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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네겐..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사방은 고요했다. 적들은 채 깨어나지도 못 한 채, 그대로 죽음을 맞이해 가고 있었다.
2층이 모조리 죽어 나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당신의 펫 ‘데스나이트’ 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펫 시스템의 펫은 주인과는 별개로 경험치를 먹는다. 데스나이트의 레벨도 쑥쑥 올라 가고 있었다.
어느새 태호의 레벨이 80에 도달했다. 레벨이 오르는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데스나이트의 펫 효과인 경험치 35% 증가가 그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 저주의 화살]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 마법 갑옷]
2층을 모조리 클리어했을 때, 태호의 레벨은 이미 86을 넘어서고 있었다.
[등급 : 6급]
[종류 : 재료]
[이름 : 순수의 강철]
[순수한 마력이 깃들어 있는 강철.]
‘순수의 강철이 열 다섯 개.’
2층의 성과는 순수의 강철 열 다섯 개, 그리고 레어 열 개였다.
태호는 데스나이트가 아이템을 수거하기 위해 부리나케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순수의 강철은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서, 백 개가 필요했다. 그리고 신비의 니바 숲이란 곳에서 은거한 전설의 대장장이를 찾아간 뒤 재료를 지불하고 에픽 아이템 제작을 할 수 있었다.
‘니바 숲을 찾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며 하나는 확정제작이 가능하겠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3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선 태호는 저 편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기사의 석상 하나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사방에 까마득하게 많은 기사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저 거대한 기사가 광휘의 기사임이 틀림없었다.
태호는 혹시나 싶어, 광휘의 기사 레온하르트에게 지팡이를 뻗어 보았다.
투웅!
중독이 걸리고 맹렬하게 대미지를 깎아내기 시작했다.
“......”
역시 통했다.
태호가 광역 중독으로 사방을 다시금 다져나가기 시작하자, 데스나이트가 입을 열었다.
[카이저.]
“왜.”
[부탁이 있다.]
태호가 지팡이를 멈추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데스나이트는 갑자기 태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네 실력은 충분히 알았다.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엄청나 보이는군, 사실 네 실력에 대해 진작에 알고 있기는 했다. 내가 도망치려고 애써도 마법이 단 한 방도 어긋나지 않는 것에서부터.]
“......”
마법 적중률과 연사속도.
일체감 100%가 가져오는 무지막지한 혜택이었다.
움직이는 상대나 원거리의 상대에게 마법을 적중시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일체감이 낮을수록, 목표로 한 곳에서 쉽게 어긋난다.
또한 마법 자체를 연사하는 과정에서 소위 ‘버퍼링’ 이 있었다. 움직임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생기는 일이었다.
마법의 쿨타임은 1초이지만, 정작 1초의 쿨타임을 활용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허나 데스나이트의 입장에서 보면, 태호는 약간 말도 안 되는 괴물 같았다. 마법을 연사하는 속도가 쿨타임에 딱 맞게 이어져 미친 듯이 쏘아대니 말이다. 게다가 마법이 어긋나는 일도 없었다. 백발 백중이다.
데스나이트는 결국 태호를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레온하르트의 마지막을 내게 넘겨줄 수 있겠나?]
태호는 가만히 그를 보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게는 의미 있는 일일 테니.”
[고맙군.]
데스나이트가 고개를 숙였다.
그 뒤는 반복이었다. 태호는 광역 중독을 비롯한 각종 광역기로 석화된 기사들을 싹 다 다져버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업 메시지의 향연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3층의 공간에는 거대한 석상 하나만이 남아 머리 위에 열심히 대미지를 띄우고 있었다.
결국.
그 석상마저 해골이 뜰 무렵, 태호가 입을 열었다.
“가라.”
[응.]
데스나이트는 비장한 얼굴로 저벅 저벅 석상 앞으로 걸어나갔다.
우지직 우지직!
거대한 석상이 움찔거리며 드디어 깨어났다.
[레온하르트! 레온하르트! 내가 왔다. 막시무스가 왔다!]
거대한 기사가 낮은 목소리를 냈다.
[배신자 막시무스가 왔구나.]
그 목소리는 낮고도 기괴했다. 마치, 라디오 여러 개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섞여 내는 소음과도 같았다.
배신자?
태호는 팔짱을 낀 채 그들을 지켜보았다.
[혼돈의 주인께서 네 목을 기다리고 계신다.]
