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43화 (43/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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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가 대체 뭐야?

퍼덕 퍼덕!

야타의 등 위는 의외로 편했다. 헌데, 태호는 약간의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거 어째...’

어쩐지 까마귀가 갈수록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태호는 혹시나 싶어, 놈의 머리 위를 살펴보았다.

[Lv. 100]

[정예]

[까마귀 왕, 야타카나스]

“......”

분명히 150 정예였는데, 어느새 100레벨 정예로 바뀌었다.

“어이, 잠깐만 스톱.”

[기다려라악!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악!]

“아니...... 잠깐만 스톱. 지상으로 내려가 봐.”

[하이 참, 귀찮게 구는 녀석이다악!]

야타가 투덜투덜거리며 지상으로 내려올 무렵, 녀석의 몸은 점점 더 쪼그라들고 있었다.

[Lv.50]

[정예]

“......”

야타가 깜짝 놀란 듯 자신의 날개를 바라보다가, 울부짖었다.

[으아아악! 난 망했다악!]

“......”

아무래도 녀석을 급성장시키게 해 준 원동력인 군자의 지팡이가 회수됨으로서, 비정상적인 성장이 원상태로 돌아가는 듯 했다.

[아으아아악!]

까마귀는 어느새 더 작아져, 레벨30에서 멈추었다. 크기는......

“너...... 많이 작아졌네.”

보통 까마귀보다야 서너 배 이상 크지만, 딱 그 정도의 크기였다. 까마귀는 비통하다는 듯 두 날개로 땅을 내리치며 한탄했다.

[망할 인간에게 다 빼앗기고 작아지기까지 했구나아악!]

“......”

태호는 빤히 녀석을 보았다.

[아이고오 난 망했구나악! 이제 나는 꼬옴짝없이 부하들에게 잡아먹히게 생겼다악!]

“......”

태호가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지켜보자, 야타가 흘끔 태호의 눈치를 보다 푸념을 이어갔다.

[아이고오, 차라리 악마에게 걸린게 차라리 낫겠다악! 아이고오......  이래서야 왕으로써 체통이 살지도 않고 죽는 게 낫겠다악!]

태호가 계속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야타는 쳇- 하고 혀를 차더니 부리를 딱딱 맞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젠장 안 통한닥.]

그제야 킬킬거리며 웃었다. 태호는 어쩐지 이 녀석이 꽤 마음에 들었다.

“너, 다시 성장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하지?”

[마력의 결정체가 필요하닥.]

“마력의 결정체라.”

태호는 곰곰이 생각했다. 마력의 결정체는 1차 확장팩이 등장한 이후, 추가되는 던전에서 드랍되는 고대시절의 재료 아이템들이었다.

“나쁘진 않겠군. 그럼 따라 와.”

[......정말이냑?]

“그래. 제대로 클 진 모르겠지만 키워 주기는 하지.”

[잡아먹지 않을 것이냑?]

소환된 아르카네가 태호에게 물었다.

[까마귀도 먹어? 맛있어? 사과 맛이야?]

딸꾹!

야타가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태호는 씩 웃으며 아르카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태호의 머리 위에서 하품을 하던 막시무스도 한 마디 보탰다.

[카이저여. 이 까마귀는 좋은 까마귀인 듯 하다. 향후 유능한 동료가 될 터!]

“......”

어쩐지 시끌벅적해진 느낌이었다. 태호는 도통 저놈의 말투에 익숙해지긴 글렀다- 란 생각을 하며 야타에게 말했다.

“안 잡아 먹어. 너 말고도 먹을 건 많고, 나중에 힘 닿는 데 까지 키워 줄 테니 날 따라 오도록.”

[오오옥!]

야타는 어쩐지 꽤나 감격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악! 그럼, 군자의 지팡이도 언젠간 돌려주는 것이냑?]

“그건 아니고.”

녀석이 금세 시무룩해져 바닥에 털썩 드러누웠다.

펑!

막시무스가 큰 형태로 변해, 그 까마귀를 들어 어깨에 올렸다.

[가세, 나의 주군 카이저여! 우리 힘을 합쳐 혼돈의 힘을 토벌하도록 하세!]

“......”

머리가 아파오고 있었다. 아르카네는 어깨에 올라탄 까마귀가 부러운지 막시무스에게 양 손을 뻗었다. 막시무스는 아르카네까지 번쩍 들어 올려 목마를 태웠다.

* * *

혼돈의 힘이 물씬 새어나오고 있다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막시무스가 싸늘하게 읊조렸다.

[이 근방인 듯 하군.]

야타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저 편으로 부리를 콕콕 쪼는 시늉을 했다.

[이쪽이다악.]

과연.

태호의 눈에도 한눈에 보이는 것은, 생기가 사라진 마을이었다.

‘이 부근 마을이라면...’

분명히 기억 어귀에, 이쪽에 존재하던 마을이 한두개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 비중 있는 곳은 아니었던지라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덴 마을이라는 이름 정돈 알았다.

