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61화 (360/472)

361화. 헤어드라이어

수술이 결정되고 1137번은 다른 병실과 조금 떨어진 1인실로 옮겨졌다.

수술 전, 검사와 안내 사항을 설명 들은 뒤, 그는 마약성 진통제를 맞으며 베드에 누워 있었다.

“그럼 필요한 거나 환자분이 많이 아프시면 여기 벨을 눌러 주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1137번 자네, 좀 괜찮아?”

“네……. 진통제를 놔 주셔서 그런지 참을 만합니다.”

진통제 맞아서 그런지 확실히 조금 전과 비교해서 1137번의 얼굴이 좀 나아 보였다.

아까는 누가 봐도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얼굴이라면,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까 간호사 선생님이 그게 마약성 진통제라고 하잖아. 효과가 강력하다고 하더니 그래도 약이 들어서 다행이네.”

“이 친구 표정도 아까보다 좋아졌어요.”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눈탱이는 밤탱이가 되고 아주 온몸이 아주 멍투성이네.”

교도소에서부터 병원에 온 뒤에까지 정신이 없던 교도관들은 이제야 1137번 몸 곳곳에 자리한 멍과 상처가 자세히 보였다.

“그러게요. 제가 잘 아는데 이거 멍 다 빠지려면 꽤 오래갈 텐데…….”

“아니, 자네가 멍이 오래가는지 어떻게 알아?”

“저 대학교 다닐 때 명절에 가족 모임에서 술 먹고 노래 부르다가 자빠져서 탁자에 부딪혔거든요. 그때 얼굴에 든 멍이 꽤 오래가서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 얌전한 줄 알았더니 주사도 부릴 줄 아는 거야?”

“가족들끼리 모일 때 작정하고 마시다 보니 종종 주사를 부려요.”

“적당히 마셔. 술 그거 많이 마시면 주량도 늘고 몸에 안 좋아.”

“네, 선배님.”

“그나저나 이봐 자네?”

후배 교도관과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던 선배 교도관이 고개를 돌려 1137번을 불렀다.

“네, 교도관님.”

“자네 도대체 그 친구들에게 왜 맞고 있던 거야? 앞방 제소자들 말 들어 보니까 아주 그냥 개 처맞았다고 하던데.”

“그게……. 제가 노름이 그 친구에게 한 소리 한 게 화근이 됐습니다.”

“노름이라면 같은 방 실실이 노름?”

“예.”

노름이는 말 그대로 노름에 환장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었고, 실실이는 하루 종이 실실 웃고 다닌다고 붙여진 제소자의 별명이었다.

“노름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고 사고 쳐서 들어와 놓고는 아직도 버릇을 못 고친 거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며칠 전부터 정신 차리고 살라고 계속 잔소리를 좀 했습니다. 아직 젊은 사람인데 교도소에서 자격증도 따고 형 살고 나가서 새 출발 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그건 그렇다 치고 나머지 사람들은 왜 자네를 다구리친 거야?”

“그날 실실이가 기분이 좀 안 좋았어요. 그래서 다른 제소자들이 그 친구를 옹호하면서 그만하라고 하길래 제가 돌아가면서 한 소리를 했거든요. 다들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라고, 남은 인생이라도 제대로 살아야 할 거 아니냐고 막 그랬죠. 그러다 단체로 화가 나서 절 때린 겁니다.”

“이거, 이거 이지국 선생님 말씀이 딱 맞았네.”

1137번의 말을 들은 교도관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하! 이봐! 자네는 다 좋은데 가끔 보면 그게 문제야. 자네도 알겠지만, 교도소에 있는 제소자들이 다들 자네 같지 않아.”

“그건 선배님 말이 맞아요. 정신 차리고 새사람 돼서 나간 사람도 있지만, 출석 도장 찍듯이 나갔다 들어오고 나갔다 들어오는 사람도 많잖아요.”

“내 말이 그 말이야. 알만한 사람이 왜 그래. 특히 그 실실이처럼 제멋대로 사는 놈들은 좋은 말 해 봤자 듣지도 않아. 그러니까 괜히 남 도와준답시고 조언이니 뭐니 그딴 거 하지 마. 조언도 들을 준비가 된 사람한테 하는 거야.”

