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 그 이상은 특별히 질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또 나를 어디론가 이끌려고 하고 있어." 하고 나는 말했
다. "나는 그걸 분명히 느껴. 지난 수개월 동안 죽 그걸 느껴왔어. 그리고 나는
그 실을 조금씩 끌어당겨 왔어. 가느다란 실이어서, 몇 번이고 끊어질 뻔했어.
하지만 어떻게든 여기까지 도달했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과 오
랜만에 우연히 만났지. 자네도 그 중의 한 사람이야. 중심적인 한 사람이야. 하
지만 나는 그녀가 의도하는 바를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도중에 사람이 둘
이 죽었어. 하나는 메이고, 또 하나는 외팔의 시인이야. 움직임은 있어. 하지만
어디로도 가지 않고 있어."
유리잔 속의 얼음이 녹아 버리자, 고혼다는 부엌에서 아이스펠에 가득 차 있
는 얼음을 가져와, 2인분의 새 언덕 락스를 만들어 주었다. 우아한 손놀림이었
다. 그가 빈 잔에 얼음을 집어넣자, 딸그락하는 아주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마
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도 일이 막혀 버렸어." 하고 나는 말했다. "자네와 마찬가지야."
"아니, 그렇지 않아. 자네와 나는 틀려." 하고 고혼다는 말했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어. 그리고 그건 전혀 출구가 없는 애정이야. 하
지만 자네는 그렇지 않아. 적어도 자네는 무엇엔가 이끌리고 있어. 지금은 혼란
되어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끌려 들어가고 있는 이 감정의 미로에 비하면
자네가 훨씬 낫고, 희망도 가질 수 있어. 적어도 출구가 있으리라는 가능성은 있
지. 내 경우는 전혀 없거든. 이 두 상황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으리라고 생각
돼."
그럴지도 모른다고 나는 말했다.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건 키키의 라인에
꼭 달라붙어 있는 일이야. 그밖에는 지금으로선 할 일도 없네. 그녀는 내게 어떤
신호나 메시지를 보내려 하고 있어. 나는 이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
"이봐, 어떤가?" 고혼다가 말했다. "키키가 살해되어 버렸을 가능성은 없을
까?"
"메이와 마찬가지로?"
"응, 하지만 사라지는 방식이 너무 당돌해, 메이가 살해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내 키키의 일을 생각해 냈어. 그녀도 똑같은 처지에 빠진 게 아닐까
하고 말야. 별로 그러한 말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아 잠자코 있었지만, 그러한
가능성이 없진 않잖아?"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만난 것이다. 호놀룰루
의 다운타운에서, 그 연한 회색으로 물든 일몰의 시각에, 정말로 나는 그녀와 만
났다. 그리고 유키도 이를 알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가능성이야, 의미는 없어." 하고 고혼다는 말했다.
"물론 그러한 가능성은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내게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어. 나는 그걸 분명히 느낄 수 있어. 그녀는 모든 의미에서 특별하다구."
고혼다는 오랫동안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그대로 피로하여
잠들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물론 잠들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물
론 잠들어 버린 건 아니었다. 이따금 손가락으로 깍지를 끼거나 풀곤 하였다. 손
가락밖에는 무엇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밤의 어둠이 어디선가 방안으로 스며들
어와서, 모래집물처럼 그의 말끔한 몸을 온통 에워싸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느
껴졌다.
나는 잔 속의 얼음을 한 번 휙 돌린 다음에,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 때 문득 방 안에 제3자가 있음을 느꼈다. 나와 고혼다외의 누군가
가 이 방에 존재하고 있는 듯한 느낌, 나는 그 체온이나 술집, 희미한 냄새 등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인간 같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동물이 불러 일으키는 공기의 흐트러짐 같은 것이었다. '동물,' 하고 나는 생각하
였다. 그리고 그러한 기미가 내 등줄기를 굳어지게 만들었다. 나는 방을 휙 둘러
보았다. 하지만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있는 것이라곤 낌새뿐이었
다. 공간 속에 무엇인가가 잠복해 있는 듯한 딱딱한 그 무엇,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방 안에는 내가 있고, 고혼다가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귀를 기울였다. 어떤 동물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동물 역시
가만히 숨을 죽이고 어느 공간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낌새가 사라
졌다. 동물은 없어져 버렸다.
나는 어깨의 힘을 빼고, 술을 또 한 모금 마셨다.
2-3분 후에 고혼다가 눈을 떴다. 그리고 나를 향해 시원스레 미소지었다.
"좋지 않군. 어쩐지 따분한 밤이 되어 버렸어." 하고 그는 말했다.
"그건 아마 우리가 둘 다 본질적으로 따분한 인간이기 때문일 거야." 하고 나
는 웃으며 말했다.
