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2 <-- 폐허가 된 세이나 마을 -->
=========================================================================
일주일간 다른 마스터들을 만나며, 그들의 각각 다른 사정과 힘든 일을 공유하고 재미있게 놀았던 시간이 끝났다.
마치 집으로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 텔레르나 씨의 등짝 위에서는 맞바람이 잘 불지 않기에 편안하게 앉아서 올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리림과 저 파티장으로 갔을 때보다도 훨씬 짧게 느껴졌다.
그래도 밖은 볼 수 없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아래쪽을 보면 아찔한 기분만 더 심해진다.
“응…… 세이나, 혹시 저게 네 던전 터일까?”
“네? 벌써 도착했나요?”
“아…… 텔레르나, 천천히 가 보렴.”
텔레르나 씨가 걱정스러운 투의 고동소리를 울린다. 낮게 깔리는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평평한 등짝 끝까지 걸어가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아…….”
어쩐지, 최근에 DMP의 획득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어 있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다리에 힘이 풀려 미끄러져 떨어질 뻔한 걸 운디르나 선배님께서 내 다리를 물로 잡아주었다.
내 눈에 보이는 땅은 오로지 폐허뿐, 그러니까 겉으로 드러난 마을 부분은 전부 불타서 사라졌었다.
중앙에 세로로 깊게 난 검은 구덩이는 리림이 한 번 쓸고 지나간 자리라지만, 인간들의 마을 자체가 부스러져 있다. 그러니까,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텔레르나, 어서 내려가자.”
운디르나 선배님의 목소리에 텔레르나 씨와 함께 바닥으로 내려왔다.
내 던전 입구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마을 사람들만 아는 작은 자연 필드로 가는 입구, 그리고 흙 필드로 가는 입구.
DMP 메뉴를 열어보니 여전히 푸른 동그라미 안의 수치는 오르고 있지만, 마을 자체가 사라진 탓인지 손발에 땀이 난다.
“주인님…….”
“마스터, 우리 던전은 괜찮을 거예요…….”
“타피, 혹시 지상에 남은 인간들은 없니?”
“잡아 올까요?”
“아냐, 있으면 상관없어.”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머리가 반응하지 못한다.
그래도 운디르나 선배님과 포옹을 하고는 머릿속이 맑게 개는 느낌은 들었다.
“세이나, 인간들의 마을이 저렇다고 네 던전이 망가지는 건 아니란다. 여긴 어차피 전쟁터였잖니?”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어차피 인간들은 필요 없었지만, 걱정되는 건 나의 네임드 둘, 르테아 언니와 엘타리스 양.
던전이야 대부분의 인간들은 B등급 모험가 파티가 아닌 다음에야 자연 필드의 절반도 넘어오지 못하고 전멸하기 일쑤니까 큰 걱정은 없다만……
하지만…… 이건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마스터, 저 폐허에 남은 인간 15명. 어라, 한 명은 죽었나 봐.”
“주인님, 여기 죽음의 마력이 가득해, 너무 향긋한 것 같아.”
나도 시엘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죽은 냄새를 향긋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몬스터의 본능이라 그렇다. 하지만, 빠르게 걸으려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느껴진다.
순간 이동기에 빠르게 탈 수 있는 자연 필드 쪽 입구로 가자, 인간들의 시체가 쌓여있어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다.
“악취가 나네……”
“주인님, 저거 다 치워버릴까?”
“아니, 일단 다른 입구를 찾아보자.”
신선한 시체야 DMP가 막 흘러나오던 신체라 달콤한 향이 나겠지만, 저렇게 오랫동안 죽어있어 썩어버린 시체는 그다지 몬스터로서도 좋은 건 아니다.
타피는 입과 코를 막고 있지만, 막고 있는 안에서는 싱글벙글 웃는 것 같다.
나는 흙 필드 입구 쪽으로 오면서, 르테아 언니가 부활을 걸던 프리스트 시설을 보았다.
거기엔 오로지 폐허밖에 없었다.
부서진 골격, 타다 남은 천장, 검게 그을린 바닥, 그리고 만연한 죽음의 냄새.
르테아 언니는 던전에 살아있길, 마지막 순간에는 르테아 언니를 잠재우고 왔으니 괜찮을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섬뜩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흙 필드 입구 쪽에도 시체가 쌓여있기는 하지만, 들어갈 수는 있었다.
타피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기분 나쁜 듯 인상을 쓴다.
“타피, 왜 그래?”
“저 안에, 인간들이 살아 있어.”
“뭐라고……?”
“인간들이 대피했다고! 대체 어느 네임드 녀석이 그런 짓을 한 거야!”
그래도 둘 중 하나는 살아있다고 생각되어, 마음이 놓인다.
입구에는 여전히 스켈레톤 세 기가 있고, 그들은 나를 적대적으로 노려보고 대치한다.
검을 높게 쳐들고, 나를 한 방에 내려치겠다는 기세.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는 쓰레기들아, 죽어라.”
하지만, 시엘이 가치 없다는 듯 쏘아붙이는 말에, 날카로운 바람이 불면서 스켈레톤 세 기를 아작낸다. 그들에게서 마력석을 회수해 DMP를 흡수한다.
그리고 이 방에도 순간이동 장치는 숨겨져 있다. 나는 그곳까지 걸어가 장치가 망가지지는 않은 지 확인했다.
“망가졌네, 마석의 위치가 비뚤어지고, 누가 의도적으로 망가트린 흔적이 있어. 이렇게 숨겨져 있는데 말이지.”
