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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하!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형님.”
병주는 병재의 설명을 듣자마자 바로 부정했다. 그만큼 병재가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고 터무니없기 때문이다.
“충분히 실험했어. 그리고 분명 쥐의 다리는 자라났어. 물론 저절로 자라진 않고, 몸의 살들을 끌어다 쓰는 것 같았지.”
병재는 밤새도록 했던 일들을 병주와 병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병재는 자신이 직접 계획하고 실행했고, 결과를 확인하였기에 이 들의 부정에도 담담히 설명을 보강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형 말씀은 쥐의 다리가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 인간의 잘린 팔다리를 다시 재생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맞아. 그렇지. 지금은 아니지만 재생의학의 숙련등급이 높아지면 분명 그렇게 될 거야.”
“그 것도 침으로 말이죠?”
병주의 재차 확인하는 말에도 병재는 확신이라도 하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병주는 당당한 병재의 모습에 더 이상 할 말은 없는 듯 했다. 그리고 병윤이 이어서 병재에게 말했다.
“그런데 재생의학을 하면서 무슨 대가를 치른다고 하던데 그게 정확히 뭐죠?”
“그러니까 말이야. 병윤아. 생각해봐라. 너의 몸이 자란다고 칠 때,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자라지니? 아니잖아. 먹고 싸고 그런 과정을 반복해서 몸이 자라는 거잖아.”
그 말에 병윤은 이해가 된 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병재를 지그시 바라보아 설명을 더 해달라는 눈치였다.
“다리가 다 자란 쥐를 봤을 때, 그 쥐는 매우 허기진 상태였다. 마치 아사 직전의 상태와 똑같았어. 마치 남아있는 힘을 먹는 데 미친 듯이 쏟아 붓는 거 같았어.”
“흐음 그러니까. 여분의 살들이 잘라진 발의 재생에 사용하면서 자연히 배가 고파졌다? 이런 말이네요?”
“흐음 그러니까... 이거에 맞는 단어가 있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병주야. 보통학교에서 그런 거 뭐라고 말하지 않았냐?”
그 말에 병주는 간단히 답해주었다.
“영양소에요. 영양소.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람이 살려면 그게 없으면 안 된다고요. 음식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영양소를 몸에 쌓아놓는 다는 것과 같고요. 뭐 한마디로 안 먹으면 배고프잖아요. 그게 다 영양소를 달라는 것과 똑같죠.”
“아 그래! 영양소! 잘 말해줬다. 병주야. 영양소를 끌어다 쓰는 거 같더라고. 쥐는 여분의 영양소를 모두 잘라진 다리의 재생에 몽땅 투입하는 거 같더라.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었나? 일단 이 잠들어 있는 쥐를 보면 확인할 수 있겠지.”
그 말을 한 직후 병재는 얼른 마취되어 있는 쥐를 꺼내어 잘라졌다가 다시 재생한 부분을 보여주었다. 원래 살들과 재생된 살들이 마치 선처럼 경계를 이루어 구분되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경계는 움푹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원래 살과 재생된 살의 색깔도 달랐다. 재생된 살은 뭐라 해야 할까 다시 태어난 듯 깨끗했다.
“일단 이 쥐의 다리를 자르고 재생시키면서 단번에 재생의학이 입문에서 초보로 건너뛰더라.”
그 말에 병주와 병윤은 놀랍다는 듯 병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밤새도록 침을 움직이고 관찰하고 결과를 내었으니 그 정도의 성과는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큰 형님. 이거 심의호 할아버님에게 말 할 생각이세요?”
병윤의 물음에 병재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담담히 말했다.
“아니. 말 하지 않을 생각이야.”
병주는 병재의 말에 공감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재를 칭찬했다.
“심의호 할아버지에게 이야기 해봤자 믿지 않으실 것 같아요. 그러니 형의 비밀로 간직하세요. 그리고 우리에게만 알려주고 말이죠.”
“그래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너희들도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뜬금없는 소리처럼 여겨졌으니 말이야. 하지만 심의호 어르신은 우리가 보는 개인정보창이 없는데 어떻게 믿으시겠냐? 우리끼리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거 같다.”
