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20XX년 4월 6일.
어두컴컴한 던전 안.
선두에 선 헌터의 약한 발광석 불빛이 시야를 미약하게 확보해준다.
출구를 찾아 걸어가는 일곱 명의 헌터.
나는 그 끝단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다.
“허억··· 헉···.”
“현호 씨, 힘들지? 여기. 물 좀 마셔.”
박 씨 아저씨가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반쯤 남은 물병을 건넸다.
“가, 감사합니다.”
힘겹게 감사 인사를 하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마셨다.
‘후우···. 힘들어 죽겠네.’
이곳은 동굴형 초급 던전.
주 등장 마수는 하급 고블린.
이 정도 수준의 초급 던전은 일반 헌터들에게는 돈도 안 된다고 외면받는다.
그리고, 그들이 건드리지 않는 덕에 나 같은 최하급 헌터도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다.
그들의 눈에는 값어치 없을 이런 던전이 나에게는 유일하게 드나들 수 있는
소중한 사냥터이다.
물을 마시고 숨을 고르는 사이, 다른 헌터들은 열 걸음도 넘게 앞서 나갔다.
‘오늘따라 힘드네.’
각성한 지 벌써 3년째.
하급 고블린 사냥만 수백 번째지만 나는 여전히 F급 헌터다.
헌터계의 상식.
일반인이 헌터로 각성할 때 F급에서 S급 사이로 최초 등급이 결정된다.
물론, S급으로 각성하는 건 로또 당첨보다 힘들 정도고, F급과 S급은 지렁이
와 인간 정도로 능력에 차이가 난다.
그러나 F급 각성이라고 마냥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경험과 노력으로 한 단계, 운 좋으면 두 단계 정도는 성장할 수 있으니까.
‘나도 그런 희망을 품고 있었지.’
그러나, 그런 내 희망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3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여전히 F급이니까.
3년 전 나와 함께 사냥 다녔던 사람들은 벌써 E급으로, 몇몇은 D급까지 성장
하여 얼굴 볼 일도 없게 되었다.
능력이 생겼으니 좀 더 돈 되는 다른 던전으로 떠난 것이다.
한때는 그들과 개인적으로 만나며 친목도 다졌다.
그들처럼 나도 조만간 승급할 거로 생각했고, 그들 또한 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면서 그 만남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레이드를 다녀도 전혀 발전이 없으니 점점 민망해졌다.
그 기간이 길어지니 은근히 모자란 사람 취급받았고, 그러지 않는 사람이라도
내가 얼굴을 들 수 없어 연락을 끊었다.
이후로는 다른 F급들과 함께 던전을 다니면서도 최소한의 친분만 유지했다.
어차피 나만 두고 승급할 건데, 가까워져봤자 쪽팔림만 커질 테니.
비슷한 시기에 각성했던 주변의 F급 헌터들이 하나둘 떠나고.
새로 각성한 F급들을 만나고.
그들 또한 D급으로 올라가는 동안 나는 계속 이 자리에 머물러있었다.
‘F급 중의 F급. F급 고인물. F급 문지기.’
F급 헌터들끼리 나를 이런 식으로 부르며 조롱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심지어는 나를 그냥 에프(F)라 부르는 사람도 여럿이다.
우리 F급의 간판이니 뭐니 갖다 붙이는데 사실상 그냥 조롱이다.
자기들은 나와 달리 승급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하는 말이다.
‘뭐··· 맞는 말이지.’
지금까지 나 이외에 승급하지 못한 헌터는 본 적이 없으니까.
몇 달 전부터는 헌터를 그만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식당 개업을 할까.’
3년 전, 나는 요식업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고 실제로 추진하기도 했었다.
요리도 좋아했고, 잘 한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어릴 적 부모님이 하셨던
식당에 대한 추억이 컸다.
남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싹싹 긁어먹고 빈 그릇만 남은 걸 볼 때의
기쁨도 있었다.
그러나 마침 그 시기에 나는 헌터로 각성했다.
모두가 선망해 마지 않는 그 직업!
