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두 개의 신검 (3)
본래 마신검은 지옥불 형님이 신의 선물로 뽑아낸 검.
따라서 마신검의 스펙에 대해서는 이미 훤히 꿰고 있었다.
다리우스의 손에 넘어간 직후, 이 검의 스펙에 관해 직접 물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전 스킬 레벨 +1. 마신검이 갖고 있는 가장 사기적인 옵션이지.
-어라? 제 신검과 같은 옵션을 갖고 있네요?
-허어. 그래? 하긴 그럴 거라 생각하곤 있었다. 어쨌든 드로 네가 몇 강화에 성공했는진 모르겠지만, 난 이 대단한 옵션에 무려 +1이란 수치를 더할 수 있었다.
-……네?
-마신검에 주어진 특별한 혜택. 마신의 가호로 인해 3번의 강화 기회가 있었거든. 그걸 전부 사용해 운 좋게도 +1 마신검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다리우스의 손에 들어가, 오히려 독이 돼버리고 말았지만…….
지옥불 형님과 나눴던 대화가 얼핏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엔 좀 불만이었는데…… 형님에 비하면 +2 강화로 만든 난 정말 운이 좋았던 거야. 하긴 암만 가호가 있더라도 옵션을 생각해보면 고강화는 말도 안 되긴 하지.’
마신검의 다른 옵션도 훌륭했지만 역시나 가장 관건은 신검과 마찬가지로 스킬 업 옵션.
그리고 내게 있는 ‘이도류 마스터리’는, 공격력에만 페널티가 발생될 뿐 옵션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즉 다시 말해 나는, 마신검을 손에 넣기만 하면 모든 스킬들을 단숨에 10성 ‘MAX’ 단계로 만들 수 있었다.
[산드로: 몰랐다면 모를까 덫 설치로 10성을 찍어본 경험이 생겼잖아요? 그 급격히 강해지는 구간이 모든 8성 스킬에 적용된다면 가능합니다. 힐러 없이도 저 투 뮤탄을 잡아내는 일이요!]
[당근당근단검: 올 스킬 10성이라니....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두근하네요! 그럼 어떡할 거예요, 드로 형? 당장 달려드실 거예요?]
[산드로: 잠시만 보스를 잡는 척할 거야. 놈들의 타이탄이 시간이 다 돼서 사라질 때까지. 그런 직후, 다 함께 동시에 달려들겠습니다! 어차피 보스에 딱 달라붙어 있는 놈들이니 어그로가 누구든지 크게 상관없을 테니까요.]
[라스트챤스: 아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이야, 진짜로 완전 올인 전략이네요!]
[산드로: 다들 죄송합니다.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곳에 들어온 건 제 판단 미스였어요. 조금만 더 안전하게 진행할 걸 그랬네요..]
[대탐험시대: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요! 성공만 하면 이보다 더 대박인 결과가 있겠어요? 다리우스도 잡고 보스도 잡고요!]
[기파랑: 맞아요! 위험을 감수했으니까 이렇게 다리우스를 잡을 기회도 생긴 거죠! 드로 형님. 아니, 길마님! 그런 부담은 전혀 갖지 마세요!]
충만했던 사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다리우스네와 달리…….
몇몇 희생에도 불구하고 우리 길드의 사기는, 오히려 이보다 더 충만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한테…… 자격이 있는 걸까?’
이렇게나 아낌없는 신뢰를 받아도 되는 걸까?
그저 내 욕심으로 시작했던 일인데, 길마란 이유로 다들 이렇게나 위험을 감수하도록 강요해도 되는 걸까?
단순히 길드 마스터기에 길드원들에게 명령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쉬운 일일지 몰라도, 지금 난 그들에게 죽음을 명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경험치는 물론 애써 힘들게 얻은 장비들도 드랍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내 결정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설령 잘못된 판단이라도 끝까지 나를 믿고 따르겠다.
그런 각오와 의지가 눈에 보일 정도로 다들 결연한 표정.
