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1 <-- 복구와 탐색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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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피와 감각 공유가 끊긴 불안감에, 나는 눈이 떨리고 마음속 무언가가 끊긴 느낌이 들었다.
아리에타 언니에게 둘의 위치에 대해 물었지만, 둘이 살아있는 거 외에는 모른다고 한다.
나를 그저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마스터님, 일어날 수 있어요?”
“네……”
아리에타 언니가 일으켜 줘서 함께 일어난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려 명상한다. 언니와 함께 있으니 빠르게 상황파악이 되기 시작한다.
곧바로 나는 엘타리스에게 감각 공유를 걸었다.
‘엘타리스, 지금 인간들을 쓸 수 있나?’
‘아뇨…… 지금은 다들 성벽을 쌓고 있어서.’
‘그럼 그들의 장비는, 프란시아 군의 장비를 내어놓을 수 있겠나?’
‘……네. 아마……’
‘얼마 정도 있지?’
‘확실히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지만 1500명치 정도는 있을 것 같네요.’
‘그 정도면 충분해. 전부 던전 입구 쪽에다 던져 놔.’
‘…… 알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릴 거예요.’
‘괜찮아.’
지금 남은 건 461733 DMP.
전부 스켈레톤으로 전환하면 4600기 정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남기기 위해 4500기만 소환한다.
밤이라면 스켈레톤은 인간 일반 병력의 두 배는 강해진다. 3천 명 정도의 상대 병력을 무찌르는 데는 전략이 필요하겠지만, 인해전술로 가도 이긴다는 소리다.
“…… 주인님, 무서워…….”
“일어났니, 슈로미?”
어느새 보니 내 발밑에 또 보라색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고 있었다.
화난 탓에 나온 건지, 내 팔도 움직이고 마력이 바닥난 것 같은데 또 차오른 기분이다.
아니면 정말 이 일이 끝나면 졸도할지도 모르겠다.
“주인님, 나 딴 데 가서 잘래.”
“가지 마.”
슈로미는 내 말에 도망가려다가 멈춰 섰다. 그리고 기름칠 되지 않은 기계처럼 고개를 뻑뻑하게 돌린다.
“무슨……?”
“슈로미, 너 몬스터 4천 마리를 움직일 수 있지?”
“으응…… 움직일 수 있으면 자도 되지?”
“제대로 대답해.”
딱 잘라서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냉혹한 목소리가 나왔다.
안 그러면 슈로미는 또 잘 것 같아서다.
슈로미는 손가락으로 뺨을 긁적이다가, 한숨을 내쉬고 대답한다.
“응…… 가능해. 주인님이 그렇게 만들었잖아.”
“그러면 이번 밤 안에 인간들을 몰살하자.”
“호오, 인간? 흐음…… 자면 안 돼?”
“안 돼!”
슈로미는 축 늘어졌다. 대충 감은 것 같은 어깨의 붕대 하나가 뚝 떨어진다.
아리에타 언니가 나와 슈로미의 대화를 보다가 중간에 끼어드셨다.
“이 아이는 내 손이 필요할까요?”
“호오……? 무서운 언니.”
“그럴 지도요?”
아리에타 언니는 씨익 웃으며 슈로미를 바라본다.
슈로미는 호기심에 찬 듯 아리에타 언니를 한 번 흘겨보다가, 다시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존다.
“꿈 속성 약간에 잠탱이 미라라…… 세이나 마스터님, 병력을 한 번 만들어 보시라고요.”
“네.”
나는 맵을 열고 여태껏 하지 않았던 행동을 저지른다.
밤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지만, 흙 필드의 권한을 엘타리스에게서 슈로미로 전환하고, 슈로미에게 DMP 사용 권한을 넘긴다.
그리고 흙 필드에 스켈레톤을 단위 수로 클릭하여, 한 번에 500마리를 소환한다.
[50000 DMP를 이용하여 스켈레톤 500기를 생성합니다.]
던전 맵에 빽빽하게 생성된 푸른 점들을 바라보니, 꽤 그럴듯하게 정렬한 스켈레톤들은 군대의 모습처럼 보인다.
