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4 <-- 복구와 탐색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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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아……. 아으으…….”
아무도 없는 고요 속 어둡고 차가운 석굴 안.
내 던전 내에는 네임드가 셋이나 있어서 그 아이들을 부르면 이 마음이 줄어들지,
냉혹하고 검은 분위기가, 발을 하나씩 뗄 때마다 나를 옥죄는 듯 다가온다.
석굴의 벽에 걸린 촛불을 켜도 그 어둠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푹
밑바닥에 깔린 두꺼운 휘장들 위에 쓰러진다.
눈에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쏟아지는 눈물이 흐른다.
뺨을 적시며 떨어지는 눈망울, 눈물을 흘리면 조금 마음이 나아지는 것 같아 소리 높여 오열한다.
“으으으, 아아…….”
꼴사납게 울부짖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타피를 보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저 레벨이 높으니 괜찮다고 보낸 나의 안일함에 자책하며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적어도 타피만은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적의 뱃속에 들어가려는 명령을 허락한 나.
레벨 차이가 나도, 인원수 앞에 장사 없다는 사실을 이 세상에서 뼈저리게 느낀다.
하지만 아무리 울어도 여기까지 내려오는 네임드는 없고, 다들 바쁘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상인 상태로 눕는다.
“아아……”
그래도 한껏 우니 낫다. 이런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순 없다.
나는 이 던전의 마스터,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하면 된다.
혹시 모르는 마음에 여전히 감각 공유를 보내 봐도, 르테아 언니와 타피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맵을 열어 차가운 푸른색 홀로그램을 바라본다.
확대해 보면, 하루 2만 DMP 회수를 이용해 자연 필드를 복구하는 시엘,
그리고 불 같은 몬스터들을 달래는 리파, 물 필드에서 기술을 전수받다가 쓰러진 소멜이 보인다.
아리에타 언니도 일이 끝나고 꿈 필드에 들어가 휴식 중이다.
쁘띠 아이로 바깥을 바라보면 햇빛이 거의 사라져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난다.
일조량이 적은 이 던전 상부, 스르르 사라지는 햇빛에 밤의 식물들이 천천히 피어난다.
인간들은 모두 잠을 자러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임시 숙소로 다들 돌아간다.
돌아간 인간들 중 일부는 불을 켜고 술을 들이켜고 떠들썩하게 소리 지른다.
한숨을 쉬고, 쁘띠 아이도, 던전 맵도 떠 있지 않은 석굴의 한구석을 바라본다.
한때 이 방이 2층에 있던 시절, 세 아이와 나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르테아 언니를 잃은 건 슬프지만, 타피를 잃은 건 그 어느 때보다도 허한 마음뿐이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강하게 먹고, 엘타리스에게 감각 공유를 건다.
‘마스터님, 일어났습니다.’
‘그래, 슈로미는?’
‘깨울까요?’
‘어서 가야지, 한시가 시급하다.’
엘타리스는 기상 후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빠르게 고개를 휘저으며 점을 깬다.
잠꼬대가 심한지, 엘타리스는 원래 자던 곳과는 달리 먼 곳으로 달아나 있었다. 땅굴에 희미하게 들어오는 달빛으로 형체를 인식하고, 슈로미를 흔들어 깨운다.
“일어나, 슈로미. 마스터님의 명령이다.”
“호오, 으응…… 잘게, 잘 자요.”
엘타리스는 한숨을 내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일어낫!”
엘타리스의 외침은 적에게 들키지는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엘타리스의 귀로 들으니 그렇게 시끄럽지는 않다고 느꼈지만, 목이 살짝 떨리거나, 주변 공기가 부르르 떨리거나, 땅굴이기 때문에 위쪽에서 후두두 떨어지는 모래에 나는 그 소리가 얼마나 큰 건지 인지할 수 있었다.
“…….!”
슈로미는 깜짝 놀라 일어난다. 어깨를 부르르 떨며, 보라색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엘타리스를 바라본다. 머리털이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모습이 귀엽다.
아마 엘타리스는 슈로미의 천적인 것 같다.
“으어어, 어디, 어디야……”
“마스터님의 명령이야, 빨리 아이들을 구출해야 한다고.”
“아이들…… 어, 그래, 아이들……”
슈로미는 여전히 잠에 깨지 않은 듯 중얼거린다.
곧바로 주변에서 땅을 단체로 파고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엘타리스는 슈로미를 들고나온다. 주변에서 수많은 스켈레톤이 각자의 땅굴에서 스르르 기어 나오는 장면은 공포영화 같은 느낌이 든다.
하얀 뼈들이 흙 위로 툭 튀어나와, 단단한 지반을 잡고 머리부터 쑥 내민다.
일부 프란시아 병사복을 입은 스켈레톤들은 나오자마자 툭툭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낸다.
“졸려어어어.”
“어서 가자, 오늘 밤 중에 습격하는 거야.”
“어어, 들키지 않을까? 지금 움직이면 안 돼. 지금 어두워졌다고 다들 잠들 것 같아?”
슈로미가 이상하게 말을 잘 한다. 내가 바랬던 건 저런 네임드였다.
그래도 할 땐 하는 슈로미를 보니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
지금은 해가 막 넘어가, 넘어간 해에서 나타나는 노을이지는 시각.
슈로미의 말대로 주변에 수풀 등으로 숨겨져 있는 게 아니라면, 지평선 너머에 보이는 병사들에게 들키는 건 뻔하다.
엘타리스는 모험가로서는 검성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인간이었지만, 정작 전투에서는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모른다. 엘타리스는 슈로미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숙인다.
“알겠어 슈로미, 그렇다고 잘 핑계는 되지 않아?”