어쩌면 난…… 지금 이 순간 타연에서 가장 행복한 유저일지도 몰랐다.
픽! 픽! 픽!
투 뮤탄이 날리는 공격을 피하며, 홍길동이 선사해준 테네시 단검을 날렸다.
랜덤 타겟팅 보스 몹이 가진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
데미지 누적으로 인한 어그로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 동료들도 각자 가지고 있는 보조 활 등을 꺼내 마음껏 공격했다.
“그딴 가랑비에 이놈이 죽을 것 같냐! 하하!”
“멍청이들아, 뭐 하는 거야? 이놈 피를 더 깎았다간 감당되겠어? 그럼 더 힘들어진다고! 크큿!”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허술한 공격만 날려대자, 놈들이 기세가 살았는지 다시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음껏 떠들어라. 어차피 너희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니까.’
정말 수뇌부만 남게 된 건지, 연신 떠드는 놈들은 죄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투 뮤탄과 딱 달라붙어 있던 놈들의 티에스 나이츠들이 하나둘씩 차례로 사라졌다.
각자 레벨이 다르다 보니,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역소환된 것이다.
[축복받은얼굴: 드로야! 내 레벤다스도 곧 끝난다!]
[산드로: 마지막이 누구지?]
[라스트챤스: 저예요! 딱 13초 남았어요!]
[산드로: 그래? 다들 준비하세요. 시간 끌지 않고 단숨에 들이박을 겁니다!]
몇 시간 같던 몇 분이 지나고, 때가 다가왔다.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애초에 힐러가 한 명도 없으니 장기전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건 격돌 한 번으로 승부를 판가름낼 작정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오직 하나, 다리우스.
만약 놈이 죽는다면 우리의 승리로 끝날 것이고, 놈이 끝끝내 살아남는다면 패배하게 되리라.
지잉, 지잉.
그리고 마침내 라챤이의 프리덤 나이츠를 끝으로, 우리는 보유한 타이탄을 전부 소진하게 되었다.
현재 투 뮤탄의 어그로는 현중이.
마침 체력이 가장 많은 녀석을 타겟으로 하고 있어서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버닝스타여!”
“…….”
감정이 고조된 내가 다른 길마들처럼 선창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이런 내 모습에 다들 뭐라 반응하지 않았다.
“버닝스타여!”
“네!”
다시 말하자 마지못해 대답해 주는 한 사람, 연우.
난 그 응답에 큰소리로 외쳤다.
“다 함께 불타오릅시다!”
밤하늘의 별은 평소엔 가만히 빛나고만 있다.
하지만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때가 있었으니…….
그건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까지 대기권을 뚫고 지구로 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네엡!”
“그래, 가자!”
그리고 지금 우리 길드원 모두는, 각자 하나의 별똥별(shooting star)이 되어 그간 타연을 지배해왔던 거대한 별(太星)을 향해 돌격했다.
불타 사라지는 것을 겁내긴커녕 기꺼이 부딪히고 말겠다는 기세.
마치 거대 운석(meteor)과도 같은 사나운 모습으로!
“페가수스 소환!”
“와순이 소환!”
펄럭펄럭!
공중으로 솟구쳐 흩어져 날아가는 현중이와 연우, 라챤이.
그리고 열심히 달려나가는 나머지 사람들.
난 그중 한 명에게 다가가 말했다.
“파랑아, 버프!”
“넵! 마나 웨폰!”
[기파랑으로부터 마나 웨폰을 부여받았습니다.]
빙빙 돌며 시간 끄는 동안, 이미 사용했던 마나는 회복돼서 풀 MP인 상황.
따라서 적진에 뛰어들기 직전, 한 번에 하나씩밖에 받을 수 없는 웨폰 버프로는 블러드가 적합해 보였다.
하지만 앞으로의 내게는 피보다는 마나가 훨씬 더 필요했다.
두 검에 서린 마나 웨폰의 푸르스름한 이펙트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투 뮤탄의 발밑에 있는 다리우스를 향해 날았다.