“주인님, 조심해.”
“마스터, 그러면 여긴 어떡하지? 코어를 지켜야 하는 거 아니야?”
두 아이가 던전에 짙은 인간들의 냄새에 걱정하지만, 이 던전에서 미미하게 느껴지는 마력이 나에게 돌아오는 걸 보면 내 코어는 아직도 있다.
메뉴를 열어 흙 필드를 두 칸 더 판다. DMP는 1034597 DMP가 쌓여 있다.
[600 DMP로 흙 필드 2칸을 형성합니다.]
순간이동 장치가 있던 곳으로부터 앞으로 파여있는 두 공간, 그 위에 순간이동기를 설치한다.
아마 모종의 이유로 마을이 전멸하면서 인간들이 던전으로 도망쳐 왔을 테다. 모험가 마을이었기에 필사적으로 도망친 이들은 자연 필드까지 망가트렸을 수도 있다.
순간이동기를 통해 가장 최심부에 있는 석굴로 돌아온다.
“하아…… 집이다.”
마치 온 긴장이 다 풀린 느낌, 폐허를 보면서 걱정했던 게 싹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타피와 시엘도 걱정이 풀린 듯, 편한 기분으로 돌아온 것 같다.
집은 이래서 중요하다. 응, 나의 부동산 만세.
“주인님, 여기 오니까 너무 행복해요.”
“마스터…… 나는 꿈 필드로 돌아가도 될까?”
하지만 먼저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
곧바로 감각 공유를 코어에 걸자, 오랜만에 반응하는 코어의 느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유리 바닥 위에 올라오자, 내 몸이 녹아드는 느낌. 나의 스위트 룸.
떠오른 홀로그램에는 정말로 붉은 점들이 1층 흙 필드와 2층 자연 필드에 가득했다.
거기엔 어떤 푸른 점도 없었다.
“아아……!”
시엘이 눈물을 흘리며 자연 필드, 즉 2층을 나타내는 홀로그램을 이리저리 집는다.
하지만 지도는 마스터의 손에만 반응한다. 붉은 점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다.
내 던전에 들어온 그 피난민들, 기생충이라 생각되는 그들은 꾸준히 DMP를 형성하고 있었다.
일당 4-5만 선까지 떨어진 DMP가, 일주일만에 100만이나 쌓인 원인은 그들이었다.
“시엘, 나가지 마!”
“주인님, 하지만…… 제 몬스터들은…….”
“무리하지 마, 시엘. 일단 확인하고 천천히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그건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그치만…….”
“타피도 내 곁을 지켜 줘, 시엘도. 내가 다 해결할 테니까.”
“마스터만 믿어요.”
편하게 놀다가 돌아오니 집이 반쯤 망가져 있다.
게다가 시엘은 자신의 부하를 거의 다 잃은 것 같다.
그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코어의 마력을 받으니, 천천히 머리가 정리된다.
일단 감각 공유로, 모든 네임드들이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어쩌면 가장 안전한, 4층 불 필드의 리파에게 감각 공유를 걸었다.
곧바로 푸근한 느낌이 든다. 아니, 이 시급한 상황에 몸을 왜 용암에 빠트리고 목욕하고 있는 거야?
‘리파…… 괜찮은 것 같네.’
‘주인, 왜 남의 목욕 장면을 지켜보는 것? 참, 돌아왔구나, 주인.’
‘아냐, 끊을게.’
리파는 여전하다. 그리고 그 리파가 바라보는 불 필드도 딱히 피해는 없어 보인다.
복슬복슬한 꼬리와 귀는 만질 수 있다. 아니, 이게 아니라, 3층의 해변 필드를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소멜에게 감각 공유를 걸었다.
‘미야아아앗! 마스터, 마스터, 마스터어어어!’
‘소멜, 괜찮아?’
‘응응! 마스터 좋아, 마스터가 돌아오다니,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음…… 해변 필드는 어때? 위쪽은 엉망인데 말이야.’
‘여기까지 인간들이 들어오긴 했어, 다 물리쳤지만!’
‘그래, 고마워.’
‘언니들은? 다들 돌아왔지? 그렇지?’
‘응, 보려면 이쪽으로 바로 내려와.’
소멜은 여전히 하이텐션이다. 아리에타 언니도 옆에 보였으니 걱정은 없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남은 둘이다.
엘타리스? 르테아 언니?
둘 중 누구에게 걸까 하다가, 엘타리스에게 감각 공유를 걸었다.
‘마스터님! 돌아오셨습니까?’
‘그, 그래…… 왜 주변에 쓰레기 같은 인간 냄새가 나지?’
‘죄송합니다…… 갑자기 쳐들어온 에크렌스 왕국 녀석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고하러 와.’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제가 없으면 안 됩니다.’
나는 나보다 인간을 더 생각하는 엘타리스의 마음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나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인간들을 하찮게 보는 몬스터의 본능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런 생각이 자꾸만 솟아오른다. 그런 본능에 저항하는 엘타리스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보다 인간들을 생각하는 엘타리스에게 화가 나기 시작한다.
‘마스터님……’
‘알았다.’
내가 생각해도 감각 공유 통로를 통해 전달된 텔레파시의 어투는 싸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르테아 언니에게 감각 공유를 걸었다.
“……”
다시 걸었다.
“……. 언니?”
하지만, 감각 공유 신호는 허공만을 허하게 찌를 뿐, 그 어느 감각도 나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지난번에 스포하지 말라고 혼나서 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