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38화 (137/472)

138화. 유일한 방법

삐- 삐-

전신마취를 위한 기계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정확히는 도승원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서 나는 소리였다.

“어!”

순간 모든 사람들이 당황했고,

‘농도가 진해진다.’

태경은 다섯 번째 바이탈 냄새가 진해지는 걸 느꼈다.

“산소포화도가 왜 떨어지죠?”

“기도삽관이 잘 안됐나?”

의진은 빠르게 청진기로 도승원의 명치와 가슴의 소리를 확인했다. 방금 전 마취를 위한 과정에서 잘못된 건 없었다.

“아니에요. 기도삽관은 잘 들어갔어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태경도 당황했다. 환자를 수술하면서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뭐가 문제지?’

아니, 사실 말이 안 된다.

숨을 쉬지 못하는 사람. 그러니까 어떠한 이유라도 호흡에 문제가 있어서 죽음이 다가오는 환자들에게 마지막에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기도삽관이다.

그만큼 호흡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기도삽관이었다. 그런데 기도삽관을 했는데 오히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환자가 숨을 못 쉰다는 것이 말이 안 됐다.

“정 선생, 혹시?”

순간 뭔가 떠오른 태경이 의진에게 말하려는 사이,

“빨리 뛰어가서 보호자에게 환자 천식 앓고 있냐고 물어봐요.”

이미 같은 생각을 마친 의진이 마취과 간호사에게 외쳤다.

“네, 선생님.”

“그리고 오는 길에 덱사메타손(dexamethasone, 염증을 억제하는 강한 약물로 천식 치료에도 사용됨)하고 지금 갖춰져 있는 기관 확장제도 갖고 와요. 아니 우선 약부터 가져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 * *

“보호자분?”

약을 갖다준 간호사가 다시 나와 이승희에게 뛰어왔다.

“혹시 환자분이 천식이 있나요?”

“네, 원래 없었는데 작년에 별안간 기침이 생겨서 검사했더니 천식이라고 했어요.”

“그럼 복용 중인 약도 있고요?”

“네. 복용하는 약 있어요.”

간호사는 이승희에게 설명을 들은 뒤 다시 수술실로 향했다.

지잉-

“정 선생님. 환자분 천식이 있고 무슨 약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알약도 복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환자 아스마 어택(asthma attack, 천식 발작)이에요. 천식이 있는 분들은 기도삽관을 하면 갑자기 기관지가 수축하는 분들이 있어요. 이럴 때는 이렇게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요.”

태경 역시 아까 혹시나 하며 생각했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수술 준비 과정이나 환자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수술에 대한 부정적인 도승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방금 의진의 설명을 들으니 수술 동의서를 받으면서 도승원이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게 됐다.

과거력과 가족력 그리고 앓고 있는 지병과 복용 중인 약에 관해 물었을 때 도승원은 없다고 했다.

수술받고 싶지 않다고, 죽고 싶다는 절망에 빠진 그는 진짜 죽기 위해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 환자분 왜 그랬어요.’

태경은 속상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도승원을 쳐다봤다.

그사이 약물을 투여한 의진이 도승원의 오른팔에서 동맥혈을 빠르게 채혈했다.

“가서 돌리고 결과지 주세요.”

“네, 선생님.”

“산소 비율 100%로 올릴게요.”

“알겠습니다.”

수술방 안 모든 이들이 환자에게 집중했고 의진은 조용히 모니터를 주시했다.

“올라가고 있어요.”

이후 조금씩 산소포화도가 올라가더니 이내 기계음이 멈췄다. 산소포화도가 정상치가 된 것이다.

“가서 약물 더 구비해 놓으시고 언제든지 줄 수 있게 해 놓으세요.”

“네, 선생님.”

“선생님, 환자 말이에요.”

의진이 태경을 보며 말을 이었다.

“척추 마취로 하시는 게 어떠세요?”

의진은 태경과 함께 도승원의 마취에 대해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척추 마취? 사실 절단술 하는데 상관은 없어. 근데 환자가 혹시 수술을 방해할까 봐 그게 좀 염려되네.”

도승원이 받는 다리 절단술은 척추 마취로 진행해도 괜찮았다. 전신마취를 하는 이유는 환자가 수술받는 동안 심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원활한 수술의 진행을 위해서였다.

다만 복용 중인 약물도 솔직히 말하지 않고 수술의 의지가 없는 환자가 척추 마취에 잘 협조해 줄지 미지수였다.

‘쉽지 않을 거 같은데…….’

솔직히 지금 같아서는 협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수술 중에 출혈이 많아지면 그것으로 인해서도 영향이 클 거라서 아마 아스마 어택이 또 올 거 같아요.”

“그때는 지금보다 위험해질 수도 있겠네.”

“네, 그래서 척추 마취로 하시는 게 현재 환자에게 안전할 것 같아요.”

“그럼 도승원 환자 척추 마취로 할게요. 정 선생, 환자 깨웁시다.”

“네, 선생님. 환자 리벌스(reverse, 환자를 수면에서 깨울 때 쓰는 약물을 지칭하는 약어) 줄게요.”

도승원은 잠시 팔다리에 힘을 주고서 얼굴이 빨개져 왔다. 그리고 의진은 삽관되어 있던 기구를 빼냈다.

“환자분 정신 차려 보세요. 환자분!”

“콜록. 콜록!”

도승원은 잠시 기침을 한차례 꽤 하더니 말을 이었다.

“수술 끝났나요?”

“아니요. 시작도 못 했습니다.”

“네!?”

도승원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미간에 인상을 쓰면서 답했다.

“왜죠?”

“환자분 천식 있다는 말 아까 저한테 안 했죠?”

“……!”

