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60화 (359/472)

360화. L1에서부터 L3. 그리고 L4

“다행이다. 지금 병원에 비상 아닌 비상이 걸려서 빨리 응급실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그 환자 벌써 왔어요?”

의진의 말을 듣고 있던 오창규가 아무렇지 않게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환자?”

“교도소 환자요.”

“오 쌤도 벌써 들었구나?”

“아, 네……. 아까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데 최 팀장님이 하시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요? 그럼 대충 상황은 알고 있는 거죠?”

“네.”

“아마 곧 있으면 도착할 거예요. 나머지는 응급실 가서 수 쌤한테 듣고 일단 얼른 가 봐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항생제 잊지 말고 꼭 복용해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의진과 대화를 마친 오창규는 빠르게 응급실로 향해 임정숙 간호사에게 갔다.

“오 쌤, 좀 괜찮아? 정 쌤한테 연락받았어. 약은?”

“방금 먹었습니다. 콜 못 받아서 죄송해요.”

“사람이 아파서 그런 건데 죄송할 게 따로 있지.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리고 조금이라도 몸 이상한 거 같으면 나한테 바로 알려 줘.”

“네, 그렇게 할게요.”

대화를 마친 오창규는 다른 의료진과 함께 스탠바이했다.

“긴장한 사람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베드에서 환자를 보고 온 최모나가 스테이션에 있는 임정숙 간호사에게 말했다.

“그러게요. 아무래도 제소자 환자라고 하니까 괜히 더 긴장되고 신경 쓰이고 그런 거 같아요.”

“맞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도 아니고 범죄를 저지른 진짜 교도소에 있는 사람을 마주해야 하는데 왜 긴장이 안 되겠어요.”

“그래도 이 와중에 유일하게 긴장하지 않는 분이 한 분 계시네요.”

그 말에 최모나의 시선이 조금 떨어져 있는 태경에게 향했다.

정말이지 거짓말이 아니라 평소 모습 그대로 웃는 얼굴로 환자를 보고 있었다. 그런 태경의 얼굴에서 긴장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가끔 선생님 볼 때마다 무슨 초연한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지금도 그런 거 같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요?”

“워낙 다양한 환자들을 봤기 때문 아닐까요. 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침착함도 있고, 또 괜히 동요하고 그러면 환자들이 알 수도 있으니까 그냥 환자구나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듣고 보니 수 쌤 말이 맞습니다. 짬에서 오는 바이브라는 게 저런 거 같아요.”

“최 쌤도 그거 있어요.”

“전, 아직 멀었습니다. 그러면 바이브를 더 채우러 11번 베드 환자 좀 보고 올게요.”

“네.”

그렇게 응급실에 모인 의료진들은 긴장감을 누르며 최대한 평소처럼 환자를 봤다.

잠시 뒤-

“워, 원장님? 도착했습니다.”

의료진의 말에 태경이 응급실 입구 쪽으로 걸어가자 교도소 차량에서 들것과 함께 제소자가 옮겨지고 있었다.

1137번은 오른쪽 손과 다리에 수갑이 채워진 채 들것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교도관 두 명이 붙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연손 교도소에서 환자 이송 왔습니다.”

“네, 어서 오세요. 우리병원 책임자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우선 안쪽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혹시라도 환자들이 수갑 찬 제소자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도록 얇은 포로 살짝 수갑이 있는 부분을 덮은 뒤 안쪽 처치실로 빠르게 이동했다.

드르륵-

“일단 손에 있는 수갑은 풀어 주시죠.”

“아, 수갑…….”

태경의 말을 들은 교도관이 선배 교도관을 쳐다보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선배 교도관이 고개를 끄덕였고 곧이어 1137번 오른손에 있던 수갑이 풀어졌다.

“협조 감사합니다. 우선 라인부터 잡고 바이탈 확인해 주세요. 네, 여보세요?”

오더를 내린 태경은 가운 주머니에서 진동하는 핸드폰을 받았다.

“그래요? 바로 갈게요.”

“원장님 무슨 일이세요?”

