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3 <-- 튜토리얼: 던전 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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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의 정령 선배님이 갑자기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달려오는 적의에 부딪혔다.
스켈레톤은 게임상에서는 겨우 그래픽 쪼가리에 불과한 녀석이지만, 실제로 보면 나보다 더 크고 삐걱거리며, 진짜 나를 죽이려고 하는 모습이 상당히 무섭다.
스켈레톤이 휘두르며 다가오는 거대한 뼈 곤봉.
무심코 생명의 위기에 눈을 꼭 감는다.
다리는 후들거리며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에도 거리는 가까워진다.
“흐읏…….”
나는 거의 구르다시피 스켈레톤의 돌진을 회피하고, 바로 코앞에서 지나가는 곤봉의 바람을 느꼈다.
그 바람의 세기만 봐선 분명 나는 뼈도 제대로 못 추스를 정도로 망가졌을 터이다.
스켈레톤은 휘청이다가, 다시 뒤돌아 나를 노려본다. 그 눈구멍은 비어있지만, 노려보는 듯했다.
나는 쓰러진 채로 엉덩이가 무거워 일어나지지 않는다. 평소보다 더 무거운 느낌이다.
-삐그덕
스켈레톤이 다시 한번 더 나를 향해 달려온다.
이젠 넘어진 상태로 움직이기조차 못하는 나는 틀림 없이 살해당한다.
죽을 수 없다. 나는 마스터라면서, 여기는 게임 속 세상이 아니야?
스켈레톤이 다시 달려온다. 뼈 곤봉에 허리를 맞고 저만치 날아간다.
정말 공중을 날았다. 그것도 내 의지가 아니고, 마치 주변 세상이 슬로우 모션처럼 지나가는 착각을 느꼈다.
“프읏…….”
허리가 아프다. 뭉툭한 고통이 전해져 온다.
입에선 뜨거운 액체가 흐르는 듯하다. 흙 바닥에 착지하고는 몇 번을 굴렀다.
피부에는 생채기가 나며 따갑다. 하지만 스켈레톤은 다시 삐걱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달려온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왜 갑자기 물의 정령 선배님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이번에 스켈레톤의 뼈 곤봉은 내 이마 위를 정면으로 때린다. 나는 눈앞에 온 뼈 곤봉에 뭔가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힘을 주위로 풀어낸다.
죽었다. 나는 아마 죽었을 것이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는, 눈을 살포시 뜬다.
눈앞에 있는 뼈 곤봉은 여전히 내 미간에 다다르고 있다.
아니, 1mm쯤? 아마 충격이 순간 직전에 뼈 곤봉이 멈춘 듯하다.
나는 조금의 여유를 되찾고 주변을 둘러본다. 하지만 어떤 바람도 불지 않고, 약간 세상이 오래된 사진처럼 세피아 색으로 물든 듯하다.
“무슨……?”
게임 속에선 이런 일이 없었다. 이런 건 대체……?
천천히 곤봉에 곤죽이 되기 직전의 몸을 빼낸다.
게다가 너무 화가 나서 스켈레톤의 곤봉을 꺼내 들었다. 의외로 쉽게 쑥 빠진다.
나는 분노에 가득 찬 상태로, 스켈레톤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화를 참을 수 없어 뼈 곤봉으로 스켈레톤을 박살이 날 정도로 부숴버렸다. 물론 뼈 자체를 으스러트릴 정도의 힘은 나에게 없었지만, 연결 부위에 존재하는 허공의 푸른 기운이 끊어져 간다.
“죽어, 죽어!”
이 스켈레톤은 나를 죽이려고 했다.
아무리 생김새가 공포스럽다지만, 어떤 인간이 죽어 만들어진 건지 모르지만, 나는 분노에 그런 공포도 잊고 스켈레톤을 부숴버렸다.
덜덜 떨리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스켈레톤을 쓰러트렸다.
“하…… 하하…….”
안전하다고 생각될 때까지 스켈레톤을 내리쳤다.
자연스레 힘이 빠지자, 곧바로 세상이 원래 색으로 돌아온다.
눈앞에 쓰러진 스켈레톤은 쓰러진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스켈레톤에게서 뭔가 빛나는 게 보인다. 저건 설마 마력석이라던가, 그런 건가?
곧바로 저 마력석(임시)는 으스러지고, 황금빛 가루가 되어 내 주변으로 흘러들어왔다. DMP를 확인하니 50이 올랐다.
-찰싹, 찰싹
뒤에서 물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온몸의 근육이 뭉친 듯, 뻣뻣해서 움직여지지 않는 상태로 억지로 목을 돌려보니 선배님께서 박수를 치고 계셨다.
선배님이 물 흐르듯 천천히 다가온다.
“죽을 뻔했잖아요!”
“잘했어요, 후배님! 합격. 가끔은 마스터 개체 사이에서 F급도 못 이기는 녀석들이 태어나고는 하거든. 당신은 이겼어!”
“…….”
선배님은 아마 맹수가 새끼를 물어 나무 아래로 떨어트리는 방법으로 나를 키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것 같으면 최소한 알려주기라도 하라고…… 물론 게임 속에서도 튜토리얼은 전투 튜토리얼을 합니다! 하고 스켈레톤과 직접 싸운 기억은 난다.
