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3 <-- 물의 도시 - 운디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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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로 금전 주머니를 들고 호텔에서 나온 뒤,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네임드들을 풀어내기 위해 [수납해제]를 했다.
그제야 멍한 상태로 일어난 시엘과 소멜은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하으암- 주인님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
“미야아아아-“
“아하하, 설마 울은 거야?”
조금 전에 운 탓에 얼굴이 조금 부었을 뿐이다.
이 마스터님의 깊은 마음을 물로 아는지, 나의 네임드들은 깔깔거리며 웃는다.
차라리 어린아이처럼 네임드들이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그게 아니야, 너희들을 데리고 인간 마을을 구경하러 갈 거니까.”
“우와! 그러면 주인님! 우리 맘대로 인간들을 죽여서 DMP를 얻으면 되는 거야?”
“미야아아아!”
소멜도 시엘의 말에 동의하는 듯 너무 생글생글 웃으면서 대답한다.
하지만 이번 목적은 그게 아니다. 그저 인간 세상에서 사치를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일단 옷을 사야 한다. 지금 입은 긴 티셔츠는 아무래도 하체 방어력이 너무 낮다.
“아니, 아니라고! 뭐 우리를 정말로 건드리려는 인간들은 죽여도 되지만, 그 외의 인간들에게는 절대로 공격하면 안 돼.”
“흐음, 주인님 나 그냥 수납되면 안 될까?”
금빛 눈동자를 빛내는 엘프가 침울한 듯 나를 바라본다.
인간 시절처럼 차라리 내 몸이 컸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나와 시엘의 키는 같다. 몸집도 비슷하다. 어린애 체형이다.
그래도 내가 일단은 어미? 이니만큼, 시엘을 토닥이며 달랬다.
“울지 마, 뚝.”
“안 울거든! 주인님이나 울지 마, 눈 주변에 빨개진 거 다 알아.”
괜스레 심술이 나서 시엘을 안는 김에 꼬리로 꽉 등 쪽을 찔렀다.
시엘이 꼬리에 맞고 따끔했는지 어깨를 움찔 떤다. 장난기가 발동해 괜히 웃음이 키득키득 나온다.
“주인님…….”
“왜, 시엘? 가자, 여기서 잡담하다간 인간 세상도 다 못 둘러볼 거야.”
살짝 시엘의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라도 오른 것 같지만 아무 일도 없으리라 믿는다.
일단 처음에 들른 곳은 아무래도 옷 가게다. 하체 방어력이 높은 옷을 입고 싶었다.
그래서 들른 옷 가게는, 이상하리만치 게임 시절에 보았던 캐시 상점과 비슷한 분위기가 났다. 싸구려 금빛 장식들이 가득하고, 눈을 부시게 만들 정도로 화려한 옷들이 걸려 있다.
“어머, 귀여운 아이 둘이네, 뒤쪽에 있는 몬스터는 애완동물이니?”
귀엽다는 말이 아직도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 시절의 몸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 관리 안 한 몸보다는 이런 보송보송한 어린 서큐버스의 몸이 매력적인 건 사실이니까.
그저 외모를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하자는 느낌으로 주인장에게 대답했다.
“네, 친구랑 같이 왔어요!”
“헤에-“
시엘의 대답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 보니 시엘의 얼굴이 빨갛고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설마 내 꼬리에 전갈처럼 독이 달렸다는 건 아니길 빈다.
“그래, 음, 공주님들을 위한 옷은 저 안쪽인데, 같이 가 볼까?”
“네…….”
그래도 공주님이라는 말까지는 듣고 싶지 않다. 돈은 있으니 빨리 골라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안쪽에 드니, 어린이들을 위한 매장이 있다. 바깥쪽에 화려한 드레스들과는 달리, 어린이용 옷들은 아직까지 어린이들에 대한 인식이 낮은지 차분한 원피스 풍의 옷들이 많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어떠니? 너한테 딱 어울릴 것 같아.”
“아니…… 제가 고르면 안 될까요? 이 친구 것도 제가 고를게요. 돈은 있으니까.”
“어머 어머, 당찬 아이구나. 그럼 맘껏 고르렴!”
환혹의 돌이 있는데도 일반인보다 뛰어난 외모로 보이는 건지.
아니면 손님 자체가 귀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안내원을 떼어버리는 데는 성공했다.
시엘의 손을 억지로 끌고 가서, 무릎까지 오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고른다.
웬만하면 활동하기 쉽고, 가랑이 사이에 바람이 들지 않는 바지를 고르고 싶었지만, 하체 방어력을 올려주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스읍……”
그리고 나는 잠시 기억을 잃은 것 같다.
점원을 어떻게든 떼어 놓고 나오니, 내 손엔 수많은 옷이 쇼핑백에 잔뜩 들려 있었다. 이걸 어떻게 들지 생각하다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숨어들었다.
