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 주박 >
어둠의 창이 그야말로 온 사방 천지에서 쏟아진다. 로만이 필사적으로 막아보려 하는 듯하나, 그 정면에서 태연히 쏟아 내는 태호의 또 다른 마법 세례까지 막지는 못했다.
콰콰콰콰쾅!
연이은 폭사, 그리고 사정없이 꽂히는 강화된 어둠의 명령!
자비라는 글자를 사전에서 지워 버린 태호의 맹공은 그야말로 살벌 그 자체였다.
콰쾅! 쾅!
거대한 어둠의 창이 바닥에서 솟구쳐 나와, 로만의 전신을 타격했다. 사방에 물보라가 치고, 하얀 거품이 일었다. 바닷물 속에 토네이도가 만들어지며 지글지글 끓는다.
“미, 미, 미친 새끼들!”
로만이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며 도망치려던 그 순간.
우지지직!
등짝이 아작 났다.
로크나이엘의 브레스가 작렬한 것이다. 그대로 쭈욱 날아간 로만은 작은 무인도의 해변에 처박혔다.
파파파팟!
10스택 어둠의 발걸음 5연발로 해변에 빠르게 접근한 태호가 놈이 그로기 상태에 빠진 것을 보곤 궁극기를 사용했다.
‘마신강림, 강화된 어둠의 땅.’
그리고 신비력을 쭈욱 끌어모았다.
쳐다보는 것조차 끔찍한 흑마법의 세례가 시작되었다.
“......”
지켜보던 로크나이엘이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그는 그저 침을 꿀꺽 삼킨 채, 태호의 공격을 지켜보았다.
‘괴물...’
저걸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로크나이엘이 두 눈을 깜빡이던 사이, 요란한 흙먼지 사이를 뚫고 회색 마력이 쏟아져 나왔다.
콰콰콰콰콱!
“이이이이익!”
로만이 온 힘을 다 끌어내 역공을 시도해 왔다. 도주하는 것에는 승산이 없으니, 발악이라도 해 보겠다는 심산이다.
혼돈의 힘이 태호에게 작렬했다.
“뒈져!”
로만이 소리쳤다. 태호가 주춤하는 것이 보였다.
“크아아아아아!”
태호의 전신에 혼돈의 힘이 작렬했다.
파지직!
회색 힘이 전신을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로만의 얼굴에 화색이 돌 무렵이었다.
“......?”
헌데.
로만이 고개를 돌리자 그쪽에도 태호가 하나 서 있었다.
“......뭐, 뭐, 뭐야!”
반대편으로 움직이려고 하자, 그쪽에도 태호가 하나 서 있다.
“...... 시, 시팔!”
정면에서 회색 기운을 얻어맞은 태호가 상처를 회복했는지, 고개를 들었다.
물론 분신체였다.
로만의 왼쪽에 서 있던 태호는 그런 로만의 등짝에 폭사를 갈겼다.
지금의 로만에게는 어차피 죽음의 어둠 불꽃 5중첩, 그리고 모든 상태이상이 5중첩돼 있었다.
‘폭사.’
콰콰콰쾅! 콰쾅!
“키야아아악!”
로만이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폭사.’
콰콰쾅!
어차피 ‘죽음의 어둠 불꽃’은 폭사를 아무리 사용해도 해제되지 않는다.
냉혹한 정의가 꽂히며 모든 상태이상이 리필된다.
‘폭사.’
“크아아아악!”
분신체가 냉혹한 정의를 걸고.
‘폭사.’
“흐아아악!”
태호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폭사가 터질 때마다 들썩이는 로만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크, 크으으윽! 이, 이, 이, 개자식!”
놈의 말에 태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읊조렸다.
“입 다물어.”
태호의 분신 1과 분신 2는 폭사와 상태이상을 번갈아 가며 걸었다.
그리고 본체 태호는 그런 로만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쾅!
쾅!
콰콰쾅!
폭사와 상태이상이 한없이 반복됐다. 로만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인간 샌드백이 되어, 박 터지게 두들겨 맞았다.
언뜻 보면 이성을 잃고 공격하는 듯싶지만, 태호의 마음속은 지나칠 정도로 고요하고 냉정했다.
‘이거 언제 죽으려나.’
한편으로는 주도면밀하게 놈을 관찰했다. 마치 어릴 적, ‘포켓몬’이라는 게임을 하던 것이 떠올랐다. 체력을 빈사 상태까지 깎아, 몬스터 볼을 던지던.
‘죽으면 곤란해질 수도 있어.’