레온하르트가 싸늘하게 읊조렸다.
“......”
데스나이트가 항변하듯 소리쳤다.
[우리의 주인은 한 분 뿐이다! 왕국 아나크레온의 12대 후손, 서피드 쿤! 그 분 뿐이시다! 정신 차려라 레온하르트! 너는 공포에 순응하여, 미쳐 버린 거다!]
서피드 쿤. 불사왕 쿤이라 불리는 리치를 말 했다.
태호는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레온하르트는 완전히 타락했군.’
타락의 이야기는 흔한 스토리였다. 적어도 리얼포스에서는 말이다.
그간은 다양한 이유로 타락을 했지만, 지금 와서 곰곰이 따져 보면 그 타락들에는 접점이 있었다.
‘혼돈의 힘.’
바로, 판타로스였다.
놈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고든다. 놈은 간절한 소원을 이루게 해 준다. 달콤한 유혹을 하며 상대를 꼬셔 혼돈의 힘으로 타락시킨다.
유혹이 통하지 않는다면, 공포에 순응시킨다.
놈은 그 자체로 악마였으며 비정상적인 존재였다.
[그런 이름 따윈 잊었다. 이제 나는 혼돈의 왕께서 지상에 강림하시는 날을 기다리는 사도일 뿐. 이미 이 세계에는 그분의 강림을 위한 존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데스나이트가 검을 치켜들었다.
[이, 이익!]
[큭...큭... 혼돈의 왕께서 너를 주시하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오늘 너를 죽이고, 그분께 네 목을 바치겠다.]
더 이상은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다.
태호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읊조렸다.
‘폭사.’
쾅!
[보라, 막시무스! 이 내가 그분께 충성한 뒤 얻은, 이 엄청난 힘을......억!]
레온하르트가 그대로 쓰러졌다. 어차피 머리 위에 해골을 띄워 체력은 1이었다. 허나 보스급 몬스터들은 가끔, 생존기 돌리거나 해서 풀피(체력이 꽉 차는 것)를 만드는 경우가 있었다.
데스나이트 때처럼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별다른 수가 없었다.
데스나이트는 자신의 검을 들어 쓰러진 레온하르트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레온하르트! 너는 타락하여 주군을 버렸지만, 나는 다르다. 내게 주인은 오직 한 분 뿐이다!]
푹!
동시에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신의 펫 ‘데스나이트’ 가 ‘광휘의 기사 레온하르트’ 의 힘을 일부 흡수합니다.]
과연.
데스나이트가 찌른 검을 타고 회백색 기운이 스물 스물 녀석의 몸으로 들어찼다.
두둑! 두두둑!
어느새.
데스나이트의 전신이 훌쩍 커졌다. 떡 벌어진 등판과 두툼해진 양 팔다리의 근육이 한눈에 보였다.
[당신의 펫 ‘데스나이트’ 가 ‘광휘의 기사 레온하르트’ 의 스킬, ‘영광의 축복’을 습득했습니다.]
[이름 : 데스나이트]
[레벨 : 110][정예]
[생명력 : 55000]
[공격력 : 2000][방어력 : 800]
[스텟 : 힘3 , 민첩2, 체력3, 지능0]
[마력 : 0]
[보유스킬 : 왕실 검법, 영광의 축복]
[보유장비 : 시린 설원의...(더 보기)]
보유장비로 인한 스텟 증가는 둘째 치고, 스킬을 하나 더 습득한 게 놀라운 일이었다.
[스킬 : 영광의 축복]
[이 스킬은 자신의 아군에게 올 스텟 5의 축복을 겁니다.]
‘버프잖아.’
올스텟5의 버프라면 가히 경악할 수준의 버프였다. 태호는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과거의 동료였던 이의 죽음을 목도하는 데스나이트를 보았다.
어쩐지 경건하기까지 한 그의 뒷모습에, 태호는 과거의 자신을 보았다.
“......”
자신 역시 그러했다. 살아 온 과거는 참담했다.
많은 이들이 판타로스의 공포에 순응하고, 누군가는 타락했으며 또 동료를 죽여나갔다.
매일 매일 피로 피를 씻었다. 목숨의 가치란, 그 어느 때 보다 낮았다.
그 세상에서 미쳐 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차라리 미치는 게 나을 정도의 세상이었으니까.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위업 달성!]