고혼다도 웃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시간쯤 둘이서 음악을 들으면서 취기가 깨도록 한 다음, 나는 스바루를 타
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침대 속에 들어가, 그 동물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5월 말에 우연히- 우연일 것이다. 아마- 나는 '문학' 을 만났다. 메이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 나를 심문한 두 형사 중의 하나이다. 시부야의 도뀨헌즈에서 납
땜 인두를 사가지고 밖으로 나오려다 그와 우연히 마주쳤다. 여름을 연상시키는
더운 날인데도, 그는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직 두꺼운 트위드 윗도리를
입고 있었다. 경찰관은 어쩌면 기온에 대한 특별한 감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
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도뀨 헌즈의 쇼핑백을 손에 들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체하고 그대로 지나가려 했지만, '문학' 이 내게 즉각 말을 걸었다.
"쌀쌀하군요" 하고 문학은 농담조로 말했다.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모
르는 체하고 지나가려는 거요?"
"바쁩니다." 하고 나는 간단히 말했다.
"아" 하고 문학은 말했다. 내가 바쁘다는 게 전혀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일을 준비하기 시작해야 하고, 여러 가지 할 일들이 있어요." 하고 나는 말했
다.
"그럴 테죠, 그야." 하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잠깐인데 괜찮겠죠., 10분쯤. 어
때요, 차라리 마시지 않겠어요? 내 업무상의 일을 떠나서 당신과 한 번 이야기
해 보고 싶었어요. 정말 10분이면 되니까요."
나는 그와 함께 혼잡한 다방으로 들어갔다. 왜 그렇게 했는지를 스스로도 알
수 없다. 나는 거절하고 그대로 돌아와 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러
지 않고, 그가 권유하는 대로 다방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젊은 커플이나 학생 그룹뿐이었다. 커피는 지독하게 맛이 없었고 공기
도 나빴다. 문학은 담배를 꺼내 피웠다.
"담배를 끊고 싶지만요." 하고 그는 말했다. "이 일을 하고 있는 한 끊을 수가
없더군요. 절대로 안 돼요. 피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요. 신경을 쓰기 때문
에."
나는 잠자코 있었다.
"신경을 쓰는 거예요. 모든 사람들로부터 혐오를 당하니까. 형사 노릇을 몇 해
고 하고 있으면, 정말로 혐오당합니다. 눈매도 나빠지고, 피부도 지저분해져요.
왜 피부가 지저분해지는지 잘 알 수 없지만 말예요. 아무튼 지저분해요. 그리고
실제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게 돼요. 말투도 달라지고,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커피에 설탕 세 스푼과 크림을 타고 정중히 저은 다음, 천천히 맛있는
듯이 마셨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 그렇지, 시간이" 하고 문학은 말했다. "아직 5분쯤 남았죠? 충분해요. 그
렇게 시간을 빼앗진 않을 테니까요. 그 살해된 아가씨 얘기예요. 메이라는 이름
의 아가씨."
"메이?" 하고 나는 되물었다. 그렇게 간단히 걸려들지는 않는다.
그는 입술을 약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그래요. 그 아이는 메이라고 해요. 이
름을 알아냈어요. 물론 본명이 아니지만 말예요. 겐지 메이에요. 역시 매춘부였
어요. 내 육감대로, 일반 가정의 보통 여자는 아니었어요. 얼핏 보기에는 분명히
보통 여자인데요, 하지만 보통 여자가 아녜요. 요즘은 분간하기가 어려워요. 예
전에는 좋았어요. 한눈에 매춘부인지 아닌지를 금방 알 수 있었죠. 입고 있는 옷
이나 화장이나 표정 따위를 보고 말예요. 요즘엔 안 돼요. 도저히 그러한 일을
할 것 같지 않은 아이가 매춘을 하거든요. 돈을 만들기 위해서라든지 호기심 때
문이에요. 좋지 않은 일이죠. 그리고 위험해요. "안 그래요? 늘 알지 못하는 남자
와 만나 밀실에 틀어박히는 거예요.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이 있어요. 변
태자도 있고 이상자도 있어요. 위험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젊은 아가씨는 그러한 걸 알 수 없거든요. 그녀들은 세상의 행운이 모
두 제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할 수 없는 일이지만요. 그게 젊다는 표지니
까. 젊을 때에는 무엇이든 잘 되어 갈 것처럼 여겨지는 거예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에는, 이미 늦어요. 그때에는 이미 스타킹이 목에 감겨져 있는 거예
요. 가엾게도."
"그래 범인은 알아냈습니까?" 하고 나는 물어 보았다.
문학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마를 찌푸렸다. "유감스럽지만 아직 알아내지
못했어요. 여러 가지 세밀한 사실은 알아냈어요. 하지만 신문에는 발표하고 있지
않아요. 아직 수사하는 도중이니까. 이를테면- 그녀의 이름이 메이이고, 직업음
매춘부입니다. 본명은... 뭐 별로 본명은 필요 없어요. 대수로운 문제가 아녜요.