초보자 지역의 마을보다는 작지만 나름대로 구색을 갖춘 마을이었는데, NPC하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문제가 생기긴 한 것 같았다.

태호는 우선 야타에게 말했다.

“조용히 하고 있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낮게 얘기하고.”

야타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호는 아르카네를 소환 해제한 뒤, 막시무스를 비전투모드로 만들고 나서 마을로 접근해 들어갔다.

우선 가까운 인가의 벽 뒤에 숨어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퍽- 퍽-

여기 저기서 타격음이 들린다.

발소리를 죽이며 소리를 따라 움직이자, 마을 한복판에 좀비와 구울 떼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인신공양을 했군.’

저들은 아마 이 마을 NPC들이었을 거다. 태호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몬스터 떼의 저 편, 유저 무리가 보였다.

유저들의 머리 위에는 빨간 색 이름이 적혀 있었다.

태호라고 모든 유저들의 이름을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개중 하나가 낯익었다.

[행집]

‘어디서 봤더라...’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나가다, 문득 로만제국과 마주쳤을 때를 떠올렸다.

‘아, 그때 비석에서.’

잉카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일 때, 한번 소탕한 적 있는 머더러 무리에서 본 아이디였다.

그를 필두로 수십은 돼 보이는 머더러들이 여기저기서 좀비와 구울 떼를 해치우고 있었다.

좀비와 구울들이 죽어나갈 때 마다 몬스터의 머리 위에서 회색 기운 같은 것이 빠져나가 허공으로 아련히 사라져 갔다.

-이 마을이 몇 번째지?

-두 번째!

-하 시발, 이거 귀찮아 죽겠네. 경험치도 잘 안 주는데... 대장은 뭐 한대?

-세계수인가 뭔가 찾으러 갔잖아. 메인 퀘스트에 꼭 필요하다면서.

-아, 그치. 그거 한다고 대도시 도서관에서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내가 수능 공부할 때 그렇게 했으면 진작 서울대 갔다 시발!

‘세계수?’

-그나저나, 어세신즈 새끼들은 대체 왜 지랄이래? 같은 머더러면 중립이나 죽이고 다니지, 왜 머더러끼리 죽이고 지랄이야. 귀찮아 죽겠네.

‘어세신즈가 머더러를 죽여?’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어차피 머더러 길드 몇 개가 우리쪽에 합류하기로 했으니까, 걔들 쨉도 안 돼. 걔들 해 봐야 한 다섯 명 아니냐? 밀어버리면 그만이지, 병신들. 이게 게임인 걸 몰라? 물량으로 밀면 다 끝나.

욕이 입에 붙었군.

태호는 흥미로운 얼굴로, 서브 창을 띄워 웹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창 방송 중인 ‘로만’ 의 채널에 접속했다.

접속하자마자 수다스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면에는 로만과 어쩐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의 로키가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로만은 로키를 앞에 두고 홱! 뒤 돌더니 시청자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형님들! 보셨죠? 로키라는 신을 불러낸 거 보셨죠? 거 보십쇼, 제가 뭐랬습니까? 리얼포스에는 신이라는 애들 불러내서 정보도 얻고 아이템도 얻고 할 수 있다니까요!]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군.

아무래도 로키를 불러내 세계수의 씨앗에 대한 단서를 얻는 방법은, 대도시의 도서관의 고서적을 이용해서 찾은 듯 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다. 다만, 로키를 소환하는 방식에는 꽤나 큰 문제가 있어 보였다.

[자자, 잠시 저는 비밀 교섭을 좀 해 보겠슴다! 음소거 스타트!]

소리가 끊기고, 두 남자가 이야기를 하는 모습만이 보여졌다. 채팅창에 욕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태호는 그 중, 로키를 소환하기 위해 마련된 제단이 훼손된 것을 보았다.

‘저걸 부쉈어?’

선한 신도 악신으로 만들기 충분한 짓을 해버렸다.

용과를 바쳐 제대로 된 방식을 취하지 않고, 저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했다면 저주나 안 받으면 다행이다.

‘페이크 서적을 봤군.’

대도시의 도서관에는 고대 학자들의 추측으로만 적혀진 이른바 ‘카더라 서적’ 이 있다. 이렇지 않을까? 정도로 서술된 이야기들이었는데, 믿고 걸러도 이상하지 않을 이야기들이 태연하게 적혀 있는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의도적인’ 페이크 서적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이름모를 신을 위한 공양의 방법이 적혀 있어 그대로 따라하면 ‘악신’ 이 소환되어 저주를 받게 하는 식이다.

‘용과를 이용한 방법은 몇 년 뒤에나 나올 테니.’

놈이 한동안 이야기를 한 뒤에 음소거를 해제하며 입을 열었다.

로키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는데, 제대로 엿을 먹였을 거라는 추측이 어렵지 않게 가능했다.

