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8 <-- 복구와 탐색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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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피와의 감각 공유가 끝나고, 얼마 전에 만들었던 쁘띠 아이로 내 던전 위쪽의 인간 세상을 바라본다.
그들은 마을 테두리에 성벽부터 세우고 있으며, 오늘 안에는 적들이 나타나지 않을 것처럼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혹시라도 인간들과 전쟁이 벌어질 경우를 대비하여 내일은 한 명의 네임드를 더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조금 기절하더라도, 한 명이 있고 없고 차이가 매우 크다.
“이번엔 적어둬야지……”
탁상에는 엘타리스가 놓고 간 잉크와 종이가 많다.
거기에 대고 나는 새로운 네임드가 가져야 할 조건에 대해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런 내용을 써 놓지 않으면, 시엘이나 타피, 리파 같은 어린 네임드가 또 나올 것이다.
조금 전에 리파에게 정수를 주었기 때문인지 몸이 영 피곤하고 좋지 않지만, 그래도 몸속에 있는 마력으로는 네임드를 기절하지 않고 소환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1. 흙 필드를 다스릴 것
필수적인 조건이다. 흙 필드에 어울리는 몬스터가 나오면 좋겠다.
2. 자기 보호는 가능할 것
역시 죽어서 소멸해버리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기본적으로 자기 부활 기능이 있는 네임드는 없을까?
3. 몬스터들을 다룰 수 있는 정도의 지능이 있을 것
그냥 평범한 몬스터의 지능이라기보단, 전장의 지휘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쯤 되면 정수가 다량으로 필요할 것 같긴 하지만, 이 정도만 적어둔다.
하지만, 이렇게 메모장에 적어두고 나니 굉장히 설렌다. 다음 네임드는 누가 나올까, 그리고 웬만하면 아이들처럼 어린 친구들보단 르테아 언니처럼 아름다운 분이 나왔으면 좋겠다.
적어둔 내용은 내려두고, 다시 타피와 감각 공유를 하자 해가 금방 넘어간다.
내가 던전 터를 잡았던 지역은 주변이 전체적으로 일조 시간이 적다. 10km도 떨어지지 않은 지점도 마찬가지.
전장에서 멀어진 타피는 도망가는 병사 무리 근처에 착지한다.
‘마스터, 학살해도 되겠지?’
‘언니는 죽이면 안 돼.’
‘당연하지, 나도 많이 늘었거든!”
타피는 곧바로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땅에 자신의 그림자를 녹인다.
마차 하나와 병사 무리, 얼핏 봐서는 누가 들어있는지 확인이 안 되지만, 이들은 전쟁터 중심에서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무리다.
병사복이 어두워서인지, 아니면 이들이 은폐 마법을 쓸 수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타피도 냄새로 발견하기 않으면 거의 눈으로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죽음의 안개], [그림자 늪]”
“아악!”
“누구야! 어떤 놈이 이런 늪으로 운전한 거야.”
“난, 아니야, 윽……!”
타피의 두 스킬과 함께 타피가 녹였던 그림자가 늪처럼 질척해지고, 마차의 바퀴, 그리고 인간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시에 불어온 보랏빛 구름. 인간들이 그 구름을 마시고 목을 고통스러운 듯 죄고, 얼굴을 끔찍하게 왜곡하며 쓰러져 간다.
타피는 살짝 웃는다. 그리고 그림자를 통해 얼마 안 되지만 DMP를 흡수한다.
나는 잠시 감각 공유를 끊은 뒤, 타피가 흡수한 DMP를 봤다. 1500 DMP밖에 쌓이지 않았다.
‘DMP의 양을 보니 잔챙이들밖에 없네.’
‘마법사가 안에 있는 건가?’
마차 안에도 누군가 대기하고 있을 수 있다. 지금 죽은 건 마차 바깥의 인간들뿐이다.
타피는 조심스레 마차 주변으로 걸어간다. 죽은 인간들의 냄새가 아니라, 생 인간의 냄새가 마차 안에서 난다.
그리고 마차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뭐야, 누가 멈춘 거지.”
“쉿, 우리는 죽은 척해야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타피는 그림자를 마차 안으로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마법사가 그림자를 알아채고 공격하면 위험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타피의 마력을 알아차릴 정도의 수준은 안 되는 것 같다.
“야아아…… 저 바닥에 저건 뭐냐.”
“히익, 우, 우린 죽었다.”
타피는 그림자로 안에 있던 인간 둘을 옭아매어 죽인다.
그들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지만, 그림자에 목이 막혀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타피가 위협을 제거하고 마차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는 르테아 언니는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우리에겐 쓸모없는 인간들의 금은보화와 인간들의 군용 식량 얼마뿐.
“언니는……”
‘없네……’
타피에게 낙담한 감정이 몰려든다.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저 녀석들은 그저 탈주한 군인이었을 뿐이다. 타피가 떠나려고 하기에, 다시 그 자리에 있으라고 명했다.
‘타피, 그 녀석들을 좀비로 전락시켜. 아직 생명력이 남아 있지?’
‘알겠어, 마스터. 그런데 왜?’
‘그리고 돌려보내는 거지, 우리 던전의 가축들을 몰살시킨 죄를 갚으라고.’
‘……풉, 역시 마스터 답네.’
대체 나답다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타피는 꿈의 정수를 한 방울씩 죽은 인간들에게 먹인다.
그들은 모두 좀비가 되어 ‘으으으-‘소리를 내며 일어난다.
타피의 명령 하에, 그들은 자살특공대처럼 한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에크렌스 군이 있는 방향이다.
‘혼란을 틈타 안에서 찾아보는 거야. 그런데 언니는 어디 갔을까?’
