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8 <-- 튜토리얼: 던전 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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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자마자 나는 등에 걸리는 걸 손으로 휘휘 저어 치운다.
답답하고 귀찮아서 바라보면 거기엔 내 꼬리가 있었다. 귀여운 모양의 검은 꼬리가 요리조리 움직이며 내 눈을 찌르려고 하기에 확 낚아챈다.
“히으으읏……”
하지만 이건 내 꼬리다.
이 귀찮고 민감한 꼬리만 없었어도 서큐버스로 살아가는 건 조금 편했을지도 모른다.
어제 온종일 모의전을 했지만, 과연 운디르나 선배님의 미궁은 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
5만 마리의 몬스터라고 했지만, 그게 다 스켈레톤은 아닐 테고, 정예 몬스터들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잘 알 수 있다.
게임상의 개념이나 수치, 그 그래픽 쪼가리에서 느껴지는 느낌과는 차원이 다르다.
실제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 그리고 그 몬스터 하나하나가 살아있기에 스릴이 느껴진다.
내 메뉴를 다시 열어 살펴보면, 어제보다 많은 수의 DMP가 쌓여있다.
전투에서 쌓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벌써 7천 가까이 쌓여서 놀라울 정도다.
이대로면 금방 독립한 후, 지금 두근두근 뛰는 내 심장을 걸어두고 던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나니 벌써부터 이 몸에 적응한 느낌이다. 심장을 내어놓을 생각을 하다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니 내 감각도 인간의 것과는 많이 멀어진 느낌이다.
두 네임드를 깨웠는데 일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아이들이라 그렇다고 생각하고는, [수납] 마법으로 두 네임드를 수납한다.
기지개를 다시 켜자, 날개가 부르르 떨리며 소리를 낼 정도로 강하게 휘저어진다.
그대로 일어나 열쇠를 카운터에 맡기고, 로비로 나와 텔레르나 씨를 기다린다.
로비에는 여전히 수많은 밤의 종족들이 보인다. 뱀파이어나 내 동족으로 보이는 인큐버스, 서큐버스 같은 몽마들.
저런 사람들을 내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저들은 모두 운디르나 선배님의 아이들이다.
“세이나 마스터님. 먼저 나와 계셨네요.”
“응, 빨리 모의전 하러 가자.”
“그래요, 오늘 배울 건 많지만, 일단 모의전부터 진행합니다.”
텔레르나 씨와 함께 다시 낮의 필드로 나온 다음, 모의전을 수없이 많이 진행한다.
이름이 모의전일 뿐이지, 정작 전투에 임하는 스켈레톤들은 목숨을 내어놓고 하는 행위이다.
나는 우리 편의 스켈레톤들이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 아끼는 명령을 하며 상대를 대한다.
현실에서 목숨이 걸린 전투는 게임 속과는 다르다. 이건 현실이다. [몸을 내어놓듯 돌진해 적들을 처단하라!] 따위의 명령은 쉽사리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후, 후아……”
모의전이 끝나면 그래서인지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채 누워있자니, 시엘과 소멜이 수건을 가져와 닦아준다.
물론 내 DMP로 만든 수건이다. 원래는 던전을 치장할 때 쓰는 휘장이지만, 수건으로도 쓸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내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주인님! 이번엔 내가 참가할게!”
“미야아아아!”
너무 강력하게 주장하는 탓에, 나는 텔레르나 씨에게 동의를 구한 뒤 두 명을 참가시켰다.
하지만 양측에 네임드나 상위 몬스터 한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 모의전은 너무 쉽게 끝난다. 모의전을 하는 의미 자체가 사라질 정도로 싱겁게 끝난다.
우리 편에 소멜이나 시엘을 넣거나, 아니면 상대측에서 조금이라도 강한 몬스터를 소환하거나 하면 모의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 앞의 전투도, 상대에서 미노타우르스를 소환하자 우리 스켈레톤들은 맥없이 쓰러졌다.
“이래선 모의전의 의미가 있는 건가요?”
“전투 경험을 살리는 거지, 정작 적을 만나서 싸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마음 약하게 먹다가 죽어버린 어린 마스터들을 생각해 강하게 키우는 거란다. 그리고 DMP를 공짜로 수여할 수 없지만, 지금 보면 네 DMP는 많이 쌓여 있지?”
“아아, 그렇네요!”
나는 어느새 13000 가까이 쌓인 DMP를 확인한다.
제대로 된 던전을 만들려면, 아무리 약한 흙 던전이어도 최소한 구역당 3천 이상의 DMP가 필요하다. 심심풀이로 메뉴를 끝까지 넘겨 보자 암흑물질 던전이라는 테마가 있었고, 여긴 구역당 2억 DMP를 소비한다는 어마어마한 내용이 보인다.
“이런 던전도 만드는 건가요?”
“아, 암흑물질까지 넘겨 보았군요. 실제로 거기서 생활할 수 있는 건 고대신 종뿐이니 보통은 거기까지 넘어가진 않지요.”
“……”
이 세상의 사양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 본다.
