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42화 (42/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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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까불 테니 살려줘!

[Lv. 120]

[흉폭한 까마귀]

까마귀들의 레벨은 낮다. 본래 이 곳을 진작 올 수 있었는데, 루트를 생각하다 보니 조금 늦게 도착했을 뿐.

그 ‘조금’ 이라는 기간 동안 레벨이 190이 돼 버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늦지도 않았다.

태호는 까마귀들의 정보를 떠올렸다.

‘어그로 범위가 아주 긴 편. 그리고 끈질기기로 아주 유명하지.’

이 협곡은 높이가 꽤나 되는 편이다. 그야말로 깎아지는 듯 한 양 쪽 절벽에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

이 협곡을 쭈욱 가로질러, 저 너머의 거대한 까마귀 군락을 해치우는 것이 이번 목표였다.

저벅!

협곡의 입구로 다다르자,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까아아악! 까악!

태호는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달렸다. 후다닥 달리며 하늘을 본다.

쏴아아아!

마치 검은 비가 내리듯, 사방의 까마귀들이 태호를 타겟으로 삼고 날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대로 뚝심 있게 달려간다. 시커멓던 협곡의 색감이 어느새 흙빛으로 변했다. 그 까맣던 것들이 모조리 까마귀 떼였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협곡의 끝이 보였다.

그 곳에, 우뚝 솟은 작은 산이 보였다. 그 산에서 까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치 검은 안개처럼 까마귀 떼가 몰려나왔다.

태호는 그 까마귀들이 모조리 자신의 사방으로 오기까지 기다렸다가, 시커먼 놈들의 한가운데에 지팡이를 내밀었다.

‘어둠의 폭탄.’

그리고 놈들이 더욱 자신에게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광역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규모 범위 중독, 절망.’

그리고.

‘어둠의 비.’

쏴아아아아아!

하늘이 검게 물들며 족히 수백 마리에 달하는 까마귀떼가 광역기에 직격탄을 맞았다.

‘대규모 광역 폭사.’

콰과과광!

쾅쾅!

삽시간에 까마귀들이 삭제됐다. 아직 남은 수가 훨씬 많아, 태호는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어둠가시 장벽.’

반경1~10미터의 사방에 가시장벽을 세워 무적이 되는 절대생존기가 사용됐다.

카가갓!

이번엔 2미터로 해 볼까.

과연, 사방에 시커먼 가시들이 삐죽삐죽 솟아올라 태호의 사방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본래는 10초이지만, 선지자의 해골로 인해 20초의 무적시간이 주어졌다.

딱히 목숨이 위험했던 것은 아니나, 사용 형태가 궁금했던 것.

‘이런 식이면 안전하긴 하네.’

지금의 태호는 가시장벽으로 만들어진 타원형 방어막 속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태호는 아르카네가 자신을 빤히 올려다 보고 있음을 깨닫고,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이내,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추었다.

[크다.]

소녀가 태호를 보며 말했다.

“응?”

[키 크다. 울아빠 만큼 커. 어쩌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아빠라면, 아무래도 정령왕을 말 하는 걸까. 어쩐지 다시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것을 소환해 버렸다- 란 생각을 했다.

“그럼.”

[사과를 많이 먹어야할까?]

사과는 크게 도움이 안 될 거다.

촤라락!

사방에 가득하던 가시장벽이 사라지고, 어느새 까마귀들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어둠의 종소리.’

데엥-!

그리고.

온 사방의 까마귀들이 돌덩어리가 되었다. 픽, 픽, 하늘에서 석화된 까마귀들이 떨어지는 것은 다소 그로데스크해 보였다.

태호가 한번 고개를 까닥이자, 아르카네는 100레벨에 접어 들며 배운 스킬을 사용했다.

‘어둠의 망토.’

사방에 시커먼 어둠의 망토가 만들어져, 떨어진 녀석들의 사방을 마치 빗자루가 먼지를 쓸 듯 싹 쓸어 한 곳으로 모았다.

태호는 광역기로 사방에 뭉쳐 있는 녀석들을 싹 다 쓸어버린 뒤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 많던 까마귀들이 광역기술에 미친 듯이 쓸려 나가 버리니, 깔끔 그 자체였다.

‘아이템도 많이 떨어졌네.’

태호는 데스나이트와 아르카네에게 아이템 수거를 지시하고, 자신도 아이템을 주워 인벤토리 창에 쑤셔 넣었다.

4급 커먼 몇 개, 그리고 잡템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까마귀들은 경험치가 거의 없는 편이고, 드랍되는 아이템이나 골드도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생명력도 낮고, 공격력도 낮다.

