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이상한 신혼부부
“저기요!”
다급히 불러 세우는 목소리를 듣고 돌아서는 여자를 향해 태경이 이름을 불렀다.
“푸엉 씨!”
“……!”
갑자기 전력 질주하게 만들었던 인물은 베트남 사람인 푸엉이었다. 푸엉은 얼마 전 변비로 인한 복통으로 남편과 함께 병원을 방문했었다.
그때 보호자로 동행했던 남편에게서 다섯 번째 바이탈이 감지됐었다. 당시 거듭된 질문에도 남편은 딱히 아픈 곳이 없다며 건강을 자랑했었다.
그 뒤로 태경은 가끔씩 푸엉의 남편이 생각나며 별일이 없는지 궁금했었다.
“나 기억 안 나요? 그때 배 아파서 나한테 진료 받았…….”
“아!”
태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푸엉의 표정이 환해지면 서툰 한국말이 들려왔다.
“기억난다. 나 치료해 준 선생님.”
“맞아요. 병원은 어쩐 일이예요? 그보다 남편 분은 잘 지내나요? 어디 아픈 곳은 없어요?”
“푸엉 아세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푸엉의 옆에 있던 친구가 물었다.
“네, 우리병원에 와서 제가 진료를 해 줬어요. 병원에서 나가는 길 같던데 어디 아픈가요?”
“아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친구는 푸엉과 같은 베트남 사람으로 한국말이 유창했다.
“저쪽 사거리에 마트가 오픈하는데 제가 화장실이 급해서 잠깐 들렀어요.”
“혹시 푸엉 씨, 남편분은 잘 지내고 있나요? 아픈 곳은 없고요?”
“문제없어요. 괜찮아.”
친구가 베트남 말로 해석해 주자 푸엉이 답했다.
“일하고 오면 매일 아고고. 그래도 우리 남편 참 튼튼해요.”
“근육통 말고는 매일 건강하대요. 그래서 이번에 지방에 큰 공사장에 일하러 갔다고 걱정해 줘서 고맙대요. 푸엉 말로는 남편이 가끔 선생님 이야기를 했다고 하네요.”
“저를요?”
“네, 아플까 봐 그렇게 걱정해 주는 의사는 처음 봤다고 고마워하더래요.”
“아닙니다. 잘 지내면 좋죠.”
“의사 선생님?”
친구가 베트남 말을 열심히 해석해 주고 있던 와중에 푸엉이 태경을 불렀다.
“나랑 우리 남편 아빠 엄마 된다. 나, 임신했다.”
“아! 그래요? 정말 축하해요. 그리고 이거 받아요.”
태경은 늘 갖고 다니는 다섯 번째 바이탈 수첩에 병원과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적어 건넸다.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해요.”
“감사합니다. 우리 남편 올라오면 같이 오겠다.”
“그래요. 몸조심해요.”
여전히 남편은 건강하다는 소식에 태경은 자신이 너무 예민했던 건 아닌지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푸엉 부부가 별일 없이 건강하길 바랐다.
* * *
“현우야?”
화장실에서 나온 젊은 여자가 복도에 기대 있던 남자를 부르자 상대가 고개를 들었다.
“어, 나왔어?”
“나 어때? 괜찮아?”
“어. 괜찮아.”
“아까 옷이랑 지금 이 옷이랑 어떤 게 더 성숙해 보여?”
“지금 입은 옷이 더 그래 보여.”
질문하는 여자도 답하는 남자도 어딘가 좀 어색했다. 또한 연인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참, 주소랑 생년월일 민증까지 다 외웠지?”
“다 외웠어. 솔아 미안해.”
“뭐가?”
“그냥. 이런 상황이 생긴 게…….”
“우리 서로의 문제이지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근데, 이게 가능할까?”
“가능 안 하면? 다른 대책이라도 있어?”
“아니.”
“이게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야.”
“그런데 의사가 알면 어쩌지?”
“그래서 이렇게 철저히 준비한 거잖아. 응급실은 응급 환자들이 우선인 곳이라 나머지 사람들한테는 크게 관심 안 둬. 그리고 병원 선생님 내가 어제 봤는데 남자 선생님이고 착하게 생긴 게 좀 어리바리할 거 같아. 아마 절대 모를 거야.”
