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1 <-- 물의 도시 - 운디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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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활 타는 스켈레톤의 옆에서 운디르나 선배님께서 검을 다시 회수하신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시더니,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신다.
“뭐 하고 계시는 건가요?”
“아, 어어, 나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아. 텔레르나를 소환하고 갈게, 궁금한 게 있으면 텔레르나한테 말해~”
운디르나 선배님이 손을 뻗더니, 다시 손끝에서 물을 뿜어낸다.
운디르나 선배님이 내는 물은 순수한 물이라기보단, 황금빛 가루가 섞인 건지 조금 더 신성하고, 빛이 나는 듯한 느낌이 섞여 있다.
곧바로 엄청난 물보라가 나타나 우리가 서 있던 곳으로 엄청난 물을 튀기며, 그 자리엔 거대한 베히모스 텔레르나 씨가 나타났다.
텔레르나 씨를 소환하는 장면은 다시 봐도 웅장하고 멋있다.
거대한 베히모스가 내지르는 기쁨의 고동 소리가 울리고, 텔레르나 씨의 등장에 눈을 빼앗길 때쯤 운디르나 선배님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도 저렇게 멋있는 방법으로 네임드를 소환할 수 있을까 싶어 시엘과 소멜을 살펴보면, 할 수 있다며 힘을 북돋아 주는 듯 주먹을 꽉 쥐고 나를 바라본다.
그래도 시간의 마력, 그 세피아 색 액체를 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아직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텔레르나 씨는 곧바로 인간형으로 점점 축소되어 내 앞에 섰다.
“선배님께선 어디로 가셨나요?”
“아마 던전이 부서진 곳에 유지보수를 하러 가셨을 겁니다.”
“그러면 잠깐잠깐 멈칫하시는 게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
텔레르나 씨는 운디르나 선배님보다 반응이 매우 빠르다.
어쩌면 운디르나 선배님이 가끔씩 멈칫하시는 건 정보를 받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나도 네임드들과 감각을 공유하게 되면 그런 느낌이 되는 걸까?
“네, 그렇습니다. 감각을 공유하느라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시기에 가끔씩 멈추기도 하시지요. 네임드들에게 수많은 정보를 받으니까요.”
“그 정보는 네임드들이 판단해서 넘기는 건가요?”
“그렇죠. 늙은 저는 보통은 마스터님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서 공유해드리지 않지만, 어린 네임드들은 일을 저지르고 나 몰라라 전해주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런 건지, 나는 운디르나 선배님처럼 되지 않기 위해선 네임드들에게 교육을 철저히 해야겠다.
운디르나 선배님이 멈칫멈칫할 때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는데, 감각 공유를 하지 않는 방법이라도 있으면 꼭 들어야겠다.
물론 지금은 시엘이 보고 듣는 걸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잠도 못 자고 간헐적으로 네임드들과의 감각 공유, 생각해보면 마스터는 엄청나게 힘든 게 아닐까?
“허허 일단 인간 세상으로 올라가 볼까요?”
인간 모습의 텔레르나 씨는 다시 보니 말끔한 장년의 신사다운 모습이다.
깔끔한 연미복에, 회색 수염. 나이 지긋한 남자의 모습, 누구에게나 신뢰를 줄 법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데 텔레르나 님은 연세가 어떻게 되나요?”
“허허, 연세라니. 뭐 제 나이는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비밀이랍니다. 알지요? 저는 초창기부터 운디르나 마스터님을 보좌하고 있으니까요.”
“네……”
아쉽다. 2181살이 맞는지 묻고 싶었는데, 아마 도시보다는 더 나이가 많겠지.
텔레르나 씨는 마이페이스에 천연인 운디르나 선배님보다 신사적이고 깔끔하게 인간 세계를 소개해 주셨다.
물론 그래서 재미는 없었다. 시엘과 소멜은 설명을 듣다가 잠들 정도였으니까.
판타지형 RPG 풍의 도시는 의외로 현대적인 부분이 강해서 신비했다. 상수도나 하수도가 있고, 냄새도 그렇게 크게 나지는 않았다.
인간들의 도시는 거의 모든 자원을 던전에서 조달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도시는 그 주변에 거대한 던전이 있다는 뜻이고, 갑자기 도시가 망하게 된다면 그 던전의 코어, 즉 마스터의 심장이 파괴되거나 조난되었다는 뜻이다.
이건 인간들의 기준으로는 상당히 느리게 쇠퇴가 진행되지만, 마스터나 네임드 급의 몬스터들은 불로불사이기 때문에 순식간에 멸망하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그…… 정말 저희는 불로불사인가요?”
“그렇지요. 물론 저는 나이나 성격에 맞게 겉모습을 꾸밉니다. 저는 이외에도 여러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답니다.”
텔레르나 씨의 몸이 화려한 물색으로 빛이 난다.
곧바로 텔레르나 씨가 변신한 건, 아리따운 프렌치메이드 풍의 여인.
그렇다면 소멜도 인간형으로 변신할 수 있을는지, 미래가 기대된다.
“자, 이제 슬슬 시간도 밤이 되었는데, 호텔 쪽으로 가실까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실 수 있나요?”
아무래도 나 자체도, 겉모습과 속 모습이 일치하지 않아 적응되지 않는다.
