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05화 (204/472)

205화. JQ 백화점

미국 워싱턴-

“이사장님,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일로 미국에 머무는 신화대병원 고돈진은 비서실장으로부터 자료를 건네받았다.

“차 실장, 시간은 보고 이야기하는 건가? 아직 새벽이라고.”

“원래 이 시간에 늘 일어나셨으니까요.”

“일어나자마자 보고해야 할 만큼 급한 일인 거야?”

까탈스러운 성격의 고돈진은 비서가 건넨 자료를 들고 책상 위에 앉았다.

“네, 꼭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새벽 댓바람부터 이 야단이야.”

“일단 한 번 보시죠.”

고돈진은 비서에게 눈을 훑기며 자료를 살폈다.

“흠!”

한참 동안 자료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그가 책상 위로 자료를 던지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민심이 좋은 어느 의사가 방송에 나와 의사 자질이 없는 의사를 폭로했고, 사람들은 그 의사가 우리 병원 사람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상황인 거네.”

“네, 그리고 방송에 나왔던 그 의사의 전 직장이 신화대병원이었습니다.”

“이게 뭐 어쨌다는 거야? 그냥 사람들이 이슈 몰이 하는 거잖아. 뭐 이런 일을 일일이 신경 쓰고 있어.”

“그게 문제가 좀 생긴 것 같습니다.”

“문제라니……. 무슨 문제?”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문제의 의사가 고계득 원장이 맞는 것 같아서요.”

실장의 일 중 하나가 병원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들을 정리해 고돈진에게 보고하는 거였다.

며칠 전 태경이 방송에 나온 뒤, 시간이 지날수록 신화대병원이 주목을 받자 실장은 따로 이 사안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계득이 자신의 비서를 시켜 중환자실 환자 가족과 접촉한 사실까지 알아낸 것이다.

물론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조사가 이뤄져야겠지만, 차 실장은 고계득이 꾸민 일이라는 걸 확신하는 듯했다.

“그래? 자네가 따로 조사했었다고?”

“네, 이사장님. 만약 진짜 고계득 원장이 한 일이라면 뭔가 조치를 취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제 조금 있으면 암센터 증축도 마무리되고 한동안은 공식 행사에 원장이 자리해야 하는데,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고돈진은 실장이 하는 말을 신중히 듣고 있었다.

“뭐, 자네 말이 틀린 말은 아니야. 그런데 차 실장?”

“네, 이사장님.”

“내가 고계득을 원장 자리에 앉힐 때 대부분 사람들이 반대했거든. 자네도 기억하지?”

“물론입니다.”

기업을 책임지는 회장을 뽑는 자리가 아니라 환자를 살피고 병원을 살피는 원장을 뽑는 일이었다.

병원장이 가져야 하는 여러 자질이 있겠지만, 열 개 중에 아홉 개가 다 맞는다고 하더라고 의사에게 중요한 건 환자를 향한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고계득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 마음이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그를 병원장으로 뽑는 데 반대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자네, 월급 받는 오너들이 실적이 안 좋으면 사임하는 거 알고 있지?”

“그럼요. 기업의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실적 아니겠습니까.”

“병원도 똑같아. 나는 말이야. 병원도 결국 기업의 일종이라고 생각해. 수술 실력도 평범하고 집안도 평범한 고계득을 뽑은 이유는 사업 수완이 좋아서야. 2년 연속 적자였는데 고 원장이 취임하고 계속 흑자야. 아픈 사람 상대로 돈 장사해서 남긴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자네도 잘 알잖아.”

김건형의 말대로 고돈진 역시 좋은 인간은 아니었다.

특히나 의사가 아닌 그는 환자보다는 고계득이 가져다주는 눈앞의 수익이 훨씬 중요했다.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 아니 그럴 거면 무료 진료를 해야지. 병원도 다 장사라고. 장사!”

“이사장님 말씀이 틀린 건 아니지만, 제 생각에는 더 큰 일이 생기기 전에 여기서 정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괜찮아. 차 실장은 너무 조심스러운 게 탈이야. 사업도 다 모험이라고. 모험!”