출생지는 구마모토예요. 아버지는 공무원입니다. 별로 큰 도시는 아니지만, 부시
장까지 하고 있어요. 착실한 집안이에요. 금전 면에서도 쪼들리지가 않아요. 생
활비도 충분히 보내오고 있어요.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어머니가 올라와 옷가지
며를 사주고 있구요. 아마 패션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가족에게는 말하고
있었던가 봐요. 형제는 언니가 하나, 남동생이 하나. 언니는 의사와 결혼했고 남
동생은 규슈 대학의 법학부에 다니고 있어요. 훌륭한 가정이죠. 왜 매춘 행위를
할까요? 가족들은 모두 쇼크를 받고 있어요. 매춘을 한 일은 딱한 생각이 들어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호텔에서 남자에게 목이 졸려 죽었으니 쇼크를 받은
거죠. 당연한 일이에요. 조용한 가정이니까."
그가 이야기를 계속하는 동안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녀가 속해 있던 콜걸 조직도 우리는 알아냈어요. 꽤 힘겨웠지만, 어떻게든
거기까지는 도달했어요.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시내의 고급 호텔들의 로비를
감시하고 있다가, 매춘을 하고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두세 명의 여자를 경찰에
끌고 갔어요. 그리고 당신에게 보인 것과 같은 사진을 보이며 추궁한 겁니다. 한
명씩이 자백했어요. 모두가 당신처럼 비협조적인 건 아녜요. 그리고 그쪽에서도
약점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녀가 속해 있던 조직을 알아냈어요. 고급 매춘 조
직잉에요. 엄청나게 비싸게 먹히는 회원제예요. 나나 당신 따위와는 유감스럽지
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데에요. 안 그래요? 그것 한 번 하는 데 당신은 7만 엔
이나 지불할 수 있어요? 난 지불할 수 없어요. 농담이 아녜요. 그 정도라면 나는
단념하고 마누라하고 하고, 어린애에게 새 자전거를 사 주겠어요. 뭐라고 할까,
궁상스러운 얘기지만 말예요." 그는 웃으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설령
7만 엔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 하더라도, 나 따위는 절대로 받아주질 않아요. 신
원을 조사하거든요. 철저히 조사합니다. 안전 제일이에요. 위험한 손님은 받지
않아요. 형사 따위는 회원으로 받아주지 않아요. 경관이라서 안 된다는 것도 아
녜요. 경관이라도 훨씬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은 됩니다. 훨씬 높은 자리. 그러한
사람은 만일의 경우에 도움이 되니까. 나 같은 말단은 안 돼요."
그는 커피를 다 마시고,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래서 윗분에게 클럽을 강제로 수사하도록 해달라고 신청했습니다. 3일 만에
허가가 나왔어요. 우리가 수사 영장을 갖고 클럽에 뛰어 들었을 때에는, 사무소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정보가 누설되어 있
었던 거예요. 어디서 누설되었을까? 어디라고 생각해요?"
모르겠다고 나는 말했다.
"물론 경찰의 내부예요. 윗분이 관련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정보를 흘린
거예요. 증거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 현장의 사람들은 분명히 알 수 있어요. 어
디서 누설되었는가를, 부끄러운 일이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에요. 클럽 쪽도 그
러한 일에는 익숙해져 있으므로 눈깜짝할 사이에 다른 데로 옮아가 버리죠. 한
시간 내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무소를 빌려, 몇 대의
다른 전화를 사들이고는 똑같은 장사를 시작하는 겁니다. 간단해요. 고객 리스트
가 있고, 아가씨들만 확실히 갖추고 있으면, 어디서든 장사는 할 수 있어요. 우
리로선 알아낼 길이 없어요. 그것으로 아웃이에요. 실이 툭 끊어져 버렸어요. 그
녀가 어떤 손님을 받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으면, 이야기가 좀더 진전되어 있었
을텐데. 이래 가지고는 현재로서는 손을 쓸 길이 없어요."
"알 수 없는 일이군." 하고 나는 말했다.
"무엇을 알 수 없습니까?"
"그녀가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회원제의 고급 콜걸이었다면 말예요, 왜 그 손
님이 그녀를 죽었을까요? 그런 짓을 하면 누가 죽였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 아
녜요?"
"맞아요" 하고 문학은 말했다. "그러니까 죽인 사람은 고객 리스트에 실려 있
지 않은 인물이에요. 그녀의 개인적인 연인이거나 혹은 클럽을 통하지 않고 수
수료를 가로채고 있었겠죠.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어요. 그녀의 아파트를 수색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힌트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두 손
들고 말았어요."
"내가 죽인 건 아녜요" 하고 나는 말했다.
"물론 그건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아녜요." 하고 문학은 말했다. "그래서 말했
잖아요. 당신이 죽이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다고, 당신은 사람을 죽일 타입이
아녜요. 보면 알 수 있어요. 사람을 죽이지 않을 타입이라는 것은, 정말로 사람
을 죽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어요. 이는 육감으로 알
수 있어요. 우리는 프로니까요. 그러니까, 가르쳐 주지 않겠어요. 가르쳐 주면,
그것으로 좋아요. 그걸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귀찮은 말은 하지 않겠어요. 약속
합니다. 정말입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나는 말했다.