실제로 던전의 최심부에 만든 자신의 방까지 들어오는 녀석들을 상대하기 위한 방법.
던전 운영 측에서도 PK 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던전을 대충 꾸미고 맞이하는 이 방식을 주로 이용하고는 했었지만, 질 경우 페널티가 워낙 심해서 보통은 던전을 잘 꾸미는 데 신경을 쓰곤 한다.
그 페널티가……
“뭘 그렇게 물끄러미 보는 거니?”
“아니……에요.”
“음, 그래, 우리 사이에서는 ‘고유 스킬’이라고 부르는 능력을 쓴 흔적이 보이네. 아마 네 건 시간 정지겠지? 시간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인 것 같아 부럽네.”
“아……”
보통 어느 게임에서도 사기적인 능력 중 하나로 불리는 시간 정지.
게임상에서도 그런 스킬이나 능력 같은 건 본 적 없지만, 어쩌면 정말 게임 속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 빨려 들어온 것인지, 헛웃음이 나왔다.
“이쪽으로 오렴~”
“네……”
다리가 아직까지도 후들거리지만, 선배님을 뒤따라 걸었다.
흙과 풀이 있는 초원 필드는 곧 정말 던전 복도와 비슷한 곳으로 바뀌었고, 곧바로 좁은 방이 나타났다.
우리가 움직이는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마치 땅이 축소된 느낌이다.
벽에는 거울이 있었고, 거울을 보니 아리따운 붉은 눈동자의 소녀가 지친 듯이 보인다.
전반적으로 아직 애 같은 티를 벗지 못한 모습. 소박한 꼬리가 꾸물거리며 아래쪽으로 나오자, 옷이 들리며 엉덩이가 확 드러나 추워진다.
“읏……”
웃 아랫단을 꾹 눌러 가린다. 이 몸에 대한 위화감이 너무 심하다.
괜스레 내 몸에 대해서는 잊으려고 하고, 주변을 둘러보자 푸른 결정과도 비슷한 보석이 방 중앙에 놓여있는 모습이 보인다.
신비한 느낌에 손을 가져가자, 내 손이 끈적한 물에 잡혔다. 선배였다.
“그건 만지는 게 아니야. 그 결정은 나의 심장. 그리고 던전의 핵이지.”
“아아, 이게……?”
“너도 곧 심장을 꺼내 만들 수 있게 될 거야. 아직은 네 심장이 몸속에 있지?”
아리따운 물의 정령 선배가 손을 내 가슴에 올린다.
그 모습에 무심코 심장이 쿵쿵 뛴다. 그래도 물은 물인지, 정령 선배님의 손이 닿자 가슴 쪽 옷이 젖어 살결이 살짝 드러난다.
설마…… 심장을 꺼내시려는 건 아니겠지?
그 물 손을 툭 쳐냈다.
“후후, 그래, 그런 느낌이란다. 이 심장은 네 몸속에도 존재하는 심장, 마력석이야. 스켈레톤을 죽일 때도 보았지? 그리고 우리정도 되는 마스터 개체라면, 던전의 심장이 되기도 하지. 마스터 개체의 마력석이 손상되면 던전은 스르륵 무너져버려. 너는 죽어버리게 되는 거지.”
“그렇……군요……”
무서운 말에 침이 꿀꺽 넘어간다.
내가 던전을 제대로 꾸미지 못하면 죽는다.
평범하게 게임 속 세상이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현실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냐면, 오히려 이 세상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벌써 결의를 다지는 거니? 좋은 마음가짐이네, 나는 어쩌면 좋은 후배를 둔 걸지도 몰라.”
“그런데 저를 보살피는…… 이유가 뭔가요?”
“응? 그건 내 취미. 후후 장난이야. 우리들을 태어나게 해 준 존재가 정한 룰이거든. 너도 100년쯤 뒤엔 후배를 기르게 될 거야.”
“…….”
물의 정령 선배님께선 그 윗대의 사람을 생각하시는 건지, 잠시 애수에 가득 찬 표정이 되었다.
“아차차, 아니야. 그래 내 던전의 모습에 대해 알려줄게. 던전은 사람들의 절망과 같은 감정을 먹고 자라는 공간. 너는 DMP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아니?”
“그런 세세한 설정은……”
게임 속 세상에선 그저 게임성이 좋아서 했을 뿐이다.
DMP는 그저 이름 그대로 듬프…… 아니, 던전 운영 포인트가 아닌가?
“DMP는 던전에 들어오는 생명체들의 감정을 수치화한 지수야. 보통은 인간이나 그 비슷한 아인으로 분류되는 녀석들이 강하지. 우리는 그들에게 절망과 같은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해 DMP를 흡수하고 살아간단다.”
“아아……”
단순한 재화에도 그런 의미가 있었던 거였는지.
그 말을 듣고 나니, 왠지 사람들을 더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던전에서 괴로움을 느끼게 하면, 혹은 스릴을 느끼게 하면 실제로 내 배가 불러진다는 소리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정말 그 사람들이 개개인의 생명을 가진 개체가 아니라 마치 타이쿤 속의 손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게임 속에서도 그런 식으로 플레이했었다.
“강한 인간일수록, 강한 감정일수록 더 많은 DMP를 벌어들일 수 있지. 어때, 넌 좋은 던전 마스터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선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선배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