“흐으으……”
슈로미가 자려고 하다가, 엘타리스에게 볼살이 잡힌 채로 선다.
어느새 미라처럼, 아니 진짜 미라지만 모포를 감고 굼벵이처럼 서 있는 슈로미가 앉는다.
엘타리스가 다시 슈로미의 말랑말랑한 볼살을 잡으려 하자 슈로미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안 자.”
엘타리스는 손을 가져가려다 말고, 같이 앉아 적진을 바라본다.
두 소녀가 앉아있는 장소는 언덕 위.
멀리 지평선에서 불타는 횃불이 일렁이는 모습을 슈로미는 소리 없이 바라본다.
스켈레톤들이 일어나 대열을 이루고, 제 자리에 서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멈추자 고요만이 찾아온다.
“주인님은 왜 날 만든 거야?”
“그야 당연히 네임드들을 구출하기 위해서지…… 내가 지키지 못한.”
엘타리스가 약간 고개를 숙인다.
마음이 콕 하고 찔리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
슈로미는 그런 엘타리스에게 작은 무게를 실어 기댄다.
“응?”
“코오오-“
슈로미는 엘타리스에게 기대자마자 따스한 온기를 받고 잠든다.
엘타리스는 그대로 하늘을 바라본다. 던전의 하늘이 아니라 지상의 하늘은 엘타리스에게도 꽤 보기 힘들었던 풍경이다. 그런 감정이 느껴진다.
화려한 별빛과 검은 엑스가 그려진 달이 두 개 떠 있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잠시 엘타리스도 정신을 놓는다. 그렇다고 잠들지는 않는다.
나도 감각 공유로, 엘타리스가 모험 중 휴식이라고 불리는 그 느낌을 그대로 전해 받는다. 편안한 기분이 들고, 엘타리스에겐 그 어떤 속박 같은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가요.”
“으응……?”
슈로미가 먼저 일어나 적진을 노려본다.
엘타리스는 잠이 덜 깬 상태로 슈로미를 보고는 눈을 비비적거린다.
“주인님이 이 일만 해결하면 24시간 자도 된다고 했단 말이야.”
‘누가 그랬냐고 전해줘.’
“아…… 그래.”
‘엘타리스……!’
“마스터님이 누가 그랬냐고 전해달래.”
“약속했잖아, 약속했잖아요오오-“
슈로미의 졸린 눈에 눈물이 고이며 엘타리스를 바라본다. 게다가 나에게 감각 공유가 걸려오기까지 한다.
어쩔 수 없이 잠시 엘타리스와의 감각 공유를 끊고 슈로미와 연결한다.
‘주인님! 언제 그랬서요오오! 24시간 잘 수 있다고 했잖아요오’
‘일은 하고 자야지, 그 외에는 자도 괜찮으니까……’
슈로미와 감각 공유를 하는 건 굉장히 고통스럽다.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몇 번 스켈레톤에게 세세한 지시를 내리는 슈로미의 머릿속은 일종의 컴퓨터 명령 같다.
‘주인님, 주인니이임……!’
‘아, 아아 알았다니까…… 일주일만이다?’
‘헤헤, 주인님 좋아.’
어쩔 수 없이 슈로미의 부탁을 들어준다.
당분간은 내가 흙 필드를 관리해도 되고, 엘타리스에게 잠시 맡겨도 될 것이다.
그리고 슈로미의 감각 공유 사이에, 이 전쟁은 지지 않는다는 계산이 넘어왔다.
그것도 제대로 전력이 분석되지 않은 라크라스의 병력조차도 이길 수 있다는 계산.
전투나 전쟁의 시뮬레이션에서는 나보다 더 뛰어나도록 만든 탓인지, 이번 급습으로 인간 병력의 50%이상을 궤멸시킬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나는 엘타리스에게 넘어와 물어보았다.
“저기, 슈로미. 어떻게 50% 이상의 인간 병력을 무찌를 수 있으시냐는데…… 그게 가능해?”
“응, 일단 보이는 인간들의 병력은 너무 마법사들에게 집중되어있음. 양쪽 끝을 프란시아 복장의 스켈레톤 500기씩 습격해 스켈레톤 메이지로 승급시킨 다음, 스켈레톤과 승급한 메이지 수로 밀어붙여.”
“양동작전은 위험하지 않아?”
“저쪽 병력은 2859명. 일반 병력은 E~F급 2546명, 전쟁 마법사 D~E급 251명, 상관 B~D급 62명”
“B급이면…… 레벨 120 이상의……?”
“그것도 셋 있어. 하아암- 셋은 놈들의 심장, 메이지와 힐러 사이에 있는 저 천막에 숨어 있지.”
“슈로미, 그건 어떻게 알아?”
슈로미는 엘타리스와 나의 질문에 피식 웃는다.
“그건 감이야. 미라의 감은 뛰어나다고.”
“……”
미라의 사전적 정의는 말라비틀어진 시체인데, 거기서 무슨 감을 느끼냐고 묻고 싶지만, 슈로미는 음침하게 배시시 웃고는 눈을 살짝 감는다.
주변에서 프란시아 병사복을 입은 스켈레톤 병사들이 뼈 곤봉을 들고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주말에 메이드 인 어비스를 정주행했습니다.
영상미도 좋고 세계관도 세세하고 음악도 잘 어울려서 넘 맘에 들었어요.
그리고 연재 주기에 관해서,
현재 개인적인 체력이 받쳐주지 않고, 동기 부여도 전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쓰면 평소대로 5연참은 할 수는 있겠으나, 차라리 재충전 시간을 가지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연참은 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