"아이고 맙소사." 하고 문학은 말했다. "글렀군. 실은 윗분도 수사에 별로 마음
이 내키지 않는 거예요. 호텔에서 매춘부가 살해되었을 뿐인 사건이니까요. 어찌
됐든 상관 없다는 듯한 태도예요. 그들은, 매춘부 따위는 살해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예요. 그들은. 사체 따위는 거의 본 적도 없습니다. 예쁜 아
가씨가 벌거벗겨진 채로 목이 졸려 죽은 것이 얼마나 가엷은 일인가를, 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이 매춘 클럽에는 경찰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정치가들도 관련되어 있는 모양이에요. 이따금 어둠 속에서 금배지가 번쩍입니
다. 경찰관이란 이러한 번쩍임에 민감하죠. 이게 잠깐 번쩍이면 거북처럼 목을
움츠려 버려요. 특히 윗분이 말예요. 그래서 아무래도 메이양은 잘못 죽임을 당
한 꼴이 되어버릴 것 같군요. 가엾게도."
웨이트리스가 문학의 커피 컵을 치웠다. 나는 절반밖에 마시지 않았다.
"나는 말예요, 그 메이라는 아가씨에게 웬지 친근감이 느꼈어요." 하고 문학은
말했다. "왜 그럴까요. 스스로도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그 애가 호텔의 침대에 벌
겨벗겨진 채로 목이 졸려 죽어있는 걸 보았을 때, 난 이렇게 생각했어요. 나는
꼭 이 범인을 붙잡아주겠다고 말예요. 물론 그러한 사체 따위를 우리는 싫증이
나리만큼 많이 보아왔어요. 새삼스레 사체를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도 않아
요. 토막난 거나 불타 버린 것 따위를 숱하게 보아왔어요. 그러나 그 사체는 어
딘지 모르게 특별했어요. 기묘하게 아름다웠어요.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비쳐들
고 있는데, 그 애가 얼어붙은 것처럼 누워 있었어요. 눈을 크게 뜨고, 입 속의
혀가 꼬부라지고 목에는 스타킹이 감겨져 있었어요. 넥타이처럼요. 그리고 다리
를 벌려 오줌을 싸고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나는 느꼈어요. 이 애는 내게 해결
해 주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예요. 그리고 내가 해결해 주기 전에는, 죽 그 아
첨의 공간 속에서, 그 기묘한 자세로 가만히 얼어붙어 있으리라고, 그래요. 아직
얼어붙어 있는 거예요. 거기서 범인이 잡혀 사건이 해결되기 전에는, 그 애는 해
방되지 않아요. 이러한 느낌이 드는 건 별난 일인가요?"
모르겠다고 나는 말했다.
"당신은 얼마동안 없었는데, 여행이라도 하고 있었습니까? 햇볕에 꽤 그을었군
요" 하고 형사는 말했다.
용무가 있어 하와이에 가 있었다고 나는 말했다.
"좋군요. 부러운데. 나도 그처럼 우아한 쪽으로 직업을 옮기고 싶군요. 밤낮 사
체만 보고 있으면 사람이 어두워져요. 사체를 본 적이 있습니까?"
없다고 나는 말했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을 낭비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소매가 서로 스치는 것도 전생의 인연이라고 하니까요. 체념해 줘요. 나
도 때로는 누구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져요. 그런데 그 무엇을 샀습니
까, 도뀨 헌즈에서?"
납땜 인두라고 나는 말했다.
"나는 배수관의 청소 용품을 샀어요. 집안의 하수구가 막힌 모양이에요."
그가 차값을 치렀다. 나는 내 자신의 몫을 치르겠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아무
리 해도 받지 않았다.
"괜찮아요. 내가 청했어요. 게다가 고작 커피 값이에요. 신경 쓸 것 없잖아요."
다방을 나올 때에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그에게 질문해 보았다. 이러한 창부
의 살인 사건이 흔히 있는 일인가고.
"글쎄요. 어느 편이냐 하면 흔히 있는 사건이죠" 하고 그는 말했다.
눈매가 약간 날카로워졌다. "매일 있는 건 아니지만,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
도 아녜요. 매춘부 살인 사건에 무슨 흥미라도 갖고 있습니까?"
별로 흥미 따위는 없다고 나는 말했다. 그저 잠깐 물어보았을 뿐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가 가 버리자, 위 속에 언짢은 감촉이 남았다. 그 감촉은 이튿날 아침이 되
어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천천히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처럼, 5월이 창 밖을 지나가 버렸다.
내가 일을 하지 않은 지도 벌써 2개월 반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내 일과 관련
된 전화가 걸려오는 빈도도 이전보다는 꽤 줄어들었다. 내 존재가 세상 사람들
로부터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는가 보다. 당연한 일이지만 은행의 구좌에도 돈
이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구좌에는 아직 돈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 나는
그다지 돈이 드는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 식사도 스스로 만들고, 세탁도 스스로
한다. 특별히 갖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다. 빚도 없고, 멋진 의복이나 자동차
를 마련하려고 애쓰는 편도 아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아직 돈 걱정을 하지 않
아도 되었다. 계산기를 사용하여 1개월 분의 생활비를 산출하고, 예금 잔고를 그
것으로 나누어 보니, 앞으로 5개월쯤은 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5개
월 내에는 어떻게 될 테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되지 않으면 또 그때 가
서 생각해 보면 된다. 게다가 책상 위에는 마키무라 히라쿠가 보내준 30만 엔짜
리 수표가 아직 그대로 있다. 우선은 굶어 죽지는 않으리라.