시엘은 다시 멀쩡해져 활발해졌다. 정말 기억을 잃은 사이에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후…… 수납 기능을 이런데 쓸 줄이야.”
“주인님 뭐 하는 거야?”
“짐 들어주기. 이 물건들은 장비 취급이 되니까, 스켈레톤들에게 둔기 형식으로 들게 하고, 내 [수납]을 이용해 들게 만드는 거야.”
“으음?”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활용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DMP 메뉴를 열어 스켈레톤을 소환하고, 물건을 들게 한 뒤에 손아귀에 [수납]으로 집어넣었다.
무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온몸에 주렁주렁 달려 있던 쇼핑백들은 효율적으로 스켈레톤이 든 채로 내 손아귀에 사라졌다.
“다음은 어디 갈 거야?”
“음……”
솔직히 하체 방어력을 높인 이후는 생각하지 않았다.
도시의 명소를 살펴볼까 하다가, 어린이들은 그런 곳에선 지루함을 쉽게 느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놀이공원이 있을까, 도시의 정보창을 켜고 이리저리 만지니 도시의 구획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로 놀이공원이 있었다.
놀이공원의 이름도 [물 지옥]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놀이공원, 이상하게 지하에 있다.
설마 확인해 보니 놀이공원은 [던전]으로 분류되어 있다.
“……?”
놀이공원이야 인간들이 스릴을 쉽게 느끼는 장소이다.
아마 그런 감정도 에너지로 뽑아낼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세상이라고 생각되는 ‘던전 온라인’에 영감을 주었다는 모 타이쿤 게임의 인간 수몰시키기가 생각나서 진땀이 난다. 여기만은 피해야겠다.
“주인님, 어디 가는 거야? 심심해!”
“미야아아아!”
“저기 지나가는 인간들 죽여도 괜찮은 거지?”
“아니……”
빨리 아무 곳이라도 가서 저 아이들의 관심을 끌어야겠다.
옷 가게는 내 항마력이 딸려서 힘들었으니 영화관이 있을까 싶어 보았지만, 영화 따위가 이런 판타지 풍의 세계에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계속해서 찾다가, 콜로세움이 광장에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발견했다.
정보창을 열어 보니, 콜로세움에 대한 정보가 간단하게 나온다.
건물 이름: 물의 콜로세움
건물 나이: 1867 년
건물 용도: 전시 및 모의 전투
건물의 등급: A
전 세계에서도 콜로세움이란, 검투사들이 사자 따위와 싸우며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장소로 유명했다.
아무래도 냉병기와 마법만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보니, 인간들의 능력도 알 겸 가보는 게 어떠냐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엔 콜로세움으로 가보자.”
“그게 뭐야? 코로세우? 먹는 거?”
“미야아?”
역시 어린아이인 네임드들에게 천 마디의 말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게 낫다.
네임드들의 앞에 서서 길을 앞서가자, 아이들은 나를 따라온다.
그런데 소멜은 계속해서 시엘에게 안긴 채러 오는 걸까? 항상 내 뒤에서 따라와서 소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항상 시엘이 안고 있었고, 그러면 시엘의 팔이 아프니 내가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뒤돌아보니, 소멜이 공중에 붕 뜬 채로 날아오고 있었다.
“…… 소멜, 너 그러다가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 않을까?”
“미야아아! (괜찮아!)”
어째서 내가 소멜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뭐 내가 마족이니 몬스터가 되었다는 사실은 지금 엉덩이 뒤쪽에서 마구 움직이는 꼬리만으로도 알겠는데, 인간이 아닌 말까지 이해하니 약간의 현기증이 난다.
적당히 괜찮다고 생각하고 걸어가다가, 자꾸만 누군가가 꼬리를 쪽쪽 쪼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면 소멜과 시엘이 얼굴을 붉히며 히히거리고 웃는다.
“너희들, 그만해!”
혹시나 싶어 내 꼬리에 대한 정보도 있을까, 꼬리 쪽에 정보를 찍어 보니, 역시나……
서큐버스의 꼬리
효과: 끝에 독약이 맺혀 찔리면 미열이 오르고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정력에 좋으며 불감증을 해소해준다.
아무래도 둘 다 독약을 먹고 저렇게 된 것 같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고민하기보단, 재빨리 주변 공간을 세피아 색으로 물들였다.
시엘의 능력을 생각하면 나는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기억을 잃은 것도 아마도 시간을 빨리 감아서일 테고, 정말로 나는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돌리지도 못한 채 땀이 나서 그만두었다. 소멜이 공중에 든 걸 확인하는 시각으로 돌아왔다.
“후…… 소멜, 시엘, 너희들 내 꼬리를 쫄 거면 하지 마.”
“힛……”
“미야아……”
두 네임드는 들켰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린다.
심한 장난은 치지 않게끔 자주 되돌려서 혼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4-5연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