그러면서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실로키네 소환.”
공중과 지상에서 동시에 들이닥치는 우리 길드원들.
이 갑작스러운 전진에 놈들은 사뭇 당황해하는 기색이었고, 그래서인지 투 뮤탄의 머리 위에 소환된 하얀 매를 발견하지 못했다.
“죽어라, 다리우스!”
마침내 격돌한 두 길드, 버닝스타와 태성.
각각 길드의 올스타들만 모인 이 자리에서의 전투는 시작부터 격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차징!”
“방패 강타!”
“난도질!”
콰광, 쾅!
역시나 나는 못 본 척 버리고 길드원들부터 공격하는 태성의 병력들.
하지만 우리 길드원들은 공격에 맞고도 멈추지 않고 달려갔다.
오직 한 곳, 다리우스가 있는 자리를 향해!
[그림자 밟기!]
그러던 순간, 가장 먼저 현중이가 비장의 스킬로 다리우스의 등 뒤로 넘어가게 됐고.
“방패 휘두르기!”
즉발 스턴기를 사용해 놈에게 기절을 선사해주었다.
일부러 내가 거리를 둔 채 시선을 끄는 동안, 전혀 예상 못 했을 성기사의 그밟을 활용한 회심의 공격이었다.
“볼텍스!”
그리고 그 짧은 찰나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나는 스턴에 빠져 제자리에 멈춰있는 다리우스의 자리에 공격을 지시했고, 이내 실로키네는 악명높은 검은 회오리바람을 정확히 그 자리에 일으켰다.
휘리리리리릭!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 세차게 불어닥치는 바람.
그 한복판에 서 있는 다리우스는 스턴에서 회복된 후에도 전혀 움직이지 못했고.
[태세 전환!]
[재빠른 몸놀림!]
칭!
그를 본 나는 양 손목을 빠르게 부딪쳤다.
[스킬 가속 상태가 되어 60초 동안 모든 스킬의 사용 대기시간이 10%로 줄어듭니다.]
막대한 마나가 소모되는 터라 일부러 마나 웨폰을 받고 오게 한 비장의 무기.
하지만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 스킬 가속 상태로 돌입한 나는…….
[그림자 밟기!]
곧바로 공중에서 다리우스의 후방으로 순간이동했다.
[연속 베기!]
[일격 강타!]
[연속 베기!]
그리고 갖고 있는 모든 마나를 다 써버리겠단 듯이 보유한 공격 스킬들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그륵! 그륵!”
그러자 놈이 타고 있던 소환물, 고르곤이 몇 차례의 피격 효과음과 함께 곧바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떤 스킬을 새로 배웠는진 몰라도…… 단 한 개도 쓰지 못하게 만들어주마!’
돌격 기사.
놈이 전직한 직업의 진 명목을 구경도 해보기 전에, 순식간에 역소환되고 만 것.
하필 내 신검의 밥이나 다름없는, 마계 몬스터를 소환물로 타고 있던 대가였다.
“영혼 연결!”
“영혼 연결!”
“그레이터 힐!”
하지만 역시 태성 놈들도 보통은 아니었다.
일전 다리우스에게 영혼 연결을 걸어 피해를 공유해줬던 일도양단.
하지만 이번엔 이곳에 있는 대여섯밖에 없는 탱커들 전원이 다리우스에게 영혼 연결을 시전했다.
아무래도 이런 경우를 대비한 다리우스가, 영혼 연결을 익힌 탱커들에게 타이탄을 우선 나눠준 모양이었다.
피해 공유가 중첩된단 글은 본 적 있지만, 실제 눈으로 보는 건 처음.
그것도 한 명을 대상으로 이렇게나 많은 유저가 사용하는 걸 보자, 다소 황당하기까지 했다.
“블랙 드레이크 소환!”
거기다 타고 있던 고르곤이 사라지자, 좀 전에 체력을 아끼기 위해 돌려보냈던 드레이크를 꺼낸 다리우스.
