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스페셜 팀 (2)
“자, 잡았다!”
“아싸! 퍼킬 성공이다!”
연달아 두 번이나 감격해하는 길드원들.
하지만 드랍된 템을 줍기도 전에 당장 상기시켜줄 일이 남아있었다.
“다들 말했던 대로 로그아웃이요!”
“앗! 넵넵! 로그아웃!”
“로그아웃!”
투 뮤탄의 죽음과 동시에 소환 몹들도 사라지고 전투는 완전히 끝이 났다.
따라서 10초의 대기 시간만 주어지면 로그아웃도 가능해졌다.
그 정도면 보스룸을 막았던 얼음벽이 깨지는 시간과 얼추 맞아 떨어질 터.
서둘러 수북이 쌓인 드랍 아이템을 줍는 동안, 시간을 채운 길드원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쩌저정- 쿠궁!
다행인지 설정인지는 몰라도, 마지막 템을 줍는 순간 우릴 단단히 가둬두고 있던 얼음벽이 깨져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줄곧 그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태성 길드원 백여 명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보안을 유지하면서 모을 수 있었던 병력은 이 정도가 한계인 듯싶었다.
“뚫렸다! 어서 잡아!”
그리고 맨 앞에 있던 유저, 홍당무의 외침이 들렸다.
“…….”
“다들 뭐해! 얼른 안 튀어나가고!”
하지만 장내는 고요했고, 그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유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모두의 눈에 지금 나의 모습이 어떤지 똑똑히 보였기 때문이다.
지상 20미터 정도 높이에 가만히 떠 있는 채로, 양옆으로 신검 두 자루를 길게 늘어뜨린 위협적인 모습이!
“와 보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한 분도 안 오실 거예요? 거기 혼자 떠들고 있는 홍당무! 너라도 오는 척 좀 해보지?”
백 대 일.
그것도 도망칠 곳 없는 보스 룸에 혼자 갇혀있는 외통수 상황.
하지만 여전히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 투 뮤탄과 함께 함정을 파두었던, 자신들의 길마를 포함한 랭커들이 전부 어떻게 됐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시시하네요. 태성?”
뭐가 됐건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 아군과 합류해야 하는 나로선 다행인 셈.
“뭐, 뭐야? 어떻게 펫도 없이 저렇게 떠 있을 수 있는 건데?”
“근딜로 저걸 어떻게 공격해? 원거리도 맞출 수나 있긴 하고?”
서로 눈치만 살피며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한 장내.
그 생소한 모습에, 나는 비로소 시작된 태성의 균열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우선 죽자사자 덤비고 봤을 텐데…….’
그렇게 주저하는 놈들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보다가 몸을 숨겼다.
이젠 평상시 이동 속도와 똑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최초의 10성 은신으로.
“아이스 포그!”
“토네이도!”
갑자기 사라진 내 모습에 당황한 적들이 허공에 온갖 스킬을 난사했지만…….
최고 등급에 다다른 은신으로 비행하는 나는, 이미 놈들이 예측한 지점을 지나친 다음이었다.
‘캬! 맥스 등급이 좋긴 좋구나!’
공격력이면 공격력, 회피면 회피.
거기다 이 10성 은신까지 갖추게 된 나는, 김석용 아재가 말한 대로 무적의 ‘일인 군단’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고작 백 명 정도로 나를 잡을 수 있겠는가?
은신이 벗겨지면 상대해줄 마음도 조금은 있었으나 놈들은 그러지 못했고.
난 그들 머리 위를 유유히 날아 들어왔던 계단 입구에 올랐다.
그리고 원래 달려왔던 던전을 차례차례로 지나쳐, 뒤따라온 아군 병력과 무사히 합류했다.
* * *
-[속보] 다리우스, 마침내 마신검을 드랍하다!
-다들 좀 전에 전쟁 종료됐단 전체알림 봤지? 방금 건너건너 통해 들은 건데 산드로가 다리우스 죽이고 마신검 먹었단다! 쌍 신검 찬 모습을 봤대!
└구라질 노잼임. 다리우스가 죽었을진 몰라도 설마 마신검을 드랍했겠어? 설령 그랬다 치자. 신검도 모자라 마신검까지 산드로가 또 먹었다고? 확률적으로 그게 가능할 것 같음?
└└다른 디바인 템 가진 게 없었다면 무조건 마신검을 떨궜겠지! 그리고 산드로 정도는 돼야 다리우스를 죽일 수 있는 거 아냐? 만약 발제글이 사실이라면 진짜 찢어 죽이고 싶겠는데?ㅋㅋㅋㅋ
└└└레알 악연도 이런 악연이 또 없을 듯. 이런 기막힌 악연을 실시간으로 관전하게 되다니ㅋㅋㅋ 개꿀잼ㅋㅋ
짬을 내 접속한 올타 게시판에서는 역시나 방금 전 사건이 온통 화제였다.
