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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27화 (2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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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생각해보니 숙제라기보단 전에도 시간 마법을 남들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들었었던 것 같다.

그래도 터무니없이 다른 마스터들을 속인 선배님을 보니 조금 떨리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감정이 마구 뒤섞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 시간의 정수로 뽑아낸 네임드들은 나에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제 정수로 만드는 네임드는 다른 마스터에게 들키면 안 되는 건가요?”

“아, 고유 스킬이 없어도 종족 스킬로 네임드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DMP로 만들 수 있는 몬스터들이 네임드로 성장하기도 한단다?”

“아아……”

“그러니까, 당분간은 꿈 정수도 활용하면서 뽑도록 해. 네 던전이 완벽하게 사람들을 수용하고, 다른 마스터에게서 보호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야.”

“알겠습니다.”

네임드와 관련된 내용은 게임상에 없었으니 선배님에게 듣는 내용만으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저번에 들었던 설명이 아닌 것 같지만, 운디르나 선배님이 생긋생긋 웃으시기에 태클을 걸 수가 없었다.

선배님이 나를 두고 입구에 들어서자, 나도 뒤따라갔다.

선배님은 첫 방에 들어서자마자 푹신푹신, 포근하게 생긴 슬라임 셋을 껴안으며 쓰다듬으신다.

“어라, 귀여운 쁘띠 슬라임들이네? 세이나?”

“네…… 아아, 네 헤헤……?”

“쁘띠 슬라임의 진화 조건은 상당히 까다로운데……. 얘네들은 인간들이 애완동물로 쓰는 만큼 귀한 아이들이거든. 혹시 세이나는 던전이 아니라 테마파크를 꾸미는 거 아니지?”

“하하, 무슨 소리를……”

원래는 잔혹한 리얼 슬라임을 넣고선 들어오는 모든 인간들의 무기와 방어구를 녹여버리려고 했을 뿐이다.

뭐, 결과는 쁘띠 슬라임 셋이긴 하지만, 쁘띠 슬라임은 게임 속에선 못 봤고, 비슷한 기능을 하긴 하니 맡겼을 뿐이다.

“아무튼, 안 돼. 이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지키는 몬스터로 쓰기는 무리.”

“네? 그럼 제 던전의 첫 방이……”

슬라임 함정 방으로 꾸미려고 했던 계획이 휴짓조각이 되어버렸다.

선배님은 쁘띠 슬라임들을 만지작거리며 생글생글 웃으신다.

화가 날 뻔했지만, 저런 아름다운 물 정령 선배님의 표정을 보면 그런 마음은 쏙 들어가 버린다.

“혹시 세이나, 슬라임을 소환해보지 않을래?”

“네…… 알겠습니다.”

메뉴를 빠르게 열어 몬스터 소환 탭에서 슬라임을 소환한다.

항상 같은, 소환진이 그려지며 나오는 슬라임, 분명히 처음 부분이 나올 때는 리얼한 괴물 슬라임이었는데 곧바로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쁘띠 슬라임으로 순식간에 바뀌어버린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왜 고개를 끄덕이시는지는 모르겠다.

“하하, 아무래도 소멜때도 그랬지만, 세이나는 우리도 모르는 고유 스킬이 있는 것 같아.”

“……?”

방금 전에 소환한 쁘띠 슬라임이 나에게 달려온다.

‘물컹‘하고 안긴 쁘띠 슬라임은, 물 정령인 운디르나 선배님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달려왔기에 대처하지 못하고 안아버렸지만, 아이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내 몸이나 옷을 녹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푹신푹신, 귀엽다는 느낌이……

“코어 쪽으로 가면서 이야기할까? 세이나의 코어를 보여주기 싫다면, 분명히 네임드들이 자는 방이 있겠지?”

“네……”

나는 나에게 안긴 녹색의 쁘띠 슬라임을 만지작거린다.

겉면은 젤리 같은 슬라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선배님의 주변에도 세 마리의 쁘띠 슬라임이 붙어있다.

쁘띠 슬라임의 안쪽에는 마력석이 반투명하게 보여서 누가 봐도 약점이라고 알 법하다.

“세이나, 그렇게 조용히 갈 거야? 던전 구조를 설명해주지 않을래?”

“그, 그래요, 1층은 5개 방으로 만들었어요-“

나는 선배님의 물음에 대답했다. 계속해서 1층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스켈레톤 킹의 방이 나온다.

“여기에서 2층으로 내려가요.”

“오호, 벌써 복층 구조로 만들었구나. 흐음- DMP 소모가 꽤 컸을 것 같은데 괜찮니?”

“안 그래도 밥도 먹기 힘들 것 같아요. 아이들이 많이 먹거든요.”

“아이들이라니, 하하, 네임드들에게 너무 과한 애정을 주는 거 아니니?”

선배님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귀여운 아이들을 맘대로 내버려 두거나 버릴 수는 없는 법이다.

