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2화 (2/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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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

일주일.

일주일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한동안 멍때리던 태호가 정신을 차린 것은 족히 한 시간은 지난 뒤의 일이었다.

솔직히, 회귀했다는 말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만 어쩐지 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머리를 굴려 본다.

우선.

태호는 다급히 컴퓨터를 켜, 웹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리얼 포스의 개발사는 ‘팀 아스라이’.

아이슬란드의 게임 회사였다.

리얼 포스가 흥행하기 전 까지는 무명이었다. 전작들은 없었고, 처녀작인 리얼 포스의 흥행으로 아이슬란드 GDP의 50%를 차지한 초국가급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혹자는 일개 게임이 국가 GDP의 50%를 차지한다는 숫자가 허풍이라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엄연히 사실이었다. 리얼 포스의 동시접속자는 흥행 이후 쭉 5억을 웃돌았다.

숫자가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지겠지만 이 역시 사실이다. 아무튼, 모두가 리얼 포스에 미쳐 있던 시절이었다. 그것은 문화였으며, 새로운 사회였다.

그 때는, 그럴려니 했다.

팀 아스라이.

그 어떤 투자도, 자문도 받지 않는 비밀의 제작사. 천문학적인 유저의 수를 감당하는 비정상적인 서버운영, 그리고 철저한 비밀고수를 유지하는 제작사.

어떤 면을 봐도 괴리감이 있다. 적어도 인간세계에서 존재할 수 없는 형태의 기업이라는 것!

매스 미디어에서는 항상 불가사의한 리얼포스의 흥행과 억대의 유저를 수용할 수 있는 서버의 미스테리, 그리고 ‘팀 아스라이’ 의 정체에 대해 떠들어댔다.

여러 설이 돌았다. 사실은 ‘팀 아스라이’ 는 외계문명에서 온 이종족이다- 라는 카더라부터 미 정부의 VR 시스템을 이용한 새로운 인류 데이터화의 일환이라는 가설까지. 그 설을 꼽으면 한도 끝도 없다.

혹자는, 아이슬란드의 GDP 50%라는 수치도 허구나 추측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팀 아스라이는 분명히 존재했으며 리얼 포스 역시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결국 게임으로 인한 파생 직업이 수십만 개에 이르며, 리얼 포스는 새로운 가상현실 세계로 입장을 공고히 하기에 이른다.

-까지가 회상.

태호는 팀 아스라이의 웹 사이트를 뒤지다가, 그 곳에 남겨진 문의 게시판을 클릭했다.

일단, 조금 물어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당신들 게임이 이 세상을 결국 조져버린다고!

분에 차 타이핑을 해 나가던 태호가 문득, 손가락을 멈췄다.

“......”

잠깐만.

결국, 세상이 멸망한다면- 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하루 이틀이 아니고, 11년이라는 말미까지 줘 가면서 세상을 굳이 멸망시킬 이유가 있을까?’

의문은 꽤 합당했다.

세상을 망치고 싶으면 그냥 바로 해 버리면 된다. 하지만, 굳이 시간을 듬뿍 줘 가면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 라는걸, 저들이 알게 된다면......’

혹여라도 그들에게 악의가 있다면?

자신이 그 사실을 모두에게 떠벌리고 다닐 것을, 그들이 경계한다면?

‘틀림없이 살해당할 거야.’

일리 있는 생각이었다.

타이핑을 멈춘 태호는 글자를 모두 지워 버렸다. 리얼 포스를 하며 쌓아 온 처세와 지혜가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었다.

잠깐이나마 이 비정상적인 현실에 정신이 나가 버렸던 것 같았다.

벌떡 일어난 태호가 화장실로 들어가 찬 물을 온 몸에 끼얹었다.

“시발, 병신아! 정신 차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한편으론, 한 없이 냉정해져 갔다.

우선.

태호는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나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웹 사이트를 꺼 버리고, 메모장을 띄웠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리얼포스가 오픈하고 나서, 11년간 그 게임에 미친 듯이 몰두했다. 그는 이미 리얼 포스의 박사였으며, 전문가였다. 그 중, 유독 흥미를 가져온 것은 바로 ‘히든 피스’ 들의 존재에 대해서다.

게임 곳곳에 숨겨진 히든 피스.

