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폭탄이 터질 듯 말 듯
“자! 수술 시작할게요. 다들 끝날 때까지 집중해서 잘 따라와 주세요.”
“네, 원장님.”
수술이 시작되고 태경의 말과 함께 미리 표시해 둔 병변을 따라서 절개선을 넣는다.
요즘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최소 침습을 위해 내시경을 도입하곤 한다. 하지만 이처럼 의심 병변이 넓을 때는 절개를 해서 전체적인 뼈의 균형을 맞추어 줄 필요가 있다.
물론 환자에게는 어마어마한 부담이 된다. 아닌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번 허리를 열면 그 환자는 수술 후에 상당히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태경이 길게 절개선을 넣고서 보비(Bovie, 전기소작기)로 지혈했다. 그리고 기역 자로 된 기구를 들었다.
전체 길이가 25cm 정도 되고 끝에는 날카로운 톱니가 있어서 절개한 곳을 찌르고 당기면 지속해서 벌려 주는 도구다.
허리는 최대한 일직선으로 뼈를 타고 들어가야 해서 기역 자로 된 도구 등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벌려 주어야 한다.
조금만 들어가면 척추뼈 가장 뒤쪽이 보인다. 척추뼈의 뒤쪽은 삼각형 모양과 유사하다.
그 사이를 보비로 근육의 붙어 있는 곳을 절개해 가면서 깊이, 아주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도 출혈이 생길 수 있고 계속해서 벌려야 하므로 힘이 많이 드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아주 위험한 과정은 그다음이다.
디스크란 결국 척추신경이 지나가는 길이 어떤 방식이 되었던 눌려서 생기는 것이다.
둘러싸는 막이 딱딱해져서 그럴 수도 있고, 무언가에 눌려서도 그럴 수도 있고 튀어나와서 그럴 수도 있다.
원인이야 다양하지만, 무엇이든지 결국 압력을 낮추어 주면 치료가 된다.
압력을 낮추는 것은 척수 신경까지 뼈를 뜯고 들어가서 주변의 막을 잡아 뜯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을 환장하게 한다.
태경은 어느 정도 깊이 들어가자 척수 신경을 둘러싸고 있는 듀라 매터(dura mater, 척추 신경을 둘러싼 막중 가장 밖의 층)가 보였다.
방- 방- 방-
여기도 체액의 영향을 받아서 심장이 뛰는 것과 같이 방방 뛰는 모습이 보인다.
“선생님. 저걸 보니까 뭔가 저도 모르게 더 긴장되네요.”
“이 선생 공부 많이 했네.”
수술을 하는 사람이 아닌 입장에서 본다면 저 모습은 인체의 신비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수술을 집도하는 태경의 입장에서는 폭탄이 터질 듯 말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이유는 여기가 조금만 손상이 있어도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척수 신경은 내부의 일정한 압력의 액체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데, 이 압력이 저하되면 뇌가 말 그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
그러면 뇌가 들어가 있는 곳의 아래로 내려갈 수 있고 뼈에 닿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가히 상상도 못 한 두통이 오게 된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그런 두통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치료법도 없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뇌가 삐져나올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사망이다.
이렇게까지 되지 않더라도 척수 신경이 손상되면 그 아래로 모든 기능은 손상을 입게 된다.
대소변은 물론이고 하지의 감각이나 운동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태경의 눈에는 거의 심장이 방방 뛰고 있고 그 주변의 막을 조심히 조작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환자를 위해 손길 하나하나에 상당히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켈리슨 본 펀치(kerrison bone punche, 밑면에 손상을 주지 않고 원하는 부위만 뜯어낼 수 있도록 설계된 기구로 손잡이는 가위만큼 크나 뜯어내는 부분은 최대 2mm 정도임) 주세요.”
태경이 방방 뛰는 듀라 매터의 윗면으로 본 펀치의 아랫면이 닿도록 하고 조심조심 뜯어낼 곳에 기구를 가져갔다.
뜯다가 딸려 와서 기대보다 크게 뜯어지면 안 되므로 기구 조작을 조심히 했다.
이러한 과정은 교과서에 실리지 않는다.