각성이라는 행운이 찾아왔는데 이 기회를 놓칠 멍청이는 없을 것이다.
나 또한 당연히 진로를 틀어 헌터 일을 시작했다.
이런 밑바닥이 있을 줄은 모르고.
하지만 이미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놨고, 여기에 쏟아부은 3년이란 시간이 아까
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해보면 나도 승급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E급의 문턱까지 다 와놓고 포기하는 게 아닐까 하는 미약한 희망 때문에
조금만 더 헌터 일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역시··· 잘못 생각했던 건가.’
승급은커녕, 나이가 들어서인지 오히려 갈수록 퇴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점점 걸음이 느려졌다.
아무래도 아까 고블린을 피하면서 넘어졌을 때 발목을 살짝 삐끗한 것 같다.
앞쪽에 걸어가던 여자가 나를 살짝 뒤돌아보더니 아예 몸을 돌려 이쪽으로 다
가왔다.
“괜찮아요?”
긴 검은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
몇 시간 전 자기소개 때 자신을 이정연이라고 소개했었다.
약간 처진 눈 때문에 선해 보이는 인상이다.
“어디 다친 거 아니에요? 좀 쉬었다 가자고 해볼까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묻는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빨리 나가야죠. 사냥 끝낸 던전에서 오래 버티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에요. 닫히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해도 혹시 모를 돌발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거니까요.”
“아, 그렇군요. 제가 각성한 지 얼마 안 돼서··· 이론적으로 배운 건데도 실
전에 들어오니까 잘 생각이 안 나네요.”
이정연이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오늘이 두 번째 사냥이에요. 초반에는 초급 던전부터 경험해보는 게
좋다고 해서 왔어요.”
말하는 걸로 봐서 F급은 아닌가 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전투에서 나를 구해줬을 때··· 내 눈으로는 따라가기 힘든
움직임을 보여줬었다.
최소 D급, 아니면 C급 이상일지도.
‘부럽다.’
솔직히 진짜 부럽다.
남들은 A급, S급을 부러워하는데 나는 D급, C급도 너무 부러웠다.
‘두 번째 사냥이라니 나에 대한 소문도 전혀 못 들었겠지.’
그러니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는 걸 거다.
헌터계에서 내 소문은 그리 좋지 않다.
능력도 없는데 싸가지 없다는 얘기가 많이 퍼져있다.
내가 뭔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다가오는 사람들을 밀어냈더니 그
렇게 소문이 나버렸다.
이제는 웬만큼 성격 좋은 사람이 아니면 말도 잘 걸지 않는 상황이다.
‘···괜히 아는 척했나.’
갑자기 조금 전 뭐라도 된 듯 설명한 게 민망해졌다.
이 업계는 오래 있었다고 대우받는 곳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 정도 능력으로 3년이나 버틴 건 어찌 보면 미련한 거다.
철저히 능력과 등급으로 평가받는 세계.
이곳에서 나는 내 주장 한 마디 펼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존재이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하급 고블린 던전에서 뼈 빠지게 일해봤자 시간 대비 수익은 최저시급
에 가깝다.
자괴감에 빠져 고개를 푹 숙였다.
시야에 이정연이 느린 내 걸음을 맞춰주는 게 걸렸다
배려받는 게 고마우면서도 쪽팔린다.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아, 먼저 가세요. 신발에 뭐가 들어간 것 같아서. 빼고 바로 따라갈게요.”
“그래요? 그거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잠깐 기다릴게요. 같이 가요.”
“아뇨, 아뇨. 가세요. 빨리. 앞에서 기다려요.”
단호하게 손짓까지 해가며 말하자 여자는 앞의 헌터들과 나를 번갈아본다.
“어이! 거기!”
그때 앞쪽에서 들려오는 성난 목소리.
“이런 데서 연애라도 할 생각이야? 빨랑빨랑 안 움직여?!”
“네! 가요!”
크게 대답한 이정연이 한 번 더 나를 보았다.
나는 허리를 숙이고 신발을 벗는 척 하며 눈짓으로 얼른 따라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럼 먼저 갈게요. 빨리 오세요.”