이번엔 드레이크와 체력 공유를 건 것이 확실한지, 여러 원거리 공격들과 더불어 들어가는 내 공격에도 제법 안정적으로 버텨냈다.
“뻔하군, 산드로! 하긴 어차피 죽을 몸, 부질없는 짓인 줄 알아도 내게 덤벼들 수밖에 없었겠지!”
“…….”
심지어 말까지 거는 여유를 부리는 모습.
한데 놈이 그럴 만도 한 게, 놈들의 집중 공격도 모자라 투 뮤탄에게 공격당하던 현중이가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급속도로 줄어드는 체력을 버티지 못하고 잠시 타겟팅을 벗어나고자 뒤로 물러선 것이었다.
“무살 형님!”
“그래, 간다!”
하지만 그것도 전부 놈들을 속이기 위한 연기였다.
근접 딜러라 나처럼 쉽게 다리우스 앞까지 다가오지 못했던 암살자.
무살 형님은 조금 물러선 현중이에게 그림자 밟기를 사용해 거리를 순식간에 단축시켰고.
[포획!]
그런 형님을 나는 군단장의 채찍을 사용해 내 앞으로 단숨에 당겨버렸다.
“넌 오늘 무조건 죽는다 다리우스!”
그리고 난도질을 사용한 채 다리우스를 공격하는 무살 형님.
가뜩이나 아프기 이를 데 없는 내 공격에 추가된 형님의 공격.
그에 녀석은 다시금 낭패한 얼굴로 돌변했다.
데미지도 데미지였지만, 쏟아지는 힐과 물약으로도 체력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회복 감소: 상처를 헤집어 5초간 모든 회복 효과를 50% 감소시킵니다.
무살 형님의 암살검에 붙어있는 옵션.
지금 이 상황에서 회복 감소는, 공격 스킬 10개를 합쳐놓은 것보다 더욱 무시무시한 효과를 발휘하는 디버프였다.
“크, 크헉! 뭐 하는 거야, 투 뮤탄! 어서 이놈을 막아! 나를 지키라고!”
시간이 다 되어 사라진 볼텍스.
놈은 곧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사실 갈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놔둘 이유도 없었다.
[급소 공격!]
놈에게 무한 경직을 선사하는 공격 스킬.
급박해진 상황에 이젠 내게도 온갖 CC기가 날아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에만 몰두했다.
넉백은 원래부터 면역이었고, 스턴은 저항이 걸리기만 빌 뿐.
모든 건 운명에 맡기고, 지금 이 순간에는 놈을 죽이는 것만 생각하며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길마님!”
그리고 옆에 있던 기사 한 명의 죽음을 시작으로…….
“이럴 수가!”
차례차례로 다리우스에게 영혼 연결을 걸었던 탱커들이 잿빛 먼지로 화했다.
“이런 산드로 개자식! 죽으면 안 됩니다, 형님!”
그리고 일도양단의 외침을 마지막으로, 내 곁에서 공격을 먹이던 탱커들은 전부 잿빛 먼지로 사라졌다.
[급소 공격!]
하지만 내 검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꾸준한 공격 속도를 유지했다.
내 눈엔 오직 다리우스의 얼굴만 보일 뿐.
다른 놈들의 죽음 따윈 하등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또, 또다시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리고 어느 순간.
스킬 가속으로 끝없이 펼쳐지던 급소 공격이 허공을 갈랐다.
헛방이 아니라 다리우스의 몸 또한 먼지로 변하고 만 것.
그리고 천천히, 놈이 사라진 자리에 거꾸로 꽂혀 있는 장검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처음 신검을 줍던 날이 데자뷔로 느껴질 만큼, 꼭 닮은 마신검의 모습.
난 그때처럼 손을 뻗어 마신검의 칼자루를 잡았고…….
[+1 룬 제스베라(디바인)를 획득했습니다.]
오늘 타연에는, 양손에 신검과 마신검을 나눠 쥔 무적의 유저가 탄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