“그래, 알았어.”
“어색한 티 내지 말고 잘해.”
여자와 남자는 결연한 표정으로 의지를 다지며 상가 건물을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 * *
“저 여자분, 우리 병원 왔던 베트남 사람 아니에요?”
임정숙 간호사가 다가오면서 물었다.
“맞아요. 기억력 좋으시네요.”
“제가 우리 애들이랑 병원 관련해서는 기억력이 상당해요. 근데 뭐 때문에 그렇게 급하게 달려가신 거예요?”
“아, 그게…….”
순간 태경은 적당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이 아픈 사람들에게서 냄새를 맡는데 그 때문에 확인차 뛰어갔다고 하면 누가 믿어 주겠나 싶었다.
“베트남어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예!?”
정말 엉뚱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베트남어요?”
“네. 요즘 베트남 노래에 빠져서요. 어, 정 선생?”
태경은 어색한 상황에 때마침 지나가는 의진을 불러 세웠다.
“피곤하지 않아?”
“피곤? 왜요? 저 피곤해 보여요?”
“아니, 당직 섰잖아.”
이찬희와 최모나의 부재로 의진이 당직을 섰다.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닌데요 뭘. 그나저나 그거 어떻게 됐어요?”
“그거라니 뭐가?”
“이 쌤, 최 쌤. 두 사람 우심정에서 밥 먹었냐고요.”
“맞다! 나도 그거 물어보려 했는데. 정 쌤이랑 저랑 그거로 내기했거든요.”
“두 분이 내기요?”
“네, 나는 못 사 먹었다고, 임 쌤은 그 반대로 해서 커피 내기했거든요.”
“그럼 정 선생이 졌네.”
“먹었어요? 우심정에서요?”
“정말 사 먹었다고요?”
‘먹었다’에 내기를 건 임정숙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의진의 뒤를 이어 말했다.
“얼마 안 나왔던데.”
“그럴 리가. 거기 가격이 엄청난데. 고기를 안 먹었나?”
“그런 거 같은데 아까 문자 보니깐 오만 원…… 어! 이게 뭐야!”
두 사람 말에 핸드폰을 꺼내 다시 문자를 확인하던 태경은 경악했다.
“잠깐! 이게 뭐지?”
그러더니 눈을 감았다 뜨며 핸드폰 화면에 밀착했다.
“왜요?”
“이거 뭐가 잘못됐는데?”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아무래도 나…… 카드 도용당한 것 같아요.”
“도용이요?”
“그럼 빨리 분실 신고부터 하세요.”
“아니, 신종 보이스 피싱인가?”
“선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게 아니고서야 이게 말이 돼? 결제 금액이 오만 원이 아니라 오, 오……오십만 원이 나왔어.”
환자를 보느라 대충 문자를 봤던 태경은 50만 원을 5만 원으로 잘못 봤던 것이다.
“오십만 원이요?”
“에이 설마요.”
“설마 아닙니다.”
믿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태경은 휴대폰 화면을 보여 줬다.
“세상에. 진짜네.”
“어떡해. 뭐 잘못된 거 아닐까요? 씨름부도 아니고 성인 두 사람이 어떻게 오십만 원치 고기를 먹겠어요.”
“그래. 그럴 거야. 계산이 잘못된 걸 거야.”
“수 쌤, 환자분 오셨어요.”
“알았어.”
세 사람이 50만 원에 놀란 사이, 응급실 간호사가 환자가 왔음을 알렸다.
“선생님, 일단 오십만 원은 머릿속에서 지우시고 얼른 환자 보러 가세요.”
“그래요. 환자 중요하죠.”
적잖이 충격을 먹은 태경이 응급실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안녕하세요.”
태경이 11번 베드 커튼을 열며 인사했다.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슬랙스 정장 차림의 여자와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함께 앉아 있었다.
‘뭐지? 전혀 아무 냄새가 나지 않네.’
태경은 두 사람에게서 그 어떤 냄새조차 느끼지 못했다. 대게 응급실을 찾은 사람은 아파서 온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냄새가 나지 않는 경우는 드물었다.
