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3화 (3/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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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판타로스는, 거대한 몸뚱이를 가진 기괴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크기는 대략 63빌딩의 꼭대기에 시커멓고 흐리멍덩한 두 눈깔이 닿을 정도다. 주둥아리의 역할을 하는 양, 길고 두터운 촉수들이 뭉실거렸고 팔은 여덟 개였다.

온 몸에서 시커먼 덩어리가 꾸역, 꾸역, 흘러 내렸다. 사방에서는 놈이 만들어 낸 괴물들이 활개를 쳤다. 괴물들의 기세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최상급 유저들이 파죽지세로 밀려 간다. 굳이 저 판타로스의 힘을 빌지 않아도, 이대로 가다간 전멸이었다.

태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유쾌한 인상의 남자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장.

-......그래.

-여기까진가봐.

-......

-꼭.

그의 두 눈에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웃고 있는 입꼬리가 파들 파들 떨리고 있었다.

-꼭, 살아 남아서. 우리 복수를 해 줘.

그는 긴 창을 꼬나쥐고 있었다.

통합 랭킹 14위, 라간.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동료였다.

-내가 길을 뚫을게. 우선...... 도망쳐.

라간이 움직였다. 빛처럼 움직이는 창이 수많은 괴물들의 틈새를 뚫어냈다.

-라간!

태호가 라간에게 소리쳤다. 라간이 뒤를 슬쩍 돌아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낮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동안 즐거웠다.

이내 틈 속으로 몸을 던졌다.

파파파파팍!

마력이 피어오르며 사방으로 강렬한 섬광이 내리꽂혔다. 그의 창이 만들어낸 최종비기가 틀림없었다.

[대장! 대장! 5팀 전멸입닏......]

그 사이, 누군가의 귓속말이 들려왔다. 그는 말을 마치지 못 하고 목숨을 잃었다.

문득, 판타로스의 흐리멍덩한 두 눈이 태호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번쩍!

그 순간, 뒤를 돌아 보니 여의도가 사라져 있었다. 여의도는, 마치 태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야말로 흔적조차 남지 않게 증발했다.

콰과과과광!

하늘이 울고,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태호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를 악물고, 양 손에 든 무기를 꼬나쥔다.

-이런 개자시이이이이익!

그대로 놈에게 달려갔다.

파시식!

그리고, 세상이 새하얗게 변해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

.

.

“헉!”

태호가 눈을 뜬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고 있었다. 온 몸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가을 바람이 창문 틈을 타고 들어와 어쩐지 온 몸이 싸늘하다.

침을 꿀꺽 삼킨 태호가 벌떡 일어섰다. 헉, 헉,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진정시킨 뒤 창 밖을 보았다.

여전히 아름답고 평온한 세상.

그것이 가져오는 안도감에, 그제야 눈을 비볐다.

‘라간......’

태호는 그 이름을 되뇌었다. 라간과 만나게 되는 것은 플레이를 시작하고 약 한 달 뒤.

지금 당장이라도 그를 만나고 싶었지만, 아마 지금 쯤 그는 유럽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유쾌한 여행가였고, 한 달이 지난 뒤에야 리얼포스에 접속할 것이다.

태호의 얼굴이 독기를 품었다.

라간 뿐만이 아니다.

태호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동료들이 모조리 죽었다.

누군가가 그들을 구해야 한다면, 그건 바로 자신이었다.

삐빅- 삐빅-

스마트폰에서 요란한 아침 알람 소리가 뒤늦게야 들려왔다.

어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후임도 없이 그만두는게 어디있냐고 따지는 사장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 밖엔 할 말이 없었다.

개념이 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어린 놈이라 싸가지가 없다고 욕해도 좋다.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까.

태호는 멍하니 앉아서 머리를 긁적였다.

세상에.

비록 악몽을 꾸긴 했지만 이토록 곤히 잠들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판타로스가 현실로 튀어나오고 난 뒤, 태호는 단 한 숨도 제대로 자지를 못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괴물들의 습격 때문이었다.

문득,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리얼 포스가 5일 뒤 오픈베타를 시작한다.

목표는 확고했다.

리얼 포스의 오픈베타에 진입해, 고속성장을 해야 했다. 꼭 챙겨가야 할 히든피스들을 챙기고, 회귀하기 전 이루었던 달성도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르러야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태호는 리얼 포스의 통합 랭킹 1위의 실력자였다. 그 동안 가상현실 게임을 접하지 못 했었지만, 막상 시작하고 난 뒤 알게 된 것은 자신이 가상현실 게임에 재능을 타고났다는 점이었다.

‘일체감이 높았지.’

최근 가상현실 게임에서 캐릭터의 정밀 컨트롤을 담당하는 것은 바로 일체감이었다.

캐릭터와 현실의 나와의 일체감. 퍼센테이지가 높을수록 가상현실 게임에서 고난이도 플레이가 가능하다.