“이사장님, 그래도 신중하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차피 입 닫고 귀 닫으면 꺼질 불씨야. 일주일 지나면 알아서 잠잠해져.”

차 실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돈진은 고계득을 내보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 * *

서울의 위치한 JQ 백화점-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주말의 시작을 알리는 금요일이라 그런지 JQ 백화점은 사람이 많았다.

“어머! 세상에 여기 진짜 좋다.”

“어쩜 이렇게 잘 꾸며 놨을까?”

“기네스에 올랐다더니 크기가 엄청나네.”

그냥 사람이 많은 게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며칠 전, 서울 시내 한 곳에 대형 백화점이 오픈했다. 말이 좋아 백화점이지 사람들이 놀고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다 있는 곳이었다.

마치 오너가 ‘이래도 돈을 안 써?’라고 말을 하는 듯 온갖 것이 다 있었다.

호텔, 수영장, 스파, 극장, 서점, 각종 음식점과 공연장, 수족관은 물론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 시설도 있었다.

또한,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에 등재되는 기염을 토했다.

백화점 전문 기업이 10년 동안 공사 끝에 사활을 걸고 오픈한 백화점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오픈 날부터 연일 최고 매출을 깨고 있었기에 관계자들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사람 진짜 많다.”

“그래도 백화점이 워낙 커서 사람 많아도 다니기 불편하진 않아서 좋네.”

멀리서 봐도 행복함이 느껴지는 단란한 세 가족이 백화점 나들이를 나왔다.

“우리 예쁜 공주님 아빠가 목말 태워 줄까?”

“여보, 하지 마. 여기서 위험해.”

“아니, 시러. 채영이 엄마 아빠 손 잡고 가는 게 더 좋아.”

동그란 눈이 예쁜 4살 채영이는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아빠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리본 머리띠에 엄마와 커플 티로 옷을 맞춘 아이는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어이구! 우리 채영이 말도 잘하네. 누구 딸?”

“엄마 딸!”

“어, 그럼 아빠 딸은 안 할 거야?”

“아니. 아빠 딸도 할 거야. 엄마? 저거 맛있겠다.”

채영이는 커다란 롤리팝 사탕을 보며 엄마한테 어필했다.

“채영이 저거 먹고 시픈데.”

“이따가 엄마가 밥 먹고 사 줄게. 우선 채영이 옷부터 보고 밥 먹고 사자.”

“아빠아~~!”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아빠를 쳐다보자 남편은 아내에게 부탁했다.

“그냥 하나 사 주지 그래.”

“안 돼. 지금 저거 먹으면 이따가 밥 안 먹는단 말이야.”

“봤지? 엄마가 안 된대. 이따 밥 먹고 먹자. 알았지?”

“알아떠.”

“당신도 안 돼.”

“뭐가?”

“지금 채영이 핑계로 당신도 간식 먹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당신 눈동자가 간식 코너 지날 때마다 저절로 돌아가던데?”

“오! 역시 당신은 날 너무 잘 알아. 근데 진짜 잘 꾸몄다.”

“그러게. 엄청 고급지네. 명품관은 진짜 으리으리하다.”

“엄마? 아빠? 저기 위에 봐 봐.”

주변을 둘러보던 채영이는 고개를 들고 천장을 가리켰다.

“달도 있고 별님이도 있어. 반짝반짝 빛나. 우와! 신기해.”

“그러게 진짜 너무 예쁘다.”

채영이의 말에 천장으로 시선을 옮긴 부부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백화점 중앙에 1층부터 7층까지 뚫린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천장까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장식물이 케이블에 매달려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외국 유명작가의 ‘동심 속 행복’이란 작품으로, 날개 달린 말이 끌고 있는 마차 안에는 아이들과 동물들이 있었고 주변에는 달과 별, 구름 등 여러 조각들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뤘다.

1미터부터 5미터까지 크기도 다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조각은 크리스털 유리로 되어 있어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 어쩜 저런 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멋있다.”

“예술가는 다르긴 다르네.”

채영이네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이 천장 장식물에 넋을 놓고 봤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워낙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기에 저것만 보러 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백화점 같다.”

“백화점 와서 백화점 같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동네 있는 백화점은 완전 작잖아.”