“응? 근데 내가 마신검을 찬 모습은 태성 놈들밖에 본 사람이 없었는데…… 그새 말이 샜다고?”
다리우스가 죽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아까도 느꼈지만, 확실히 예전의 칼같이 통제되던 태성 길드의 느낌은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다리우스가 내게 두 번이나 죽은 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벌써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수중왕국 개꿀 사냥터 같지 않음? 천계처럼 입장료가 드는 것도 아니잖아? 듣기론 새로운 제작템들도 많아 보인다던데?
└당장은 비행 펫 있는 유저들만 갈 수 있는데, 벌써 배편 운용한다는 낚시꾼 유저들이 나타났더라. 조만간 벨루타 항구에 정기 운행도 생길 듯
└└어차피 레벨 낮은 애들은 가봤자 아님?
└└└그게 또 아님. 일단 경치가 장난 아니라서 관광객도 많이 몰릴 것 같음. 거기다 사냥터도 마을이랑 붙어있어서 개편함. 벌써 왕성 던전에는 자리 잡는 유저들도 있던데? 제2의 레던 탄생임!
그리고 이러한 유저들의 뜨거운 반응 덕분에, 로그아웃했던 우리 길드원들은 생각보다 금세 귀환할 수 있었다.
어차피 보스룸에 있던 태성 유저들은 몹들과 서로 공격할 수 없는 상태.
한데 일반 유저들이 계속 밀고 들어오자, 놈들은 텅 비어버린 보스룸에서 철수해버렸다.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을뿐더러 피닉스 라인이 계속 합류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마무리한 다음, 나는 따라나선다는 현중이와 라챤이 등을 두고 홀로 집에서 나와 택시에 탔다.
“아무튼 정말 실감이 나질 않는구나. 이런 날이 정말로 내게 찾아오게 될 줄이야…….”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심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지금 이 순간이 마치 꿈만 같이 느껴졌다.
거대 아쿠아리움 속 같던 몽환적인 수중왕국 속 풍경.
조금 전까지 있었던 그곳과 달리, 이렇게 쨍쨍하게 내리쬐는 현실 속 햇볕이 되레 낯설기만 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바깥 공기를 안 쐬고 살긴 했지?’
누가 보면 자발적 격리 생활 중이거나 폐인이라고 할 만큼, 눈만 뜨면 타연에 접속해서 게임만 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심지어 캡슐이 체크하는 바이오리듬에 지장이 생길 정도가 아니라면, 끼니를 거른 적도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억지로 한다거나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오히려 태어나 처음으로 스스로가 대견하게 여겨졌고, 갈수록 나 자신에게 감탄하는 일이 잦아졌다.
지금껏 모른 채 살아왔던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열정.
그리고 그 열정을 태운 결과로 조금씩 드러난 내 잠재력과 가능성.
그게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하루하루 눈으로 직접 그 결과물을 확인하는 즐거운 나날들이었으니까!
“드로야, 여기다!”
“어, 형님! 기다리고 계셨어요?”
그렇게 홀로 감상에 젖어있다 보니 어느새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택시에서 내린 내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오늘날 내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조력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은인(恩人).
바로 지옥불 형님이었다.
“잘 왔다 드로, 아니 지환아. 그렇게 놀러 오라고 말해도 한 번을 오지 않더니,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구나.”
“하하! 오늘만 벼르고 있었죠. 다리우스 그 자식을 통쾌하게 죽이자마자 형님을 찾아뵙는 날을요.”
“하하, 하여간 지환이 너만큼 괜한 고집 부리면서 타연하는 유저도 드물 거다.”
“아무튼 반갑습니다, 형님. 너무 늦게 찾아뵙게 돼서 죄송해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도무지 40대 초반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인 지옥불 형님.
연우 문제 건으로 짧게 뵌 후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있다 보니 역시 잘 실감이 나질 않았다.
한때 나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던 헬파이어, 신지석 형님.
시대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그 존재와 이렇게 함께한다는 건, 여전히 내게 가슴 벅찬 일이었으니까.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사무실로 들어갈까? 아직 점심 안 먹었지? 뭐라도 좀 시켜줄까?”
“아니에요, 형님. 밥 먹고 왔습니다. 그냥 커피나 한 잔 주세요.”
마치 오래된 동생처럼 편하게 대하는 지옥불 형님.
형님을 따라가자, 매스컴을 통해 몇 차례 본 적 있는 건물이 나왔다.
비록 이면 도로와 맞닿은 골목 안이지만, 엄연히 강남 한복판에 지어진 5층짜리 신축 빌딩.