감각적으로 이 정도를 뜯으면 원하는 만큼만 가능하다. 듀라 매터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 등등은 순전히 경험과 감각의 영역인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수술은 이와 같은 영역이 상당히 많이 차지한다. 그래서 집도의의 경험을 무시 못 하고 그 실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선생님, 이렇게 보고 있자니 무섭네요.”
이찬희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왜 아니야. 나도 마찬가지야.”
“선생님도 겁나세요?”
“당연하지. 여기서 0.5cm만 잘못되어도 이 환자는 하지 마비가 될 수도 있는데 조심해야지.”
아주 더디지만, 차근차근 듀라 매터 주변에 경화된 부분을 뜯어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됐다.”
원하는 만큼 경화된 부분을 걷어내니 확실히 듀라 매터가 틈이 벌어졌고 공간이 넓어진 것이 보인다.
그리고 원래 열었던 이유 중 다른 하나인 압박 골절들을 유심히 보았다.
굳이 모두 다 뜯을 필요 없이 경계 부위들을 본 뒤 구멍을 뚫어서 핀을 박을지 아니면 시멘트(의료용)를 이용해서 강화할지 등을 구분하는 것이다.
“음…….”
자세히 보던 태경은 바로 결정을 내렸다.
“아무것도 안 할게요.”
“네!?”
태경의 결정에 이찬희가 의아스러운 듯 물었다.
“아무것도 안 하신다고요? 왜요?”
“여기 이거 보이지?”
“네, 선생님.”
“이거 예전에 생긴 거야.”
“예전에요?”
“응. 이미 뼈가 다 붙어서 이 환자 이걸로 아프지는 않았을 거야. 괜찮아.”
태경의 설명을 들은 이찬희는 환자의 상태가 바로 이해됐다. 하지만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분명 지금 보고 있는 척추 상태를 보면 극심한 통증에 시달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수술방을 들어오기 직전까지 왜 그렇게 아픔을 호소했는지 아이러니했다.
“자! 이제 닫읍시다.”
이찬희가 생각에 빠진 사이 태경이 말을 이었다.
“허리 근육과 척추뼈의 윗부분을 뚫어서 하나하나 연결해 주는 것이 중요해. 여기랑 그리고 여기.”
“네, 선생님.”
“이 선생이 허리를 처음이니까 우선 잘 보기만 해.”
“알겠습니다.”
태경은 이후 차근차근 꼼꼼하게 빈틈없이 봉합했다.
배를 닫는 것에 비하면 단계는 적지만, 섬세한 것으로 따지자면 지금 하는 봉합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그렇게 1137번의 수술인 듯 수술이 아닌 수술은 꼼꼼한 봉합으로 마무리됐다.
“선생님 수고하셨…….”
“이 선생?”
이찬희의 인사를 듣다 만 태경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표정이 왜 그래?”
“그러게. 아까부터 뒤가 개운하지 않은 강아지 같은 표정인데? 화장실 급한 거 아니야?”
뒤이어 마취 담당 이동훈이 한마디 거들었다.
“…….”
“뭐, 심각한 거야?”
태경이 말없이 1137번의 봉합이 끝난 곳을 뚫어져라 보며 생각에 잠긴 이찬희를 보며 물었다.
“아니, 그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서요.”
“무슨 소리야. 이해가 안 가다니…….”
“이렇게 이미 뼈가 다 붙었는데 이 사람은 왜 그렇게 아파했을까 싶어서요.”
“뭐, 우리는 의사니까 직접 보고 판단하는 거고……. 정확한 이유야 모르지. 사람이 느끼는 통증은 객관적인 게 아니라 주관적이잖아.”
“그렇죠.”
그건 태경의 말이 맞았다.
같은 곳이 아파도 누군가는 참을 만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아프다고 하며 또 누군가는 극심하게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어제 교도관님 말을 빌리자면 같은 방 제소자들에게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는데, 그것 때문에 통증을 심하게 느꼈을 수도 있지.”
“원장님 말씀이 맞아요. 한 사람한테 맞아도 아픈데 여러 사람한테 작정하고 맞았으니 더 아프겠죠.”
“이게 말이지, 난 조금 생각이 달라.”
임정숙 간호사의 말을 들은 이동훈이 고개를 좌우로 짧게 흔들더니 1137번을 가리켰다.
“이 환자가 누구야? 바로 교도소에 있는 제소자 아니야.”