[위업 : 특수던전 첫 클리어!]
[리얼포스에 존재하는 특수 던전의 첫 클리어 보상입니다.]
[보상 : 올 스텟 +1]
위업들이 떠올랐다.
[광휘의 궁전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은 광휘의 궁전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보상은 쏠쏠했다.
태호는 95레벨을 달성하였고, 광휘의 궁전은 오롯이 태호의 소유가 되었다.
[이제 당신은 대륙 어디서든 광휘의 궁전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를 비롯한 다양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메시지들을 뒤로 보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가, 데스나이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입맛이 쓰다.]
“그래.”
태호는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때문에 별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때로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레온하르트가 떨군 아이템은 잡다한 재료들과 순수의 강철 2개, 그리고 유니크 아이템 하나였다.
[등급 : 8급][유니크]
[종류 : 방어구(상의)]
[이름 : 어둠 기사단의 상갑]
[옵션 : 방어력 500]
[특수옵션]
[지능 +5]
[체력 +5]
[체력 +5]
[세트 옵션이 존재합니다.*비활성화*]
이 녀석은 상의를 주었다. 태호는 그 아이템을 갈무리해 인벤토리 창에 넣은 뒤 일어섰다.
이 던전에서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우선 레벨이 25 올랐으며, 유니크 아이템1종, 레어 아이템 32종, 카오스 스톤 120개, 순수의 강철 42개. 그 외 잡다한 아이템들을 획득할 수 있었다.
위업으로 인한 올스텟 보너스가 2.
게다가 데스나이트에겐 영광의 축복이 생겼으며, 녀석의 레벨 역시 10이나 올랐다.
* * *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1층의 문이 열렸다.
태호는 천천히 밖으로 나서며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광휘의 궁전’ 의 이름을 수정변경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출입제한은 ‘나의 친구’ 외엔 불가입니다.]
[보안 레벨은 1입니다.]
[보안레벨이 낮은 소유건물은 외부의 침입을 쉽게 막아내지 못합니다. 보안레벨을 올리세요.]
그래서 과거 이 곳을 소유했던 ‘무라사메’ 는 고레벨 던전의 ‘마스터 가고일’을 테이밍해서 이 곳에 가져다 놨었다.
태호는 보안에 대한 고민을 하다, 문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가만.’
샥-
샤샥-
익숙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극도로 기척을 죽인 채 걸어오는 그 소리. 일체감 100%가 아니라면 쉽게 알아듣지 못 할 정도의 소리였지만, 지금의 태호는 오감이 분명히 살아 있는 절정의 상태였다.
태호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뜬 채 뒤따라 오던 데스나이트에게 읊조렸다.
“엄호.”
[......?]
데스나이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태호의 앞으로 나섰다. 그 순간.
휘리릭!
태호의 목덜미로 검이 쑤셔져 들어왔다. 태호는 예상했다는 듯 주먹을 들었다.
푸욱!
주먹을 꿰뚫고 검이 파고들었지만, 목에 닿지는 못 했다.
‘이 새끼 윤형석이잖아?’
[쉬폰]
시뻘건 닉네임이 뻔히 보였다.
생명력이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허나.
쑤욱!
‘데스나이트의 심장’ 이 생명력을 온전히 채웠다. 게다가, 이미 태호는 예전과는 다르게 두 배의 생명력을 보유하고 있다.
눈 앞의 윤형석을 밀쳐내자, 데스나이트가 검을 질러왔다.
깡! 깡!
윤형석이 살짝 놀라며 뒤로 몸을 빼냈다.
태호는 이내, 씩 웃었다.
‘저 새끼 저거 리벤지 퀘스트로 추적해 온 건가본데.’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다.
머더러들의 스킬은 이미 태호에게 있어 아주 익숙한 것들이었다.
과거에도 머더러들과 박 터지게 싸웠었으니까.
저 녀석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천재였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약자를 깔아뭉개는 괴물이다.
그것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과거의 태호도, 어쩌면 그랬을 지 몰랐다.
힘이란 무섭다. 남들보다 위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은 언제든지 변해 버린다.
하지만 현재의 태호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과거에는 우쭐한 것이 있었다. 남들보다 잘 났다고, 남들보다 대단하다고.
이제는 그런 것이 없다. 그까짓 자만심, 우쭐함보다 더 높은 목표가 있었다.
미안하지만 네게 할애할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