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136화 (136/194)

< 지금이 그때요? >

“그럼 난 드래고니악으로 돌아간다.”

로크나이엘이 말했다.

그는 어쩐지 꽤나 지친 얼굴이었다. 이번 샴 사냥에는 그의 공이 무척 컸기에, 태호가 고개를 숙였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그러게...”

그는 어쩐지 멍한 얼굴이 돼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아... 대체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우려하는 것이 당연했다. 혼돈의 힘을 사전 격파하고 그 사념체를 신의 주박으로 묶어 버렸다. 아마, 그가 살아가며 본 것 중 오늘의 충격보다 심한 것은 없었을 거다.

“덕분입니다.”

“......휴우.”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태호가 물었다.

“드래고니악의 드래곤들이 동면에서 깨어나기까지 얼마나 남았을까요?”

“흐음... 뭐, 앞으로 몇 년? 몇 달? 혹은 몇 주? 정확히는 모르나... 뭐 그쯤일 거다. 정말 얼마 안 남았지.”

몇 년이라는 시간을 언급하며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하는 것은, 드래곤의 특성 중 하나다. 지독히도 오래 사는 그들에게 몇 년이란 별로 긴 시간이 아닐 터.

허나 태호에겐 긴 시간이었다.

“그럼, 난 돌아간다.”

로크나이엘이 드래고니악으로 돌아갔다.

“흠... 더 도울 것은 없는가?”

카자토스가 물었다.

“예. 일단락된듯합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았다.”

카자토스는 묵묵히 스크롤을 찢었다. 이제 무인도에는 태호 혼자 남았다.

‘나도 슬슬...’

[접속을 종료합니다.]

접속 종료를 하던 태호는 문득 자신의 몸이 희미해져 감을 깨달았다.

지이이잉-

이내 태호의 몸은 검은빛이 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화아악!

그리고 나타난 것은 현실의 소파였다.

“......”

직감적으로 느꼈다.

태호는, 지금 리얼 포스 세계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그것도 로만처럼 의지와 상관없이 갇혀 버린 게 아니다. ‘정당하게’ 리얼 포스의 일부가 되어, 오갈 수 있게 되었다.

현실로 돌아온 태호는 자신의 몸에 일렁이는 신비력을 느꼈다.

고오오오-

사방에 신비력이 소용돌이친다.

대장군 샴을 잡으며 한 단계의 변화가 더 일어날 모양이었다.

촤아아아악-

태호의 전신에서 한 꺼풀, 피부가 벗겨지고 있었다.

“......”

이제는 익숙한 이 변화.

태호는 천천히 자신의 피부를 쓸어내렸다. 벗겨져 나온 속살은 전에 없이 하얗고 윤기를 띄며, 단단했다.

거울을 본다.

태호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분명히 과거의 자신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많은 것이 변한 모습이었다.

‘최적화된 신체.’

이 변화의 끝은 대체 어디일까?

* * *

말끔하게 샤워를 한 뒤, 피부 껍질 벗겨진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태호는 고민하고 있었다.

양손에는 하나씩 봉투가 쥐어져 있다.

‘재활용 쓰레기봉투’

‘음식물 쓰레기봉투’

“......”

이 피부 껍질을 둘 중 어떤 것에 담아야 할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던 태호는, 그냥 예전처럼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담기로 결정했다.

대강 집 정리가 끝나고, 소파에 앉았다.

한동안 유튜브를 잊고 있었다.

계좌를 보니 5억이 조금 넘는 돈이 꽂혀 있었다.

“......?”

유튜브 정산금이 또 들어온 모양이었는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동안 보지 않던 개인 메신저를 보니 김택환의 대화가 도착해 있었다.

[흠... 저희 지금 완전 대박 났어요. 보고 계십니까?]

[요즘 연락이 왜 이렇게 뜸하십니까. 확인하시면 답장 부탁드릴게요.]

태호는 영 미안한 얼굴로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죄송해요, 요즘 일이 조금 바빠서 신경을 못 썼네요. 아, 정산금 보내 드리겠습니다.]

