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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48화 (48/95)

00048 <-- 전쟁을 멈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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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로 매워진 성벽, 군데군데 부서진 곳이 많아 이제는 돌담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정도로 허름한 벽 위에 인간 병사들이 대기 중이다.

그들의 속에, 다섯에 하나꼴로 숨어있는 전쟁 마법사는 일반 병사와 크게 다르지 않게 거친 장비를 입고 걷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저질 체력을 드러내기에 구분하기 쉽다.

아무리 젊은이들이라지만, 마법의 탑에서 평생을 책과 함께 보낸 이들이다. 매일같이 육체단련을 하는 일반 병사나 용병들과는 엄청난 체력 차이를 보인다.

일반 병사들은 그렇기에 무거운 갑옷을 입고, 헉헉거리며 걷고 보초를 보는 전쟁 마법사들을 ‘비실이들’라고 부른다.

“알겠지요? 일단 전쟁 마법사들의 구분은 그렇답니다.”

“언니 역시 인간에 대해서는 잘 아네!”

“치, 인간은 그냥 구분 없이 죽이면 되는 거 아니야?”

“아니, 그러면 안 돼, 타피. 일반 병사들까지 학살이 일어나면 에크렌스 왕국에서 주변을 뒤질 테고, 그러면 우리 던전을 찾게 될걸?”

“네, 이 주변은 곡창 지대라서 전쟁이 작게 일어나는 것일 뿐, 이점은 인간들로 치면 중간 정도인데 에크렌스 왕국은 일반병까지 죽게 되면 그만한 수를 보낼 수 있는 강국이랍니다. 그렇기에 우리 던전을 찾고 정예병들을 보내기 시작하면……”

르테아 언니는 부들부들 떤다. 타피는 왜 그런 걸로 떠냐고 한숨을 내쉬고, 시엘은 타피를 나무란다.

그 옆에는 르테아 언니의 하늘색 머리카락과는 달리 짙은 푸른 머리카락의 소녀가 따분한 듯이 르테아 언니에게 몸을 기대고 있다.

“그래서 언제 도착해요, 지루해, 인간 죽이고 싶어!”

“소멜, 그러면 안 돼. 우리가 준비한 건 역병 작전이거든.”

“역병……? 미야앗? 나는 정화할 거야!”

소멜이 까르륵 웃는다. 시엘의 작전은 타피의 스킬을 이용하는 거지만, 소멜이 가진 스킬로 완전히 정화할 수 있다.

“그래, 소멜, 소멜은 혹시나 건강한 사람이 생기면 정화하면 돼.”

“정말, 정말 그래도 돼, 르테아 언니?”

덤으로 르테아 언니는 상당히 많은 짐을 챙겨왔다. 게다가 입고 있는 옷도 원래 자신이 입던 검은색 다크 프리스트의 정복이 아니라, 흰색 프리스트의 정복이다.

하늘색 머리카락에 어우러져 성녀 분위기를 풍긴다. 인간 시절에는 15레벨 정도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수준이 올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리고 등에 지고 있던 많은 짐을 꺼낸다. 흰색 프리스트의 어린이용 정복들이 나온다.

“미야앗? 이게 뭐야?”

“너희들이 입을 거야. 우리는 치료사인 척 참여해서 인간들이 모르게 역병을 퍼트리고, 겸사겸사 DMP를 얻어 갈 거란다.”

“으으, 다 죽이고 싶은데?”

“타피, 그러면 안 돼요.”

르테아 언니가 처음으로 타피에게 딱 잘라 말했다.

타피는 생각보다 그런 어조로 말하는 데 약하다. 강한 아리에타 언니가 지옥훈련을 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외로 타피가 약해진 모습에, 르테아 언니도 뭉글뭉글해진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저쪽 풀숲에 가서 입고 갈까요?”

“네에에!”

“……”

타피는 우물쭈물, 고개를 숙이고 수풀로 들어간다.

시엘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가, 잠시 옷을 갈아입는 동안은 감각 공유를 끊었다.

“후우…….”

지금 내가 있는 곳은 2층의 석실, 아이들과의 거리가 멀어지니 마음이 굉장히 싱숭생숭하다.

아이들은 던전으로부터 남동쪽으로, 성벽으로부터는 5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갔다.

언니가 잘 통솔해주리라 믿었지만, 생각보다 르테아 언니는 아이들을 달래듯 타피까지 다룰 수 있었다.

사실 언니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타피를 나무라기는 했지만, 타피는 우물쭈물하면서도 르테아 언니의 말을 잘 듣는다. 사실, 감각 공유를 타피에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타피와 감각 공유를 하고 나면 어지럽고 구토 증상이 나올 정도로 민감한 감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타피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꾸준히 타피에게 감각 공유를 걸면서도 매번 적응하느라 애쓴다.

이제 다 입었겠다 싶어서 이번엔 타피에게 감각 공유를 걸었다.

“이거, 이렇게 집어넣는 거예요?”

“네, 팔은 이쪽 구멍으로, 머리는 씌워줄게요.”

“읏……”

타피, 미안해.

일부러 갈아입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어.

그런데 정말 타피의 피부는 병적으로 희다. 아무리 뱀파이어라지만 약간은 홍조가 돌며 건강한 피부를 가진 나와는 다르다.

그보다, 다 입고 난 뒤에, 새하얀 사제 정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은 천사가 따로 없다.

