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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93화 (9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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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우락부락한 남자, 그리고 그 앞에 걸어가는 흰 머리의 작은 소녀.

멀리서 보면 유괴나 그에 준하는 심각한 범죄 상황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들이 부하인지 자각하지도 못하는 부하들이니 걱정은 없다.

평범한 인간들과는 달리, 이 인간인지 몬스터인지 어중간한 녀석들은 오히려 인간들 사이에서 느끼는 위화감을 느낄 수 없어서 다행이다.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홧김에 마력을 내보내 죽였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최근 너무 민감해졌다. 잠은 어차피 자지 않지만, 너무 힘든 일이 많다.

바깥은 아직도 이른 아침, 햇살을 받고 밖으로 걸어 나와 내 던전 부근의 산까지 올라온다.

“여기 온 이유는 뭐지, 꼬마야?”

저 타락한 인간들은 자신들이 부하라는 자각이 없기 때문에 나에게 꼬마라고 말한다.

내가 처음부터 어린아이를 연기하기도 했고, 차라리 이렇게 불러주는 게 밖에선 편히 움직일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제가 마법을 쓸 테니, 흙을 파서 흔적을 묻어주세요.”

“응? 너 마법사니?”

“그냥 위기만 알려주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혹시 예언자가 아닌가……?”

“우리 마을을 위해 내려온 분이야, 엘타리스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나?”

인간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느새 내가 인간들 사이에선 그런 존재가 되어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감상은 나중에, 일단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제가 할 일은 이 마을의 사람들에게 위생을 가져다주는 일, 지금은 우기라 공기 중에 물의 마력이 짙고, 그렇기 때문에 비가 내릴 확률이 높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수로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병이 돌기 쉽고 냄새나기 마련이지요.”

“하긴…… 그런데 위생이라, 그건 생존에서는 최후에 고려할 사항이라네.”

“맞아, 일단 당장 먹을 것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사실 나는 인간들의 기본적인 의식주부터 놓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던전에 있는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밥을 안 먹으니, 같은 존재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체생활에서 위생은 꽤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냄새나는 건 못 봐주는 성격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일단 서큐버스의 코는 타피 같은 뱀파이어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민감하다.

지금 당장 이 부하들의 땀 냄새도 지금 내 코를 찌르고 있어서 괴롭다.

“적어도 제 이름을 건 마을에서는 깨끗한 인간들이 살았으면 좋겠네요.”

조금 전, 몬스터다운 어휘를 사용하긴 했지만, 타락한 인간들은 모두 받아들인 것 같다.

애초에 어색한 줄 모르는 것 같다. 이쪽은 타락한 인간들이어서 그렇지만, 앞으로 인간 사이에선 단어 선택에 조금 더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게 좋겠네요.”

“예, 알겠습니다.”

내 본능이 나온 탓인지, 갑자기 이 녀석들도 경어체로 변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탓에 어색해졌다. 썰렁해서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든다.

“흥흥- 그래, 우선 일이나 해봐요.”

어휘는 상당히 중요하다. 하는 김에 내가 무심코 내뿜고 있던 던전 마스터의 기운도 확실히 죽인다.

뭐, 당장 마력을 쓰기 위해선 다시 내뿜어야 했지만……

조금 더 산중으로 오르자 개울가가 보인다.

“아, 시원하네.”

“꼬마는 여길 보여주고 싶어서 온 건가?”

“아뇨, 일하러 왔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땅에 짚었다.

그대로 바닥에 꿈의 마력을 흘리자, 바닥에 보랏빛 빛이 올라온다. 눈 부신 빛은 아니지만, 보다 보면 꽤 신비한 빛이다.

곧이어 나는 이 땅을 마치 던전 필드처럼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만드는 건 도랑, 할 수만 있다면 상수도와 하수도를 분리하는 게 좋으니 두 갈래로 만든다.

“여기 있는 건 상수도, 이쪽에 있는 건 하수도. 알겠나요?”

“그래, 꼬마야.”

“아니, 꼬마라고 부르기엔…… 저 마력은 우리를 위해 내려오신 정령님이 아닐까?”

“그럴지도…… 다른 마을에도 가끔 등장한다고 하는 수호신님이 아닐지?”

어째서 타락한 인간들은 내가 보는 앞에서 이렇게 부끄러운 말을 꺼내는지 모르겠다.

아까는 잠깐이지만 던전 마스터로서 존경심을 받았다면, 지금은 왠지 다른 의미로 왜곡되는 것 같다.

원래부터 원하던 방향으로 흘러가서 생각보단 나쁘지 않지만, 직접 육성으로 들으면 어딘지 모르게 간지럽고 부끄러운 느낌이 든다.

“흐흠, 그래요 어서 갑시다.”

“”예! 수호신님.””

다섯 근육질 남자는 따라오며 내가 마력으로 만든 도랑을 다지기 시작한다.

일단은 땅에 작은 균열이지만, 남자들이 살짝 파내자 단순히 삽을 한번 푸는 것만으로 엄청난 흙이 밀려 나오며 하천의 지류 크기처럼 얕은 계곡이 생긴다.