“참,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또 네임드를 소환하지는 않았지? 최소 1년 반 정도는 휴식하는 게 좋아. 웬만하면 코어 주변에 붙어있고. 몸은 코어에서 충전하듯이 에너지를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어쩐지, 코어 주변에서 쉬다가 밖으로 나올 때는 마치 심장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지만, 선배님과 돌아올 때는 다시 언데드가 된 것처럼 몸이 차가워진다.

“그러면 저는 코어 주변에서 쉬어야 하는 건가요?”

“그래, 코어 사용법을 알려줄 테니까, 당분간은 몸이 나을 때까지 코어 옆에서 쉬는 게 나아. 이번에도 깜짝 놀래주려고 왔는데 이렇게 나와서 내가 더 놀랐잖니.”

“……”

“세이나, 그렇게 생각하는 표정 너무 이뻐! 후후”

나는 또 선배님께 안기는 인형처럼 안겨버렸다.

왜 이렇게 던전 마스터가 되고는 나를 안는 사람들이 많은지, 네임드들과 감각 공유를 통해 봤었던 내 서큐버스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조금 자제해주었으면 좋겠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을 통해 나와 운디르나 선배님, 그리고 선배님의 네임드 둘이 내려오고 석실로 만든 나의 스위트룸에 도착했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보자마자 뭔가 생각하는 듯 나를 바라보신다.

“세이나, 이건 너무 사치인 것 같아.”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코어는 여기 있는 거니?”

선배님이 유리 바닥이 있는 곳 위에 선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선배님의 옆으로 간다.

그러자 코어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가 느껴지며 마음이 차분히 채워지는 느낌이다.

“절대로 뚫을 수 없겠네. 이래선 코어를 쓰는 방법을 알려줄 수 없잖니?”

“으…… 알겠어요.”

유리 필드 위에 놓인 시간의 정지를 해제한다.

그런데 여기 쓰인 시간의 마법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선배님께 여쭤보려고 하는 순간 선배님이 입을 열었다.

“세이나는 여길 걱정하는 거지? 물론 괜찮아. 보통은 여기까지 오기 전에 다들 죽을 테니까.”

“…… 벌써 몬스터들을 파악하신 건가요?”

“그래, 네가 도망치게 한 인간들, 그 녀석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최대 D급이겠지. 그런 녀석들은 내가 준 병력들을 이용하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니까 걱정 말렴!”

운디르나 선배님이 엄지를 척 올리며 방긋 웃으신다.

천연 같은 선배님의 모습은 항상 밝고 아름답게 빛난다. 그리고 주변을 푸근하게 품어주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우리는 그대로 열린 유리 바닥을 통해 코어가 있는 부분까지 내려온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자신의 네임드인 텔레르나 씨와 아리에타 씨에게 오지 말라고 손으로 막았다.

“저 두 분은 믿을 수 있잖아요?”

“아아, 세이나. 코어, 특히 몽마의 코어는 남에게 보여주면 안 된단다. 사실 나에게도 보여주면 안 돼.”

선배님의 말투가 갑자기 차가워진다. 분위기도 차가워진다.

마치 일부러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지로 억누르시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선배님을 데리고 코어가 있는 방까지 내려온다. 우리 눈앞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보랏빛 다면체 수정이 거대하게 놓여있다.

“후…… 역시 세이나의 수정은 아름답구나.”

“네! 선배님의 수정만큼은 아니지만요.”

“흐흐, 그래. 여기에 남들을 데려오지 말라는 이유는 욕망 때문이란다. 네 수정은 여태껏 남들에게서 본 적 없을 정도로 마력이 크게 담겨있어.”

“음……”

선배님의 이상한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욕망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신다. 무섭게까지 느껴지는 그 눈이지만, 선배님은 어떻게든 그 끓어오르는 욕망을 참으려는 듯 보인다.

나는 내 수정을 봐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건 내 네임드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선배님의 수정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아…… 세이나, 잠깐 나를 안아주지 않을래?”

“네? 네……”

선배님은 형태조차 제대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흐려진다.

그래서 꼭 안아드린다. 체온이 교환되자 선배님은 다시 형태를 되찾으며 욕망이 점점 사라지는 듯 보인다.

일부러 내 손을 잡으면서, 선배님은 내 코어를 바라본다.

“음, 그래, 이제 괜찮아. 몽마의 코어는 생명체의 욕망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거든.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야. 나도 방금 덮쳐버릴 뻔했으니까.”

“그……렇군요.”

“일단 너에게 코어 쓰는 방법을 알려줘야 하니 왔지만, 다음부터는 여기 아무도 데려오지 말렴. 여기는 너만 와야 해. 만약에 엄청나게 먼 미래에 후배 마스터가 태어나도 코어에 데려올 때는 주의하렴.”

“네.”

운디르나 선배님은 물 정령인데도 심호흡을? 하고는 코어를 바라보며 말씀을 이어가신다.

“그래, 어디서부터 설명할까? 세이나가 저번에 보았던 던전의 구조 보는 방법부터 할까?”

정말 선배님께선 내 머릿속에 들어와 계신 걸까? 궁금한 점만 딱딱 골라서 말씀해주시는 게 무서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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