“에이! 거기가 무슨 백화점이야 그냥 쇼핑몰 수준이지.”

“그건 그래.”

“아! 맞다. 당신 화장품 살 거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냥 나중에 살까 하고.”

“왜? 내가 사 줄게. 오늘 이 오빠가 쏜다.

“어머! 정말?”

“아빠~ 채영이도 사 줘.”

“그럼 우리 공주님도 사 주지. 가자.”

채영이네 가족이 화장품 코너로 이동하는 사이, 한쪽 구석에서 말쑥하게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백화점 실무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은 천장 장식물이었다.

“저거 괜찮을까?”

두 사람 중 상사로 보이는 남자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살짝 인상을 썼다.

“그러게요.”

“아니, 저게 개장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말썽이냐고. 참나!”

상사는 난감한 표정과 함께 연신 짜증 섞인 말투로 일관했다.

그가 짜증이 난 이유는 수십억을 들여 설치한 백화점의 자랑인 장식물 때문이었다.

장식물과 천장을 연결하고 있는 케이블 선 하나가 끊어진 것이다.

분명 전날 폐점 후 관리자가 점검할 때만 해도 이상이 없었는데 언제 끊어졌는지도 모르게 끊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끊어진 케이블이 연결된 장식물을 붙들고 있는 다른 케이블 선은 멀쩡했다.

“아! 이거 기분이 영 찜찜하네.”

“그러니까요. 관리자들이 좀 더 잘 확인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그렇다고 저거 하나 때문에 갑자기 사람들을 다 내보낼 수도 없잖아요?”

“그랬다간 위에서 지랄할걸.”

실무자인 두 사람은 관리자에게 연락을 받고 일찍이 상부에 보고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였다.

그나마 약간의 조치를 취한 게 장식물 아래 1층에 안전선을 설치한 게 전부였다.

“저거 고치려면 장비도 불러야 하고 전문 인력도 필요한데 거기에 시간도 꽤 걸려.”

“그럼 손해가 만만치 않겠죠?”

“말이라고. 오죽하면 내가 본부장님 전화를 다 받았겠어.”

“본부장님이 직접 전화하셨어요?”

“말도 마. 아주 식겁했다니까.”

“근데 이거 나중에라도 알려지면 벌금이나 그런 거 엄청나게 물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걸려도 벌금 안 낼 거야.”

“예? 왜요?”

“왜긴. 워낙 세금을 많이 내니까 관할 기관도 어지간한 일에는 눈감아 준다고 하더라고.”

“돈이 무섭네요. 근데 케이블 하나가 느슨해진 거죠?”

“무슨 소리야. 아예 끊어졌다니까. 지금까지 뭐 듣고 있었어?”

“죄송합니다. 어느 쪽이에요?”

“저기 큰 크리스털 앞쪽에 1미터 정도 되는 긴 유리 조각. 저거 말하는 거야.”

끊어진 케이블 줄이 짧기도 했고 다른 장식물에 가려져 있었기에 백화점을 찾은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아! 저거요. 그러면 저기 직원들이라도 배치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가끔 안전선 근처까지 와서 휴대폰으로 천장을 찍는 사람이 있었다.

“윗선에서 괜히 사람들 시선만 끈다고 그것도 하지 말래. 기사 나면 골치 아파진다고 그러는 거지.”

“사람이 중요하지. 돈이 중요한가?”

“윗사람들이야 당연히 돈이 중요하지. 일단 밤에 사람 불러서 새벽까지 고치면 되니까 폐점 시간까지 별일 없이 잘 넘어가길 바라야지.”

“아직까지 괜찮은 거 보니까 별일 없을 거예요. 그럼 근처에 직원 한 명이라도 배치할까요?”

“아니, 뭐 그럴 필요까지 있겠어.”

“그래도 혹시 몰라서요.”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실무진은 뾰족한 수 없이 걱정만 늘어놓고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실무진도 연일 기록적인 매출에 입 다물기 바쁜 임원들도 모르는 게 있었다.

끼익-

하나의 케이블이 끊어지자 다른 케이블 선도 서서히 느슨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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