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2 <-- 물의 도시 - 운디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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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마구 눈을 두들기기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보인 것이지만, 이불이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다.
하체는 침대를 향한 채 엎드리고, 허리는 꼬여 상체는 공중을 향한 채 자고 있었다.
잠꼬대가 심했다고는 생각하지만, 허리가 상당히 유연하다.
음음, 아무튼 이불이 저렇게까지 멀리 날아가는 걸 보니 분명 마법적인 힘이 작용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날개와 꼬리를 부르르 떨고 일어나자 도시의 정경이 밖으로 보인다.
또 말려 올라간 티셔츠를 일부러 누르고, 추위가 느껴지는 듯해 위에 하나를 더 껴입었다.
그래도 아래는 춥다. 안정되지 않아 바지라도 사고 싶다.
“일어나! 시엘, 소멜.”
“흐므으으으-“
“더 잘래요, 잘 자요.”
나도 아침엔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제는 사람은 아닌가 싶지만, 인데 이 녀석들은 더 못 일어난다.
일어나라고 해도 알아먹을 것 같지 않으니 수납 기능으로 손아귀에 넣었다.
수납 기능은 편리하다. 원래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걸까?
그대로 밖으로 나와 호텔 로비에서 베히모스 신사 텔레르나 씨를 만났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에 재빨리 달려갔다.
굳이 신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이 네임드의 곁에 서면 편안하고 보호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세이나 마스터님. 오늘은 마스터님이 바쁘셔서 훈련 자료를 넘겨주시지 않으셨는데 말이죠. 그래서 자유 시간입니다. 홀로 마음껏 다녀보세요. 인간들이 쓰는 돈이라도 드릴까요?”
“음…… 네. 그런데 정말 저 혼자 다녀도 괜찮을까요?”
텔레르나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텔레르나 씨에게 건네받은 금화 자루는 엄청나게 무거웠다. 겉으로 드러난 금화의 음각만 봐도 상당한 양으로 보인다.
금화자루에서 금화를 하나 꺼내보니, 운디르나 선배님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금화는 이 도시에서만 쓰이는 걸까요?”
“금 자체 순도 100%이기 때문에 다른 도시에서도 쓸 수는 있겠지요. 다만 화폐보다는 금화라는 가치가 더 남겠지만요.”
“다른 도시도 가볼 수 있을까요?”
“……그건 다른 던전 마스터님들과의 만남이 있으면 해결되겠지요. 마스터들에겐 특이한 냄새가 난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
특이한 냄새라니, 서큐버스라서 수컷을 끌어당긴다는 소리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니, 텔레르나 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뜻은 아닙니다. 심장을 가진 어린 마스터님들껜 엄청난 힘이 느껴지거든요. 힘의 냄새. 그걸 노리고 심장을 빼앗아 마스터가 되려는 네임드들도 상당히 많답니다. 저희 운디르나 마스터님처럼 강인한 분이 통치하는 던전이 아니라면, 네임드들이 당신을 노릴 수도 있지요.”
그 말을 듣자, 지금 손아귀에 있는 소멜과 시엘이 생각난다.
귀여운 아이들, 하지만 언젠가 내 뒤를 찌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등골이 얼어붙는 듯, 털이 곤두서며 닭살이 돋는다.
역시나 이번에도 텔레르나 씨가 내 등을 쓸어주며 안정시켜 주었다.
“하지만 처음의 네임드는 아니지요. 당신은 좋은 마스터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 정도로 휘하의 네임드들이 마스터에게 저항하는 경우는 DMP를 거의 얻어오지 못하거나, 다른 도시에서 온 미약한 마스터를 사냥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제가 오늘 정말로 도시 안을 돌아다녀도, 다른 운디르나 선배의 네임드들에게 당할 염려는 없다는 뜻인가요?”
텔레르나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음직스러운 그 모습에 마음이 놓였지만, 그래도 뒤통수가 얼얼한 기운은 가시지 않는다.
마스터의 심장, 그 마력석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격당할 위험성이 증가한다는 소리이니까, 내 몸은 내가 잘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운디르나 선배님께선 다른 마스터들을 길러내셨었나요?”
“……”
갑자기 텔레르나 씨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운디르나 선배님이 지켜보고 있던 걸까, 험악해진 텔레르나 씨의 인간형 표정에 나도 모르게 주저앉을 뻔했다.
텔레르나 씨는 강하다. 지금의 나는 텔레르나 씨에게서 뻗어 나오는 기운만으로 눌릴 만큼 강하다.
물론 마스터이기 때문에 내가 나중에는 더 강력해지겠지만, 혹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힘 차이는 매우 크게 난다. 그런 상황에서 무서운 표정을 보니 무릎에 힘이 자연스레 빠져버린다.
“그 이야기는...... 그래, 잠시 마스터와 감각 공유를 끊고 이야기해야겠군요.”
“아아...... 심각한 이야기였나요?”