나는 생활의 방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가만히 무슨 일이 일어나
기를 계속 기다렸다. 일주일에 몇 번씩 풀에 나가 녹초가 되도록 수영을 하고,
식료품을 사갖고 와서 제대로 식사 준비를 하고, 밤에는 음악을 들으면서 도서
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나는 신문을 뒤적이며, 지난 몇 개월 동안에 일어난 살인 사건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았다. 물론 여자가 살해된 사건만을 찾아보았다. 그러한
시점에서 세계를 내다보니, 세상의 꽤 많은 수의 여자들이 살해되어 있었다. 찔
려 죽거나 맞아 죽거나 목이 졸려 죽어 있었다. 하지만 키키처럼 보이는 여자가
살해된 형적은 없었다. 적어도 그녀의 시체는 발견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사체
가 발견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발에 무거운 돌 따위를 매달
아 바다에 집어 넣으면 된다. 혹은 산으로 운반하여 묻어버리면 된다. 내가 정어
리를 묻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면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는다.
혹은 사고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딕 노스와 마찬가지로, 거리에서 자
동차에 걷어차여 죽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고로 죽은 것도 살펴보았다. 여
자가 죽은 사고, 세상에는 많은 사고가 있고, 많은 여자들이 사망하고 있었다.
교통 사고가 있고, 불타 죽은 사람이 있고, 가스 중독이 있었다. 하지만 그 피해
자들 가운데 키키 같아 보이는 여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자살도 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심장 발작을 일으켜 푹 죽어버리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일까지 신문에 실리지는 않는다. 세계에는 온갓 종류의
죽음이 가득해 있으며, 그러한 죽음들이 일일이 친절하게 신문에 보도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보도되는 죽음 쪽이 압도적으로 예외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
들은 조용히 죽어간다.
그러므로 가능성은 있다.
키키는 살해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고에 말려들어 죽었는지도 모른
다. 자살했는지도 모른다. 심장 발작을 일으켜 죽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런 확증도 없다. 죽었다는 확증도 없고 살아 있다는 확증도 없다.
나는 이따금 마음이 내키면 유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건강한가고 내가 물으면
그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언제나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듯한- 초점이 맞
지 않고 멍한- 어조로 말했다. 그 어조가 아무래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보통
이에요. 보통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어머니는?"
"... 멍하니 계세요. 일도 별로 하지 않아요. 종일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어요.
맥이 빠져버린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식료품 구입이라든지?"
"식료품 구입은 아줌마가 해주니까 괜찮아요. 배달도 해주고요. 우리 두 사람
은 둘이서 멍한 상태로 있을 뿐예요. 이봐요... 여기 있으면 어쩐지 시간이 정지
해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은 분명히 움직이고 있나요?"
"유감스럽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지. 시간은 자꾸 지나가지. 과거가 불어나고
미래가 적어져 가거든. 가능성이 줄어들고, 회한이 불어나는 거야."
유키는 잠시 잠자코 있었다.
"목소리에 별로 기운이 없군"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요?"
"그래요?" 하고 나는 되풀이했다.
"뭐에요 그게?"
"뭐에요 그게?"
"흉내내지 말아요."
"흉내 내는 게 아냐. 그건 너 자신의 마음의 메아리야. 커뮤니케이션의 결여를
증명하기 우해 비에른 보그가 격렬하게 되돌아오는 거야. 스매시!"
"여전히 별난 사람이야." 하고 유키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어린애들하고 똑같은 짓잉에요."
"틀려. 똑같지 않아. 내 경우는 깊은 내성과 실증의 정신에의해 확고히 뒷받침
되어 있어. 이는 비유러서의 메아리야. 메시지로서의 게임이야. 단순한 어린애들
의 흉내내기와는 질이 달라."
"흥, 어이가 없어."
"흥, 어이가 없어." 하고 나는 되풀이했다.
"그만해요., 그건, 이제!" 하고 유키가 외쳤다.
"그만 하겠어" 하고 나는 말했다.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목소리에 별로
기운이 없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응, 그럴지도 몰라요" 하고 말했다. "엄마와 함
께 있으면... 아무래도 엄마의 기분에 끌려들어가 버려요. 그런 의미에서 그 분은
강한 사람이니까. 영향력이 있어요. 틀림없이. 그 분은 주위의 사람들에 관해서
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거든요. 자신의 일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그런 사
람은 강해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래서 말려들어 버려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에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녀가 블루이면, 나도 블루가 되는 거예요. 건강할 때
는 나도 그 영향으로 건강해지지만 말예요."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때로는 거기서 나와서 나하고 둘이서 노는 편이 낫겠군."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럴지도 몰라요."
"내일 그리로 맞으러 갈까?"
"응, 좋아요" 하고 유키는 말했다. "당신과 얘기를 하니까 약간 기운이 나는
것 같아요."
