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죽
“이제 전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경찰에 신고하세요.”
“난 유혁진 씨를 말한 게 아닌데……. 번지수가 틀렸어요.”
“……?”
“유혁진 씨가 계속 치료 거부하면 오창규 씨가 경찰에 끌려갈 텐데 그래도 정말 상관없어요?”
“……!”
생각지 못한 태경의 말에 유혁진은 물론이고 교도관들과 이름이 거론된 오창규까지 모두 놀란 모습을 보였다.
“제 말 때문에 다들 놀란 거 같은데, 농담 아닙니다. 그러니까 치료를 받을지 오 선생이 경찰에게 끌려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지 유혁진 씨가 선택하세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오창규는 태경의 표정을 보며 지금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저는…….”
“치료받겠습니다!”
오창규가 자신은 상관없다고 말하려는 찰나 유혁진이 치료 의사를 밝혔다.
“지금 그 말 정말입니까?”
“네, 치료받을게요.”
“잘 생각했어요.”
유혁진과 오창규.
두 사람이 어떤 사이고 정확히 어떤 사연으로 얽힌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도주 계획까지 공유한 사이라면 두 사람이 서로를 신경 쓰며 꽤 가까운 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오창규를 들먹이며 치료할 것을 강조했고, 태경의 예상은 다행히 잘 맞아떨어졌다.
“오 선생, 수고했어요. 그만 내려가서 일 봐요. 유혁진 씨는 내가 잘 치료할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있던 오창규는 꾸벅 인사를 하며 병실을 나갔다.
“자네, 방금 치료받는다고 한 거 진짜지?”
“예.”
“그래 잘 생각했어. 원장님이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시는데 치료를 잘 받고 얼른 회복해야지.”
유혁진의 결심에 교도관들은 제 일처럼 좋아했다.
“정말 잘 생각했어요. 이제 다친 손 좀 봐도 될까요?”
베드 앞 의자에 앉은 태경이 말하자 유혁진은 베인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상처가 깊지는 않아요. 바로 봉합할게요. 잠시 바르게 누워 볼래요?”
태경의 말에 유혁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얌전히 베드 위에 누웠다.
베인 상처를 소독하고 곧장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이제 마취할 건데 조금 따끔할 수 있어요.”
“원장님, 많이 아플까요?”
당사자인 유혁진 대신 선배 교도관이 물었다.
“많이 아프지는 않고 참을 만큼 따끔해요.”
“그래요? 들었지? 원장님이 많이 아프지 않다고 하셨으니까 조금만 참아.”
“마취합니다.”
주삿바늘이 베인 상처 주변으로 몇 번이나 나눠서 들어갔지만, 유혁진은 놀라울 정도로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무리 고통을 잘 참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 번 정도는 움찔할 법도 한데,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공허한 눈빛으로 병실 천장만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 봉합니다.”
조용한 병실 안에 봉합 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봉합을 마치고 태경이 유혁진에게 말하려던 그때였다.
“……!”
지금까지 미동도 없던 유혁진의 팔이 미세하게 움직이더니 이내 어깨까지 들썩이고 있었다.
“흐으!”
그리고 곧이어 안감힘을 다해 참고 있던 울음소리가 병실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흐윽!”
그 울음소리는 억지로 쥐어짜 낸 눈물이 아니라 이를 악물고 참고 또 참았던 눈물이 의지와 상관없이 나온 눈물이었다.
“이, 이봐! 자네 왜 그래?”
“선생님. 봉합은 잘된 거죠?”
“네, 마취도 잘됐고, 봉합도 잘됐습니다.”
“다 큰 사람이 웬 눈물 바람이야.”
오랫동안 유혁진을 봤던 교도관들은 처음 본 그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며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흐윽!”
교도관들은 갑자기 유혁진이 우는 이유를 몰랐지만, 태경은 어쩐지 알 것만 같았다.
사람은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염원하던 일이 무너지면 그로 인해 좌절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좌절감은 때론 모든 희망을 송두리째 가져가 살아갈 의지마저 꺾어 버리고는 한다.