“저도 알아요. 아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이번 기회에 오지랖 좀 줄여.”

“네, 이제 정말 그래야 할 거 같아요.”

똑똑-

세 사람이 대화하는 도중 병실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저기……. 두 분께 이걸 드리려고 왔습니다.”

문을 조금만 열고 얼굴을 비춘 사람은 오창규였다. 그는 들고 있던 커피를 두 사람에게 보여 줬다.

“이거 아메리카노 아니에요? 안 그래도 선배님이나 저나 커피 마시고 싶어서 노래를 불렀는데.”

“아까 두 분이 커피 얘기하는 걸 들어서요. 직원들이 먹는 커피인데 이거라도 괜찮으시면 드세요.”

오창규는 허락받고 직원 식당에 있는 커피를 가져왔다.

“당연히 괜찮고말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1137번을 감시하고 있던 두 사람은 커피를 보자마자 화색이 돌았다.

병실로 완전히 들어온 오창규가 두 사람을 향해 일회용 커피잔을 내밀던 바로 그때였다.

“어!”

순간 걸음이 꼬인 오창규는 교도관이 앉아있던 의자 다리에 부딪히면서 중심을 잃었고, 선배 교도관에게 커피를 쏟고 말았다.

그것도 바지 중심 쪽에 커피가 완전히 쏟아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다리가 걸리는 바람에……. 정말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그런데 바지가 다 젖어서 이걸 어쩐다.”

“그러지 마시고 헤어드라이어로 말리면 어떨까요?”

“드라이어가 있나요?”

“네. 직원들 사용하는 샤워실에 있습니다. 가서 씻으시고 바지도 말리세요.”

“혹시 드라이기를 가져다 주실 순 없나요?”

“죄송해요. 그게 샤워실 전용이라서 옮길 수가 없어요.”

“제가 자리를 비우기가 힘든데……. 그냥 자연이 말리게 두죠 뭐.”

“제가 있을게요!”

어쩔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선배 교도관이 그냥 있겠다고 하자 오창규가 말했다.

“예?”

“교도관님 오실 때까지 저쪽 교도과님과 병실에 함께 있겠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멀쩡한 바지가 젖었는데 다녀오세요.”

“그래요. 선배님. 간호사 선생님이랑 같이 있으면 될 거 같은데요? 여벌 옷도 없고 계속 그 상태로 계시면 불편하시잖아요.”

“정말 괜찮겠어?”

“다른 제소자라면 몰라도 1137번은 괜찮아요.”

후배가 교도관이 선배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 솔직히 선배님보다 이분이 몸도 더 좋으시고 훨씬 든든하네요.”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야. 알았어. 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

“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바지가 젖은 교도관은 오창규가 알려 준 샤워실로 향했다.

오창규는 병실 바닥에 쏟은 커피를 치우고 남은 커피를 병실 안에 있는 화장실에 버렸다. 그리고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에게 상황을 알리고 병실에 있기로 했다.

“커피가 참 맛있네요.”

후배 교도관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오창규에게 말을 걸었다.

“맛있죠? 식당 여사님이 원두를 직접 갈아 주시거든요. 그래서 신선하고 맛있어요.”

“그래요? 어쩐지 틀리더라. 병원에서 근무하시기 힘드시죠?”

“전, 이 일이 재미있어요. 보람도 있고요. 교도관님이 더 힘드시지 않으세요?”

“힘들 때도 있는데 저도 보람을 느껴서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저, 교도관님…….”

그렇게 두 사람의 형식적인 대화가 이어지던 사이 베드에 누워 있던 오창규가 고개를 들었다.

“어. 왜?”

“저, 화장실이 가고 싶습니다.”

“지금?”

“네, 최 교도관님 올 때까지 참아 보려고 했는데 점점 큰 신호가 오니까 더 이상 참기 힘들 거 같아요.”

정말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1137번은 볼일이 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람이 생리 현상을 어떻게 참겠어. 잠깐 있어 봐.”

교도관은 아까 확인했던 병실 내 화장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베드에 채운 한쪽 수갑을 자기 손에 채운 뒤, 병실 안에 있는 화장실 앞에서 1137번에 채운 수갑을 풀어 줬다.