답장이 바로 왔다.

[아 그래요. 그건 그건데, 유튜브 한번 봐 보세요.]

태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유튜브에 들어갔다. 그리고 메인에 걸려 있는 동영상 하나를 보았다.

[Unknown VS GOD]

“......”

태호는 그제야 떠올렸다. 악신 조겐과의 조우를 다룬 동영상을 김택환에게 보냈던 것이다.

[Wfjweoifwo! XXFhKlkjq!!]

조겐의 목소리가 들려오긴 하나, 육성으로 들었을 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제3의 언어였다. 다만, 그 목소리는 태호에게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죽어라, 이 빌어먹을 잡종아!

놈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전달됐다.

태호와 조겐의 전투는 그야말로 한 편의 SF영화 같았다. 태호는 필사적으로 도주하며 놈과 사투를 벌이고, 결국 솥단지를 깨 버리며 놈을 강제 귀환시켰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아, 저 하늘을 올려다보며 엔딩 음악이 울려 퍼졌다. Extreme ways의 전주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방의 결계가 사라져 가며, 하늘을 비춘 채 영상이 끝났다.

“......”

태호는 두 가지의 방향에서 놀랐다.

첫째는 이 동영상의 조회수다.

“5억?”

둘째는, 소름 끼칠 정도의 연출 덕분에 만들어진 멋지지만 오글거리는 영상미였다.

[어떻습니까?]

[굉장하네요.]

태호는 김택환에게 답장하며 자신의 채널로 들어갔다.

“뭐야.”

팔로워가 5,000만 명을 돌파하고 있었다. 그간 쌓인 댓글 목록이 1억 개가 넘었다.

[언노운 형! 보고 있지?]

[외쳐! UN!]

[저거 저 본 적 있음. 조겐임.]

[저도 본 적 있음. 저거 남쪽 무인도에 제단 있음ㅋㅋ 저주받아서 캐삭했음.]

[님들 근데 동영상 보고 제단 찾아갔는데 없어졌어요. 조겐 제단 위치 아시는 분? - 언노운 공식 팬클럽 UN]

댓글들은 대축제의 장이었다.

이제 언노운은 어차피 인외의 존재로 취급되는 형편이라, 신과 싸웠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는 것이 정론이었다.

[언노운이 신이랑 싸워서 이겼으면, 그 혼돈 뭐시기들도 이제 다 잡을 수 있는 거 아님?]

[근데 언노운 에픽 대체 몇 개임?]

태호는 그들의 댓글을 보면서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렇다.

생각해 보면, 조겐은 과거 리얼 포스의 역사에 등장한 바 있었던 신.

유저들 사이에서 악신이라 불리며 여러 저주캐를 양산한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조겐의 제단.’

잠깐.

태호의 얼굴이 어쩐지 지극히 신중해졌다.

‘잠깐만, 잠깐만...’

그렇다.

신의 제단, 거기서 신을 불러낼 수가 있다. 신의 화신체. 그것도 주박으로 묶어 둘 수 있는가?

* * *

리얼 포스의 세계로 돌아온 태호는, 돌아오자마자 무 대륙으로 향했다.

무 대륙에 도착한 태호는 곧바로 카실론이 있던 허름한 신전으로 향했다.

정글 속, 고요히 모습을 감춘 상태의 신전 앞에 서자 건물이 빛을 발했다.

화아악!

어느새 태호는 신전 내부에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재미난 것을 보고 있다는 듯, 미소를 머금은 카실론이 앉아 있었다.

“다시 왔네?”

“오랜만입니다.”

카실론은 태호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어느새 사방은 시계태엽으로 가득 찬 공간이 되었다.

태호는 자신의 뒤에 만들어진 의자에 앉으며 그에게 입을 열었다.

“수호자의 힘을 온전히 각성하면 다시 찾아오라 하셨죠.”

“그랬지.”

“지금이 그때입니까?”

카실론은 다시금 고개를 까닥였다.

“이제 최소 조건은 갖춘 셈이군. 역풍에 쉽게 당하지 않게 됐어.”

