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엄마
김선민과 승우와 인사를 나눈 병원 식구들은 두 사람이 누가 그룹에서 보낸 고급 세단을 타고 출발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하나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들 병원 안으로 들어가고 태경과 의진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저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해피 엔딩이죠?”
한참을 말없이 김선민과 승우가 타고 간 차를 보고 있던 의진이 말했다.
“그럼, 현재도 앞으로도 해피 엔딩이지.”
“정말 잘된 거 같아요.”
“그러니까. 정말 잘됐어.”
“그나저나 아까 승우가 준 거 뭐예요?”
“이거?”
태경은 작은 봉지를 흔들었다.
“그러게, 이게 뭘까? 어!”
“심장이네요?”
방금 의진이 말한 것처럼 작은 봉지 안에 들어 있는 건 심장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체모형 케빈의 심장이었다.
“이거, 승우가 아끼던 모형에 있던 심장 아니에요?”
“맞아. 우리병원에 있던 낡은 모형인데 내가 줬더니 이름도 붙여 주고 엄청 좋아하더라고.”
“그렇게 아끼는 모형의 심장을 준 거면 승우에게 선배가 좋은 사람이었나 봐요.”
“그런가? 쪽지도 남겼네.”
-김태경, 선생님께.
선생님은 정말 멋진 분이시고 좋은 분이세요. 그동안 저한테 잘해 주셔서 감사해요. 심장은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거잖아요. 그래서 멋지고 소중한 선생님께 선물로 드리고 싶었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또 놀러 올게요.
심장 모형과 함께 들어 있던 작은 쪽지에 적힌 내용은 의진의 말 그대로였다.
순수하고 맑은 아이 눈에 비친 태경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승우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걸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마음이 참 예쁜 아이야.”
“그러니까요. 그런데 김선민 씨 좀 안됐어요.”
“왜?”
“그냥 제 생각인데, 저렇게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이라고 마음껏 불러 보지도 못하고 엄마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그 심정이 어떨까 싶어서요. 아까 김선민 씨가 승우를 보는 눈빛을 보니까 엄마 그 자체더라고요. 언젠가는 승우에게 진실을 모두 밝혀야 할 텐데 그것도 참 고민스러울 거 같고……. 그냥 두 사람 보니까 안타까워서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런 걱정이라면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때론 있잖아.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어.”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선배 뭐 알고 있는 거 있죠?”
“글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
“아, 뭐예요. 얼른 말해 봐요.”
“비밀이라고나 할까?”
“아! 선배~ 뭔데요?”
“비밀!”
의진은 병원 안으로 들어가는 태경의 옆구리는 쿡 찌르며 계속 추궁했다.
* * *
전날, 저녁-
‘승우 이제 잘까?’
‘선생님 그런데요.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그림을 다 붙인 승우는 머뭇머뭇하며 태경을 쳐다봤다.
‘뭔데. 말해 봐.’
‘선생님은 어른이죠?’
‘그럼 어른이지.’
‘그러면 어른은 몇 살부터가 어른이에요?’
‘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승우의 질문에 태경은 잠시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만으로 19세 그러니까 20살 생일이 지나면 성인이라고 해. 그런데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도, 그러니까 겉으로 보기에 어른 같아도 어른같이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 그리고 어른은 내가 한 일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해.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본 거야?’
‘……말하고 싶어서요.’
‘말? 무슨 말?’
‘선생님? 이건 비밀인데요. 실은…….’
승우는 태경의 눈치를 보고 한참을 망설이다 다음 말을 꺼냈다.
‘누나는 누나가 아니라 엄마예요.’
‘그랬구나.’
승우의 말을 들은 태경은 살짝 놀랐지만,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이때 승우에게 김선민이 엄마라는 사실을 들었기에 다음 날,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그렇게 놀라지 않았던 것이다.
‘승우는 그걸 알고 있었어?’
‘네, 할머니가 알려 주셨어요.’