쁘띠 아이로 바라보는 던전 입구에는 수많은 인간이 프란시아 군대의 복장을 던지고 있다.
물론, 엘타리스도 인간 측의 지휘관처럼 보이기 위해 데려갈 것이다.
‘엘타리스, 지금 나한테 올 수 있어?’
‘네, 알겠습니다.’
기사답게 씩씩하게 대답하는 소녀 외모의 엘타리스는 막 완성된 통나무 지휘실에 앉아있다가 나온다.
밖으로 나오자 쁘띠 아이가 보던 장면처럼, 수많은 인간들은 엘타리스의 의문의 명령을 따라 병사복을 내어두고, 점점 쌓인다.
1500벌이나 되는 병사들의 옷이 쌓이니 정말 엄청난 양이 쌓인다.
‘그런데, 마스터님.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건가요?’
‘엘타리스, 네 부하에게 잠시 다른 곳에 간다고 전해.’
‘네……?’
‘에크렌스 군을 뒤에서 친다.’
‘하지만 저는 인간을……?’
엘타리스가 뭔가 더 머뭇거리며 생각하지만, 감각 공유 통로를 통해 의미가 전해지지는 않는다.
그저 그녀가 느끼는 궁금함, 그리고 뭔가 전쟁 전에 끓어오르는 느낌이 전해진다.
‘제 잘못은 이걸로 해결되는 거지요?’
‘…… 그래, 인간들은 내가 나가서 어떻게든 할 게.’
‘알겠습니다.’
사실 리파를 쓰면 되지만, 불 필드의 몬스터들은 리파의 손이 없으면 오히려 던전에서 날뛴다.
직접 가봐서 알고 있기에 리파는 불 필드에서 다른 곳으로 굳이 옮기지는 않는다.
아리에타 언니가 슈로미의 옆에서 기지개를 쭉 켜다가, 내가 바라보자 밝게 웃으신다.
“왜 웃어요.”
“아니, 세이나 마스터님이 마스터다워지는 것 같아서요.”
“…….”
나는 내 던전 위 인간들, 뭐 가축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그들에게 나는 어느 정도 믿음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으니 괜찮다는 판단이다. 게다가 타락 인간들도 곳곳에 숨어있다.
뭐, 그들의 수호 정령쯤 되는 존재가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엘타리스는 슈로미의 보조, 그리고 인간들과 협상하기 위해 보낸다.
슈로미는 자려고 할 때마다 아리에타 언니에게 붙잡혀 눈을 슬쩍 감다가 부르르 떨며 일어난다.
“자고 시퍼……”
“일어나, 슈로미. 네가 스켈레톤 군단을 움직여야지.”
역시 아리에타 언니는 막 태어난 아이들을 잘 다룬다.
금방이라도 잠에 곯아떨어질 것 같은 슈로미는 언니의 손안에선 잘 수 없다.
하지만 아리에타 언니는 던전 안을 지키는 존재이지, 밖을 지키는 존재는 아니다. 밖에 나간 슈로미는 엘타리스가 다스려야 한다.
“귀찮아……”
“안 돼,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잠 못 자.”
“으응? 나 죽어, 어떻게 미라가 24시간을 잘 수가 없는 거야……”
아리에타 언니가 어떻게 슈로미를 깨우는 건지 모르겠지만, 슈로미는 아리에타 언니가 찌를 때마다 자꾸만 움찔거리며 잠이 깬다.
완전히 밤이 되고, 쁘띠 아이에 보이는 인간들의 움직임이 잦아든다.
“슈로미, 저 스켈레톤들에게 명령해. 밖으로 나가 프란시아의 옷을 입으라고.”
“아, 아아 알았어요. 주인님. 제발 깨우지마는 말아주세요오…….”
슈로미는 그렇게 유약하게 말하면서도, 갑자기 눈을 번뜩 뜨더니 스켈레톤 병사들에게 사념을 보낸다.
스켈레톤 킹이 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강렬한 사념이 흘러나온다. 역시 슈로미는 지휘에 특화된 네임드였다.
500기에 달하는 스켈레톤이 질서정연하게 입구에 쌓인 프란시아 병사의 옷을 차곡차곡 입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정렬하며 선다.
