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148화 (148/194)

< 믿고 등을 맡길 만한 >

“탈출이라니요?”

볼카노스는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했다.

[아무래도 의심을 사기 시작한 것 같다.]

의심.

지극히 일리 있고 타당한 의심이었으리라. 볼카노스는 엄밀히 따지면 과거의 ‘대역죄인’이었고, 현 대륙 이상징후의 의심을 받을 만했다.

“방법은 어찌 되십니까?”

이는 태호에게 있어서도 호재였다.

지금껏 그는 태호를 제사장으로 임명하여, 그 매개체로 화신체가 나타나는 식이었다.

[저 녀석 유배돼 있는 곳은, 천계 중심부의 감옥 같은 곳이야.]

로키가 말했다.

로키는 어깨를 으쓱였다.

[말은 감옥이지만 굉장히 넓고, 또 아무것도 없는 곳이지. 천옥(天獄)이라 불리지.]

천옥.

태호는 그 단어를 곱씹었다.

[엄밀히 따져 상위 신의 고등한 신력으로 만들어 낸... 일종의 결계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상위 신의 고등 신력으로 만들어 낸 결계. 태호는 그것을 한번 경험해 본 바 있었다. 바로, 카실론이 만들어 낸 상위 신력의 결계 말이다.

“방법을 찾으신 겁니까?”

태호의 물음에 볼카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렇다면...”

[일단, 천옥을 탈출하고 나서부터가 문제가 되겠지.]

볼카노스는 태호를 빤히 보았다.

그의 두 눈에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천천히 태호에게 말했다.

[때가 되면, 너는 나를 주박으로 묶어라.]

“......예?”

[신의 주박으로, 나를 지상 세계에 가두는 것이다. 네 주박은 나의 주박과는 다르다. 균형의 역풍을 효과적으로 막아 줄 것이다.]

태호는 그 말을 들으며 두 눈을 깜빡였다. 이내, 그에게 반문했다.

“저를 그렇게 믿으십니까?”

태호에게 주박으로 묶인다는 것은, 목숨 자체가 태호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그것은, 한마디로 목숨을 맡긴다는 말과도 같다.

볼카노스는 빙긋 웃었다.

그의 전신에 검은 불꽃이 팍, 하고 튀었다. 따스한 어둠, 그것이 느껴졌다.

[그렇다.]

“......”

문득 찡한 마음이 들었다.

태호는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에게 그런 큰 믿음을 받는다는 것. 그것도, 리얼 포스를 다시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던 신에게.

말할 수 없는 벅참이 밀려오는 것이다.

......[우오오오오!]

막시무스가 달렸다.

막시는 정면으로 후다닥 달려가, 몬스터 무리에 거대한 방패를 만들어 냈다.

[막시! 잘한다!]

뒤에서 폴짝폴짝 뛰며 신나게 소리치던 아르카네가, 사방의 몬스터를 묶었다. 석화가 걸리고, 후다닥 도망치기 시작했다.

“......”

그것을 뒤에서 지켜보던 태호의 분신체가 적당히 상태이상 기술들을 걸어, 몬스터들의 생명력을 빼앗기 시작했다.

[쿠아아아아!]

막시와 아르카네가 어찌저찌하며 유니크 급 던전을 꾸역꾸역 해결해 나간다.

현재 막시무스의 레벨은 300이 조금 넘었다.

아르카네의 레벨은 200이 넘는다.

레벨만 두고 보면 충분히 준수한 녀석들이었으나, 레벨이 올라도 전혀 바뀌는 게 없다는 점은 문제였다.

‘가만히 놔둬 볼까.’

분신체의 화면으로 그것을 지켜보던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간은 두 녀석들의 활약이 있긴 했어도, 절체절명의 위기는 흔치 않았다.

초중반에야 녀석들의 활약이 도드라지는 경우가 분명히 간간이 있었다. 허나, 본격적으로 비전력을 다루기 시작하며 적들의 수준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녀석들의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만 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막시는 우선... 한 사람 몫은 해야 하고.’

막시무스가 한 단계 더 성장한다면, 태호는 막시에게 에픽 아이템들을 둘러 줄 생각이었다.

아르카네.

‘아르카네도 마찬가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녀의 아버지인 아카드에게 물어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우선은 저대로 놔두자.’