“천식 있으시잖아요. 그런 분 중에 전신마취가 어려운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척추 마취를 할까 합니다.”

“잘됐네요.”

도승원은 이제야 정신이 온전히 돌아온 듯 보이며 이곳이 수술방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리고 무감정한 표정으로 딱딱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일부러 기저 질환을 숨겼습니다.”

“뭐라고요?”

“선생님 저 때문에 괜히 힘 빼지 마세요. 죄송하지만……. 저 수술 안 하겠습니다.”

“네!?”

“아니. 환자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황하며 놀란 의료진들 사이로 태경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환자분 수술을 안 하시겠다고요?”

의진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네, 마취도 안 받을 거예요.”

“환자분의 심경 이해합니다. 하지만 수술을 안 받으면 다친 곳이 나을 수가 없어요. 이대로 두 면 돌아가실 수도 있고 상처 난 곳이 썩을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제가 바라는 겁니다. 여기 계신 선생님들께 죄송하지만 정말 딱 죽고 싶은 심정뿐이에요.”

척추 마취는 척추 뼈 사이로 바늘을 찔러서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 즉 환자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도승원의 뜻이 완강하고 확고하기 때문에 척추 마취나 수면 마취가 사실상 힘든 상황이다.

‘반드시 수술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태경은 아무 말도 없이 수술방 벽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잠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환자분!”

고민하는 태경을 뒤로 하고 도승원을 설득하던 의진은 환자의 태도에 답답한 듯 조금씩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냥 두라는 말씀이 얼마나…….”

“정의진 선생님?”

태경이 목소리를 높이는 의진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도승원의 마음도 답답한 의진의 마음도 모두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임 선생님. 잠시만요.”

태경은 임정숙 간호사를 부르더니 도승원이 누워 있는 베드 곁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선생님. 도승원 환자 수술받아야 하는데 이 일을 어쩌죠?”

“수술받아야죠. 곧 그렇게 될 겁니다.”

“어떡해요?”

“선생님, 지금 바로 수술방 나가서…….”

태경은 진지한 표정으로 임정숙 간호사에게 도승원을 수술시킬 방법을 설명했다.

“예? 아니, 선생님. 그래도…….”

설명을 들은 임정숙 간호사는 상당히 놀란 얼굴을 하며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표정이 다 느껴질 정도였다.

“괜찮을까요?”

태경이 생각해 낸 방법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지금 도승원 환자를 수술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이것뿐이에요. 이거 아니면 환자 계속 수술 안 받겠다는 고집 안 꺾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제가 얼른 다녀올게요.”

임정숙 간호사는 다부진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 채 바로 수술방을 나갔다.

“도승원 씨 보호자분?”

그리고 곧장 보호자 대기실로 가서 이승희를 불렀다.

“네, 수술은요? 우리 오빠 괜찮은 거죠?”

수술이 끝났다고 하기에는 도승원이 들어간 지 얼마 안 됐기에 이승희는 뭔가 이상했다. 게다가 아까 간호사가 다급하게 남자 친구가 복용하는 약에 대해 물어보고 간 뒤라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게 수술 시작을 아직 못 했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환자분께서 천식이 있는 걸 말하지 않아서 전신마취 중에 발작이 있었어요.”

“오빠는요? 괜찮은 건가요?”

“네, 마취과 선생님께서 응급 처리를 빠르게 하셨고 현재 환자분도 깨어난 상태예요.”

“그럼 수술은요?”

“척추 마취로 수술을 진행해야 하는데 환자분이 계속 거부하고 있어요.”

“하! 어떡하죠?”

“그래서 수술하려면 보호자분이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제가요? 도울게요.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보호자분께서 환자분과 함께 있어 주세요.”

“오빠랑 함께요?”

“네.”

이승희는 임정숙 간호사의 설명을 듣고 그녀를 따라갔다.

* * *

“선생님. 어쩌죠? 환자분 계속 고집 꺾지 않을 것 같은데…….”

“곧 수술하게 될 거야.”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태경의 답변에 의아하던 의진이 되묻던 그때였다.

지잉-

5분 전, 수술방을 급히 나갔던 임정숙 간호사 뒤로 누군가가 수술복과 마스크를 한 채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수술방에 있는 모든 의료진이 의아해했고 도승원은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계속 무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빠?”

별안간 들려온 이승희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도승원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방금 들어와 자신을 부른 사람이 여자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승, 승희야. 네가 여길 왜 온 거야? 여길 들어오면 안 돼.”

“알지. 그런데 선생님이 부르셨어.”

“선생님이?”

“응. 오빠 수술 잘 받을 수 있도록 수술받는 동안 옆에서 응원해 주라고 하셔서 들어왔어. 오빠 정말 수술 안 받을 거야?”

“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역시나 태경의 예상이 맞았다.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던 도승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그는 여자 친구인 이승희 앞에서만은 못난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 도승원을 수술받게 하려면 이승희가 그의 옆에 있어야 했다.

“내가 늘 오빠 옆에 있겠다는 말 기억하지?”

“그럼 기억하지.”

도승원은 이승희가 수술방까지 들어올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오빠 수술받자. 수술 잘 받고 우리 열심히 재활도 하자. 오빠는 할 수 있어.”

“스, 승희야…….”

“내가 아는 도승원은 얼마나 멋지고 씩씩한 남자인데. 나는 오빠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일을 하든 그런 거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그냥 오빠 그 자체를 좋아하는 거야. 우리 함께하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오빠 기운 내서 수술받자. 내가 언제나 함께 있을게.”

이승희의 말을 들은 도승원은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선생님? 잠시만요.”

그렇게 이승희가 도승원을 차분히 설득하는 사이 의진이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태경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잠시 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선생님. 아니, 선배?”

의진이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정중하고 무거운 톤으로 태경을 불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