이렇게 개체수가 많은데 꼬박꼬박 경험치를 제대로 줬다면 그야말로 인기 폭발의 사냥터였을 것이다.

‘나쁘진 않네.’

그리고 눈여겨 볼 만 한 재료 아이템들도 몇 있었다.

[등급 : 3급]

[종류 : 재료]

[이름 : 까마귀 깃털]

까마귀 깃털은 활공장비를 만들 때 유용하게 쓰인다. 말 그대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뒤 천천히 착륙하는 것이다. 글라이더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그 무렵, 산이 들썩이듯 움직이며 거대한 까마귀 하나가 길게 날아올랐다.

[Lv. 150]

[정예]

[까마귀 왕, 야타카라스]

놈이 길게 포효하며 소리쳤다.

[내 땅에 침범한 이, 죽음 뿐이다아악!]

놈이 떨구는 것은 소량의 까마귀 깃털, 그리고 군자의 지팡이다.

놈은 몸 속에 군자의 지팡이를 보유하고 있는데, 중요 포인트는 죽인 뒤 꼭 배를 갈라 꺼내야 했다. 그다지 즐거운 경험도 아니고, 경험치도 주지 않았다.

쾅!

[어억?]

중독과 폭사를 얻어맞은 야타가 기겁하며 몸을 빼냈다. 허나, 그 쪽도 이미 태호의 사거리 안이다. 속박이 걸리고, 시력상실까지 걸리며 중독이 리필됐다.

[어으으윽!]

놈이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절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야타카라스는 오랜 시간 동안 군자의 지팡이의 기운을 흡수한 덕에 지능이 아주 높고, 힘도 아주 세졌다. 허나 그것은 한낱 미물인 까마귀의 수준을 넘지 못 한 것이다.

[사, 살려줘억!]

결국, 놈이 소리쳤다.

“흠?”

태호는 막 마무리를 하려다가 팔짱을 낀 채 생각했다.

‘이 녀석도 어쩌면.’

태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야타카라스에게 다가갔다. 녀석의 크기는 이미 새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크다. 날개 한 짝이 태호의 몸집보다 두 배는 컸으니까.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따악! 안 까불 테니 살려줘어억!]

“......”

태호는 어쩐지 막시무스를 처음 만난 날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그럼 군자의 지팡이 내놔.”

[뭣! 그, 그, 그걸 어떻게 알았냐악!]

“안 주면 별 수 없이 네 배를 갈라야 해.”

[으으윽!]

놈이 거대한 부리를 열었다 닫으며 딱딱딱! 소리를 내더니, 되물었다.

[다, 다른 건 원하는 거 없냐악? 그거 말곤 다 준다악!]

‘이거 똑똑하네.’

태호는 의외의 상황에 제법 놀라며 반문했다.

“네가 줄 수 있는 다른 게 뭔데?”

[으음......]

야타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 대답했다.

[혼돈의 기운이 물렁물렁 새어 나오는 곳을 안다악!]

“물씬물씬이겠지. 그리고 그걸 듣고 나서 내가 너를 죽일 수도 있잖아.”

[아무튼! 그 곳에 좋은 아이템이 있을 거다아악! 살려달락!]

“살려줄게, 그 정보랑 군자의 지팡이는 줘.”

[이이익!]

놈이 한동안 머리를 굴려 봐도 답이 없는지, 웁! 웁!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태호는 뭘 하나, 지켜보다가 흠칫 놀라 잽싸게 옆으로 피했다.

[꾸애애액!]

놈이 토악질을 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생각보다 작은 아이템 하나가 나타났다.

약 두 뼘 길이의 고풍스러운 막대기였다. 손잡이 부분에는 금색과 은색으로 양각 조각이 새겨져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봐도 귀중품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저것이 바로 군자의 지팡이!

토사물 사이에 있어도 홀로 고고하게 빛나며, 오물이라곤 단 하나도 묻지 않았고 약간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태호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쥐었다. 그리고 옵션을 확인해 보았다.

[등급 : 에픽]

[종류 : 무기(지팡이)]

[이름 : 군자의 지팡이]

[고대의 문명이 만들어낸 걸작 중 하나.]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군자라죠? 하하하! 이리도 모순적인 무기가 있다니, 메소드가 놀랄 일입니다!-초보 학자, 카실론]

[마법 공격력 1000]

[옵션 : 사용자의 레벨 1당 10의 마법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사용자가 사냥한 몬스터 1당 1의 마법 공격력이 상승합니다.(1/500)]

[사용자가 사냥한 인간 1당 1의 마법 공격력이 상승합니다.(1/500)]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 뒤, 군자의 시련을 통해 추가 조건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여기까진 왔군.’