할머니는 언제부터인가 엄마에 관해 묻는 승우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물론 김선민의 옛일까지 전부 털어 놓지는 않았다.
엄마라는 사실을 알려 주며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엄마가 아닌 누나로 승우 옆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 그럼, 나는 언제 엄마라고 부를 수 있어? 내가 먼저 말하면 안 돼?’
‘우리 예쁜 강아지가 커서 어른이 되면 그때 누나한테 말해도 돼.’
다행히 승우는 할머니의 말을 잘 듣고 지금까지 김선민을 누나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누나에게 엄마라고 부르고 싶어?’
‘……네. 마음은 그러고 싶어요. 그런데 누나가 힘든 건 싫어요.’
‘이건 선생님 생각인데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될 거 같아.’
‘정말요?’
‘응.’
태경은 승우의 고민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답했다.
아마도 할머니가 어른이라고 한 것은 승우가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 실망하지 않고, 김선민을 이해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깊고 배려심이 깊은 승우라면 어른이 되기 전에 김선민의 고백을 들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언제 말하면 좋을까요?’
‘그건 승우의 마음이 준비되고 엄마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그때 말하면 좋을 거 같아.’
‘그게 언제인데요?’
‘승우가 생각했을 때 말해도 되겠다 싶은 그때가 좋지 않을까? 지금보다 좀 더 성숙하고 성장했을 때.’
아직 초등학생이 듣고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말이었지만, 승우는 태경의 말뜻을 정확히 아는 듯했다.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요. 누나도 시간이 필요할 거 같으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말할래요. 생각해 보니까 누나든 엄마든 전, 상관없어요. 누나가 내 옆에 있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 우리 승우는 마음도 참 예쁘다.’
태경은 승우를 안아 주며 두 사람의 관계가 남매에서 모자로 바뀔 날이 어쩌면 멀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 * *
누가 그룹 영재 센터-
“하하하!”
“회장님, 그렇게 좋으십니까?”
두 시간 전-
영재 센터에 도착한 김선민과 승우는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영재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의 예상대로 확실한 영재였다.
그것도 승우는 영재 중의 영재로, 쉽게 말해 천재 중에서도 상위 1%라는 놀라운 결과를 받았다.
“도 교수. 이거 잘못 나온 거 아니지?”
“예. 회장님.”
아침 회의를 마치고 조금 정에 도착해 결과를 받은 김건형은 입에 귀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확실한 거지?”
“물론입니다. 오류가 없는지도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검사를 진행하면서 예상은 했지만, 승우 군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센터 책임자인 도 교수는 승우를 대견한 듯 보며 답했다.
“내가 필요한 건 뭐든지 해 줄 테니까 자네가 앞으로 잘 좀 키워 줘.”
“물심양면으로 돕겠습니다. 승우야? 오늘 수고 많았어.”
“네. 감사합니다.”
“누나분도 수고 많았어요. 조만간 또 보고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좋은 인재를 발견한 도 교수는 흐뭇한 표정으로 승우와 김선민에게 인사를 한 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하하하!”
“…….”
연신 크게 웃는 김건형과 달리 아직도 이 상황이 얼떨떨한 김선민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모두를 놀라게 한 승우는 옆에서 고 팀장과 퍼즐을 맞추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자꾸 웃어서 미안해요. 내가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래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표정을 보니까 많이 놀랐나 보네요.”
“네, 조금요.”
“어쩜 이렇게 동생을 훌륭하게 키웠는지……. 참, 대단해요.”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고생하셨지, 전 한 게 없어요.”
“승우가 참 대단한 아이예요. 앞으로 우리 회사에서 장학금을 주고 승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입니다.”
“네?!”
“그리고 몇 년 뒤에는 영재 프로그램 중에 해외 유학도 있으니, 그때 누나가 승우와 잘 상의해서 원한다면 유학도 보내 줄게요.”
“너무 감사한 제안인데 이렇게 좋은 제안을 저랑 승우가 받아도 될지 모르겠어요.”
