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39화 (138/472)

139화. 굵디굵은 다리뼈

“선생님. 아니, 선배?”

의진이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정중하고 무거운 톤으로 태경을 불렀다.

“정 선생?”

“선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수술방에 그것도 수술 당사자도 아닌 환자의 보호자가 출입하다니 의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아. 알지.”

마취 담당 의사인 의진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수술방에 보호자가 들어오면 안 되지. 당연한 거야.”

“누구보다 그걸 잘 아시는 분이 왜 이러세요?”

“근데 수술방에 보호자가 들어오면 안 된다는 룰은 왜 있지?”

“네? 그, 그거야 수술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잖아요.”

“그렇지. 수술방에 보호자가 들어오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룰은 수술에 방해가 돼서 환자에게 해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야. 모든 것은 환자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지. 결코 우리의 체면을 위해서가 아니야.”

“선배?”

“다시 말해서 환자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들어오는 게 맞지 않을까?”

“…….”

맞다. 지금 태경이 하는 말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옳은 말이었다.

태경이 어떤 마음으로 환자의 보호자를 의료진과 같이 수술복을 입혀서 데려온 건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다 환자를 위해서다.

특히 누구보다, 그 어떤 의사보다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이기에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태경을 응원하고 의사로서 존경하지만, 이번 일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의진아. 네 마음 충분히 알고 지금 어떤 생각하는지도 알고 있어. 그런데 저기 봐 봐?”

태경의 말을 따라 의진의 시선이 베드 위로 향했다.

“그렇게 완강히 거부하던 환자가 자세를 잡고 있잖아.”

“……!”

진짜였다. 불과 조금 전까지 수술을 거부하며 버티던 도승원이 척추 마취를 받기 위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어. 하지만 우리 환자만 생각하자고. 정 선생도 나도 의사잖아. 우리는 환자만 생각하자. 응?”

“하! 진짜 선배 진짜 특이한 사람인 거 알아요?”

태경은 예전부터 환자의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결 방안을 찾는 사람이었다. 의진은 결국 환자를 위해 태경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허락하는 거지?”

“마취할게요.”

“그래, 역시 정 선생이라면 내 마음을 이해할 줄 알았어. 의진아 고마워. 잘 부탁해.”

대화를 끝낸 태경과 의진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행히 두 분은 잘 해결한 것 같네. 이제 환자분만 수술 결정하면 되겠다.’

베드에서 두 사람의 심각한 분위기에 덩달아 긴장했던 이찬희는 대화가 잘 끝난 것 같아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환자분 수술하실 거죠?”

“네……. 선생님. 수술하겠습니다.”

이승희의 설득은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수술방까지 들어와 따뜻하게 응원하는 여자 친구의 진심이 도승원의 닫힌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도승원은 자신을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여자 친구를 두고 혼자서 도망치듯 나쁜 마음을 먹은 게 부끄러웠다. 갑자기 사고를 당한 자신을 비관하며 진짜 중요한 게 뭔지를 잊고 있었다.

“고마워요. 환자분.”

태경은 수술하기로 한 도승원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잘 결정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수술받는 일인 것 같습니다. 승희가 수술받는 동안 제 옆에서 함께하겠다는 말을 들으니 용기가 나더라고요.”

도승원은 이승희과 애틋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저 때문에 곤란하셨을 텐데 선생님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별말씀을요. 도승원 환자분이 그렇게 마음먹어 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도승원의 사과 한마디에 태경과 의진을 비롯한 수술방 의료진의 심란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 그럼 수술 진행할게요. 환자분 아까 설명해 드린 대로 마취는 척추 마취로 진행할 겁니다. 그리고 수술하는 동안 소리가 크게 들릴 수가 있어요. 그래서 두 분께 귀마개를 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으세요?”

“아니요. 선생님 귀마개 필요 없습니다.”

현재 도승원이 받게 되는 절단술을 수술 중 소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태경은 그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가 놀라지 않게 귀마개를 준비했다. 하지만 도승원과 이승희는 거절했다.

“그거 하면 승희랑 대화를 못 할 것 같아서요.”

“저도 괜찮아요. 선생님.”