그의 말이 제법 의미심장했다. 태호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이제 저도... 이 세계의 일부로 인정받은 겁니까?”

“그렇게 봐도 무방할 거다.”

카실론은 군말 없이 인정했다. 그가 덧붙였다.

“이제 너는 부작용 없이 이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는 얘기지.”

부작용 없이.

태호는 그 말뜻을 정확히 알았다. 그래서, 인벤토리 창에서 아티펙트화 돼 있는 로만을 꺼냈다.

“보시겠습니까?”

카실론은 빙긋 웃었다. 그가 구슬에 말을 걸었다.

“간만에 재미난 경험을 하겠구만, 사티로스. 기분이 어때?”

-크으... 빌어먹을.

로만이 분하다는 듯 이를 갈았다. 태호는 그 말투가 마음에 안 들어, 펜삼이를 불러 녀석에게 장난감 삼아 던져 주었다.

-크아아아악! 이런 개자식...!

망! 망망!

펜삼이는 장난감이 생겨 기쁘다는 듯 아티펙트를 물고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어 대며 뛰어놀기 시작했다.

-키야아아악!

비명 소리를 뒤로하고, 태호가 물었다.

“이제 저희는 진지한 대화가 가능해졌겠죠.”

“물론.”

카실론이 씩 웃었다.

“볼카노스 님을 모셔라.”

샤아아악-

태호가 볼카노스를 부르자, 어둠이 깔리고 그가 나타났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네메데스... 어찌 이곳에? 아, 아니 너...]

볼카노스가 태호와 카실론을 번갈아 보더니, 해명이 필요하다는 듯 태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태호는 가만히 숨을 골랐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뛴다. 카실론은 그래도 된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까닥인 다음, 묘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다.

태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볼카노스 님.”

[......설명해 달라.]

“사실 저는 회귀자입니다.”

[회귀자...]

“수호자 아우슈리네 님의 권능으로, 멸망한 세계에서 12년의 시간을 거슬러 왔습니다.”

[......!]

“제가 살던 세계는 현실로 튀어나온 판타로스와 그 수하들에게 멸망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세계에서 리얼 포스의 세계는 가상현실게임으로 취급됩니다.”

볼카노스는 의외로 그렇게 엄청난 충격을 받진 않은 듯했다.

[이제야 네 행보의 의문이 풀렸군.]

볼카노스가 카실론에게 물었다.

[네메데스 님. 당신이 과거에 했던 그 말을 기억하시오?]

-언젠가 분명히 운명의 굴레가 깨어질 겁니다. 그날을 기다리세요.

카실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지금이 그때요?]

“제 생각엔 그렇습니다.”

[......!]

볼카노스는 한동안 아무 말 없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요.]

태호는 펜삼이에게 손짓했다.

“이리 온!”

망!

펜삼이가 구슬을 입에 물고 빨빨거리며 다가왔다. 구슬을 받아 든 태호가 그것을 두 신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사티로스, 혼돈의 힘의 사념체입니다. 이놈을 이용할 방법이 있을까요?”

“흠... 그건 연구를 좀 해 봐야겠는걸.”

-크윽... 으으윽... 더러운... 천계의 짐승에게...

로만의 목소리는 가볍게 무시하며 태호가 물었다.

“우선, 저는 현재 천계의 고위 신이 혼돈의 힘과 결탁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아무래도 ‘순환의 고리’라는 것 때문인 듯한데... 그게 대체 뭡니까?”

“시계탑을 보았구나.”

카실론은 놀란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건, 전 차원에 만들어진 거대한 운명의 고리다. 순환의 고리라는 것은...”

그는 살짝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는 종착점이자, 시발점이기도 하지.”

“......!”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게... 대체 무슨?”

“간단하다. 너는 이 많은 신들이 대체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느냐?”

그의 간단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에, 태호는 불현듯 로키를 떠올렸다.

-내가 인간이었던 시절...

그는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다.

“인간... 이었습니까?”

“당연히도 그렇겠지. 안 그러면 신이라는 작자들이 대체 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말이냐?”

< 지금이 그때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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