“그래요. 그 말이 맞겠네요.”
병윤도 이내 이해가 간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정보창과 관련된 정보는 세 형제만 공유하는 특별한 비밀이었다. 재생의학에 대한 성과와 그에 대해 설명 하려면 개인정보창에 대한 설명도 해야 했다. 그리고 병윤은 그에 대해서 뜨끔했다.
‘아 맞다. 감연이. 그거 한 달만에 만들었다고 했는데도 믿지 않고, 억지 부려서 얼버무렸는데 조금 위험한가...’
병윤은 괜시리 송감연에게 자신의 비밀장소에 대해 공개한 것 때문에 경솔했다고 마음여기고 후회했다. 그러나 병윤은 이내 부정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에이 모르겠다. 뭐 개인정보창에 관련된 단서는 큰 형처럼 눈치가 좋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으니까 상관없겠지. 적당히 처리해야겠네.’
병윤은 오히려 한 달 동안 기술에 관련된 것을 시험 삼아 제작된 기계들을 파기할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감연이한테 사정이 생겼다고 이야기하고 ‘일단 너는 봤으니 방법만 가르쳐줄게’라 말하며 땡할 생각이었다. 병윤은 그렇게 생각하자 그나마 안심이 되는지 한숨을 내쉰다.
“그건 그렇고 막내야. 너 그것들 어떡할래? 너와 우리끼리 아는 비밀의 장소에 만들었던 그 기계들 말이야.”
마침 병주가 주제를 병윤의 쪽으로 몰았다. 병윤은 아까부터 그 쪽 생각했었는데 병주가 그 걸 상기시키니 조금 식은 땀이 났지만 이내 대처했다.
“아 그거. 슬슬 분해하고 파기해야죠.”
병주는 그 말에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 눈초리였다. 대장간에 잡일하면서 배운 기술들을 실험한다고 기계들을 만들 때, 솔직히 병주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거 사람들에게 들키면 뭐라고 변명할 거냐고 소리쳤다. 물론 병윤은 조금만 더 해보고 파기시킬 거라고 뜸을 들였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 할게. 막내야. 그거 파기해야 신상에 좋을 거다. 요즘 박출환이 얼마나 시선을 부라리는지 아는가? 돈 되는 거 있는지 요즘 어디 들쑤시고 다니느라 짜증이 날 지경이다.”
병재는 박출환이라는 사람을 생각하자 분통이 터진 모양이다. 박출환은 이 마을 행정조직의 면서기를 맡은 사람이었는데 일본인에게 밀고를 자주 하는 자이다. 물론 사실을 밀고하는 거야 상관이 없는데, 그 인간은 없던 일을 지어서 밀고하여 돈 떼먹기 급급한 인간이었다.
예를 들면 마을사람들 중 무슨 일을 하고 일당을 받아 가면 살살 다가가서 일당 반을 내놓으라고 말하고 안 들어주면 협박하며 당신을 불령선인으로 만들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 거라는 등 예사가 아니었다.
물론 그 협박을 거절한 사람도 있었는데, 박출환은 그 사람을 본보기로 삼아 불령선인으로 밀고해버리고는 불령선인이니까 그 집 재산들을 싹 털었고 그 재산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몰래 뒷산으로 잡아다 사적으로 구타하기까지 했다. 그런 횡포 때문에 마을어른들은 박출환을 보고 왜놈 따까리 혹은 지애미를 잡아다 돈을 갈취할 새끼라고 욕을 하였다.
그 마수는 병윤의 집까지 뻗치기는 오래되었다. 저번에 방씨네 땅의 돌들을 골라주고 미리 약속했던 공짜비료를 받았다는 약속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그 공짜비료 중 반을 내놓으라고 협박까지 할 정도였다.