지금 유혁진의 모습처럼 말이다.
“흐으윽!”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우는 그의 모습은 처절함이 가득했고, 눈빛 속에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좀 진정해. 자네 정말 왜 그래?”
“으흑! 교, 교……도관님?”
그렇게 계속 울던 유혁진은 교도관을 부르며 또다시 애원하듯 말했다.
“저 좀 죽여 주세요.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발…… 으흑! 저 좀 죽게 해 주세요.”
“이 사람이 진짜! 치료해 준 의사 선생님 앞에 두고 그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죽는다니! 어! 죽는다는 소리 좀 그만해!”
“흐흑!”
교도관이 달래도 보고 다그치는 동안 태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가 진정되길 기다렸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는 옆에서 아무리 달래도 마음이 쉽게 진정되질 않는다. 이럴 때는 그냥 기다려 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어느 정도 격해진 마음이 진정되고 다시 입을 닫은 유혁진에게 태경이 다가갔다.
“이제 좀 괜찮아요? 안 그래도 먹은 것도 없는 사람이 그렇게 자꾸 울면 기운 없어요.”
“…….”
“유혁진 씨, 도와줄게요. 내가 도와줄게요.”
“정말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침묵을 삼키고 있던 유혁진이 천장을 응시하던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네, 도와줄게요.”
“그러면 제가 죽을 수 있게 도와주십쇼. 살고 싶지 않습니다.”
“유혁진!”
보다 못한 선배 교도관이 소리를 버럭 질렀지만, 그는 눈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괜찮습니다. 교도관님이 죄송할 문제는 아니죠.”
“내가 유혁진 환자를 도와주겠다고 한 말, 알량한 동정심도 빈말도 아니에요. 위험하거나 누군가가 다치는 일이 아니라면 진심으로 도와줄 생각이에요. 그런데 죽고 싶은 마음을 먹은 사람을 도와줄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내민 손을 잡고 싶으면 마음을 달리하고 그때 말해요. 그럼 정말 도와줄게요.”
“크큭!”
태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까는 울던 유혁진은 피식 웃음을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웃음보다는 실소에 가까웠다.
“나는요. 당신같이 잘나고 가진 거 많은 사람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믿어요. 그러니까 헛수고하지 말고 살고 싶어 하는 다른 환자들이나 돌봐요.”
“헛수고일지 아닐지는 두고 보면 알겠죠.”
도움을 거절한 유혁진을 뒤로하고 콜을 받은 태경은 병실을 나와 응급실로 향했다.
복도를 걸어갈 때도 응급실에서 일할 때도 오직 환자를 진료하는 그 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말이 있었다.
‘죽고 싶어요.’
바로 조금 전, 유혁진이 절규하듯 쏟아낸 말이었다. 그 처절한 외침이 자꾸만 이명처럼 귓가에 울렸다.
처음 교도소에서 응급실로 올 때만 해도 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혁진의 눈빛은 전투적이었다.
그런데 환풍구에서 끌려 나온 그때부터 죽은 동태눈깔처럼 눈에 생기가 없어졌다.
정말 죽음을 앞둔 사람의 눈동자와도 같아 보였다.
태경이 병원에 오는 환자 한 명 한 명마다 관심을 두고 환자에 대한 오지랖이 넓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우연히 길을 다가 생판 모르는 사람이 ‘죽고 싶다’라는 말을 한다면 거의 모든 사람은 속으로 ‘무슨 일이지?’라고 걱정할 것이고, 그중에 한두 명은 당사자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런 마음이 드는데. 하물며 병원 안에서 그것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기를 쓰는 의사는 오죽하겠는가.
태경은 의사였다.
아픈 사람을 고치고 죽음의 문턱까지 간 환자들을 살려 내고 육체의 아픔뿐만 아니라 환자의 다친 마음마저 들여다보는 오지랖 넓은 의사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환자의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았기에 대놓고 죽겠다고 절규하는 환자를 외면할 수 없었다.
정신없이 응급실 환자를 보던 태경은 오창규에게 다가갔다.