과거의 PC게임등에서 소위 ‘피지컬’ 이라고 칭하는 동체시력의 역할을 대행하는 것이다.

20대 인류의 평균 일체감 수치는 대략 30~40%.

리얼 포스를 시작하기 전, 일체감 측정을 해 보았을 때 태호의 수치는 55%대였다.

단 한 번도 트레이닝이나, 가상현실 게임을 해 본 적도 없는데도 55%라는 것은 타고난 재능값이 뛰어남을 의미했다.

그리고 리얼포스의 랭킹 1위를 찍을 무렵, 태호의 일체감 수치는 70% 선을 웃돌았다. 참고로 프로게이머들의 평균 일체감 수치가 60%였다.

‘이러니 금수저 금수저 그러지.’

적어도, 태호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기만 했었더라면 진작에 재능을 발견해 트레이닝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70%가 아니라 80%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뒤늦게야 가상현실을 접하고 홀로 플레이했음에도 결국 70%의 경계에 다다른 것을 보면 말이다.

일체감 수치가 높다는 것은, 고도의 집중상태에서 조금 더 마이크로 컨트롤에 능해진다는 의미이다.

리얼포스가 등장하기 전, 가상현실 게임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1:1 PVP 게임인 ‘WOF' 등에서는 그 재능의 차이가 더욱 도드라지는 것이다. 마치 축구나, 야구에서 재능을 타고난 이가 툭 튀어나오듯 말이다.

아무튼.

남은 시간 동안, 태호는 천천히 신변 정리를 해 나갔다.

우선, 통장을 본다.

[잔액 : 520,000 원]

통장이 아니라 그야말로 텅장이다. 월세와 관리비를 토탈 50만원 내고, 2만원으로 버텨야 하는 입장이었다.

‘사장님이 그간 일 한 임금을 내일 쯤 입금해 주신다고 했으니까...’

아르바이트 사장님께 정말 고마운 일이다. 욕은 하더라도, 임금을 떼어 먹을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들어올 돈이 대략 40만원이고...’

대략 42만원의 여윳돈이 있다.

여기서 생활비는 정말 아끼고 아껴서 20만원 쓴다고 치고...... 그러면 남는 돈이 22만원.

‘우선은 돈이 필요하겠어.’

돈.

리얼 포스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를 무렵부터는 돈 걱정하지 않게 될 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당장 생활비부터 구해야 했다.

우선.

일단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냉장고가 텅 비어 있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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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까운 대형 마트에서 모처럼 장을 본다.

작은 쌀 한 포대기를 사고, 할인 세일 중인 라면을 잔뜩 바구니에 담았다.

라면.

생각 해 보니까, 한 때는 라면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도 있었다.

라면 봉지를 만지작 거리던 태호의 눈에, 저 편. 마트 내에 설치된 큼직한 TV가 보였다.

[프로게이머 윤형석 초대석]

한창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

태호는 윤형석이라 불린 사내를 빤히 바라보았다. 훤칠하게 잘 생긴 미남이었다. 지금 이 시간대에서 그는 태호 따위는 모를 테지만, 태호는 그를 아주 잘 알았다.

WOF에서는 그를 투신(鬪神)이라 부른다.

그는 향후 거대 스폰서들을 등에 업고 리얼 포스로 종목 변경을 하게 된다. 리얼 포스가 인기를 얻음에 따라, 무수히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종목 변경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와 아주 오랜 시간을 다투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와 태호는 대립했다.

“......핫.”

어쩐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새삼, 내가 회귀를 했구나- 란 생각이 들어서다.

[윤형석 선수께서는 일체감 수치가 75%에 육박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TV의 아나운서가 인터뷰 내용을 말하자, 자막이 깔린다.

[이 수치는 사실 세계 신기록이지 않습니까? 이 전까지의 신기록은 스웨덴 출신의 에브라 선수가 기록한 73%였고요. 신기록을 보유하고 계신 소감이 어떠신지...]

곧이어 윤형석의 거만한 얼굴이 비추었다.

[노력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태호는 가만히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 보았다.

사실 이제 와 큰 감흥이란 없다. 그렇게 장을 보며 막 계산대로 이동하려던 그 때였다.

[무인 일체감 측정소]

계산대 너머 저 편에서, 큼직한 부스 하나가 보였다. 일체감 측정소라니?

“아-”

하긴, 이 쯤에는 국민들이 갖는 프로게이머에 대한 관심에 따라, 저런 무인 측정소가 여기 저기에 생겨나고 있었다. 자신의 재능치를 숫자로 볼 수 있다니 상당한 인기를 누려, 자영업자들도 꼭 가게 앞에 하나씩 설치해 두곤 했던 것이다.

태호는 피식 웃으며 그 앞으로 걸어갔다.

테스트 비는 2만원.

지금 형편에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다. 하지만, 어쩐지 강렬한 호기심이 들었다. 그 동안, 얼마나 일체감의 성장을 이루었는지 말이다.