프로 타연러들을 꿈꾸는 타연 새싹들의 목표 중 하나인, 피닉스 길드의 사옥(社屋)이었다.
“우와, 실제로 보니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데요?”
“대단하기는 무슨. 다 투자받은 거로 지은 빚덩어린데 뭘. 오히려 아무런 투자도 없이 혼자서 타연의 탑이 된…… 지환이 너야말로 정말 대단한 거지.”
삐까뻔쩍한 빌딩은 아니지만, 감각적이면서 유망 게임팀이란 업종에 걸맞은 인테리어가 편안하게 다가오는 곳.
얼핏 보이는 수많은 캡슐 방들을 지나친 우리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회의실로 들어갔다.
“슈바이쳐를 비롯해 댜크홀스 등도 여기서 게임 중인데…… 한 번 만나볼래?”
“아뇨, 괜찮아요. 오늘은 형님을 직접 만나 뵙고 할 일이 있어서 찾아온 거니까요.”
“그래? 그 유명한 산드로의 실물을 보는 일이 흔치는 않은 기회인데…… 녀석들이 아쉬워하겠는걸? 그나저나 할 일이라니, 뭘 말하는 거냐?”
“사실 그동안…… 형님을 직접 찾아뵙는 건 항상 이 순간이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래야 형님께 진 마음의 빚을 완전히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뭔 말인가 했더니 또 그 소리냐? 그놈의 마음의 빚 타령? 그건 이미 다 갚았잖아. 네가 내게 로파미엘을 넘겨주면서!”
“그거론 부족하죠, 형님. 직접 뽑으셨던 마신검을 제대로 써보시기도 전에 뺏겼잖아요. 그간 형님께서 도와주신 은혜를 제대로 갚을 기회를 주세요. 직접 형님을 만나는 걸 꺼렸던 것도, 다 이렇게 마신검을 돌려드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었어요. 다시 마신검을 차시고, 저희 함께 태성 라인을 완전히 멸망시켜 버립시다 형님!”
“…….”
묵묵히 내 말을 듣고 계시던 형님.
그러다가 한마디 하셨다.
“타연에서 유일하게…… 7신기만큼은 교환이 안 되는 걸 잘 알고 있지? 네 말대로라면 나한테 어떻게 넘기려고? 필드에서 죽어서 드랍하게?”
“네. 일단은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지그래? 마신검 대신 다른 디바인 장비를 드랍하면? 그럼 계속 죽을 거야? 그러다 신검을 먼저 드랍하면 어쩌려고? 랭킹 1위 캐릭으로 이따위 짓을 반복하자고?”
“……네? 마신검만 빼고 나머지는 창고에 넣으면 괜찮을 텐데요……?”
“뭐가 됐건 시끄럽다! 넌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길래 그딴 이유로 찾아왔다는 거냐? 내가 내 동생한테 그딴 짓을 시킬 놈으로 보여? 지환이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무척 실망이구나.”
“형님…….”
한번 말을 꺼내니 속사포처럼 쏟아붓는 지옥불 형님.
형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세게 나오시는지 모를 수 없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환아……. 형이 예전에 너한테 말한 적 있지?”
“……말씀하세요.”
“네가 준 로파미엘이 형한테는 너무 뜻깊은 선물이었다고. 그래서 타연을 접는 그 날까지 손에서 놓지 않을 거라고. 내가 너처럼 쌍검을 쓰는 것도 아니니, 마신검은 필요도 없고 쓸 수도 없다. 그 검은 오롯이 네 몫이야. 네가 목숨 걸고 다리우스를 죽여서 얻어낸 보상이라고!”
“형님…….”
여러 번 느끼는 바지만, 형님은 안에서건 밖에서건 한결같았다.
다리우스나 제독 같은 다른 탑 길드의 마스터들과 달리, 진짜 ‘마스터’답다는 느낌을 안겨주는 사람.
그래서 내가 꼭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유일한 리더.
이번에도 형님은 내게 깊은 여운과 감동을 안겨주며 이보다 더 멋질 수 없는 양보를 하셨다.
정말 탐나긴 하지만 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마신검’을!
“그나저나 네가 안에서 싸우는 동안 태성을 막아서며 조사해 본 게 있는데…….”
“네?”
“라인 내 동맹들까지 수소문해도 알아내지 못한 걸 히캬가 알아냈다. 놈들이 왜 수중왕국의 몬스터들에게 공격당하지 않는 건지.”
그리고 형님은, 양보뿐만 아니라 오히려 선물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놈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놓을 수 있을 만한 고급 정보를!
“오! 정말요? 어떻게 그랬던 거예요?”
“답은 역시 마계였다. 네가 들고 있는 마신검. 그 템과 연관된 마계 관련 퀘스트가 존재하는 모양이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