그리고 병재와 병윤이 잡일을 한다는 소식에 또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아빠에게 이야기해서 ‘애새끼들 잡일한다는 거 안다. 원래 이런 거 다 세금 매기는 거 아니겠냐? 제 때 말할 때 제때 세금 내라’고 말할 정도였다. 물론 아빠는 지금 수중의 돈이 없다고 좋게 좋게 돌려보냈지만 박출환은 끈질기게 매일매일 찾아와서는 표적을 병재에게 돌려서 지금 받은 일당있냐고 물어보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박출환의 안 좋은 평가를 듣고 아 그렇구나 여겼던 병재조차도 지금 박출환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다가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박출환이 만약 병윤이 제작한 기계들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오히려 추궁하고 독립운동세력에게 보낼 기계들이라고 여기고 불령선인으로 밀고할 지도 몰랐다.
괜시리 박출환에 대한 생각을 한 병윤은 솔직히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에 관련된 시험에 대해 당장 그만 둘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 박출환에 대해 이야기 듣자 더욱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알았어요. 병재. 밤 중 몰래 제가 알아서 파기하고 땅에 묻을 게요.”
‘쳇. 형님들은 걱정만 많아가지고. 일단 파기하는 건 둘째치고 그 걸 송씨아저씨네로 옮겨야 하나? 에이 괜시리 변명거리만 더 늘어나겠네. 송씨 아저씨 네에 송감연을 가르쳐야겠네.’
병윤은 괜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얼마나 고생해서 그 기계들을 만들었는지 알고 있다면 쉽사리 파기하라는 형들의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일을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다가 집 안에 내환이 생기는 것보다 낫기에 병윤은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까운 것은 아까운 것이다.
‘뭐 머릿속에 있지만 말이야. 그 걸로 위안 삼을까?’
지금 병윤이 자기의 비밀장소에 만든 기계들을 아무 연장도 아무 재료도 주지 않고 그냥 만들라고 말하면 병윤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 달 걸릴 것을 하루 안에 다 만들 자신이 있었다. 일단 아무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연장을 만들고 재료를 채취하고 그 재료들을 이용하여 연장을 다시 만들고 재료를 모아서 제련하고 기계들을 제작하면 될 거다. 병윤은 실제로 30일 동안 그렇게 기계들을 만들었기에 자신이 있었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합금, 재료 등을 이용하여 튼튼하고 확실한 연장을 만들 자신이 있으며, 지금 팔고 있는 시계보다 더욱 고풍스럽고 수명이 10년이나 더 가는 시계를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병주야.”
“예 형님!”
이제 병재가 병주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을 걸자 병주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병주가 말해야 할 순간이라는 것을 추측했나 보다. 병재는 헛기침을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병주에게 말했다.
“너 졸업하고 나서 고등보통학교에 다닐 생각이냐?”
그 말에 병주는 말을 멈추고 침묵했다. 지금 병윤의 집 사정상 병주 하나만 보통학교에 보내는 것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 병재와 병윤이 잡일을 잘해서 집의 수입이 늘긴 했다.
“......”
“으흠흠... 뭐 방법은 없는 건 아니겠지. 우리 집 사정이 말이 아니잖아. 일단 갈 거냐? 그 걸 말해주면 좋겠다.”
“솔직히 간다고 하면 이기적이겠죠. 형님.”
“그게 아냐. 병주 너가 가고 싶은 지 묻는 거야. 우리 집 상황을 살피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한다면야. 우리 집 형편이 된다면 가고 싶습니다. 형님.”
“그래 가고 싶다고... 흐음... 알겠다. 뭐 더 열심히 해야지 어떻겠어.”
“... 형님?”
“사실 나도 병윤도 너가 고등보통학교에 갔으면 좋겠다. 솔직히 그 곳에 가서 배우고 대학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네?!”
병주는 병재의 말에 놀란 듯 턱이 나왔다. 사실 병주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어디 좋은 직장 하나 잡아서 일할 생각이었는데 병재가 이렇게 말하니 의외였다.
“돈은 걱정마라. 솔직히 심의호 어르신도 돈 많이 벌고 있다. 간씨네 가주가 거기 다니는 게 사실이거든. 뭐 정확히는 간씨네 가주의 어머니이지만 말이다. 그 사람 중풍이야. 그나마 심의호 어르신이 침을 놓아서 증상을 억제해 돈을 꽤 받거든.”
