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목장갑과 양말
“겁이…… 너무 겁이 나서 그런데 같이 가 주시면 안 될까요? 보고 싶은데…… 도저히 혼자 못 보겠어요.”
“예,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의 마지막을 보고 싶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을 거다. 그 마음을 알기에 태경은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보호자분과 안치실에 갔다 올게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환자 오면 바로 콜하세요.”
“네, 선생님.”
정말 신기한 건 늘 끊이지 않고 오던 환자가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 * *
“이쪽입니다.”
딱딱한 콘크리트 계단을 지나 지하로 내려온 태경이 안치실 문을 열었다.
“들어가세요.”
시신 안치실은 서늘한 냉기로 조금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다.
살려 달라는 소리, 술에 취한 취객의 소리, 우는 아이의 소리까지. 환자들이 살기 위해 들려오는 각종 다양한 소리와 대조적으로 벽 하나를 두고 있는 바로 아래층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기에 우리 석호가…….”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의 부고를 믿기 어려운 듯 보였다.
“이쪽 칸입니다.”
안치실 한쪽 벽면에 자리한 시신 보관함 문 앞에 두 사람이 멈췄다.
타탁-
둔탁한 스테인리스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보관함의 문이 열리고 깨끗한 천으로 덮인 고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 선생님…… 지금 여기 누워 있는 게 우리 아들인가요?”
“네, 맞습니다.”
한 번 더 자신의 아들인지 확인한 어머니는 천천히 손을 뻗어 흰 천을 내렸다.
“석호야, 엄마…… 왔어. 늦어서 미안해.”
어머니는 눈물을 힘껏 참으며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는 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네, 보호자분.”
“이 천, 다 내려도 괜찮을까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태경은 어머니의 맞은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고인을 덮고 있는 흰 천을 천천히 밑으로 말아 완전히 내린 그때였다.
“하아!”
아들의 손과 발을 본 어머니는 격한 숨을 크게 토해 냈다.
“이거…… 이거 혹시 선생님께서 해 주신 건가요?”
아들의 손과 발에 덮여 있는 투박한 목장갑과 깨끗한 양말을 본 어머니는 간신히 질문을 던졌다.
“네.”
“하! 으흑.”
태경의 짧은 대답과 동시에 고인의 어머니는 입을 틀어막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흐윽! 흑!”
어머니는 10분 동안 몸 안에 모든 기운이 빠질 것처럼 통곡한 뒤에야 마음을 추슬렀다.
“눈치채셨겠지만 우리 석호 CRPS였어요. 기분 좋은 봄바람조차 우리 애한테는 칼이었어요.”
태경은 예상하고 있었다. 아까 고인의 아버지가 온기 없이 누워 있는 아들을 보며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었다.
‘손발 아파서 어떻게 힘들었을 텐데……. 미치게 시렸을 텐데.’
아들의 손과 발을 주무르고 입으로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아버지를 보며 아들이 살아생전 희귀 질환인 CRPS로 힘들어했을 거라 짐작했다.
‘팀장님. 혹시 장갑 있나요?’
‘장갑은 없고 청소 물품 보관함에 목장갑이라면 있습니다.’
태경은 최 팀장에게 받은 목장갑과 여분으로 갖고 다니는 자신의 새 양말을 이석호의 손과 발에 끼워 넣었다.
태경은 고인이 된 아들의 맨손과 다리를 보며 마음 아파했던 보호자에게 작은 위로를 표하고 싶었다.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이라 불리는 CRPS(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는 만성 통증 질환이었다.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이 겪는 통증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아직까지 발병 원인이 명확하지 않으며 누군가는 가벼운 외상으로, 누군가는 부딪히거나 넘어진 후 생기는 사람도 있었다.
환자들은 얕은 바람이 살짝 닿거나 작은 자극에도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때론 이유 없이 통증이 시작되기도 했다.