간이 부스 앞에 만 원 권 두 장을 집어 넣자, 문이 열렸다.

내부에는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와, 가상현실 접속용 고글이 설치돼 있었다.

[WOF]

종목은 WOF인 모양이다. WOF란, 1:1 PVP를 기본으로 하는 대전 격투 게임. 검, 쌍검, 대검 등을 비롯한 각종 무기들을 선택한 뒤 그야말로 피 터지게 싸우는 종류의 게임이었다.

어쩐지 손이 근질근질해져, 고글을 써 본다.

[WOF, 일체감 테스트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바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장비를 선택해 주세요.]

샤아악-!

사방이 하얗게 물들며, 어느새 가상현실의 세계가 태호를 반겼다. 눈 앞에는 장비들이 있다. 그 중, 태호는 리얼 포스 시절 주력으로 사용했던 쌍검에 손을 뻗었다.

기본적으로 리얼 포스나 WOF 역시 1:1 싸움의 움직임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장비의 종류가 미세하게 다르고, 검신의 길이 혹은 대미지가 당연히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거의 비슷하다.

태호는 쌍검을 꼬나쥔 채 몸을 가볍게 풀었다.

[테스트 난이도를 설정해 주세요.]

1단계가 가장 쉽고, 10단계가 가장 어렵다.

태호가 마지막으로 일체감을 재어 보았던 것은, 리얼 포스 랭킹 1위를 하던 날. 대략 게임을 시작하고 7년쯤 뒤의 일이었다. 그 뒤론 재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조금 세게 가 볼까.

“10단계.”

태호의 말에, 시스템이 반응했다.

[난이도는 10단계로 설정되었습니다.]

[5]

[4]

[3]

[2]

[1]

[테스트 시작.]

곧, 사방이 거대한 콜로세움으로 바뀌었다. 와아아아! 하는 가상의 고함 소리와 함께, 눈 앞에 큼직한 사내가 서 있었다.

[테스트 10단계 AI]

10단계 AI.

태호가 눈을 반짝였다. 사실, 태호도 궁금하긴 했다. 과거의 수치보다 얼마나 더 올랐을지 말이다.

츠팟!

눈 앞의 상대가, 질풍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은 거대한 대검을 사용했으며, 덩치가 태호보다 머리 하나 만큼은 더 큰 근육질이었다.

태호는 양 손의 쌍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자세를 잡았다. 손가락, 발가락, 양 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가만히 느껴 본다.

이내,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렸다.

‘왜 오차가 안 느껴지지?’

현실과의 오차가 느껴져야 정상이다. 일체감이 70%란 소리는, 바꿔 말하면 현실의 움직임과 30%의 괴리감이 생긴다는 말이다.

허나 지금 태호는 어쩐지 전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착각인가?’

쐐애액!

그대로 대검이 날아들었다. 태호는 몸을 가볍게 틀며 공격을 피한 뒤, 파고들었다.

푹푹푹!

가볍게 복부를 긋고, 빙글 몸을 한 바퀴 돌아 놈의 뒤로 향한다. 그대로 팔꿈치, 손목을 빠르게 그은 뒤 백 스탭을 밟았다.

후웅!

이어진 거대한 종베기를 백 스텝으로 피한 뒤, 땅을 차며 다시 달려든다. 놈이 발차기를 하며 태호를 저지하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 양 손의 쌍검을 들어 발목을 슥슥 그었다. 이어서, 몸을 다시 빙글 돌리며 디딤발의 발등에 검을 내리찍었다.

푹!

연이어, 찍은 발의 아킬레스건을 그어 버린다. 뭐 하나,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없었다.

태호는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이렇게 잘 돼? 마치...’

마치, 리얼 포스가 현실이 됐을 때의 감각처럼! 생각한 그대로 움직이는 일체감이라니!

그 생각을 꿀꺽, 삼켰다.

그 뒤의 전투는 말 할 것도 없는 압승이었다.

태호는 거칠게 반항하는 놈의 공격을 유유히 피하고, 균형을 잃은 채 쓰러진 놈의 심장부에 왼손의 검을 꽂아 넣었다.

말 그대로 놈을 일방적으로 도살해 버린 것이다.

[KO]

[클리어 타임 : 1분 23초.]

놈이 쓰러지자, 곧바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최대 기록이 갱신되었습니다.]

[평균 일체감 수치 : 100%]

[최대 일체감 수치 : 100%]

[당신의 일체감은 상위 0.000001%]

“......”

생각한 그대로다.

말 그대로, 태호가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단 말이다.

“맙소사.”

[온라인 랭킹에 등록할까요? 등록하신다면 전국의 랭커들과 경쟁하실 수 있습니다.]

태호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일체감 75%가 매스컴에서 연일 화제다. 100%는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진 않았다.

“......아니요.”

[기록을 기기에 등록할까요?]

태호는 기록 삭제를 선택했다.

[기록이 삭제됩니다.]

[테스트를 종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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