보송보송 촉촉한 피부에, 부끄러운지 약한 홍조가 도는 얼굴. 거기에 흰색 정복을 입자 차려진 듯한 백의의 천사들이 눈앞에 있었다.

정작 현재 시점으로 보는 아이도 그런 천사이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몬스터에게 과연 천사라는 비유를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꼭 내가 있었을 때, 내 앞에서도 그 옷을 입어주었으면 좋겠다.

“이거 불편해…… 그림자도 못 뻗겠어.”

“타피, 이쁘다!”

시엘의 황금 눈동자에 붉은 머리카락에 흰색 정복을 입은 타피가 비친다.

약간 퉁명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시엘 자체도 천사 엘프의 모습.

그런 시엘이 다가와 타피를 꼭 안으니, 그 푹신푹신함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시엘…….”

“타피랑 많이 못 놀았잖아! 이번에 잔뜩 놀자.”

“흐음……”

타피는 시엘의 어깨로 얼굴을 파묻으면서 코를 살짝 돌려 킁킁거린다.

시엘의 달콤한 머리카락 향이 느껴지며 타피의 마음에서 행복함이 느껴진다.

타피와 감각 공유를 하다 보면 나까지도 머리카락 냄새를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위험하다.

“나, 나도!”

타피의 시선이 돌아가 소멜을 바라본다.

소멜 또한 순수함 그 자체로 만든 듯한 분위기, 하나도 때묻지 않은 태초의 순수한 존재가 아닐 듯한 하얀 옷에 방실방실 웃는 얼굴. 그리고 짙은 푸른색 머리카락이 내려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요즘에 소멜이 변신할 때는 익숙해졌는지 지느러미도 숨길 수 있게 되어, 어인처럼 피부에 비늘이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뺨 양쪽에 살짝 푸른색 비늘이 보이기는 한다.

아무튼, 그 아름다운 소멜도 달려들어 안긴다.

옆에서 지켜보는 르테아 언니도 생글생글 웃으며 세 명의 천사를 바라본다.

“우리 이제 일 해야지. DMP를 얻고 인간들을 던전으로 불러오자!”

시엘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타피는 주먹을 꽉 쥔다.

일단 키가 가장 크고 나이도 가장 많이 들어 보이는 르테아 언니를 선두로 나아간다.

르테아 언니도 내 인간 시절 세상 기준으로는 여고생 나이 정도밖에 안 될 텐데, 처음 만든 세 아이가 너무 어린 모습인 탓이다.

돌담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허름한 성문 앞까지 나아가면, 반쯤 금이 가고 부서져 가는 성문이 보인다. 하지만 르테아 언니는 옆으로 돌아 벽에 있는 빈 구멍을 찾는다.

“자자, 여기로. 다들 아무리 화가 나도 조용히 있어야 해요?”

“알겠어요.”

아이들은 다들 그 구멍으로 들어가고, 르테아 언니가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다.

성벽 바로 안쪽은 막사 등이 있는 공간, 점심시간인지 터를 잡고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나누는 병사들이 보인다.

옆에 두고 있는 냉병기들을 보면, 역시 여기는 전쟁 중의 막사라는 느낌이 든다.

르테아 언니는 그 병사들이 사이로 나아간다. 아무도 르테아 언니에게 이상한 눈길을 보내지 않지만, 뒤따르는 아이들을 보면 깜짝 놀란다.

“어이, 거기. 처음 보는 얼굴인데?”

“프리스트는 희소하지요? 저는 견습 프리스트들의 교육을 맡은 아르테라고 합니다.”

“어허, 치료 막사는 저쪽이야. 쯧쯧, 여기가 애송이들이 맘대로 드나들다니, 전쟁이 애들 장난인 줄 아나.”

르테아 언니는 예상한 질문에 고개를 숙이고, 안내받은 프리스트들이 있는 막사로 들어간다.

치료용 막사, 여기는 프리스트들만 있는 건 아니다.

치유 직업군에도 다양한 이들이 많다. 자연의 힘을 이용해 치유하는 드루이드, 빛의 힘을 빌어 치유하는 프리스트, 동양의 의술을 이용하여 치유하는 의사, 마법의 힘을 이용해 치료하는 복원 마법사, 그리고 약초나 약을 만드는 데 지식이 있는 포션 연금술사까지.

다양한 인간의 직군이 이 병소에서 치료하는 중이고, 안쪽에는 더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다.

“언니, 내가 인간들을 치유해야 한다고……”

“쉿, 타피는 그저 붕대를 감아주는 척만 하면 돼요. 건장한 병사는 살리고, 비실비실한 녀석들에겐 역병을 주입할 테니, 제 옆에서 도와주세요.”

“으음……. 알았어요.”

타피의 마지못해 말하다.

매우 바쁜 치료 막사 사람들은 일손이 부족해 프리스트 복장을 입은 르테아를 보자마자 손목을 잡으며 병실 앞으로 데려간다.

물론 프리스트의 복장을 입었기에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지 않는다. 가짜 치유사들이 와서 판을 쳐도 모를 정도로 복잡하다.

“자, 이제 시작이네요. 따라오세요.”

“쯧쯧, 견습들이야? 자네 나이도 얼마 안 들어 보이지만…… 견습들도 참, 전쟁 포화나 맞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막사에서 꽤 오래 일한 억센 중년의 프리스트가 아이들과 르테아 언니에게 다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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