일단 지금부터, 불안하지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총 세 명의 악신을 잡았고, 데페로는 아자무스를 공격해 선전포고를 해 버린 셈이 되었다.

즉.

이제 천계의 반응을 볼 시간이 필요했다.

태호는 우선 광휘의 신전을 나섰다.

어느새 멋지게 완성돼 있는 마을 저편, 라간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여기가 카지노가 된다 이거지.’

자못 기대되는 미래다.

우선, 태호는 드워프들을 찾아갔다.

“아, 자네인가.”

드워프들의 대장, 엑셀이 태호를 반갑게 맞았다.

태호는 그들에게 몇 가지 주문을 해둔 바 있었다.

첫째는 아머 슈트다.

하늘성의 아머 슈트 네 개를 맡기고, 그것을 업그레이드해 달란 말을 했었다.

“흠... 이게 자네 마음에 들려나 모르겠지만. 우선 이걸 보게.”

엑셀이 내민 팔찌를 받아 들어 확인해 본다.

[등급 : 에픽(하늘성 사대가문, ‘검은 머리 드워프족’에 의해 개량됨.)]

[종류 : 장신구(팔찌)]

[이름 : 하늘성 사대가문, 아머 슈트.]

[하늘성의 아머 슈트.]

[설마 이걸 만드는 변태는 없겠죠? 있다면 그분께 말씀드립니다. 아아, 당신은 진정한 고인물입니다! -초보 학자, 카실론.]

[옵션 : 올 스텟이 150 상승합니다.]

[마법 저항력이 20% 상승합니다.]

[공격, 이동속도가 30% 상승합니다.]

[생명력이 30% 상승합니다.]

‘세상에... 카실론... 당신은 대체.’

여기도 어김없이 들어가 있는 카실론의 메시지.

태호는 옵션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핵심적인 부분이 조금 부족해.’

소감은 그랬다.

에픽 아이템으로서 여러 부분을 보완해 준다는 장점은 있다만, 결정적인 장점 자체가 애매모호했다.

“마음에 들지 않겠지?”

엑셀은 태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그리 물었다. 태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재차 말했다.

“훨씬 더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데.”

“뭡니까?”

엑셀이 어깨를 으쓱였다.

“자네, 언젠가 ‘창공의 심장’을 가져온 적이 있었지?”

엑셀의 말에 태호는 두 눈을 깜빡이며 그 아이템을 떠올렸다.

‘아.’

[등급 : 8급][레전더리]

[종류 : 재료]

[이름 : 창공의 심장]

[하늘의 심장, 이것을 이용해 고귀한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을지도?!]

-이것은 아주 귀한 물건일세.

-창공뿐 아니라 바다, 대지에도 심장이 있지. 이는 그 세계의 기운들이 만들어 낸 결정체 같은 거야. 그러니, 잘 모아 두게.

과거 엑셀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이것은 엘린의 공중정원을 홀로 클리어하며 위업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이었다.

아무래도 레이드급 던전을 솔로 플레이로 클리어하면 위업보상으로 얻게 되는 듯싶었다.

태호는 문득 과거 ‘바넷사의 해저 기지’를 클리어하던 무렵을 떠올렸다.

‘그때는 이런 보상이 없었지.’

그렇다면, 다른 레이드 던전일 것이다.

아무튼.

창공의 심장을 내밀자, 엑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걸세. 이 심장이 있다면, 훨씬 더 강화할 수 있을 거야. 이유는 이것이 바로 하늘성 고유의 물건이기 때문이야.”

“아,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세. 앞으로 이런 심장이 더 있다면, 가져와 보게. 아차, 그리고 이것을 받게.”

태호에게 그가 내민 것은, 듄의 두 번째 목숨이었다.

[등급 : 에픽]

[종류 : 장착(캐릭터에 장착 귀속됨, ‘검은 머리 드워프족’에 의해 개량됨.)]

[이름 : 듄의 두 번째 목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캐릭터에 장착 귀속됨’ 이었다.

“순수의 강철이 지나치게 소모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결국 해냈다네.”

태호가 감격한 얼굴로 꾸벅 그에게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우선 그것을 착용해 보았다.

쿵쾅쿵쾅!

태호의 몸속에 ‘듄의 두 번째 목숨’ 이 스며들었다. 이는 데스나이트의 심장처럼, 장착 부위를 요구하지 않는 귀속 에픽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좋아.’

“허허. 별말씀을.”

일단.