“두 분의 뜻은 알겠지만, 소음이 크기 때문에 놀랄 수 있어요.”

“선생님. 제가 바보 같은 모습과 못난 짓으로 수술을 지연시켰지만, 제가 생각보다 꽤 다부진 면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귀마개를 하지 않고 수술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태경은 일단 대화를 매듭짓고 마취하기로 했다.

“정 선생님. 마취해 주세요.”

“네. 도승원 환자분 척추 마취 진행하겠습니다.”

그 뒤 의진의 주도하에 척추 마취가 잘 끝났다.

“마취됐습니다. 수술 준비하시면 됩니다.”

“정 선생, 수고했어요.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두 분 앞에 가림막이 쳐질 거예요. 보호자분은 환자분 옆에 지금처럼 자리해 주시면 됩니다.”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이승희는 도승원 얼굴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 앞에는 수술 장면을 볼 수 없도록 태경의 말대로 커다란 가림막이 설치되었다.

“자! 수술 준비할게요.”

본격적으로 수술 준비가 시작되고 태경은 도승원의 다리로 가서 칭칭 감겨 있는 붕대를 빠르게 풀었다.

‘경계가 너무 지저분하다.’

폭발로 상처를 입은 다리는 다시 보아도 정말 지저분했다.

태경은 한쪽 구석에 있던 양동이와 포비돈을 갖고 왔다. 그리고 포비돈과 식염수를 1:1로 섞은 후 환자의 환부에 부었다.

멸균 장갑을 착용한 채 하나하나 환부를 확인하며 붓고 또 부었다. 한참을 붓고 나서야 태경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 주변으로 오염되지 않게 수술포 잘 깔아 주세요.”

“네, 선생님.”

나가서 손을 한참 동안 꼼꼼히 닦고 들어온 태경이 손을 위쪽으로 가슴 앞에 들고서 들어왔다.

“펜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간호사가 멸균된 펜을 태경에게 건넸다.

환자 주변으로는 멸균된 포가 가지런하고 빈틈없이 쳐져 있어서 수술 필드가 구분되어 있었다.

태경은 건네받은 멸균된 펜으로 환부보다 위에다가 수술 전 절개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잠깐 토니켓(tourniquet) 풀어 볼게요.”

토니켓(사지 등을 압박해서 출혈을 차단하는 기구)의 압력을 낮추어서 환부로 혈액이 통하자 다시 과다한 출혈이 흐르기 시작했다.

태경은 멸균된 장갑이 오염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환부를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가까이 갖다 댔다. 그리고 손을 뻗어서 주사기 니들(needle, 바늘)로 환부 바로 위부터 여기저기를 찔러본다.

바늘을 빠르게 찌르고 뺀 자리에 출혈이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어디까지 살리고 어디까지 자를지 판단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여기까지는 혈액이 오는 것 같습니다.”

지금 태경이 하는 과정을 알고 있는 이찬희가 바늘로 찌른 부위를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이쪽 부분이 좋겠어.’

다시 멸균된 펜을 잡은 태경은 도승원의 무릎 위에다 절개선을 표시하며 수술의 청사진을 그렸다.

무릎에서 10cm 정도 위에다가 측면으로 보았을 때 [ㅅ]자 모양으로 그렸다.

“정 선생님, 수술 시작합니다.”

이로써 모든 수술 준비를 끝낸 태경이 마취 담당 의진에게 수술 시작을 알렸다.

“네, 선생님.”

“메스 주세요.”

메스를 건네받은 태경은 절개선에 집중하며 메스를 움직였다. 절개선에 메스를 넣은 느낌이 복부랑은 판이했다.

복부는 토니켓을 할 수가 없으므로 최대한 근육이 적은 위치로 절개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수술에서는 근육을 피할 수가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서걱- 서걱-

메스로 근육을 절개하자 근육의 발달 정도에 따라 질긴 정도가 더 두드러졌다. 소방대원의 다리 근육이라 그런지 마치 질긴 섬유 가닥을 자르는 느낌이 들었다.

“자, 받아 주세요.”