"좋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좋았어." 하고 유키가 흉내를 내었다.
"관 둬."
"관 둬."
"내일 만나" 하고 나는 말하고, 흉내를 내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아메는 확실히 멍한 상태로 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예쁘게 다리를 포개
고, 깊이가 없는 단조로운 눈으로 무릎 위에 놓여진 사진 잡지를 들여다보고 있
었다. 마치 인상파의 그림 같은 광경이었다. 창문은 열려져 있었지만, 바람이 없
는 날이어서 커튼이나 책의 낱장조차도 산들거리지 않았다. 내가 방에 들어가자
그녀는 약간 고개를 들어 의지할 곳이 없는 듯이 미소지었다. 공기가 흔들리는
듯한 어렴풋한 미소였다. 그리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5센티미터쯤 들어올려 맞은
편 의자에 나를 앉게 하였다. 일을 거드는 여성이 커피 두 잔을 가지고 왔다.
"짐은 딕 노스의 집에 운반해 두었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부인을 만났어요?" 하고 아메가 물었다.
"아뇨, 만나지 않았어요. 현관에 나온 사람에게 짐을 건네주었을 뿐이에요."
아메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아무튼."
"괜찮아요. 대수로운 일도 아닌 걸요."
그녀는 눈을 감고 얼굴 앞으로 두 손을 가져가 손바닥을 합쳤다. 이어 눈을
뜨고 방안을 휙 둘러 보았다. 방에는 나와 그녀밖에 없었다. 나는 커피 잔을 집
어들고 마셨다.
아메는 언제나처럼 댕거리 셔츠와 잔뜩 구겨진 면바지를 입고 있지는 않았다.
오늘은 우아한 레이스가 달린 흰 블라우스와 연한 초록색 스커트를 입고 있었
다. 머리칼을 단정하게 꾸미하고, 입술 연지도 발랐다.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평
소의 넘칠 듯한 생명력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위태로우리만큼 섬세한 매력이
그녀의 주위를 희미하게 증기처럼 에워싸고 있었다. 그 증기는 금방이라도 흔들
리며 사라져 버릴 듯이 보이지만, 그저 그렇게 보일 뿐, 이는 언제까지나 그녀의
주위를 떠돌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유키의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종류
의 것이었다. 서로 반대되는 양 극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는 세월
과 경험에 의해 육성되고 갈고 닦여진 아름다움이었다. 이는 그녀의 독자성을
말해 줄 만한 아름다움이고 개성이었다. 이 아름다움은 말하자면 그녀 자신이었
다. 그녀는 이 아름다움을 제대로 파악하여, 자기 자신을 위해 유효히 사용할 방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유키의 아름다움은 대부분의 경우 무목적이었
고, 때로는 그녀 자신이 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따금 생각하곤 하
지만, 아름답고 매력적인 중년의 여성을 보는 일은, 인생에서 커다란 기쁨 가운
데 하나다.
"왜 이럴까?" 하고 아메는 말했다. 공중에 무엇인가를 오똑하니 띄워 놓고 가
만히 그것을 바라보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잠자코,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왜 이렇게 의기소침해졌을까?"
"사람이 하나 죽었기 때문이겠죠.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커다
란 사건이에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요" 하고 그녀는 힘없이 말했다.
아메는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어리석지 않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겠죠?"
"이럴 줄은 몰랐다- 는 건가요?"
"그래요. 그런 셈이죠."
"대수로운 사나이는 아니었어요. 별다른 재능도 없었어요. 하지만 성실한 사나
이였죠. 훌륭히 맡은 일을 다했어요. 오랜 세월에 걸쳐 손에 넣은 것을 위해 버
리고, 그리고 죽어 갔어요. 죽은 후에 그의 좋은 점을 알게 되었어요." 하고 나는
말할까 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어떤 종류의 말은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 이럴까?" 하고 그녀는 그 공간에 띄워놓은 무엇인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왜 나와 어울리는 남자들은 모두 못 쓰게 되어 갈까? 왜 모두들 이상한 쪽으로
만 가버릴까? 왜 내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이는 질문도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블라우스의 옷깃에 달린 레이스를 바라보
고 있었다. 이는 우아한 동물의 청결한 내장의 주름처럼 보였다. 재떨이 속에서
그녀의 샐럼이 조용히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연기는 훨씬 위쪽으로 올라가
분해되고, 침묵의 먼지와 동화되었다.
유키가 옷을 갈아입고 찾아와, 내게 이제 가요 하고 말했다. 나는 일어나 이제
가보겠습니다 하고 아메에게 말했다.
아메는 아무 말도 듣고 있지 않았다. 유키가 "엄마, 우리 다녀오겠어요" 하고
외쳤다. 아메는 고개를 들어 끄덕였다. 그리고 새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잠시 드라이브하고 오겠어요. 저녁 식사는 필요 없어요." 하고 유키는 말했다.