쾅!
“크아아악! 아아악!”
콰콰쾅!
로만이 연신 비명을 지르다가 숨을 헐떡였다.
태호는 싸늘한 두 눈으로 놈을 보았다. 놈의 전신에 퍼져 나가던 회색 기운은 어느새 스멀스멀, 희미한 잔재만이 남았을 뿐이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이다.’
태호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읊조렸다.
‘신의 주박술.’
전신에서 신비력이 쭈욱 뿜어져 나와 로만을 감쌌다.
“이, 이, 이이이이익!”
신비력은 검은색 사슬의 형상을 해 놈의 사방을 칭칭 감았고, 아주 바짝 옥죄기 시작했다.
챠라라라락!
섬뜩한 쇠사슬 소리!
그리고 신비력이 쭉쭉 빨려 나간다.
태호는 빠르게 마력을 연성해 신비력으로 만들기를 반복했다. 신비력이 빨려 나갈 때마다, 쇠사슬이 조여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챠랴라라락-! 까각! 까각!
로만은 저항해 보려고 애쓰는 눈치였다.
놈의 전신에서 다시금 회색 힘이 쏟아져 나와 태호의 주박술을 방해했다.
치치치치칙-
놈의 전신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놈이 가진 회색 혼돈의 힘, 그리고 태호의 어둠의 신비력이 치열한 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치이이이익-
허나 회색 힘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갈 뿐. 이대로 가면 태호의 신비력이 이길 기세다.
수도꼭지를 최대로 틀어 놓은 것처럼, 신비력이 우악스럽게 빨려 나간다. 태호에게 ‘체마교환’이 없었다면, 신비력 충당에 실패해서 결국 기회를 놓칠 뻔했다.
‘새삼 다행이다.’
체마교환을 제물로 바쳤다가 돌려받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족히 열 번은 넘게 신비력을 충전한 뒤에야 로만이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크아아아아아!”
쿵!
무릎을 꿇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신의 주박술이 성공하였습니다.]
성공!
태호는 그 메시지만큼 기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로만은 두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뜬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이런 젠장! 나, 나를 어떻게 하려는 셈이냐!”
태호는 그의 말엔 아랑곳않고, 놈의 머리에 손을 댄 채 볼카노스를 불렀다.
샤아아악-
어느새 사방은 고요한 어둠.
볼카노스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시선은 로만을 향하고 있었다.
“볼카노스!”
로만이 볼카노스를 향해 소리쳤다.
“네놈이 원흉이었구나!”
[입 닥쳐라, 더럽고 천한 혼돈의 종자 같으니라고.]
태호는 볼카노스가 욕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볼카노스는 마치 혐오스러운 생물이라도 보는 양, 로만을 내려다보다 태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대단하구나. 결국 저 사념체까지 잡아내다니.]
태호는 천천히 그에게 물었다.
“이대로 놔둘 수 없습니다. 이놈이 주박을 풀고 도망칠 수도 있습니까?”
볼카노스가 신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주박에 걸린 상태에서는 힘이 아주 천천히 돌아온다. 네 힘을 상회할 만큼 회복된다면 풀 수 있을 테지.]
역시나.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놈을 꽁꽁 묶어 두고 싶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있다.]
볼카노스의 두 눈이 시커멓게 빛났다. 그의 눈에서 검은색 불꽃이 팍! 하고 튀는 것 같았다.
[이 주박을 강화해 주마.]
콰아아아아-
볼카노스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고결한 어둠의 신력은 그대로 로만에게 향했다.
“히, 히, 히이익! 이런 시팔! 너, 너는 두렵지도 않느냐! 후, 후폭풍을... 가, 감당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런 것이 두려웠다면, 천 년 전 나서지도 않았다.]
볼카노스가 이를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 하얀 이가 드러났고, 그의 머리카락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일렁였다.
[어둠의 감옥 속에 갇혀라, 혼돈의 종자여.]
샤아아아악-
“크, 크아아아악! 안돼!”
로만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으나 다 소용없게 됐다.
이번엔 태호 같은 힘이 아니라, 진짜 신의 힘이다.
어느새 로만의 전신에 새겨진 쇠사슬의 문신이 더욱 진해지고, 세 겹으로 바뀌었다.
볼카노스는 비로소 태호에게 말했다.
[이제 놈은 자의로 주박을 풀 수 없게 되었다.]
“가, 감사합니다.”
꿀꺽!