“이게 뭐야……? 일하는 보람이 있는걸?”

“다 수호신님 덕분 아니겠나?”

“세이나님……”

뒤에서 들리는 낯부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나는 바닥을 짚고 내려오며 마력에만 집중한다.

그보다도, 계속 꼬리를 말고 있었더니 점점 엉덩이 근처가 아파진다.

보였다간 서큐버스인 게 들킬 터인데, 이런 꼬리가 딱딱 굳어버리는 것 같은 근육통은 생각지도 못했다.

“잠시 쉬도록 할까요……?”

“네, 괜찮습니다.”

“마력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요.”

“세이나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낯부끄러운 소리에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지만, 적당한 그늘에 앉아 한숨을 돌린다.

마력에만 집중하느라 천공에 해가 뜬 것도 확인하지 못했다. 벌써 점심때구나.

인간들은 땀을 거둬낸다. 이 하천에는 비가 내리면 물이 흐를 테고, 일단 산 위쪽에 있는 개울가를 연결시키면 어떻게든 물이 흐르리라 생각된다.

어차피 이 세상은 마법으로 뭐든지 해결되는 세상이니만큼, 위쪽에 물이 무한대로 나오는 분수대 같은 것도 만들 수 있을 터다.

수원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DMP로 만든 햄버거를 하나 시킨다.

[10 DMP로 햄버거 1개를 주문합니다.]

공중에서 뿅 하고 나타난 햄버거에, 인간들은 별로 놀라워하지 않는다.

마법사라면 아이템 박스 마법은 쉽게 할 수 있을 거니까, 이건 르테아 언니에게…….

“아……”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르테아 언니는 살아 있다. 분명히 살아있을 터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빨리 구출해야 한다. 구출해서 감각 공유가 아니라 내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

이다지도 감각 공유 없이 바라보는 세상은 깨끗하고 아름다운데……

“저…… 세이나님, 그 허리 밑에 그건?”

“히잇? 거짓말, 아니, 아니에요, 이거 못 본 거예요!”

깜짝 놀랐다. 마음이 나도 모르게 풀어져 꼬리가 풀려 나와 있었다.

당장 꼬리가 내 맘대로 움직이지도 않아 손으로 어떻게든 가렸지만, 타락한 인간들의 표정은 뭔가 궁금한 듯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우락부락한 남자 다섯이서 지켜보는 모습은 다소 무섭다. 아무리 내 하수인이고, 간단한 내 마력으로 죽일 수 있다 해도 인식이란 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저, 저기…… 무서운데요.”

“야, 너 때문이잖아!”

“수호신님을 지켜보는 데, 눈으로 똑똑히 기록해야-“

“이 녀석이 범인이네.”

마치 스켈레톤 사이로 돌을 던진 것처럼, 그들끼리 싸우기 시작한다.

그런 모습에 무심코 웃음이 나온다.

“아하, 하하하……”

“기분이 나아지셨나 봐.”

“그래…… 아름다우시네.”

“덧없는 아름다움, 우리는 절대 다다를 수 없는 분이야.”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으로 가리며 웃었다.

그리고 곧바로 햄버거를 입안에 다 털어 넣고 일어난다. 다시 마력을 쓰며 작은 계곡을 파낸다.

마을의 중간에 다다르자, 수많은 인간들이 내 모습을 지켜본다.

나는 마력을 유지하는 데만 집중하고, 성벽 바깥에 원형으로 파내 물을 고이게 만든다.

근처에 있는 하천까지 파내고 나면, 마을 안으로 흐르는 수로는 거의 완성된다.

“자, 이제 바닥에 돌을 붙이고, 이 도랑이 다른 쪽으로 흐르지 않도록 고정해 주세요.”

“맡기십쇼!”

“귀여운 꼬리님.”

“……뭐, 뭐라고요?”

그제야 뒤를 돌아보니 내 꼬리가 툭 튀어나와 있다. 그리고 나에게 인사하듯이 꼼지락거린다.

긴장이 나도 모르게 풀린 상태로 꼬리를 풀고 있었던 것 같다. 떠올리니 등골이 싸해진다.

“수호신님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고요.”

“다들 물었지만, 수호신님의 그런 모습도 아름다우시니까요.”

“저, 저저……”

이 사람들은 내 하수인인데, 도저히 내 종족에 대해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내 개념으로는 도저히 서큐버스를 수호신으로 섬기느니 하는 걸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이 오른 채로, 어떻게든 엘타리스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괜찮아요, 아무도 던전 마스터님이 서큐버스인 건 모르니까요.”

“비서 씨…… 다 알고 있었던 거죠?”

“던전 마스터님이 과연 인간의 업무도 잘 할지 지켜보고 있었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을 이끄는 수완으로는 엘타리스님보단 낫군요.”

“…… 기분 나빠졌어, 잠시 돌아갈게.”

“내일도 오시는 거죠? 기다릴게요.”

나를 이용해 먹은 것 같은 비서를 두고, 저벅저벅 걸어 던전으로 돌아왔다.

나의 석굴에는 어떤 네임드도 없어 반겨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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