“ICU(중환자실) 콜이에요. 갔다 올 테니까 이 선생 검사 진행하고 있어.”

“네, 선생님.”

“어머!”

“왜 그래?”

태경이 처치실을 나가고 라인을 잡던 간호사가 작은 소리로 놀라자 옆에 있던 간호사가 속삭이듯 물었다.

“그게 아니라 몸은 마른 편인데 팔 근육이 어마어마해서요.”

간호사의 말대로 1137번은 마른 몸의 소유자였지만, 생각보다 단단한 근육을 갖고 있었다.

1137번은 맞은 충격과 통증이 꽤 컸는지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멍했다. 아프다거나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천장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맞았나 봐요. 온몸이 다 멍투성이에요.”

“환자한테 집중하자고.”

“네, 수 쌤.”

곁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간호사들에게 작은 소리로 주의를 줬다.

“바이탈은 스테이블(stable, 안정적)합니다.”

“그래도 모르니까 급속 수혈 O형 준비하고요(혈액형을 모를 때 일정량 미만은 O형으로 대체할 수 있음). 바로 CT 갈게요. 전신 다 촬영할 겁니다.”

“오 쌤 CT실로 함께 이동 부탁해요.”

“네, 선생님.”

임정숙 간호사의 말에 오창규가 1137번이 누워 있는 베드를 밀며 교도관과 함께 처치실을 나갔다.

몇십 분 뒤-

중환자실을 갔던 태경이 다시 응급실로 들어와 스테이션으로 모니터 앞에 자리했다.

“어떻게 됐어?”

“바이탈 계속 스테이블해서 바로 전신 CT 촬영했습니다.”

“어! 조영제 넣어서 했네? eGFR(신장의 기능을 확인하는 척도. 조영제 투여 시 신기능이 낮으면 치명적일 수 있음)은 확인했고?”

“실은 그 부분에서 좀 전달 오류가 있었습니다.”

이찬희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전달 오류?”

“네, 제가 긴장한 탓에 CT실 가기 전에 eGFR 확인한다는 걸 깜빡했어요. 그래서 바로 CT실에 콜했는데, 오 선생이 제가 조영제를 하라고 한 거로 착각해서 이미 CT 촬영이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이찬희는 분명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전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오창규는 연락받고도 촬영을 진행했다.

그 뒤, 오창규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긴장하는 바람에 실수를 저질렀다고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했다.

굳이 세세하게 잘잘못을 따진다면 이번 일은 이찬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오창규의 잘못이 맞았다. 하지만 이찬희는 그의 탓을 하고 싶지 않았다.

환자를 책임지는 일은 전적으로 의사의 책임이 더 중요했기에 처음부터 전달을 확실하게 하지 못한 본인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온종일 설사에 시달린 직원에게 뭐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뒤에 환자한테 확인은 했고?”

“네, 촬영 끝나고 교도관에게도 상황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당사자에게 물어봤더니 예전에 촬영했을 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으며 과거력 또한 없다고 했어요. 제가 더 신중하게 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였지만, 사실 이찬희는 속으로 꽤 긴장하고 있었다.

살인을 저지르고 몸에 수갑 찬 제소자를 직접 보니까 그 긴장감이 더 배가 됐던 것이다.

“이 선생이 긴장을 많이 했나 보네. 적당한 긴장감을 좋지만, 너무 긴장하면 오히려 실수가 나는 법이야.”

“네, 선생님.”

“그리고 항상 확인하고 체크하는 거 잊지 말고.”

“네, 죄송합니다.”

“아니야. 이미 지나간 일 그만 곱씹고 앞으로 집중하자.”

“알겠습니다.”

“그래서 CT상 특별한 거 있어?”

“다행히 복부 내에서 출혈 소견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초음파는?”

“초음파 상에서도 복강 내 플루이드(fluid, 체액 / 출혈 시 복강 내 액체가 보임)도 없었습니다. 다만, 척추에 문제가 좀 있어요.”

“척추? 설마 골절이야?”