우리는 소파에 앉은 채 움쩍도 하지 않는 아메를 남겨두고 집을 나왔다. 그
집 안에는 아직 딕 노스의 기척이 남아 있는 듯했다. 얼굴을 잘 기억하고 있었
다. 빵을 자를 때에 발을 사용하는가고 내가 물었을 때에 그가 보여준 정말로
우스운 듯한 표정을.
정말 이상한 사나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죽은 다음에 존재감이 더 뚜렷해진다.
그러한 식으로 나는 몇 번인가 유키와 만났다. 세 번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녀는 하꼬네의 산 속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지내는 데 대한 특별한 감홍을 품고
있지 않는 듯했다. 그러한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싫어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남자 친구가 죽어 외돌토리가 된 어머니가 의기소
침해져 있으므로, 어떻게든 돌봐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특별히 갖고 있는 것 같지
도 않았다. 그녀는 바람에 날려가듯이 그저 그곳으로 운반되어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의 생활의 모든 측면에 대해 그녀는 무감동했다.
나를 만나면 유키는 그 동안만 약간 기운을 되찾았다. 농담을 하면 조금씩 반
응이 되돌아오고 목소리도 이전의 시원스런 긴장감을 되찾았다. 그러나 하꼬네
의 집으로 돌아오면 또 돌아 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없어지고 눈은
무감동해졌다. 마치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자전을 중지해 가고 있는 행성처럼.
"이봐, 한 번 또 도쿄에서 지내보는 편이 낫지 않겠어?" 하고 나는 말해 보았
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 말야. 그다지 오랫동안이 아니라도 돼. 사흘이나 나흘이
면 돼요. 잠시 환경을 바꿔 보아도 나쁘지 않아. 하꼬네에 있으면 점점 기운이
없어져 가는 것 같아서 말야. 하와이에 있던 때에 비하면 다른 사람처럼 보여
요."
"할 수 없어요." 하고 유키는 말했다. "아저씨의 말은 잘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시기예요. 지금은 어디에 있든 마찬가지예요."
"딕 노스가 죽고, 어머니가 저런 상태니까?"
"그래요, 그러한 이유도 있어요.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엄마로부
터 떨어져 있으면 그게 해결되는 것도 아녜요. 내 힘으로는 어찌 할 도리가 없
어요. 뭐라고 할까, 결국 그러한 흐름이에요. 운명이 점점 나빠져 가고 있는 거
예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든 마찬가지예요. 몸과 머리가 잘 연결되지
않아요."
우리는 해안에 드러누워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은 잔뜩 흐려져 있었다.
뜨뜻미지근한 바람이 모래사장에 자라고 있는 풀잎을 흔들고 있었다.
"운명." 하고 나는 말했다.
"운명." 하고 유키는 연약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이에요. 나빠지
고 있어요. 나와 엄마는 그러한 주파수가 공통되어 있는가봐요. 지난 번에도 말
한 것처럼 엄마가 활기가 있으면 나도 활발해지고, 엄마가 움츠러들면 나도 점
점 기력을 잃어가요. 어느 쪽이 먼저인지 잘 알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즉 엄마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지, 혹은 내가 엄마를 끌어당기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어
요. 하지만 아무튼 그녀와 나는 무엇에 의해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달라붙어 있든 떨어져 있든 마찬가지에요."
"이어져 있어?"
"그래요, 정신적으로 이어져 있어요." 하고 유키는 말했다. "어떤 때는 그러한
게 싫어서 반발하고, 어떤 때는 어찌 됐든 상관 없다고 체념하여 녹초가 되어
버려요. 단념하는 거에요. 이따금, 뭐라고 해야 할까, 자기 자신을 잘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수가 있어요. 뭔가 외부의 커다란 힘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되면, 어디까지가 자신이고, 어디서부터가 자신이 아닌지
를 알 수 없게 돼요. 그래서 체념해 버려요. 모든 걸 내팽개쳐 버리고 싶어져요.
혐오감이 들어요. 나는 아직 어린애예요. 하고 외치고 방의 한쪽 구석에 웅크리
고 있고 싶어져요."
나는 저녁 때에 그녀를 하꼬네의 집으로 데려다 주고나서 도쿄로 돌아왔다.
함께 식사를 하지 않겠는가고 아메가 권했지만, 언제나처럼 거절하였다. 미안하
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녀들 모녀와 식탁을 함께 하는 일을, 나로선 도저히 견뎌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멍한 눈을 한 어머니와 무감동한 딸. 사자의 기억. 무거
운 공기. 영향을 주는 자와 영향을 받는 자. 침묵, 쥐죽은 듯이 조용한 밤. 그러
한 정경을 상상하기만 해도, 위가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
스" 에 나오는 미치광이 모자 장수의 다화회가 훨씬 나을 것이다.
거기에는 부조리한 대로 일단은 움직임이라는 게 있다.
나는 카 스테레오로 옛 로큰롤을 들으면서 도쿄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면서
저녁 식사를 만들고, 그것을 혼자서 조용히 즐겁게 먹었다.