보통 아이들 몸에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오늘 새벽처럼 이미 사망한 경우가 아니고선 1단계인 시큼한 냄새라도 나는 게 정상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베드에 앉아 있던 젊은 남녀는 태경이 등장하자 동시에 인사를 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진료 보실 분이 조새이 씨?”
“네, 저예요.”
여자가 손을 들며 태경을 쳐다봤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사후 피임약을 처방받으려고 왔어요.”
“사후 피임약이요?”
예상 못 한 답변의 태경이 다시 한번 물었다.
“네.”
“실례지만 남자분은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남편인데요.”
“아, 부부세요?”
“네, 우리 부부예요.”
태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는 다시 한 번 당당하게 부부 사이임을 강조했다.
“사후 피임약을 처방 받으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처방 받을 수 있나요?”
“아니요.”
물론 그런 건 아니었다. 결혼한 여성도 사후 피임약을 원할 수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한 젊은 부부가 산부인과도 아닌 응급실에 사후 피임약을 받기 위해 내원하는 경우는 태경의 경험상 아직 없었다. 또한 신혼부부라는 두 사람의 행동거지는 극도로 조심스러워 보였다.
“저희는 결혼한 지 얼만 안 된 신혼부부인데 아직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요.”
가만히 있던 여자가 짧은 침묵을 못 견디고 태경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와이프 말이 맞아요. 둘 다 대학 연구실에서 일하는데 아이를 갖기에는 아직 여건이 되지 않아서요.”
“실례지만 남편분 나이가 어떻게 되죠?”
“94년생 28살입니다.”
뭔가 이상한 답변이었다. 왜 나이를 물어보느냐가 아닌 준비된 듯 바로 답변이 튀어나왔다. 게다가 묻지도 않은 출생년도까지 자세히 말했다.
“저는 27살이에요.”
스테이션에서 이미 접수된 환자의 정보를 알고 있는 태경에게 여자는 묻지도 않은 나이를 밝혔다.
“조새이 씨 사후 피임약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이게 몸에 무리를…….”
“선생님?”
태경이 처방 받을 약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려는 찰나 여자가 말허리를 끊었다.
“저도 충분히 알아요. 저희가 지금 좀 바빠서요. 그냥 빨리 처방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러세요? 알겠어요. 그럼 잠깐 기다리세요.”
“네.”
태경이 커튼을 치고 임정숙 간호사와 눈을 마주친 후 함께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봐! 내 말 맞지?”
커튼 사이로 보고 있던 여자가 두 사람이 베드에서 멀어지자 한결 편해진 얼굴을 말했다.
“그러게. 진짜 다행이다. 솔아 나 속으로 얼마나 쫄았는지 몰라.”
“현우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도 떨렸어.”
“근데 저 선생님 진짜 모르네.”
“내가 말했잖아. 좀 어리바리하다고. 전혀 의심조차 안 하잖아.”
“그럼 이제 처방전 받아서 약국 가서 사기만 하면 되는 거지?”
“응. 먹기만 하면 돼.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다.”
“나도.”
* * *
“세상에. 이걸 어째.”
임정숙 간호사가 답답한 듯 자신의 텀블러에 담긴 참물을 벌컥 들이켰다.
“선생님 저 사람들, 아니 저 친구들 어떡할까요?”
“어떡하긴요. 바로 잡아야죠.”
“바로 잡는다고요?”
“네, 그냥 보내면 안 되잖아요. 두 사람 처방전 핑계로 진료실로 안내 좀 해 주세요.”
“네, 선생님.”
태경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임정숙 간호사가 두 사람이 있던 베드로 향했다.
“오래 기다렸죠?”
“아니요. 괜찮아요. 처방전은요?”
“안 그래도 처방전 때문에 잠시 자리를 옮겨야 하는데요.”
“처방전 때문에 자리를 옮긴다고요?”
“네. 아까 문진하셨던 선생님이 처방해 주시는 건데 진료실에서 하시거든요. 아무래도 연결된 PC로 작업을 하시니까요.”
“아, 네. 알겠어요.”
임정숙 간호사가 그럴듯하게 둘러대자 두 사람은 조용히 따라나섰다.
“저 따라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