미안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발을 뗀 이정연이 앞의 무리에 붙었다.
나를 향한 못마땅한 눈길들.
한심하고 모자란 나를 홍일점인 여자애가 챙겨주는 모습이 아니꼬운 듯하다.
‘따로 데리고 가서 내 뒷담이라도 하겠군.’
앞다투어 내가 얼마나 못난 놈인지 줄줄이 늘어놓겠지.
그럼 저 사람도 나를 달리 보게 될 것이다.
뭐,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상관없다.
나는 앞서 나간 헌터들의 뒷모습을 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발목도 아프고 저 사람들과 섞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몬스터를 모두 처리한 던전도 안전한 게 아니란 아까의 말은 사실이다.
학자들이 계속 연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류는 던전이 대체 무엇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경험상 이미 소탕을 끝낸 최하급 던전에서 별일 없이 빠져나갈 확률은
99.9%··· 아니 100%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 3년간 최하급 던전에서 활동하면서, 던전을 빠져나가는 길에 문제가 생
긴 적은 한 번도 없으니.
‘오늘도 별일 없겠지.’
나는 조금 안일한 생각으로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뒤따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박 씨 아저씨가 뒤돌아 나를 부른다.
“현호 씨! 혼자 뒤처지지 말고 빨리 따라와. 방심하면 안 돼!”
“예! 잘 따라가고 있어요!”
박현배 아저씨.
F급 헌터 중에서도 무시당하는 나를 챙겨주는 고마운 분이다.
사실 처음 다가올 때는 못 들은 척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변함없이 말을 걸고
친근하게 대해주신다.
내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쯧. 그러니까 저놈 끼워주지 말자고 했잖아요. 저 에프 놈은 짐만 된다니까.”
“재훈 씨! 말을 왜 그렇게 해! 같은 F급들끼리 그렇게 차별해야 되겠어?”
“차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생각해야죠. 우리가 하급 고블린에 익숙해져서 그
렇지, 사실 던전 사냥은 목숨 걸고 하는 거잖아요! 급을 떠나서 1인분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들으란 듯이 쩌렁쩌렁 소리치며 나를 흘겨보는 홍재훈.
최근 우연히 저놈과 함께 던전을 여러 번 돌았다.
처음에는 친하게 굴던 놈이 내가 그 소문의 주인공인 걸 알게 되자 태도가 확
바뀌었다.
내가 하급 고블린에게조차 기를 못 쓰는 걸 보고는 이제 완전히 무시해도 되
는 사람으로 여기는 거다.
동굴이 울릴 만큼 큰 소리로 모욕적인 말을 외쳤으나, 나는 그저 못 들은 척
반응하지 않았다.
저런 놈이 한둘도 아니고.
일일이 반응하는 성격이었으면 지금껏 이렇게 버티지도 못했을 거다.
솔직히 요즘은 좀 힘들긴 하다만···.
“현호 씨! 이쪽으로 와!”
“네! 가요!”
재차 나를 부르는 박 씨 아저씨.
이렇게 챙겨주는데 무시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발목도 좀 괜찮아진 것 같아 속도를 높여 따라잡기로 했다.
쿠르르릉···.
그때, 발아래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뭐, 뭐야! 방금 뭐가 이상했는데?”
“나도 느꼈어. 설마 무너지려는 건가? 왜 이래?”
“몰라! 일단 빨리 나가자고!”
다른 헌터들 또한 같은 걸 느낀 듯 서둘러 나가려는 기색이다.
나 또한 겪어본 적 없는 상황에 불안해져 최대한 빨리 달리려 했다.
그런데.
우르르르릉!
천장에서 돌무더기가 쏟아져 내렸다.
“윽···!”
“이런! 현호 씨!”
바람이 일며 흙먼지가 일어나 시야를 가렸고, 앞쪽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콜록! 콜록!”
기침 때문에 바로 대답하기도 어려웠다.
잠시 후, 차츰 먼지가 가라앉았다.
나는 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