“하지만 형님이 그 돈 받는 건 아니잖아요?”
병주의 그 말에 병재는 미소를 보이고는 걱정 말라는 듯 병주의 어깨를 두 번 탁탁 치고 붙잡으며 말했다.
“요즘 잡일을 잘 해서인지 늠료도 나름 받고 있다. 물론 나 혼자만으론 벅차겠지. 그러나 병윤이 녀석도 일 잘하느라 송씨 아저씨에게 좀 받고 있다. 합쳐서 보태면 되겠지.”
“......”
병주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사실 말하면 병재와 병윤은 돈이 목적이 아니라 개인정보창의 기술을 높이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목적이 컸지만 병주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병재와 병윤이 자신을 위해서 기껏 모은 돈을 고등보통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투자하고 있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금 성적으론 문제가 없고, 입학시험도 문제가 없어요. 졸업까지 앞으로 2년만 더 다니면 되니까. 문제없네요.”
“문제없다면 된 거야. 앞으로 일 년 간 돈 좀 모아야겠군. 안 그러냐 막내야.”
“하하. 맞아요. 큰 형님. 저 아직 어리지만 작은 형만큼은 보내고 말거에요.”
“자식...”
병재는 병윤의 모습이 기특한 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세 형제의 미래를 위한 오늘 계획도 끝났다. 병윤은 생각했다.
‘하아. 학교라. 나도 다니고 싶기는 한데. 에이. 송씨 아저씨가 보내는 일도 재밌으니까 뭐. 괜찮겠지.’
병윤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이내 학교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어느 새 밤이 깊었다. 아무리 잠이 없던 사람도 지금 이 시간에 분명히 잘 것이 분명한 새벽 깊은 밤이다. 병윤은 엄마, 아빠, 그리고 병재와 병주가 자고 있던 이부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고는 방을 나갔다. 조용히 방문을 다시 닫은 병윤은 마루 밑에 자기 신발을 꺼내며 신고 마루 자리에 뜰 차례였다.
“어디 가냐?”
갑작스러운 목소리, 병윤은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이내 안심하는 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큰 형님이네. 깜짝 놀랐어요.”
“안자고, 어딜 갈라고 그러는데.”
“아 저번에 말했던 기계들 그 거 파기할려고.”
“아 그 거 말인가...”
병재는 이내 병윤의 행동을 이해가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점이 든다면 왜 이 시간에 하는 것인가 말이다.
“밤길 어두울 때는 위험하다. 자고 내일 아침에 하는 게 더 나아.”
“글쎄. 큰 형이 말했던 박출환이 아침에도 무슨 일 하는지 살펴보지 않을까 오히려 더 걱정되는데요.”
“이런... 젠장...”
병재는 박출환의 이름을 듣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박출환이라는 인간은 필히 그러리라. 병윤이 왜 지금 이 일을 할려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이내 병재 자신도 병윤처럼 자시신발을 꺼내고는 신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혼자가면 위험하다. 같이 가자. 같이 해야 파기하는 게 더욱 빠르겠지.”
병윤은 병재의 말과 행동에 이내 좋다고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그렇게 병재와 병윤은 자신 만 알고 있는 비밀장소로 갔다.
보름달이 떴던지라 시야에 문제되는 건 없었다. 그리고 혹시나 마주치는 사람이 있을까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병윤은 한 가지 기술을 습득했다.
-기술 [운동]은밀을 습득하였습니다.-
“흐음... 은밀이라는거 습득했네요. 큰 형님.”
“그래 나도다.”
병재는 병윤이 보는 것과 같은 걸 보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병윤은 얼른 아까 습득했다던 기술의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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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통] : 운동
[이름] : 은밀
[숙련등급] : 입문
[숙련도] : 0단 0%
[상세] : 사람들에게 발각 될 염려 없이 움직이는 기술이다. 숙련도에 따라서 사람들이 주목할 가능성을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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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은밀이라는 기술 꽤 좋네.’
이런 사람들 주목에 끌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은밀이라는 기술은 적절했다. 이내 병재도 기술 은밀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꽤 적절할 때, 나왔네.”