“오 선생?”
“네, 원장님.”
“잠깐 나 좀 봐요.”
응급실 스테이션에 있던 오창규는 태경을 따라 의국실로 들어갔다.
“앉아요.”
“아, 네…….”
“환자들이 몰려서 정신없었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쉬는데 불러서 미안해요. 오 선생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어요.”
“네, 말씀하세요.”
“유혁진 씨, 말인데요?”
“저기……. 원장님 정말 죄송하지만, 형님 일을 여쭤보시려는 거면 제가 대답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오창규는 태경의 말을 듣기도 전에 지레짐작하며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당사자도 아닌데 함부로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형님께 상처가 될 수도 있어서요.”
“그거 물어보려던 거 아닌데. 내가 물어보려던 건 유혁진 씨를 돕는 일이 나쁜 일이거나 법에 걸리는 일인지 그게 알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내가 오 선생한테 유혁진 씨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전에 이걸 확실히 해야 돕는 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겠어요?”
아무리 유혁진을 돕기로 했어도 법에 어긋난 일을 도울 수는 없었기에 확인이 필요했다.
“아……. 네.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았습니다. 아마 그런 일은 아닐 겁니다.”
“아마?”
애매한 답변에 태경이 되물었다.
“원장님. 실은 저도 형님이 어떤 일을 하려는지 자세히 모릅니다.”
“……?”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형님이란 호칭을 쓰며 도주까지 도왔던 가까운 사이인 오창규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었다.
“당황스러우시죠? 그런데 사실입니다. 애초에 형님의 도주만 도운 거지 그 뒷일은 저도 몰라요. 그냥 예전 그 일과 얽힌 사람에 관한 일이라는 것까지만 알지, 자세한 내막은 처음부터 말해 주지 않았어요.”
“그러면 오 선생도 확실히 모르면서 법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는 건 어떻게 확신하죠?”
“그, 그건……. 원장님도 그 일을 알게 되신다면 제 말을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정말이에요.”
지금까지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오창규는 단호한 표정과 함께 말을 아꼈다.
“그래요. 알겠어요.”
“큰 도움 못 드려 죄송합니다.”
“충분히 도움 됐어요. 일어나지 말고 앉아있어요.”
일어나려는 오창규를 말린 태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책상 위에 있던 봉지를 건넸다.
“오 선생?”
“네, 원장님.”
“저녁 안 먹었죠? 일하는 사람들은 밥 안 먹으면 기운 없어서 일 못 해요. 내가 우리 직원들 밥 먹는 일에 은근 예민하거든요. 천천히 먹고 나와요.”
태경은 건넨 봉지를 가리킨 뒤 의국실을 나갔다. 그는 오창규가 지금까지 저녁을 먹지 않은 걸 알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배달시킨 것이다.
태경이 밖으로 나가고 봉지 안에 내용물을 열어 보던 손길이 순간 멈칫했다.
“……!”
그 안에는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있는 죽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장염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는데, 죽을 시켜 준 태경의 마음에 죄송함과 함께 민망함이 밀려왔다.
철컥-
“원장님!”
오창규는 빠르게 의국실을 나가 병동으로 올라가고 있는 태경을 쫓아가 불렀다.
“왜요? 더 할 말 있어요?”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그 말이라면 이미 충분히 한 거로 기억하는데…….”
“그게 아니라 저 장염 아닙니다. 원장님께서 죽까지 시켜 주셨는데 계속 속이고 싶지 않아서요.”
“아, 난 또 모라고. 오 선생 장염 아닌 거 알고 있어요.”
“……네?”
“장염이라고 한 건 유혁진 씨를 돕기 위해서 한 말이잖아요.”
“그러면 왜 죽을…….”
“하루 종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지금도 머릿속이 복잡할 텐데 일반식 먹고 체할까 봐 죽 시켰어요. 죽 식으면 맛없어요. 가서 얼른 먹고 또 열심히 일해요.”
생각지 못한 말에 멍해진 오창규는 잠시 동안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사이 또다시 병실을 찾은 태경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유혁진을 설득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