“그게 좀 애매합니다. 여기, 여기…….”

이찬희는 태경이 보고 있는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집어 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 L1에서부터 L3까지 압박 골절이 조금씩 있고 L4에서는 골절 라인이 보이긴 해요.”

“음. 환자 증상이 제일 중요하지 압박 골절이 이번에 폭행으로 생긴 건지 과거에 생긴 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리고 여기 보이지?”

“네, 선생님. 보입니다.”

“이 환자 L3와 L4 사이의 디스크가 엄청 심하네……. 환자가 증상이 없으면 그냥 봐도 되지만, 있으면 열어서 수술해야겠는데. 압박 골절에 시술도 할 겸 그냥 여는 게 나을 거 같아. 그러면 우선 증상은…….”

“원장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태경이 이찬희와 1137번 상태에 관해 이야기하던 도중 다른 의료진과 1137번을 보고 있던 오창규가 조용히 다가왔다.

“괜찮아요. 환자한테 무슨 일 있어요?”

“그게 환자가 현재 허리를 엄청 아파하고 있어요.”

“그래요?”

“네,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어찌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제가 보고 있다가 아무래도 알려 드려야 할 거 같아서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알았어요. 내가 바로 가 볼게요.”

“네, 원장님.”

오창규의 말을 들은 태경은 1137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드르륵-

“환자분, 많이 아프다고 하던데 지금 상심이 크죠?”

태경이 처치실로 들어서자 1137번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얼굴 곳곳에 자리한 멍 자국이 가득했다.

“흐윽!”

처음 응급실에 들어올 때와 달리 1137번을 태경을 보자마자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너무 아픕니다. 흐윽!”

“아, 그러세요. 사실 현재 환자분의 상태가 꼭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에요. 지금 골절도 있고 디스크도 있기는 한데 증상에 따라서 선택해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아, 아니요. 선생님.”

1137번은 여전히 울면서 태경의 말허리를 급히 잘랐다. 그러면서 자신이 느끼는 통증을 강하게 호소했다.

“저 수술해 주세요. 아까 맞은 곳이 너무 아파서 힘듭니다. 수술하고 싶어요.”

“이 친구 많이 아픈가 본대.”

“저기, 선생님. 저희가 선생님처럼 의사는 아니지만, 그냥 수술해 주시면 안 될까요?”

1137번이 많이 힘들어하자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교도관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맞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이 사람을 봤는데 거짓말을 하거나 꾀병을 부리는 친구는 아니거든요. 교도소에서부터 상당히 많이 아파했어요.”

“으! 선생님. 저 정말 너무 아파요.”

1137번은 다시 한번 힘겹게 입을 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환자분. 그러면 저희가 척추 수술을 할 건데요, 내시경보다는 전체적인 윤곽을 보기 위해서 절개해서 열 겁니다. 절개하면 많이 힘드시고 병원에 좀 오래 있어야 하실 거예요.”

“상관없습니다. 선생님. 저 어차피 교도소 가면 또 맞을지도 모릅니다.”

“일단 병원에서의 안전은 걱정하지 마시고 저와 우리 의료진이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선생님, 모쪼록 이 친구 잘 좀 부탁드릴게요.”

1137번과 교도관들은 태경과 의료진에게 인사를 건네며 고마워했다.

“입원실 안내는 임 선생님과 오 선생이 수고 좀 해 줘요.”

“네, 원장님. 알겠습니다.”

“환자분은 지금 병실로 이동할 거고, 입원과 관련해서는 여기 선생님이 설명해 드릴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태경은 오더를 내리고 처치실을 나오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 선생?”

“네, 선생님.”

“환자 하루 정도 금식하고 내일 수술하자. 밤사이 많이 아파하니까 마약성 진통제 써 주고 잘 봐줘.”

“네, 선생님.”

“그리고 급할 거 없으니까 하루 정도 금식하고, 일단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일찍 수술하자.”

“알겠습니다.”

이찬희에게 오더를 내린 태경은 속삭이듯 작게 혼잣말하며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이상하네……. 이상해.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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