이렇게 보니 강제로 텔레르나 씨까지 여장시키는 느낌이 든다.
텔레르나 씨는 미소를 지으시더니 다시 나이 지긋한 신사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서서히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고, 땅거미가 빠른 속도로 도시에 지기 시작한다.
“뭐 호텔 자체는 우리 몬스터들의 휴식처와 큰 차이가 없으니 이용하시긴 편하실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로선 오히려 인간 쪽의 기분이 편하긴 하다.
호텔의 카운터에 가서, 카운터를 보는 양복 입은 신사에게 체크인하고 방을 배정받는다.
하룻밤에 금화 1장, 무려 검의 절반이나 되는 가격이지만, 텔레르나 씨는 시원스럽게 내신다.
하긴 우리에겐 DMP라는 통화가 따로 있으니 인간의 통화 기준이란 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방에 들어오면, 한참 동안 설명을 들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던 시엘과 소멜이 까르르 웃는다.
“헤헤, 주인님 얼굴에 머 묻었어!”
“미야아아아!”
“대체 뭐가 묻었다는 소리야?”
저 네임드들이 대체 나에게 무슨 짓이라도 한 건지, 일어나 거울 앞에 다가갔다.
하지만 거울에 내 모습이 비치지 않는다. 던전 안의 거울과 밖의 거울은 다른 걸까? 만져보니 유리라는 느낌 자체는 비슷한데, 이상하다.
어쩌면 밤의 서큐버스여서…… 그런 생각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닦아줘, 명령이야.”
“흐으음- 장난이에요! 아하하 주인님.”
“그런 장난 앞으로 치지 마? 자꾸 그러면 감각 공유로 볼 거니까?”
시엘을 적당히 혼낸다. 그래도 시엘은 울지 않고 방긋방긋 웃는다.
겉모습은 10살 남짓한 엘프의 모습이지만, 태어난 것 자체는 이제 2일째이다.
나도 2일째이지만, 아무래도 아직도 몬스터, 그러니까 서큐버스인 내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심심하면 꼬리가 걸리고, 게다가 옷도 자꾸만 말려 올라가 엉덩이가 드러난다.
입고 있던 티셔츠의 아랫단은 벌써부터 늘어나 팔랑팔랑 원피스처럼 변했다. 그래 원피스라.
“메뉴 나와라.”
아직도 ‘메뉴’라는 말이 포함된 말을 해야 메뉴 창을 불러낼 수 있다.
내 앞에 홀로그램으로 그려진 메뉴 창을 볼 때마다 신비한 느낌이 든다.
DMP는 어느새 24000 정도를 나타내고 있고, 나는 DMP 버튼을 눌러 다시 옷을 살펴본다.
“흐흐…….”
괜히 흐르는 침을 꿀꺽 삼키고 옷들을 바라본다.
야한 걸 봐서 그런 게 아니다. 서큐버스의 옷은 다들 그런 것들밖에 없으니까 그럴 뿐이다.
그래 내가 찾으려는 건 원피스, 혹은 가리는 부위가 많은 옷.
옆에서 시엘과 소멜은 보이는 눈치는 아니라 누운 채로 옷을 찾아본다.
“흐으으음......”
하지만 아무리 봐도 서큐버스가 밤 중에 남자의 정기를 빼앗기 위한, 그런 종류의 야한 옷들밖에 없다.
별로 내 마음에 내키는 것들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던전 안에서 거울을 보면 내 모습, 아무리 봐도 어린 애였다.
그런 옷들은 어린애한테 입혀봤자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만 있을 뿐이다.
“후……”
슬슬 짜증이 나서 다시 돌아가 여분의 용도로 쓸 긴 티셔츠를 꺼낸다.
그런데 인간의 장비를 찰 수 있다면, 인간의 옷도 입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이왕이면 밖에 나가서 살려고 창밖을 보니, 해가 넘어가자마자 사람들은 문을 닫는다.
술판이나, 유흥업소 등의 야시장이 열리는 게 아니라, 모든 문이 닫힌다. 조용히 창밖으로 빛도 안 내고 다들 잠을 자는 것 같다.
게다가 운디르나 선배님이 밤중에 해일을 일으킨 적이 있는지 죄다 쇠문으로 잠겨 있다.
다시금 느끼지만, 여기는 현대 도시가 아니다.
한숨을 쉬고 돌아와 다시 눕는다. 눈을 감으면 쿵쿵 뛰는 심장이 느껴진다.
이 심장이 나중에 던전의 코어 보석이 되어 자라나고, 아름답게 빛이 내며 던전을 구성한다니 신비한 느낌이 든다.
그런 잡생각을 품으니 잠이 안 온다. 벌써 나는 잠이 없어진 걸까?
하지만 그 기대감은 순식간에 몰려갔다. 곧바로 몸의 피로가 느껴지며 나는 쓰러지듯 잠에 빠져버렸다.
========== 작품 후기 ==========
이번 작은 미믹 때처럼 제 개인적인 욕망(참신한 설정과 막장 전개들)을 전부 죽이고 씁니다.
다들 어디서 본 듯한 전개에 어디서 본 듯한 설정들 위주로 가고 있습니다.
게임 시스템 자체는 둥읍읍이랑 심x티, 그리고 각종 디펜스 게임에서 따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