[하하하! 자, 형님들! 그럼 저는 남부 대륙으로 향해, 비전초를 잔뜩 뽑아 오도록 하겠습니다요! 아!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메인 퀘스트에 대해 말씀드리는데요, 지금 당장은 조금 비밀스럽게 하는데 조금만 지나면 공유해 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요!]

놈의 방송을 보아하니, 이슈거리가 될 만 한 것들은 공개로 하고 메인 퀘스트의 핵심내용은 비공개로 진행 중인 듯 했다.

[자자! 로만제국 길드원 모집합니다! 전프로, 현프로 대우 오집니다! 리얼포스에 제국을 건설해서 우리끼리 다 해먹자고요! 악질 PK, 초보 학살자 환대합니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정신이 약간 나간 놈은 확실해 보였다.

좋다.

이 정도 얻었으면 만족하고, 이제 대상은 정면으로 향했다.

‘간만에 몸 좀 풀어 볼까.’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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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은 시끄럽게 떠들었다. 개인방송의 생명은 한시도 비지 않는 오디오였다. 계속해서 떠들어, 지루함을 덜어 주어야 한다.

이 메인 퀘스트를 공유할 수는 없으니 중요한 정보는 죄다 음소거에, 방송을 끄고 진행하지만 보여줄 수 있는 자극적 요소는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튼 그것도 나름대로 타격이 있었기에 더 필사적으로 입을 털어야 했다.

‘에이 씨부럴 귀찮아 죽겠네.’

염병할 비전초를 왜 찾는단 말인가?

비전초는 남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자라며, 수확하기도 까다로운 물건이었다.

경매장에 매물도 별로 없다. 그걸 싹 다 구매하더라도 시세가 터무니없이 비쌀뿐더러,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한창 방송을 진행하던 로만의 방송에 채팅창 관리 매니저가, 비밀스럽게 매니저 채팅에 글을 올렸다.

[형님, 이거 좀 보셔야할듯?]

로만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매니저채팅방을 확인했다.

[방금 나한테 연락 왔는데, 아덴 마을 퀘스트 도중 전멸함.]

파견된 애들에게 방송 중에는 매니저에게 연락하라고 말해 둔 바가 있었다.

뭔 소리야?

로만이 다급히 채팅방에 물었다.

[뭔 소리야?]

[전멸함. 갑자기 이상한 종소리 들리면서 석화 걸리더니, 시커먼 이상한게 애들 싹 쓸어서 한 곳에 몰더니, 이상한 광역기 겁나 쏟아지더니, 애들 다 터져 죽었다고함.]

“아니 뭔 씨벌 개소리야!”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유저 채팅방에서도 기다렸다는 듯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저들끼리 낄낄거리며 재미있다는 듯 욕을 퍼붓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로만이 재차 물었다.

[다 뒤졌다고?]

[네. 싹다 뒤졌어요. 잠시, 영상 보여드림.]

잠시 후 로만의 개인 메신저로 영상이 도착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일이 틀어진 시점을 보니, 말 그대로였다.

종소리가 울리고, 석화가 걸리고, 검은색 천 같은 거대한 뭔가가 유저들을 싹 쓸어 한 곳에 모으더니, 사방에 이상한 검은색 결계 같은게 걸리고, 그 위로 광역기가 쏟아져 내려 몰살당했다.

‘하 나, 이거 그 새끼 아냐?’

로만의 얼굴이 분노로 가득 찼다.

가뜩이나 최근, 쉬폰이라는 싸이코가 어세신즈라는 길드를 만들어 로만제국을 썰고 다니기 시작했다. 정체를 밝히진 않았지만, 전프로 출신이라는 설이 지배적인 놈이었는데 실력이 아주 뛰어났다.

그것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는데, 이게 또 웬 일?

이런 광역기는 한번 본 적이 있다.

잉카 마을의 그 이름모를 마법사!

얼마 전, 갑자기 사라졌던 ‘리벤지 추적’ 이 갑자기 발동되어 길드원들을 대거 이끌고 남부 대평야로 향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 놈은 없고, 그저 황량한 대평야만이 펼쳐져 있었을 뿐.

‘던전이라도 들어가 있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고...’

아니아니. 모든 걸 다 떠나서.

‘대체 레벨이 몇이야? 대체 뭘 입고 있길래... 거기 애들 다 70은 넘는 애들인데 싹 쓸린게 말이야 똥이야?’

정체가 대체 뭐야?

아차!

로만이 다급히 물었다.

[아, 템은? 거기서 나온 템은?]

* * *

태호는 초토화된 머더러들의 시신이 사라져 버리자, 그제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쪼렙들이군.’

좀비와 구울들이 마을 중앙으로 모여든 것은, 뭔가를 지키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태호는 마을 정 중앙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우물 안에서 뭔가가 기분 나쁘게 번쩍이고 있었다. 회색 빛의 음울함이 가득한 뭔가가.

태호는 우물 속을 들여다 보았다.

저 안쪽에 뭔가가 있다.

태호는 우물의 두레박을 이용해 그 물건을 바깥으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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