매직 아이로 바라보는 그 모습은 빠르고 정확한, 정말 훈련이 잘 된 병사들 같았다.
내가 전략을 배우며 모의전을 할 때의 그 스켈레톤들이 맞는가 싶을 정도다. 감탄을 얇게 내뱉었지만, 슈로미는 기쁜 듯이 웃고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쓴다.
“저, 자도 되죠?”
“아니.”
내 말에 아리에타 언니는 슈로미에게서 이불을 거둬내고 다시 일으켜 세운다.
울상을 지으며 울먹이는 미라를 두고, 나는 또다시 스켈레톤 500기를 소환한다.
잠은 아까 충분히 잤으니까 괜찮다.
[50000 DMP를 이용하여 스켈레톤 500기를 생성합니다.]
“주인님, 나빠……!”
“슈로미, 이렇게 9번만 더 하면 돼.”
“으아아앙 싫어 시러어어! 잘 거야, 잘 거라고!”
졸린 목소리로 소리치는 슈로미는 아리에타 언니에게 붙잡혀 있다.
그때, 엘타리스가 이 방으로 순간 이동기를 타고 돌아왔다.
“마스터님, 대체 저 병력은 무엇입니까?”
“에크렌스 녀석들을 전멸시킬 병력이지.”
“…… 제가 지휘하는 건 아니겠네요.”
“그래, 인간들이 항복하면, 그때 항복을 받아낼 때 나갈 거야.”
엘타리스는 뭔가 생각하는 듯 바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다시 들어 나를 본다.
뒤쪽에는 슈로미가 울적이며 아리에타 언니에게 매달려있다.
“프란시아 군의 복장을 꺼내신 건…… 우리 던전은 프란시아의 편을 드는 겁니까?”
“아니, 저건 프란시아 뒤에 있는 라크라스라는 드라고니안 마스터를 치기 위한 병력이기도 하지. 프란시아 군까지 싸울 수는 없는걸.”
“아……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마스터의 뒤를 따르면 됩니까?”
엘타리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뒤쪽에 우는 미라와 언니를 가리킨다.
아리에타 언니는 밖에 나가지 않도록 계약이 맺어져 있고, 최소한 나를 지키기 위해서도 남아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도 인간들 사이에 나가서 엘타리스의 대신해야 한다. 코어에서 에너지를 받아야 하기도 하고,
엘타리스는 다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슈로미는 엘타리스가 바라보자 명령을 다 내리고 자려고 한다.
“저 잠탱이 깨워서 진군해, 에크렌스 병력을 치는 스켈레톤 4500기는 전부 쟤가 조정하니까.”
“그러면…… 저는 프란시아 군과 협상하고, 에크렌스 군이 항복하면 그걸 받아내고, 라크라스 던전을 치는 데 도우면 되는군요.”
나는 잘 알아들은 엘타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라크라스에 대해 아나?”
“그야 물론이죠, 9년 전에 나타난 던전, 프란시아의 중심부까지 다다른 인간들이 모두 그 던전의 모험가 조합 출신이니까요. 보통은 모험가 조합의 지부장을 받으면 그 자리에 있기 마련인데……”
“그 중심인물들, 엘타리스. 네가 프란시아 수도로 가서 전부 처리하렴. 그 녀석들은 에크렌스 군과 밀정을 했거든.”
엘타리스는 내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네?”
“이번 에크렌스 군을 치면서, 그 증거를 잡으면 돼. 웬만하면 전멸시켜서 DMP도 얻어 오면 좋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르테아 언니와 타피도 구출해. 이게 젤 중요해.”
“알겠습니다!”
슈로미는 들은 척 만 척하면서 자려고 하다가, 엘타리스가 귀를 잡아당기자 괴로운 듯 다시 눈을 뜬다.
“지휘관이 여기서 자면 어쩌나! 기사 수업 때 받기로는 지휘관은 자면 안 된다 배웠다!”
“흐에에에 시러어어어! 이상한 칭구야……!”
엘타리스는 슈로미를 못 깨울까 걱정했지만, 그 걱정은 다행히도 안 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