밸런스 붕괴니 뭐니 해도, 리얼 포스의 대륙은 지구의 크기와 1:1 정비례 크기로 정확히 똑같았다. 어딜 가든 히든피스를 발견할 수 있었고 때문에 다양한 직업군과 어마어마한 보물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태호는 그 시스템에 깊이 매료되어, 이미 밝혀진 히든피스들의 정보들도 하나 하나 찾아 보며 새삼 게임의 깊이에 감탄하곤 했었던 것이다.

1. 우르즈 백 마운틴의 히든 피스.

2. 냉기법사의 재발견, 히든 피스 마법서 ‘에테리얼 마법서’

3....

떠오르는 족족 거침없이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태호는 그야말로 물 흐르듯, 단편적으로 생각 나는 히든 피스에 대한 모든 기록들을 세세히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글을 적어 나가기 시작하니 점점 더 기억이 생생해져 갔다.

모든 기억을 되새길 수는 없음이 자명하다.

태호의 신체는 20살이었지만, 정신적 나이는 이미 32살이다. 이 시점은 이미 12년 전의 시점. 아무리 기억력이 특출나더라도, 모든 것들을 기억해 낼 수는 없다.

하지만.

유독 특출난 히든 피스들의 기록은 아직 생생하다.

타다다다다닥!

태호의 타이핑 소리가 점점 더 빨라졌다.

* * *

“후, 이 쯤 된 건가.”

히든 피스의 목록은 300여개를 조금 넘어섰다. 이 쯤이 기억력의 한계였다.

머리를 하도 써서 그런지, 골이 띵 한 것이 헛구역질까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호는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

조금이라도 기억이 날 때 모두 메모해 두어야 한다.

리얼 포스의 오픈은,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환호를 받진 않았다. 클로즈 베타나, 사전 정보 공개 따윈 없이 말 그대로 갑자기 툭 튀어나와 오픈 베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입소문을 타기 까지 걸린 시간, 2달 하고 15일.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팔로워를 가진 유튜브(U-TUVE) 유저 ‘란슬롯’ 이 리얼 포스를 플레이하기 시작하며다.

그는 리얼 포스의 대단히 입체적이고 말도 안 되는 사실감과 독창적인 시스템에 경악했고, 그것은 곧 유튜브의 트랜드가 되었다.

무수히 많은 이들이 너도나도 리뷰를 시작했고, 곧 유저들의 유입이 시작된 것이다.

그 이후론 정식 서비스를 선언하며 승승장구.

나아가, 하나의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버린다.

“......”

태호는 모니터에 띄운 큼직한 지도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급조하여 그렸지만, 대강 이 정도의 느낌일 것이다.

리얼 포스의 월드맵은 워낙 방대해서 그 모든 것을 그려낼 수는 없다. 세계의 종말을 고하던 그 시절까지, 유저는 전 대륙의 고작 50%만을 탐사하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태호는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많은 히든피스가 존재하는 지역을 크게 동그라미로 가리켰다.

‘대부분 내가 주로 플레이했던 지역의 기억이 남아 있는 건 어쩔 수가 없어.’

스스로의 부족함에 머리카락을 쥐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금 더 머릿속에 집어넣지 못 했던 자신이 후회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뒤로 미루자. 쥐뜯는 것은 나중에라도 늦지 않으며, 현재의 기억들도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은 히든피스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태호는 다시 메모장을 띄웠다.

정리하고, 되새겨 두어야 할 정보들이 아직 많다.

* * *

모든 정리가 끝날 무렵엔 이미 다음날 늦은 오후가 조금 지나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기억하는 모든 것들을 쏟아 냈더니 허기가 진 것도 몰랐다. 이런 집중력이었다면, 9급 공무원은 금세 달성했을 지도 모르겠단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태호가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우드득 거리는 뼛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긴장했던 몸이 조금씩 풀려 가며, 전신에 격통을 선사해 왔다.

“휴......”

이내, 시계를 본다.

오후 5시 30분.

정말 머리 속 모든 것을 털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억을 되새긴 시간이었다.

태호는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눈을 감아 버리면.

다시 내일을 볼 수 있을까?

어쩐지 묘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수마는 천천히 온 몸을 잠식해 온다. 태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대체 누가, 나를 회귀시켜 준 걸까.

하얀 빛.

죽기 전 본, 마지막 그 하얀 빛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이내, 깊고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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