지, 신화 나이츠 1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는 일.

오히려 집중된 원거리 공격에 단 10초를 견디지 못하고 역소환 당하고 말았다.

“카햐햐햐! 파이어 볼!”

“크흐흐! 아주 바스러지는구나!”

신이 나서 쉬지 않고 공격 스킬을 캐스팅하는 우리 측 마법사들.

적들의 원거리 공격에 노출된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지만,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수백 명의 마법사들이, 공격이 날아오는 궤적에 ‘쉴드’ 마법을 계속 깔면서 막아줬기 때문이었다.

라켄 성 오벨리스크를 지키는 병력은 고작해야 3, 4백 명 정도.

그 중에도 바리케이드 안에 들어가 있는 원딜러들은 고작 2백 명도 되지 않아 보였다.

그러니 천 명이 넘는 원딜러들과의 딜 교환은 애초에 성립조차 될 수 없었다.

하물며 우리 측 비행 부대는, 전원 ‘이리아의 가호’를 받아 스킬 쿨타임이 25%나 줄어든 상태였으니 말이다.

[산드로: 대충 정리됐으니, 이제 화랑 길드는 오벨리스크만 공격하세요!]

[국선: 네, 알겠습니다! 디펜 부탁드리겠습니다!]

“화랑이여! 오벨리스크 일점사!”

내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들려온 국선의 외침.

그러자 대략 백 기 가량의 페가수스들 공격 궤적이 오벨리스크로 급변했다.

“회, 회복해!”

“최대한 버텨!”

황급히 자신의 체력을 바쳐 오벨리스크를 회복시키는 적의 힐러들.

하지만 광역 공격과 강력한 타겟팅 화살 공격이 계속 들어오느라, 체력 관리만 더욱 힘들어질 뿐이었다.

“산드로 님! 적의 비행 부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내게, 곁에 머무르던 한 마법사가 경고해왔다.

우리가 떠 있는 상공 건너편.

마을 부근에서 날아온 태성 라인의 페가수스와 그리폰들이, 어느새 시야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략 봐도 수백 기가 넘는 대규모 비행 부대.

급조한 것치고는 많이, 그리고 일찍 도착한 편이었다.

‘그래도 의미는 없겠지만 말이지.’

“상관없습니다! 이제 다들 오베리스크 일점사!”

잠시에 불과했지만, 먼저 시작된 화랑의 공격에 오벨리스크의 체력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그러니 지금부터 화력을 집중한다 해도, 최대 공훈자는 ‘화랑’ 길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콰과과광! 퍼펑!

내 오더대로 폭격당하는 오벨리스크.

무려 천 기에서 공격이 쏟아지자, 남은 체력은 단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삭제되듯 사라져버렸다.

쿠구궁!

거친 소리와 함께 무너지는 모습.

그와 함께 나는, 강제로 순간이동 당했다.

[라켄 성의 오벨리스크가 점령당해 공성전이 종료됩니다.]

[‘화랑’ 길드가 라켄 성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라켄 성의 공성전이 종료되어 모든 유저는 내성 안에서 추방됩니다.]

“와! 우리가 먹었다!”

“탈환 성공이야!”

도착한 곳은 라켄 성 외성 마을 안.

주변은 온통 추방당한 유저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대부분 페가수스를 탄 상태여서, 땅이고 하늘이고 온통 하얀 날개들밖에는 안 보였다.

“피닉스 새끼들! 잘도 이런 얍삽한 짓을!”

“아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들이!”

그리고 그건, 막 공성 지역에 진입했던 태성의 비행 부대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닭 쫓던 개마냥, 우리에게 닿기 직전에 추방당한 놈들.

덕분에 놈들은 허탈하고 울분에 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 우리 측은 놈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대꾸하지 않았다.

미리 사전에, 이번 공성 동안 적과의 대화는 철저히 금지시켜뒀기 때문이었다.

[산드로: 다음은 오펠입니다!]

[두바이: 넵!]

[국선: 넵! 바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흥분한 태성 놈들을 놔둔 채, 우리 측 병력은 순간이동을 통해 마을을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잠시 시간을 확인한 뒤, 뒤따라 이동했다.

흐른 시간은 고작 4분.

이제 막 적들은 우리 측 내성문을 두드릴 즈음에, 이미 우리는 적의 성을 빼앗아 버렸다.

* * *

[산드로: 피스메이커도 방금처럼만 하시면 됩니다! 뒤는 저희에게 맡기세요!]

[유머스트다이: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전략이 그대로 먹혀 첫 공성은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는 태성 측도 우리의 전략을 눈치챈 상황.

우리가 오펠 성의 외성 마을로 순간이동하자, 놈들도 똑같이 따라 넘어오기 시작했다.

방금 함께 추방당했던, 태성의 비행 부대였다.

“오호라, 이번엔 오펠 성이다 이거지? 같은 전략이 또 통할 것 같냐?”

“어디 한 번 날아올라 봐! 전부 죽여 줄 테니까!”

위협해오는 태성의 비행 부대들.

대부분 탱커라 근접 딜러들이 많아, 확실히 마법사나 궁수들만 보이는 우리들이 우습게 느껴질 만도 했다.

공중에 자리 잡은 상태라면, 다가가기 힘든 공중요새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렇게 마을에서 함께 출발하는 입장에서는 놈들이 더 유리한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당연히 그것에 대한 대비 또한, 마쳐둔 상태였다.

“전원 전진!”

성으로 향하는 마을 입구.

안전지대가 끝나는 그곳엔 이미, 우리의 병력이 먼저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어디 한 번 나와 봐, 이 자식들아!”

“그래그래, 우리를 뚫고 지나가 보라고!”

도발과 대화는 자제해달라고 부탁해두었지만…….

아무래도 이들은 잘 통제되지 않았다.

마을 입구를 차지하고 있는 수백 명의 유저들.

검은 망토를 둘러쓴 우리의 흑풍단들은 태생부터 자유로운 성격들이었으니까.

“출발합니다!”

펄럭펄럭!

입구 측 흑풍단 사이로 나온 우리 페가수스 부대가 하나둘씩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그 모습에 태성 측 유저들도 재차 비행 펫을 소환해 따라나섰으나…….

“공격!”

퍼퍼퍽!

흑풍단의 지휘를 맡은 아카시아의 진두 아래, 일점사당해 낙사했다.

아무래도 체력이 약한 페가수스의 약점 때문에, 마을을 벗어나는 잠시도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이이익! 이렇게 된 이상 전부 다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그래, 간다!”

태성의 랭커로 보이는 누군가의 지휘로, 잠시 병력을 모은 태성의 비행 부대가 한 번에 수백 기나 날아올랐다.

흑풍단들이 서둘러 놈들에게 공격을 날려댔지만, 채 반의반도 막아내지 못했고.

결국 놈들은 그렇게 앞서간 우리 페가수스 부대를 뒤쫓았다.

하지만 놈들은, 조금 전에 보였던 훼라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간과했다.

“자, 다시 타라.”

“네, 드로 형!”

최강의 궁수인 라챤이.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원딜러 모드의 당당이.

훼라리를 소환해 둘을 태우고는 놈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우리 비행 부대를 방해하는 놈들을 방해하는 것.

그게 이번 공성에서, 내가 맡은 주 임무 중 하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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