제대로 찾았다.

군자의 지팡이는 마법사계 최강의 사기 아이템으로 꼽혔다. 과거 이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은, 땅 마법사로서 통합 랭킹 3위에 빛나던 ‘아서’ 였다.

땅 마법은 불마법과 비견될 정도로 공격력이 뛰어난 마법사 계열이었는데, 이 지팡이를 소유한 덕에 아서는 그야말로 괴물 누커로서 성장한다.

동시대 라이벌이었던 니힐럼의 ‘프로진’ 과는 항상 사이가 좋지 않았다. sns로 디스 전쟁을 펼치는 것은 유저들의 즐거운 구경거리 중 하나였으니까.

어쩐지 미래의 랭커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역사대로였다면, 이것들은 본 주인이 있는 녀석이다.

‘별 수 없다.’

미안하지만 솔직한 심정이었다. 과거의 그들은 최후의 결전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진 것들을, 적어도 도움이 될 이들의 손에 쥐어주어야 승산이 생긴다.

[에픽 콜렉트]

[현재 보유한 에픽 아이템은 총 6종입니다.]

[2단계 추가 대미지가 개방되었습니다.]

이제 태호의 추가 대미지는 50%였다.

군자의 지팡이는 강력한 마법 공격력을 보유한 무기로서, 성장에 따라 향후 추가 마법 대미지 증가도 있다.

“흠.”

어쩐지 감회가 남달라 잠시 감상에 빠져 있던 태호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야타에게 시선을 돌렸다.

“혼돈의 힘이 물렁물렁하다는 곳이 어디야?”

[......]

놈은 어쩐지 어이없다는 얼굴로 태호를 보다가 투덜거렸다.

[정말 수전노 같은 놈이닥.]

까마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체력을 어느정도 회복한 듯 하다.

[얼마 전이었닥. 나는 내 부하들을 이끌고 이 주변을 날다가, 그것을 발견하고야 만 것이다악!]

문득 태호는 머쓱해져, 입을 열었다.

“음...... 네 부하들을 다 죽인 건 미안하게 됐다.”

[흥, 어차피 내 깃털로 만든 가짜들이닥!]

“......”

문득, 까마귀가 양쪽 날개를 쫙 펴더니 길게 포효했다. 양 날개에서 깃털이 우수수 빠져나오더니 하나하나가 까마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어쩐지 약한 놈들이었던 건 그래서였냐.

맥이 탁 풀린 태호가 까마귀를 보았다.

“너, 깃털도 좀 내놔야겠다.”

[......까악!]

야타가 투덜거리며 깃털까지 수십 개를 내어 주고, 재차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 곳에서 조금만 북쪽으로 가면 보일 것이다아악!]

“흠. 알았다.”

[그럼, 살려 주는 것이냑!]

“그래. 약속했으니까, 넌 이제 자유.”

[까아아악! 빨리 사라져라악! 꼴도 보기 싫타악!]

야타는 알았다는 듯 풀쩍! 날아 저 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어쩐지 어이가 없어 킥킥 웃은 태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아르카네는 막시무스에게 관심이 생긴 듯, 녀석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 다니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커져?]

[......]

[크다!]

키 큰 것이 부러운 양, 아르카네의 두 눈에 선망이 가득 차 있었다.

태호는 피식 웃으며 그들의 옆에서 걸음을 재촉했다.

‘탈것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리얼포스에는 당연히도 탈것이 있다. 대도시나 마을 등에서, 인근과 길이 연결되어 마구간이 존재하는 지역까지 꽤나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었다. 다만, 유저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아직 불가했다.

이는 시스템 때문인데, 1차 확장팩이 등장하면서 제한이 풀렸다. 당시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리얼포스의 대지를 직접 느끼게 하기 위함’ 이 아닐까- 라는 해석 정도가 있었다.

아무튼.

그렇-

“아.”

태호는 눈을 깜빡이다가 중얼거렸다.

“탈 것.”

* * *

야타카라스는 억울했다.

[까아아아악!]

군자의 지팡이도 빼앗아간 주제에, 깃털도 뽑아 가고 심지어 이젠 나는 탈것 신세라니.

[까아아아아악!]

비참한 울음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태호는 놈의 등 위에 앉아, 어쩐지 멋쩍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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