게임 속에선 구현되지 않았던 것까지 구현된 걸로 보아선, 아마 그 게임도 끝까지 파워 인플레가 일어났다면 그런 괴이한 던전들이 나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다행히도 초창기에 파워 벨런스를 잡은 탓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한숨을 돌린다.
“자, 빨리 다음 전투로 넘어가요…… 으왓?”
“세이나~”
뒤에서 갑자기 운디르나 선배가 나타나서 놀랐다.
날개를 펼치고 처음으로 날아올랐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저런 모습일 때가 가장 무섭다.
순간적으로 시간까지 멈춰버릴 뻔했다.
“흐흐, 당장 할 일들은 끝나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해서 와봤지.”
“그러면 자는 게 낫지 않아요?”
“……?”
운디르나 선배님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원래 조금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시는 것 같지만, 곧바로 손뼉을 딱 치고 말씀을 이어가신다.
“아! 던전의 코어를 만들고 나면 잠이 사라지거든. 그게 마스터의 특권이란다.”
“아아……”
그런 비밀이 있었다니. 그냥 과도한 일을 해서 잠이 없는 게 아니라 다행이다.
잠이 없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하긴 하지만, 운디르나 선배님의 보송보송한 모습을 보면 오히려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참, 텔레르나. 몬스터들이 쓸 수 있는 무기들에 대해선 알려줬니?”
“아니…… 아직까진 모의전 중이었습니다. 워낙 세이나님께서 열정적이시라…….”
“그래, 그다음은 내가 알려줄 테니 가서 쉬고 있어.”
“마스터님…… 죄송합니다.”
운디르나 선배님과 텔레르나 씨의 대화를 들어보니 왠지 운디르나 선배님께서 다그치시는 내용 같다.
끼어들까 하다가,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는 아닌 듯해서 끼어들지 않았다.
텔레르나 씨는 물기둥을 형성하더니 어디론가 가셨고, 내 앞에는 물 정령 운디르나 선배님만 남게 되었다.
“세이나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다 듣고 보고 있었어. 나는 네임드들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거든.”
“그런가요……? 하지만 몰래 보는 건 나쁜 행위에요”
“걱정되었으니까 지켜볼 뿐이란다. 아, 이것도 기억하렴. 너는 네임드 몬스터들과 감각을 공유할 수 있어. 나는 대부분 요소마다 지키고 있는 네임드들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어.”
운디르나 선배님이 나를 지켜보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지켜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
혹시라도 선배님 욕을 하게 된다면, 몬스터가 없는 곳에서 해야겠다.
“지금 나쁜 생각 했지, 세이나? 이 던전 자체는 내 뱃속에 있는 것과 같은 거 알지? 참. 이번에는 밖에 나가서 인간 세상을 보여주고, 네 던전 터를 알아보기 위해 갈 거야.”
“네……? 벌써요?”
벌써 던전 터를 알아본다니, 조금 두렵기도 하고 두근두근하는 감정이 솟아오른다.
“응응! 그리고 몬스터들에게 장비를 채워 줄 수 있는 것까지도. 인간 세상에 가서 배워볼까 해.”
“그…… 원래 저희는 던전에서 인간들의 감정 같은 걸 먹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하지만 인간 세상에 간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다시 내 말을 이해하신 것 같다.
“그래! 가끔씩은 인간 세상에 가서 싹 쓸어버리고 DMP를 모으기도 하거든!”
“…… 그런 뜻이 아니에요! 인간들이 그렇게 다량으로 사라지면 저희 던전에 사람이 안 와서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에헤헤, 장난이야 장난.”
하지만 운디르네 선배님의 말은 아무리 봐도 장난으로 보이지 않았다.
“뭐, 이런 식으로 홍보하기도 하거든.”
“사실 현상금이 붙는 거 아닐까요?”
“그래! 그런 식으로도 인간들에게 홍보할 수 있단다! 던전에 오는 데는 사탕도 필요하지만, 채찍도 필요한 법이지.”
“……”
나는 다시 던전을 만드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마스터 서큐버스가 되고는 인간의 감정을 잃어간다고 생각되는데, 이번 일로 다시금 불쌍하게 여겨지는 마음이 살아난다.
하지만 이게 진짜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근데…… 우리는 변장해야 하지 않아요?”
“아하, 그래 정답! 하지만 인간들이 만든 환혹의 돌 이걸 목에 걸기만 하면 괜찮단다.”
“음…… 그럼 제 아이들은요?”
“다들 아인종으로 받아들여지니까 괜찮아.”
“운디르나 선배님은 어딘가 대충대충인 게 느껴져요……”
이런 말을 하고선 순간 등골이 차가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운디르나 선배님께선 이해하시고도 까르르 웃으신다. 농담으로 받아들여 다행이다.
선배님께서 주신 목걸이를 하고는, 선배님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던전 바깥세상으로 나선다.
환혹의 돌이 걸려있어서인지, 운디르나 선배님이 인간처럼 보이고, 그 손은 소녀의 손처럼 보송보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