양쪽 절개선의 그림을 따라 근육을 자르니 지저분한 환부가 떨어져 나갔다. 심하게 오염이 되어서 살릴 시도도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턱-

잘린 부분이 철로 된 양동이 안에 툭 하고 떨어졌다.

“잠깐, 토니켓 압력 낮춰 주세요.”

“알겠습니다.”

다시 출혈을 막기 위한 도구의 압력을 낮춰 근육에서 출혈이 있는지 확인한다. 여기서 출혈이 발생할 경우, 이후 봉합된 근육에서 출혈이 지속될 수가 있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하다.

“투스포셉(tooth forcep) 주세요.”

포셉으로 근육을 여기저기 잡아 보면서 출혈이 발생하는 부위를 보비(bovie, 전기 칼)로 지혈한다.

근육은 절개 시 출혈이 많다. 혈관에서 나는 출혈이 아니라서 스멀스멀하게 여기저기서 흘러내린다.

그 출혈을 하나하나 잡아 주어야 수술 이후가 안전하다.

그사이 가림막 뒤에 누워 있는 도승원의 표정은 수술받는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편해 보였다. 바로 옆에 있는 이승희 때문이었다.

“오빠 괜찮아?”

이승희가 수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도승원만 들릴 정도의 작은 소리로 물었다.

“괜찮지.”

“힘들지 않아?”

“전혀. 마취를 잘해 주셔서 그런지 하나도 아프지 않아. 그나저나 나 때문에 수술방까지 들어오고 오빠가 많이 미안해.”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남인가.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게.”

“내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앞으로 우리…….”

“쉿! 지금 그런 생각은 하지 말자. 응? 수술 잘 끝나는 생각만 해.”

“알았어.”

“오빠 우리 처음 데이트 한 날 기억해? 그때 오빠 귀까지 빨개져서 엄청 부끄러워했는데.”

이승희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따뜻한 눈빛으로 대화를 이어 가며 도승원을 잘 보살피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을 동안 출혈을 잡는 작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출혈을 지혈하니 탄 냄새가 수술방 안에 진동했다. 그리고 도승원 다리 한복판에 삐죽 나와 있는 굵디굵은 다리뼈가 태경의 시선에 들어왔다.

‘이걸 어쩐다.’

다리뼈를 향한 눈빛에 걱정이 느껴졌다. 삐죽 나와 있는 다리뼈 작업이 어렵거나 환자에게 피해가 가서 걱정된 게 아니었다.

피머(femur, 허벅지를 지탱하는 뼈)의 먼 쪽을 자를 때 나는 그 소리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들려질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자신의 신체 일부가 톱에 의해 잘려 나가는 소리를 듣는 것이 결코 기분 좋지는 않을 것이다.

자칫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여긴 좀 나중에 하자.”

“나중에요? 아, 환자분 때문에 그러시죠?”

이찬희의 질문에 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뼈는 이후에 자르기로 마음먹고 임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다른 구조물들을 먼저 찾기로 했다.

“켈리 주세요.”

켈리포셉(kelly forcep, 끝이 뭉툭해서 무언가를 잡을 수 있음)을 쥔 태경이 어떤 구조물을 잡으려고 했으나 주변 근육에 파묻혀서 여의치가 않았다.

“다이섹터(disector, 끝이 뭉툭하지만 얇아서 구조물들을 분리할 때 사용함).”

“네, 선생님.”

태경이 근육과 근육을 서로 박리하기 위해 다이섹터를 잡자 이찬희가 기구를 이용하여 근육들을 위아래로 잡아당겨 줬다.

그 뒤 기구의 끝 두 개를 하나로 모아서 근육 사이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벌리는 방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근육과 근육 사이를 벌리고 있었다.

‘전부 이쪽에 몰려 있네.’

다리의 잘린 단면을 정면으로 보았을 때 중요한 구조물은 중심과 5시 방향에 몰려 있다.

태경은 뼈 바로 아래를 지속적으로 분리하고 파고들어 갔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잡은 듯 켈리포셉으로 집어서 당겼다.

드르륵-

그때 켈리를 고정하는 소리와 함께 당겨진 구조물이 근육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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