텔레르나 씨는 고개를 숙이고는 눈을 감고 잠깐 ‘윽’ 소리를 내신다.
아무래도 조금 후에 운디르나 선배님이 나타날 것 같다. 텔레르나 씨는 주변에 아무도 들리지 않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세이나 님까지 총 9번의 마스터님들을 기르셨습니다……”
“……”
나는 그저 귀를 기울여, 매우 작은 소리로 읊는 텔레르나 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체크아웃 시간은 한참 남아서인지, 호텔 로비는 매우 고요했다.
“그중 첫 다섯 분은, 운디르나 마스터님의, 제 동생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마스터님의 손에 붉은 이슬로 사라졌지요.”
“아……”
“생각해보면, 운디르나 마스터님이 난폭해진 것도 그때쯤이었을 겁니다. 그 후엔 마스터가 생기지 않도록 던전 구조를 변형시키며, 강렬한 기운이 모이지 않도록 조심했지요.”
“……”
나는 텔레르나 씨의 독백이 너무 무거워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들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여섯 번째 마스터님이 태어나셨습니다. 1500년 전의 이야기군요. 하지만 그분은 강렬한 기운을 받지 못해 미숙아였죠, 전투 훈련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그분들은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에 태어나신 쌍둥이십니다. 그분들 또한 미숙아 마스터였기 때문에 던전을 만드는 방법을 몰라 마스터님께 길러지고 있답니다.”
“아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어난 게 당신이지요. 강인한 기운이 강제로 모이도록 하여 만들어진 마스터. 그게 세이나님입니다. 지금의 운디르나 마스터님께선 세이나님을 누구보다 아끼고 있어요. 여태까지 보았던 새로 태어난 마스터 중에는 가장 뛰어나신 분이니까요.”
“……”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텔레르나 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운디르나 선배님이 뒤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무서운 손짓을 하자, 텔레르나 씨가 물보라의 형태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선배님! 텔레르나 씨는…….”
“응, 잠깐 돌려보내는 거야. 오늘은 바빠서 말이지, 으휴. 텔레르나도 하루만 빌릴 게. 인간들이 지금 동쪽 사원 부근에서 너무 난장판을 피워 놔서 바쁘거든.”
뭔가 대답하고 싶은데, 운디르나 선배님의 평온한 표정을 보니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입을 열었다. 이때가 아니면 이야기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 그러니까, 저는 꼭 독립할게요.”
“……!”
운디르나 선배님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물 정령이어서 그늘이라기보단 물의 투명도가 낮아졌다는 느낌이지만, 확연히 어두워 보인다.
하지만 곧바로 웃음을 지으셨다. 그리고 나에게 달려와 안는다.
“아니, 나는 우는 거 아니야. 그냥 세이나를 안고 싶을 뿐이니까.”
물 정령 선배가 훌쩍이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다만 목소리를 형성하는 기관이 막힌 듯, 저 멀리 동굴에서 들리는 것처럼 흔들린다.
내가 괜한 말을 한 게 아니길 빈다. 그리고 운디르나 선배님을 괜하게 울린 것도 아니길 빈다.
그저 게임 세상과 비슷한 이 세상에서는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내 다짐을 말했을 뿐이다.
“그, 그래도, 나는 바쁘니까. 일단, 일을, 해결하고 올게, 하루 정도, 걸릴, 거야. 알았지?”
말을 버벅거리는 운디르나 선배님을 다시 안았다.
차가운 물, 그리고 물컹거리는 몸이지만, 당황하셔서 그런지 조금 뜨겁게 느껴진다.
“도시는 맘대로 돌아다녀도 되는 거죠? 그…… 네임드들을 만난다거나.”
“응, 다른 도시의 네임드들은 전부 던전 안에 들여놨으니까 괜찮아.”
“다른 도시의 네임드…… 혹시 마스터끼리 네임드를 교환하기도 하는 건가요?”
“응…… 그래서……”
다시 운디르나 선배님이 눈물을 흘린다. 괜한 말을 한 것 같아서 일단 등을 토닥여드린다.
“괜찮아요, 저는 꼭 살아남을게요. 바쁘시니까 일하러 다녀오세요.”
“응응, 알았어……”
울보 같은 2천 살 선배님을 달래서 던전으로, 일터로 보낸다.
던전이라고 해 봤자 거창한 게 아니다. 이 도시의 바로 밑에 있으므로 바닥으로 스며든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나는 심호흡을 쉬고 짤랑거리는 인간들의 금화 주머니를 살펴본다.
조금 기분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아마 나의 네임드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다.
선배님을 생각하면 마치 인간 시대 때의 음울한 기분이 살아나지만, 지금은 잊고 싶어진다.
손에 돈이 많으니, 마치 전 세계의 재벌 2세가 된 듯한 느낌으로 바깥 거리로 나선다.
========== 작품 후기 ==========
자꾸 제목이 바뀌는 것 같지만 착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