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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4화 (4/95)

00004 <-- 튜토리얼: 던전 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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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정령 선배님은 자신의 던전 정령석을 배경으로 선다.

뒤쪽에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반투명한 선배의 모습에 투과되어 비친다.

“마스터에 대해 설명했으니, 던전 만들기에 대해 배워야겠지? 혹시 질문 있니?”

“DMP로 직접 음식을 만들고, 던전을 만들고 몬스터를 소환한다. 던전에서 사람들의 감정을 흡수해 포인트를 얻는다. 그럼 고유 스킬은 대체 뭐에요?”

“아아, 그건 천천히 설명할까? 일단은 내 던전에 있는 공터에 가서 알려주도록 할게.”

선배님이 보석을 향해 손을 뻗었더니, 보석에서 홀로그램처럼 던전의 구조가 전사되어 벽에 나타난다.

그 환상적인 모습에 무심코 환호성을 지를 정도였지만, 입을 가리고 숨겼다.

괜히 선배의 앞에서 동요하는 척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선배님의 던전은 대체로 길을 잃기 쉽고, 막다른 길마다 보이는 함정들에 쉽게 빠질 수 있게 되어있다.

내가 게임 속에서 쓰던 지식은 물론이고, 여기가 현실이라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듯 더 악랄하고 무서운 함정들도 보인다.

던전 내부에서 반쯤 불에 타 죽어가는 사람들, 익사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주 작은 모습으로 보인다.

사람의 크기로 미루어보면, 던전의 크기는 거의 도시 하나 정도의 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우 거대한 것 같다. 게임 세상에선 크기 제한에 층수 제한까지 있었지만, 여기는 제한조차도 없다.

우리가 있는 곳은 던전 가장 아래쪽 중앙에 있는 지점이다. 슬라임처럼 생긴 선배님과 작은 날개와 꼬리가 있는 내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난다.

“여기쯤이 좋겠네.”

선배님이 가리키는 곳을 누르자, 우리는 순식간에 공기 중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나는 확인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주변은 텅 빈 던전 벽만 있는 공간이 되었다.

“여긴 대체……”

“빈 공간이야. 공터지. 사람들이 오지 않게끔 처리했으니, 여기서 던전을 꾸미는 방법을 배우자꾸나.”

“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선배님에게서 황금빛 기운이 나와 나에게 흘러들어온다.

“DMP는 맘대로 대여할 수 없다면서요?”

“응? 튜토리얼이니까 괜찮단다. 자, 어차피 여긴 내 던전이라 네가 대리해서 만들어주는 거야.”

“으응…… 그렇네요.”

메뉴를 열어 보니 내 50 DMP가 푸른색으로 쓰여있고, 위쪽에 녹색으로 + 10000 DMP라는 표시가 되어있다.

그런데 50은 스켈레톤을 잡아 생긴 걸까? 그걸 생각하기도 전에 선배님께서 나를 향해 오셨다.

“자, 간단한 벽 만들기부터 해 보자!”

“네!”

선배님의 말씀에 따라 나는 던전 만들기 실습을 진행했다.

게임 세상에서는 커서를 클릭하는 것만으로도 만들어졌다면, 실제로는 홀로그램 위쪽에서 조작한다는 느낌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선배님이 먼저 하는 모습을 보면, 홀로그램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양손을 정교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마법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바닥에서 약간의 진동이 울리더니, 벽과 공간이 생성되었다. 깔끔한 물의 벽과 바닥이다.

“자, 네 차례야. 벽 3칸과 바닥 타일 3칸을 만들어 보자. 칸이란 건 가로-세로-높이 각각 2m짜리인, 8m³ 크기의 공간을 뜻하는 말이란다.”

“네……”

왠지 이런 곳에서는 쓸모없이 이전 세계의 단위를 사용한다는 느낌이다.

실제로 던전을 제대로 못 만들면 생명의 위기를 겪을 텐데, 이런 면에서 괜스레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어 긴장감이 해소된다.

던전 만들기 메뉴에서 벽 메뉴를 선택하자 주르륵 수많은 벽이 보인다.

싼 건 흙벽에서 비싼 건 처음 보는 암흑 물질로 만드는 벽까지 다양하다.

일단 나는 가장 싼 흙벽을 선택하고 눈앞에 설치한다.

설치하기 힘든 공간에는 적색의 홀로그램이 뜨고, 설치하기 쉬운 공간에는 녹색 홀로그램이 뜬다.

미묘하게 게임 같은 느낌에 벽 세 칸을 만들어 확인하자, 바닥에서 쿠쿠쿵 소리와 함께 진동이 울리더니 흙벽이 올라온다.

[흙벽 3칸, 150 DMP를 소모합니다.]

“잘했어! 이것도 힘들어하는 애들도 많았거든.”

“하하, 뭐……”

대체 이걸 힘들어하면, 마스터라는 녀석들은 사실 별 볼 일 없는 게 아닐까?

하지만, 선배님의 미궁은 어지러울 정도로 제대로 만들어져 있었던 걸 떠올리자, 그런 말은 쏙 들어갔다. 개체마다 지능도 다를지 모른다.

“아직 하나 안 했지?”

“네, 바닥이요.”