그 통증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전문가들은 환자들이 칼에 베는 듯한 고통을 실제로 느낀다고 할 정도였다.
한 번 통증이 시작되면 죽을 것만 같은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환자들은 펜타닐 패치(마약성 진통 패치)나 응급실을 찾아 마약성 진통제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석호 제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참 착한 애였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학교 폭력을 당했어요.”
어머니는 아들의 장갑 낀 손을 꼭 잡으며 고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 날 맞고 왔는데 그 뒤로 맞은 부위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통 속에 살았어요. 가해자와 그 부모가 와서 수 없이 사과를 했지만 용서할 수 없었어요. 우리 석호의 일상을 망가뜨렸으니까요.
그 통증으로 인해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왔는데 날이 갈수록 우울증이 말도 못 하게 심해졌어요.
몸도 마음도 아파서 괴로워하는 아들을 보며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겠다고 남편도 나도 속으로 얼마나 빌었는지 몰라요.”
어머니는 아들의 긴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쉽게 만질 수도 없던 손과 발인데 이제야 마음 놓고 만져 보네요.”
어머니는 아들의 손과 발을 정성스럽게 주무르며 쓰다듬었다.
“안 그래도 남편한테 장갑이랑 양말 챙겨 오라고 문자했었는데……. 선생님 때문에 우리 석호 가는 길이 아프지 않을 거 같아요.”
고인의 어머니의 표정이 조금은 후련해 보였다. 아마도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가슴에 쌓여 있던 아픔을 털어놓고 싶었을 것이다.
보호자의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태경은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때론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잠시만요.”
Rrrrrrrrrr
태경이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네, 알았어요. 바로 올라갈게요.”
환자가 왔다는 콜이었다. 태경은 전화를 끊고 할 말을 빠르게 전했다.
“전해 드릴 게 있습니다. 아드님께서 손에 꼭 쥐고 있어요.”
고인이 손에 쥐고 있던 젖은 쪽지를 접혀 있는 상태로 잘 말린 태경은 어머니에게 전해 주고 안치실을 나갔다.
“빗물에 젖어 있어서 제가 좀 말렸습니다. 보호자분, 저는 환자 때문에 이만 올라가 봐야 해요. 저희 직원이 내려와서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했어요.”
태경이 나가고 어머니는 쪽지를 펼쳐 보았다.
-핸드폰에 영상 남겼어요.
쪽지를 본 어머니는 작은 가방에서 아들의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재생했다.
핸드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본 어머니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얼굴을 끌어안았다.
-아빠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어요. 너무 많이 슬퍼하지도 힘들어하지도 마세요. 나, 위에서 아프지 않고 편하게 잘 지내고 있을게. 다음 생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때도 나의 부모님으로 한 번 더 가족이란 이름으로 만났으면 좋겠어. 그땐 내가 아프지 않은 모습으로 아빠 엄마의 곁에서 오래오래 있을게.
사랑했고 사랑하며 영원히 사랑합니다.
* * *
“……나? 야! 최모나!”
“아. 왜!”
예상보다 학회 일정이 빨리 끝난 이찬희와 최모나는 ‘우심정’이라고 쓰인 식당 간판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어떡할 거야?”
“뭐가?”
“배 안 고파?”
“고프지.”
원래는 태경이 말한 대로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었다. 그런데 맛있는 고기를 제대로 음미하고 싶어 점심을 도시락으로 때우고 끝날 때 먹기로 한 것이다.
“먹고 싶지 않아?”
“먹고는 싶지. 이찬희 넌 아니야?”
“나도 먹고 싶어.”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두 사람의 생각보다 음식값이 비싸다는 것이다.
도시락으로 대충 때워서 출출한데 그렇다고 1인분에 십만 원이나 하는 식당을 덥석 들어가자니 발길이 쉬이 안 떨어졌다.
“근데 최 쌤아? 우리 여기서 밥 까지 먹으면 김 선생님께 너무 죄송하겠지?”