두 개의 목숨을 구했고, 아머 슈트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니 드워프들의 공간을 빠져나왔다.

* * *

지금부터 태호가 하려는 것은, 가진 신비력의 등급을 높이는 일이었다.

[신비력(어둠)Ⅰ]

[설명 : 태고의 힘, 정순한 어둠의 비전력과 신력의 결합체를 사용합니다.]

[마력을 치환하여 신비력을 수집합니다.]

현재의 신비력은 이러하다.

사실, 신비력 자체를 사용한 지는 제법 시간이 흘렀다. 헌데도 1단계인 것을 보니, 꽤나 오랜 시간 투자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적 드문 고요한 평야.

[리얼 포스, 동시접속자 2억 명 돌파!]

[비상식적인 흥행 돌풍!]

흥행 돌풍은 더욱 가속화돼 가고 있었다. 이제 리얼 포스는 어딜 가든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작은, 또 하나의 세계!

유저들은 그 세계 속에서 현실과 똑같은 계급과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리얼 포스로 창업하기.]

요즘 유저들에게 있어, 그냥 게임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리얼 포스 내에서의 창업은 이제 꽤 빈번한 일이 되었다.

유저들의 복장 디자인을 해 주는 사업체부터 요리, 미술, 다양한 레저스포츠 경험을 지원하는 사업체까지.

기존의 RPG들이 ‘전투’ 그리고 ‘정복’에 포커스를 맞춘 것과는 다르다. 여행 가이드를 제공하는 길드도 속속 등장하고 있었다.

현금거래 대행, 심부름, 나아가 물건 배달 등. 현실이나 다름없는 일들이 이 세계에선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게임에 큰 흥미가 없어도 창업을 위해 시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빈번했다.

허나, 계기가 어떻든 시작한 유저들은 무조건 한 유저의 이름은 듣고 간다.

[언노운 얼마 전에 안타라스 슬램 다녀갔다던데.]

[요즘 유행하는 언노운의 누더기 룩!]

[언노운이 즐겨 쓰는 ‘어둠 기사단 세트’에 대해서.]

[외쳐! UN! 언노운 공식 팬클럽, UN!]

등, 인터넷 속에 언노운은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최고의 스타였다.

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역시나 ‘베일에 감춰져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거다.

언노운이 입는 누더기 룩(생김새)도 인기를 얻어, 생김새만 거의 비슷하게 제조된 모조품들이 인기리에 팔려나가고 있었다.

유튜브 스타이자 리얼 포스 최강의 스타.

아마 언노운은, 현세대 최고의 인터넷 스타가 분명했다.

“......”

정작 본인은 그것을 잊고 있었지만 말이다.

태호는 인터넷에 즐비한 자신의 정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언노운 대기업 후계자설, 언노운 AI 인공 지능설, 언노운 운영자설. 닳고 닳은 옛날 떡밥들이 돌고 돈다.

과거에는 그런 것들을 보며, 쓸쓸해했었다.

세상의 짐을 혼자 짊어진 답 없는 미래, 그리고 화려함 속에 숨어 있는 고독함. 그것이 태호를 한없이 짓눌러 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어쩐지 마음은 차분해졌고 잘 정돈돼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다. 이제는 믿고 등을 맡길 만한, 그런 동료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막 회귀를 했을 즈음 느꼈던 막막한 벽은 이제 많이 허물어졌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시작해 볼까.’

우선 신비력을 움직인다.

신비력 수련은 사실 비전력이나 신력 수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비력을 운용하고, 모으고, 방출하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태호는 감각 세계로 들어서, 신비력을 운용하는 데 한동안 심취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신비력이 조금 더 발전하였습니다.]

처음 보는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태호는 자신의 분신체 하나를 만들어냈다.

분신체 하나가 태호의 앞에 섰고, 녀석에게도 신비력 수련을 지시했다.

고오오오-!

분신체가 먹는 경험치도 공유되고 주운 아이템도 동일하며 스킬 숙련도도 오른다.

그렇다면 혹시?

잠시 후.

[신비력이 조금 더 발전하였습니다.]

“......”

아까보다 족히 절반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태호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 분신이라는 개념이 어찌나 편리한지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네.’

예전에도 이런 생각을 했었지만 당장 닥친 상황이 급해 뒤로 미루었었다.

‘분신체 수집이다.’

< 믿고 등을 맡길 만한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