유키와 만나 둘이서 특별히 무슨 일을 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면
서 드라이브하고, 해안에 드러누워 멍하니 구름을 쳐다보거나, 후지야 호텔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아이노꼬에 가서 보트를 타곤 했다. 그리고 둘이서 소근거
리듯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오후의 시간을 보내고, 하루하루 세월이 지
나가는 것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마치 연금 생활자 같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어느 날, 유키가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나는 오다와라까지 내려가 신문
을 사서 살펴보았지만 대단한 영화는 상영되고 있지 않았다. 재개봉관에서 고혼
다가 나오는 "짝사랑" 을 상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고혼다는 내가 중학교 때의
한 반 친구이고 지금도 이따금 만나고 있다고 말하자, 유키는 그 영화에 흥미를
갖는 듯했다.
"아저씬 그 영화 보았어요?"
"보았어."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물론 여러 번 보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여러 번 보았다고 하면, 그 이유를 새삼스레 설명해야 하니까.
"재미있었어요?" 하고 유키가 물었다.
"재미없어." 하고 나는 이내 말했다. "시시한 영화야. 아주 소극적으로 표현하
고... 필름의 낭비야."
"친구는 뭐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 영화에 대해?"
"시시한 영화이고, 필름의 낭비라고 말하고 있어." 하고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출현하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틀림없는 말이야."
"하지만 그걸 보고 싶어요."
"좋아, 그걸 지금부터 보러 가자구."
"아저씬 괜찮아요? 두 번 보아도?"
"괜찮겠지. 달리 할 일도 없고, 게다가 특별히 해독을 주는 영화도 아니니까"
하고 나는 말했다.
"해독조차 주지 않는다구."
나는 영화관에 전화를 걸어 "짝사랑" 이 시작되는 시간을 알아 보고 그때까지
성안의 동물원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성 안에 동물원이 있는 도시는 오다와라
밖에는 없을 것이다. 별난 도시다. 우리는 주로 원숭이를 보고 있었다. 원숭이를
보고 있으면 싫증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 광경이 어떤 종류의 사회를 연상시키
기 때문이리라. 살금살금 움직이고 있는 게 있다. 남의 일에 참견하고 있는 게
있다. 경쟁심이 강한 게 있다. 뚱뚱하고 살이 찌고 추악한 원숭이가 산 위에서
주위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태도가 고압적인 데 비해 그 눈은 두려움과 시기심
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리고 참으로 더러웠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잔뜩 살이 찌
고 추악하며 음산해질 수 있을까 하고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물론
원숭이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평일의 점심때였으므로 영화관은 말할 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의자가 딱
딱하고 벽장 속에 있는 듯한 냄새가 났다. 나는 휴식 시간에 초콜릿을 사서 유
키에게 주었다. 나도 뭔가 사 먹으려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식욕을 돋올 만한
게 매점에는 하나도 놓여 있지 않았다. 판매하는 아가씨도 적극적으로 무엇을
팔려고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래서 유키의 초콜릿을 먹었는데 초콜릿을 먹은
것은 거의 1년 만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유키는 "음" 하고 말했다.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아요?"
"흥미를 가질 수 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지도 않아. 단지
흥미를 가질 수가 없어"
"이상한 사람이에요." 하고 유키는 말했다. "초콜릿에 흥미를 가질 수 없다니,
정신에 이상이 있어요."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러한 경우가 있다구. 너는 달라이 라마를 좋아하니?"
"뭐예요, 그건?"
"티베트의 가장 훌륭한 승려야."
"몰라요, 그런 건."
"그럼 넌 파나마 운하를 좋아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요."
"혹은 넌 일부 변경선을 좋아하니 싫어하니? 원주율은 어때? 독점 금지법은
좋아해? 쥬라기는 좋아해 싫어해? 세네갈 국가는 어때? 1987년 11월 8일은 좋아
해 싫어해?"
"시끄러워요, 원. 정말 어이가 없어. 잇따라 잘도 생각해내는 군요." 하고 유키
는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말했다. "알았어요, 잘. 아저씬 초콜릿을 싫어하지도 좋
아하지도 않고, 단지 흥미를 가질 수 없을 뿐이란 말이죠. 알았어요."
"알아주면 됐어" 하고 나는 말했다.
앞에 꼭 포개어져 있었다. 그녀는 소리도 내지 않고 움쩍도 하지 않았다.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마치 거기에 얼어붙어 죽어버린 것처럼 보
였다.
"괜찮아?" 하고 나는 물었다.
"별로 괜찮지 않아요" 하고 유키는 힘없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아무튼 밖으로 나가자. 이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애?"
유키는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딱딱하게 굳어진 팔을 잡고
영화관을 나왔다. 객석의 통로를 걸어가는 우리의 뒤쪽 화면에서는, 고혼다가 또
교단에 서서 생물 수업을 하고 있었다. 밖에는 이슬비가 소리도 없이 내리고 있
었다. 바다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지, 바다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나는
그녀의 팔꿈치를 잡고 몸을 부축하면서, 차를 세워둔 장소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유키는 입술을 꼭 악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영화관으로부터 차를 세워둔 곳까지는 겨우 200미터 정도의 거리였지만, 무척
긴 거리로 느껴졌다. 이대로 영원히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