“그렇겠지? 1인분에 십만 원이면 둘이 먹었을 땐 이십만 원인데……좀 그렇겠다.”
“내 말이. 뭐, 아쉽긴 해도 어쩌겠어. 그냥 먹었다 생각하자.”
“먹지도 않을 걸 먹었다 칠 순 없어. 그냥 안 먹은 거지.”
“하여간. 최모나 너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요. 됐고, 여기서 좀만 내려가면 가성비 좋은 닭갈비집 있다는데 거기 어때?”
“뭐, 괜찮아. 근데 누가 사?”
“누가 사긴. 선생님 카드가 사는 거지. 일부러 밥 먹으라고 챙겨 주셨는데 아무것도 안 먹긴 좀 그렇잖아.”
“그래. 알았어.”
“그래도 한우 냄새는 실컷 맡았다.”
그렇게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고깃집에서 등을 보인 그때였다.
“어머, 세상에 어쩜 고기가 이런 맛이 날 수가 있지?”
“거봐! 내 말이 맞지? 내가 먹는 거에 환장한 놈이라 전국에 있는 식당은 다 가 봤는데 소고기는 이 집이 단연코 최고야.”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중이었다.
“그러게. 자네 말이 맞아. 아니 무슨 고기가 혀에 닿자마자 녹더라니까.”
“그뿐이야. 입안 가득 퍼지는 육즙과 풍미는 또 어떻고.”
“암튼 오늘 김 사장 때문에 내 인생 최고의 한우를 먹었어. 고마워.”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동시에 말했다.
“우리.”
“그냥.”
서로가 살짝 민망해진 상황에 이찬희가 솔깃한 제안을 던졌다.
“최 쌤? 우리 맛만 볼까?”
“그게 무슨 소리야?”
“저기 봐 봐. 5시까지 점심 특선 된다니까 육회 비빔밥 하나 시키고 1인분 시켜서 나눠 먹자. 어때?”
“콜. 들어가자.”
* * *
오후 시간, 태경은 병동을 돌며 회진을 하고 있었다.
“좀 괜찮으세요?”
“괜찮다마다요. 나는 우리 선생님만 보면 병이 싹 낫는 기분이 든다니까요.”
“기분이 아니라 진짜 좋아지고 있어요.”
“이게 다 선생님들이 신경 써 준 덕분입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은 꽝인데 병원은 참 잘 골랐습니다. 하하!”
경과가 좋은 환자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태경은 모든 회진을 끝냈다.
모든 환자들을 꼼꼼하게 회진 보는 일이 쉽진 않지만 태경은 회진 보는 시간이 즐거웠다.
‘310호 환자는 오늘로서 포르말린에서 분뇨로 내려갔구나.’
바로 다섯 번째 바이탈 때문이었다. 환자들이 좋아질 때마다 냄새의 단계도 내려가는데 그 포인트가 참 좋았다.
“선생님?”
병동에서 내려온 태경을 임정숙 간호사가 불렀다. 근데 그 모습이 좀 이상했다.
“잠깐 저 좀 봐요.”
마치 성난 황소가 들이박기 직전에 콧김을 뿜는 것만 같았다. 평소의 임정숙 간호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제가 뭐 잘못했나요?”
“네. 잘못하셨어요. 제가 뭐 때문에 이러는지 아시죠?”
“아니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데요.”
“정말 이러시기예요? 내일 어떡하실 거예요?”
태경은 작정하고 말을 하는 임정숙 간호사를 피해 진료실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
그러던 중 병원을 막 나서는 누군가를 보고 흠칫하더니 그 상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선생님? 갑자기 어딜 가세요?”
갑작스러운 전력 질주에 놀란 임정숙 간호사가 물었지만 태경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선생님?”
그러더니 병원 정문 계단을 막 내려가는 여자의 어깨를 잡으며 급하게 불러 세웠다.
“저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