“좋은 인재는 사람을 살리고 기업을 살리고 나아가서는 나라도 살린다고 하죠. 그럼 의미에서 승우에게 후원하는 건 나한테는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승우가 나중에 누가 그룹에서 일을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부담 느낄 필요도 없어요. 그러니 사양하지 말아요.”
“네,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김건형의 연락을 받고 워낙 대단한 사람이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대단한 제안을 받을 줄은 정말 몰랐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김선민은 김건형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내 제안을 받아 줘서 나도 고마워요. 그리고 내가 듣기로는 취업을 알아보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네. 맞아요.”
“그러지 말고 우리 회사 디자인 팀에서 일하는 거 어때요?”
“네? 제가요?”
김건형이 내민 서류는 누가 그룹 계열사로 유명한 회사의 디자인팀 경력직 추천서였다.
“디자인을 전공했고 실력이 좋다고 들었어요. 이쪽에서 일하면 좋을 거 같아서 내가 김선민 씨를 추천했어요.”
그룹 전체 회장이었지만, 그렇다고 김건형이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마련한 자리는 아니었다.
김건형은 회사 내 낙하산 입사를 방지하지 위해 오래전부터 추천 제도를 만들었다.
가족을 제외한 사람을 추천할 수 있으며, 일정 기간 계약직으로 일한 뒤 자체 평가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제도였다.
“괜찮으니까 추천서 얼른 받아요. 설마 거절하는 건 아니죠?”
“아니요. 그럴 리가요. 거절하지 않습니다.”
설명을 들은 김선민은 추천서를 받았다.
워낙 오래전부터 꼭 한번 일해 보고 싶던 회사였기에 솔직히 제안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가 어떻게 보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거야 김선민 씨가 열심히 일해서 정규직이 되면 그게 보답이에요. 그러니까 열심히 해 봐요.”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승우한테도 저한테도 이렇게 좋은 기회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진 사람이 베푸는 건 당연한 거니 신경 쓰지 말아요. 승우야, 오늘 재미있었어? 여기가 마음에 들어?”
“네, 할아버지. 책도 많이 볼 수 있고 신나게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래. 앞으로도 책 많이 읽어야 한다.”
“네, 할아버지.”
김선민은 그 뒤, 김건형이 해 주는 인생의 조언을 듣고 승우와 함께 영재 센터를 구경한 뒤 집으로 향했다.
“승우 오늘 재미있었어?”
“응. 너무. 어! 할머니다.”
김선민과 함께 빌라로 향하던 승우는 밖으로 나오던 윗집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
“아이고, 승우랑 선민이 집에 왔구나. 잘 왔어. 내가 계속 집에 왔나 안 왔나 보고 있었어.”
윗집 할머니는 승우를 안아 주고 김선민의 등을 쓰다듬으며 진심으로 반가워했다.
“별일 없으셨죠?”
“우리가 별일 있을 게 뭐 있어. 어디 아픈 데는 없지?”
“그럼요. 저 없을 때 병원에 오셔서 승우 챙겨 주셨다는 얘기 들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보다 선민아. 사람이 찾아왔었어.”
“사람이요?”
“웬 남자였는데 근처 커피숍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면서, 너 오면 이걸 꼭 전해 주라고 하더라.”
“……!”
할머니가 건넨 쪽지를 본 김선민은 집을 찾아왔다는 남자가 이영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할머니 죄송하지만…….”
“승우 봐 달라는 얘기지? 걱정하지 말고 얼른 갔다 와.”
“늦지 않게 올게요.”
김선민은 급하게 빌라를 나섰다.
그 당시에는 마음이 갈급했지만, 경비 아저씨가 정말로 이영훈을 찾아서 편지를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아!”
커피숍까지 단번에 뛰어온 김선민은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문을 열고 들어가 좌우를 살피던 그때, 안쪽에 앉아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한눈에 봐도 그가 이영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김선민은 천천히 다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