작은 볼일이었다면 수갑을 풀지 않았겠지만, 큰 볼일이라는 말에 수갑을 풀어 준 것이다.

“빨리 보고 나와.”

“네, 최대한 빨리 보겠습니다.”

그 후 1137번은 5분 정도 안에서 일을 본 뒤, 밖으로 나왔고 그의 손에는 다시 수갑이 채워졌다.

교도관은 그가 나온 화장실에 들어가 혹시나 이상한 점이 있나 확인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1137번이 병실에 오기 전 교도관의 말을 들은 태경이 직원을 시켜 혹시라도 위험할 수 있는 물건은 전부 치워 둔 상태였다.

“별일 없었지?”

“빨리 갔다 오셨네요?”

“자리 오래 비우면 안 되잖아.”

그 뒤, 선배 교도관이 젖은 바지를 말리고 돌아왔고 오창규는 다시 커피를 갖다준 뒤 병실을 나왔다.

“교도관님 커피 여기 두고 갈게요.”

“또 안 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별말씀을요. 도움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 * *

다음 날-

아침이 되자 1137번은 수술받으러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어제와 같은 사복을 입은 교도관 두 명이 함께였다.

오창규가 1137번이 누워 있는 베드를 수술방 앞까지 이동했다.

“저기……. 환자분 이제 수술방 들어간 건데요.”

“네, 알고 있습니다.”

오창규가 교도관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수술하려면 이 수갑을 풀어야 해서요.”

“아……. 꼭 그래야 하나요?”

“네. 전기 소작기라는 걸 사용할 건데 그러면 이 수갑을 풀어야 해요.”

“혹시 수갑에 천을 감으면 안 되나요?”

“네, 그건 안 됩니다.”

이찬희가 베드로 다가오면 답했다.

“철이 닿아 있으면 화상을 입을 수 있어서 그건 힘들어요. 그리고 어디 고정도 못 하는 상황에서 수갑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제가 일반이라 선생님들만큼 몰라서 묻는 건데, 마취는 전신마취를 하는 건 맞죠?”

“네, 환자분은 전신마취 합니다.”

“그러면 마취가 되고 제소자가 의식이 없어질 때까지 수술방에 있다가 수술이 끝나면 저희가 바로 수갑을 채울 수는 있을까요?”

“잠시만요.”

이찬희는 한쪽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바로 태경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그건 가능할 거 같아요. 제가 방금 원장님께 여쭤봤는데 괜찮다고 하셨어요.”

“그래요?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수술방에 들어가실 분이 저기 보이는 거 써 주세요. 옆에 있는 초록색 가운도 입어 주시고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무리 모범수고 행실이 바른 1137번이라고 해도 그 역시 제소자였다.

그를 대하는 교도관들의 모습에는 그 어떤 빈틈도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같이 제소자가 도망갈 빈틈 따위 현실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 1137번은 오른쪽 다리에 수갑을 차고 있는 상태였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1137번은 수술방 베드로 옮겨졌다.

곧이어 마취 담당자 최동훈이 마취를 위한 설명을 자세히 했지만, 당사자는 허공만 바라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환자분 이제 마취 시작할게요. 긴장하지 마시고 편한 마음으로 숫자를 1부터 10까지 천천히 세어 볼게요.”

“네. 하나, 둘, 셋…….”

꼼꼼하게 마취가 진행되고 수술방 안으로 태경이 들어왔다.

환자가 제소자라는 것만 빼면 여느 때와 같은 수술방의 모습이었다.

어제 1137번이 처음 왔을 때는 의료진부터 직원들까지 긴장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평범한 인상의 예의도 바르고 말수도 없고 얌전한 제소자를 보며 다들 공포스러운 긴장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

수술방 풍경은 다른 환자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한 가지가 달랐는데, 그건 환자의 자세였다. 1137번은 허리 수술이었기에 엎드린 상태로 베드에 누워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태연한 태경과 달리, 어시를 담당한 이찬희는 조금 긴장한 상태였다.

어제처럼 1137번 때문에 하는 긴장이 아니라 첫 허리 수술이기에 그에 따른 긴장감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잘하자.’

이찬희는 속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자! 수술 시작할게요. 다들 끝날 때까지 집중해서 잘 따라와 주세요.”

“네, 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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