“이 사람이 제소자인 거랑 아파하는 게 무슨 관계라도 있어요?”
“있지. 있고말고. 교도소에 짧게 있는 사람들은 안 그런데, 이 사람처럼 장기 복역하는 사람들은 소위 바깥 공기를 맡고 싶어서 좀이 쑤신다고 하더라고. 그게 강산이 바뀌고 면회하러 오는 사람도 점점 줄고 그러면 사람이 미치는 거거든.”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오랜 수감생활 끝에 좀이 쑤셔서 바깥 구경을 하려고 일부러 아프다고 한 거라는 거죠?”
“에이, 여러 사람한테 두들겨 맞았는데 일부러는 아니지. 그렇지만 어느 정도 더 아픈 티를 낼 수도 있다 그런 거지.”
“그러면 왜 굳이 수술해 달라고 그랬을까요?”
“그거야 뻔하지. 교도소로 돌아가기 싫으니까 최대한 버티려고 한 거잖아. 돌아가면 또 맞을 수도 있으니까 병원이 더 편하지 않겠어? 그러다가 기회를 봐서 자유를 갈망하는 한 마리 새처럼…….”
“그래서 도망이라도 갈 거 같다 그 말하시려고요?”
“그렇지? 바로 그거지.”
수술방 스텝이 한 말에 이동훈 격하게 반응하며 말을 이었다.
“사람 겉모습만 봐서 알 수는 없지만, 이 사람 인상을 봐? 지극히 평범하잖아. 이런 사람들이 더 무섭다고.”
“어휴! 아주 시나리오를 쓰시네. 우리 선생님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셨네. 어제 교도관님이 그러는데 이 환자 교도소에서 알아주는 모범수래요.”
“그러게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파서 치료받으러 나온 제소자가 도망을 가겠어요.”
“그런가? 사실 내가 며칠 전에 교도소 영화를 재미있게 봤거든.”
“에이, 어쩐지. 이동훈 선생님의 시네마 토크 잘 들었습니다.”
“다들 수고 많았어요.”
“원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조금 아이러니했던 수술은 이동훈의 즐거운 이야기로 마무리됐고, 태경은 의료진과 인사를 나눈 뒤 밖으로 나갔다.
“선생님, 수술 끝났습니까?”
밖으로 나가자 문 앞에서 기다리던 교도관이 다가와 물었다.
“네, 끝났습니다. 환자는 곧 나올 거예요.”
“수술이 끝났으면 다리에 수갑 채워도 될까요?”
“아, 네. 괜찮습니다. 그리고 환자분이 뼈를 건드릴 필요가 없어서 다시 봉합만 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태경은 의아해하는 교도관에서 1137번의 몸 상태를 자세히 설명해줬다.
“그러면 폭행으로 인한 통증이 심해서 그런 거지, 수술까지 할 필요는 없었던 거네요.”
“네, 현재로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럴 겁니다. 무지막지하게 맞았으니 아플 만도 하죠. 어쨌든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또 뵐게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태경이 자리를 떠나고 곧이어 베드에 누워 있는 1137번이 의료진과 함께 수술방에서 나오자 교도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다리에 수갑을 채웠다.
그 후 1137번은 회복실로 옮겨진 뒤, 마취에서 깨어나고 경과를 보고 병실로 올라갔다.
그사이 태경은 교도관 의무실 담당자인 이지국에서 1137번의 수술 경과와 의학적 견해도 함께 알려 줬다.
여전히 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1137번은 외상과 통증 치료를 받으며 좀 더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 * *
“자네, 왜 그래?”
수술방에서 병실로 올라온 후 태경에게 척추 상태에 관해 설명을 들은 1137번은 어쩐지 말수가 확 줄었다. 그런 그를 보며 교도관들이 물었다.
“아까 원장님도 심각한 거 아니라고 하셨잖아?”
“그래 맞아. 척추 수술 안 하길 잘한 거야. 수술하면 회복까지 오래 걸리고 힘들어.”
“아니요. 그게 아니라……. 두 분께서 오해하실까 봐 하는 말인데 저, 정말 아닙니다.”
1137번은 꽤 심각한 표정으로 하소연하듯 말했다.
“갑자기 뭐가 오해고 뭐가 아니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