‘빨리 찾고 싶어……’
나도 마찬가지다. 좀비들은 꽤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이들은 모두 근육이 뚝뚝 끊어질 정도로 타피의 명령에 맹신하고, 그렇기 때문에 좋은 병력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들이 도착할 때까지 타피는 천천히 공중을 날아 엘크렌스 왕국의 막사 주변에 도착하고 배회하다가, 좀비가 달려들어 소란이 일자 천천히 그림자에 몸을 녹이며 숨어든다.
‘마스터, 어때? 이전에 비하면 훨씬 좋지?’
‘그러게……’
아쉽게도 나는 타피만큼 아찔한 높이로 아직까지 날 수 없다.
속이 울렁거리지만, 억지로 참으며 타피를 칭찬한다. 타피는 겨우 몇 달 전인 것 같은데, 내가 높은 높이를 무서워한다는 걸 잊은 걸까?
대략적으로 왼쪽부터 1막사 군집이라고 치면, 대략 15개 군집이 있다. 한 군집마다 텐트 21개. 아마 중대 하나의 크기라고 생각된다. 텐트는 다 고만고만하게 생겨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일단 들어가 봐야겠지?’
‘알겠어, 마스터. [은신]’
타피는 혹시 몰라 은신 마법까지 외고 조심스레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경보 마법도 없는 건지, 사이렌 소리가 울리지 않는 그곳은 남자의 땀 냄새가 너무 짙게 났다.
‘윽……’
‘타피, 괜찮아?’
나도 타피의 감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민감한 후각에 들어온 병사들의 땀 냄새에 질식할 뻔했다. 다행히도 타피는 머리가 아파도 체력으로 버틸 수 있었다.
막사 안으로 코를 막으며 조금 더 들어가자, 양쪽 5개씩 침대가 보인다. 이 막사는 10인용 막사라는 의미다.
그들의 개인 짐인지, 흙에 묻은 냉병기들과 함께 고향에서 가져온 짐과 침낭 등이 침대 위에 널려있다. 그들은 모두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다. 이따금씩 코 고는 소리와 이 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타피, 이렇게 생긴 막사 말고, 다른 곳을 찾아보자.’
‘이런 곳에…… 언니는 없겠지?’
‘그래.’
타피는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밖으로 나오자 상쾌한 공기가 타피의 콧속으로 들어오며 머리가 맑게 개는 느낌이다.
하지만 막사는 모두 다 똑같이 생겼다. 상공에서 바라보았을 때도 똑같았는데, 가까이서 봐도 똑같다. 게다가 어떤 규칙성도 없이 놓여있다.
결국, 하나하나 다 들어가며 찾아야 한다는 소리다.
‘마스터…… 나 들어가기 무서워.’
‘어쩔 수 없잖아, 언니를 위해서라면.’
‘흑…… 그래도 냄새 너무 머리 아파.’
그러는 동안에도 타피의 바로 코앞에서 인간이 지나간다. 하지만 그 인간은 타피를 모르는 듯하고, 이 막사의 군집에 생활하는 이들은 모두 일반 병사인 것 같다.
그렇다면 르테아 언니가 있지는 않을는지, 가능성을 생각해 봐도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천막에 들어가자, 역시나 끔찍한 병사들의 땀 냄새에 타피가 힘들어하는 게 느껴진다.
‘후, 후…… 후아……’
‘타피…… 힘내.’
‘마스터, 다음 거 간다.’
그리고 나도 타피와 함께 감각을 받으며 점점 힘들어졌다. 후각이 민감한 건 멀리서 사냥감이나 표적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렇게 짙은 공간에선 오히려 독이 된다.
언니의 냄새는 아마 병사들의 땀 냄새에 묻힌 거라고 생각될 정도다. 게다가 이 병사들은 씻은 지 한참은 된 듯한 냄새가 나서 더 좋지 않다. 죽은 듯이 잠을 자던 병사들을 모두 죽이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7번째 막사에서, 드디어 냄새가 좀 덜 나는 막사에 도착했다.
거기는 병기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공간이고, 인간들의 식량과 물 따위가 엄청나게 쌓여있다.
‘여기도 없어……’
‘타피, 잠시 쉴래?’
‘아니, 더 할 수 있어!’
15번째 막사에서 타피는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은신 마법도 가까스로 유지하며 들어갔지만, 그곳에서도 조금 전 7번째 막사에 비해 냄새가 덜 났다.
그러자 조금 힘을 얻은 타피가 들어가자, 다른 막사와는 다르게 조금 큰 공간이 나타난다. 책이나 교본 따위가 어느 정도 있는 그 공간은 아마 이 막사 군집의 장인 중대장의 방쯤 되는 것 같다.
‘타피, 이 녀석을 권속으로 할 수는 없을까?’
‘응? 전락시키는 거야?’
‘아니, 물어서 똑 같은 뱀파이어로 만들어 타락시키는 거지.’
‘…… 인간을? 저 저열한 존재를 우리와 같은 고귀한 존재로 만들라는 거야?’
게임상에서는 권속 따위가 있을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뱀파이어라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타피가 너무 싫어한다. 정말 벌레를 물라는 뜻으로 들린다.
내가 기절할 때 인간들을 학살한 건 정말 배가 고팠었던 것인지, 타피가 질색을 하길래 나는 그만두라고 말했다.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그런데 저 인간, 다른 마스터의 냄새가 나. 그 저열한 녀석 말이지.’
‘뭐……?’
설마 설마 했지만, 정말 그 중대장에게서 나는 냄새는 라크라스의 것이다.
인간 기준으로는 8~9년쯤 되는 시간은 꽤 길다. 평범한 녀석을 타락시켜도 중대장이 될 정도로 성장할 수 있기는 할 것이다.
네임드였던 시간도 있을 테니…… 씁쓸한 마음을 남긴 채, 타피를 후퇴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