바닥도 마찬가지로 선택해서 설치한다.

[흙바닥 3칸, 150 DMP를 소모합니다.]

게임 세상에선 굳이 바닥을 만들지 않아도 되었었는데, 귀찮은 게 늘었다.

“그런데 바닥을 굳이 만들 필요가 있나요?”

“응! 좋은 질문, 바닥은 그 던전의 환경을 결정하거든. 물론 벽도 마찬가지로! 일단 들어가서 확인해 볼까?”

나는 선배님과 함께 내가 만든 흙 24m³ 공간에 들어갔다.

들어갔다기보다는, 지나가자 벽이 이상할 정도로 시원스럽게 뚫렸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벽이 원래부터 없었던 건 아닐까 싶었는데, 들어와보니 시야가 가려지는 걸 봐선 벽은 있다.

높이도 2m라서 얼마 안 남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건 내 기우였던 것 같다.

내 키의 절반쯤 되는 높이가 머리에서부터 천장까지 남는 걸 봐선, 아무래도 모습대로 작은 몸을 갖게 된 것 같다.

작구나, 나……

“왜 그런 표정이니, 잘 만들었어. 그리고 보통은 흙벽은 잘 만들지 않는데 이유가 뭘까?”

“음…… 모르겠는데요.”

물 정령 선배가 손바닥을 벽으로 내밀더니, 엄청난 수압과 공기압이 느껴지는 물대포를 쏘아낸다.

그러자 벽이 시원스레 뚫리며 아까 왔었던 공터가 보인다.

“봤지? 인간들이 쓸 수 있는 쉬운 마법으로도 쉽사리 뚫리거든. 물론 새 공간 안에 만드는 던전이라면 그저 땅속이 보이겠지만 말이야. 그래서 던전 안에 새로운 벽을 만들 때는 흙벽은 만들면 안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종류의 제약도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환경. 흙 바닥 위에는 흙 계열 몬스터들을 소환할 수 있단다. 예를 들면 스켈레톤이나 흙 골렘, 노움 같은 정령들이지.”

“몬스터들을 소환하고 옮기면 안 되나요?”

“물론 그래도 된단다. 하지만 본인 필드가 아니면 힘을 잘 못 쓰거든.”

“그렇군요.”

물 정령 선배님을 바라보니, 두 손을 잡고 자애로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본다.

다른 것도 설명하시고 싶으신지, 천천히 내 손을 이끌고 다시 공터로 나왔다.

“뭐, 몬스터들은 이 정도로 설명하고, 네임드에 대해 설명할까?”

“네임드는……. 제 곁에서 지켜주는 몬스터인가요?”

“우와~ 잘 아네. 하지만 이 아이들은 고유 스킬로 밖에 소환할 수 없거든.”

“음……”

어째서 시간 정지 스킬로 네임드를 소환한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선배님은 바닥에서 물을 붓더니, 물이 서서히 모이며 거대한 고래를 소환해낸다.

그 고래가 나타나며 주변에 울리는 충격파에 나는 또다시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졌다.

“읏……”

“베히모스 텔레르나. 참! 우리 서로 이름도 모르고 있었구나.”

“그…… 그렇네요, 선배님.”

선배님은 어딘지 모르게 뭔가 하나쯤 빠진 듯한 모습이다.

그런 모습도 물 정령 선배의 아름답고 신비한 부분을 부각시켜줄 뿐이다.

“내 이름은 운디르나. 음…… 네 이름은……. 보통은 선배가 후배의 이름을 지어주는 게 원칙인데 말이지.”

“저는……”

아무래도 게임 속 아바타라고 생각하니, 현실에서의 이름보다는 아바타의 아이디를 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안 그랬다간 선배님이 이상한 이름을 지어줄지도 모르니, 게임상 아이디를 불렀다.

“세이나. 세이나에요.”

“후후, 본인이 원하면 본인의 이름을 쓰는 게 알맞지. 세이나, 만나서 반가워.”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는 만난 지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다시 첫인사를 했다.

옆에는 거대한 고래 몬스터, 베히모스가 둥둥 뜬 상태로 우리를 지켜본다.

“음, 그러니까 우리는 고유 스킬로 이런 네임드들을 불러낼 수 있단다. 텔레르나는 북쪽의 바다 필드에서 헤엄치는 아이지만, 새로운 마스터가 누군지 보고 싶다고 그러길래 불렀어.”

운디르나 선배가 그렇게 말하며 베히모스의 콧등을 간질이자, 베히모스는 이쪽을 거대한 눈으로 바라보며, 마찬가지로 거대한 고동 소리를 낸다. 웃는…… 소리일까?

하지만 텔레르나 씨?와 운디르나 선배의 사이가 좋아 보여 기분이 자연스레 좋아지기는 한다.

그래도 인간의 앞에선 가차 없이 죽이는지, 입가에 묻은 빨간 피의 흔적이 보인다.

“자, 잡담은 그만그만, 일단은 우리 새로운 마스터 세이나 양의 네임드를 만들어야 하니까. 텔레르나는 거기서 지켜보고 있으렴.”

거대한 베히모스의 고동 소리가 다시금 울린다.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며, 나를 보호할 부관 같은 것이 생긴다는 말에 다시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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