잠시나마 등골이 오싹했던 태호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볼카노스가 그렇게 성을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신력으로 인해, 놈을 아티펙트화 하여 소지할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리지 않도록 간수에 신경 쓰도록 하라.]
“예...?”
볼카노스는 어쩐지 심란한 얼굴이었다. 태호는 문득 깨달았다.
‘제물!’
볼카노스는 제물을 받지 않았다.
딸깍! 딸깍!
문득.
그의 머리 위에 양팔저울 하나가 떠올랐다.
“......!”
태호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양팔저울은 좌우로 까닥이다, 한쪽으로 픽! 기울었다.
[심판의 양팔저울]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이어졌다.
[균형이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역풍의 강도는 33입니다.]
“......”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태호는 불현듯 깨달아 버렸다. 이는 수호자의 힘을 각성하며 새로이 생긴 능력!
그나저나, 역풍의 강도가 33이라. 높은 건지 낮은 건지는 모르겠다만, 볼카노스에게 좋지 못하다는 것 하난 알겠다.
즉, 그는 균형을 위반하였다.
곧 균형의 역풍이 밀려올 것이다.
“볼카노스 님!”
태호가 다급히 인벤토리 창에서 혼돈의 유산 하나를 꺼냈다. 샴을 죽이고 얻은 유산이었다.
“제물입니다.”
[......!]
“받으십시오.”
허나 볼카노스는 어쩐지 받지 않은 채 가만히 태호를 볼 뿐이다.
태호가 물었다.
“부족합니까?”
[필요 없다! 저것의 주박을 강화하는 것은... 지극히 나의 선택일 뿐. 해묵은 감정 때문이라고 해 두지...]
볼카노스는 카리스마 있게 태호의 제물을 거절했다.
태호는 가만히 눈을 깜빡이다가, 하나를 더 꺼냈다.
“두 개 드리겠습니다.”
[......]
볼카노스가 살짝 움찔! 하는 것이 보였다. 태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필요 없으시면 치우겠...”
[허나, 네 성의를 봐서 특별히 받겠노라.]
“......”
태호는 코를 훔쳤다.
역풍이 무섭긴 한 모양이다. 그가 두 개의 유산을 받았다. 볼카노스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던 양팔저울이 균형을 맞추더니, 이내 사라졌다.
[균형이 충족되었습니다.]
균형이 유지되었다.
“......”
태호는 솔직히 놀랐다.
‘에픽 두 개급 역풍...!’
볼카노스는 아마도, 그 정도 수준의 역풍까지는 본인이 감당해 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그가 새롭게 보였다. 미안하기도, 또 고맙기도 했다.
태호는 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흠.]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곧, 그가 태호에게 물었다.
[이제 어찌할 셈인가.]
“저는...”
태호는 그를 똑바로 보며 입을 열었다.
“카실론, 네메데스를 찾아갈 생각입니다.”
* * *
어느새 이곳은 무인도.
태호는 주박술에 이중 삼중으로 묶여 버린 로만을 보았다.
‘에... 그러니까.’
그를 보는데, 메시지가 떠올랐다.
[신의 주박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주박에 걸린 상대를 아티펙트로 변환하시겠습니까?]
“예.”
펑!
로만의 몸은 어느새 작은 구슬처럼 변했다. 주먹보다 조금 더 작은 구슬.
마치 아이템 같아 그것을 확인해 보았다.
[등급 : ???]
[종류 : 아티펙트(신의 주박)]
[이름 : ‘로만(사티로스)’]
[옵션 : X]
자연히 그 모습을 보는 태호의 모골도 송연해졌다.
‘이거...’
지금 그 강대하고 태호를 괴롭힐 만큼 괴롭히던 혼돈의 사념체가, 지금 이 작은 구슬이 돼 있는 것이다. 아마 놈의 이름은 사티로스일 것이며, 로만의 몸을 완전히 차지했기에 저런 식으로 표기가 된 듯하다.
그리고.
‘내가 언제 이렇게 돼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어.’
앞으로 이어질 신들과의 싸움은 이런 식일 거다. 자신도 모르게 으드드, 살짝 떨려왔다.
문득.
구슬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태호의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것 같았다.
-너... 뒷감당할 수 있겠어?
목소리나 말투는 로만의 것과 똑같으나, 분위기가 다르다.
-어차피 세계의 맹약은 곧 깨어진다! 그리고...
“닥쳐.”
태호는 냉담하게 대꾸하며 구슬을 만지작거렸다. 괜히 심통이 나, 구슬을 마구 흔들었다.
-크으으으윽!
< 신의 주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