“예. 큰 형님. 이제 가보죠.”
그 말에 병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장소에 도착했을 때, 장소에 누군가 왔다는 흔적은 없었다. 병재와 병윤은 이내 안심하고는 병윤은 얼른 기계들을 해체해 부품들로 분해하였고, 병재는 한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삽을 들고는 구덩이를 팠다. 기계들의 분해를 마친 병윤은 언제 준비했는지 모르는 철제 상자에 부품들을 담고는 병재가 파낸 구덩이에 철제 상자들을 넣었다.
그렇게 구덩이에 철제 상자를 다 놓아지자 얼른 다시 흙을 덮었고, 흙 위에 잡초를 심어서 흔적을 없앴다. 그렇게 일을 끝마친 병재와 병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갈려던 찰나였다.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병윤과 병재의 귀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이 일 알려지기만 하면, 간 씨네 꽤나 영향력 있는 지주 아닙니까? 건드리기 무서운 데 말이죠.”
“야! 이 새끼! 걱정이 왜 이렇게 많아! 걱정 마라. 내가 끈도 단단히 잡지 않았냐? 이 건수 간씨 일가도 무마하기 힘들 거다.”
“그래도 아무리 걱정되는 거 같은데 말이죠.”
“에휴. 이 답답한 새꺄! 야 이봉호 개새꺄! 이 새끼는 앞에 고기 차려져도 독 들어 있다고 접시채 집어던질 놈이네. 하아... 이 머저리야. 다시 생각해봐라. 공산주의자는 독립운동 한다고 깝치는 인간보다 먼저 잡아가는 더 큰 건수야. 그 간씨 일가 유일한 독자인 간성호인가? 그 녀석 보니까. 공산활동에 참가하고 있다고. 이 머저리같은 새끼야.”
두 사람의 음모가 담겨있는 대화. 그리고 병재는 두 사람의 목소리들을 잘 알고 있다. 병재는 조용히 손가락으로 병윤을 톡톡 건드리고는 입술에 검지를 대면서 침묵할 것을 요구했다.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까 배운 은밀을 통해서 수풀 속에 조용히 숨었다.
두 사람은 마치 이 장소가 자기네 세상인 듯 동네방네 떠들고 있었다. 병재와 병윤이 듣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병재는 병윤에게 아주 세밀하게 말했다.
“저 목소리 너 알고 있지? 박출환과 이봉호다.”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두 사람의 목소리 정체들을 확인했다. 병재와 병윤은 두 사람의 대화를 더욱 자세히 들었다. 그리고 몇 차례 대화소리가 이어지더니 이내 지들끼리 키득거리며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두 사람의 모습이 점으로 작아지고 이내 사라질 때, 병윤과 병재가 수풀 속에서 나왔다.
“허 거참 간이 대단한 사람들이군. 간씨네를 노릴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병재의 말에 병윤은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3일 후, 박출환과 이봉호의 음모는 현실로 나타났다. 자기네들끼리 짠 계획대로 간씨네 유일한 독자인 간성호를 공산주의자로 밀고한 것이다. 그 때문에 이런 시골까지 일본인 순사들이 찾아와 간씨네 집을 방문했다. 겉으로는 방문이었지, 속으로는 마치 범죄인을 끌고 갈려는 기세였다.
이 보기 힘든 광경을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람들 틈에는 길씨 가족들도 포함돼 있었다. 병재와 병윤은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사태가 이루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허. 진짜 빠르게 잡아가는 군.”
그러나 병재로선 굳이 간씨네에게 이 음모를 일러주지 않았다.
‘괜히 알려줄 걸 그랬나... 아니야. 내가 말해도 저들이 믿을 가능성은 없지.’
병재는 그렇게 생각할 때쯤 순사들이 간씨 일가 유일한 독자인 간성호를 붙잡아 집에서 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순사들이 간성호를 끌어가는 발걸음 뒤에서 간씨 일가의 본 부인 현혜연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통곡했다.
“아이고! 성호야. 성호야. 왜 공산주의인가 그 걸 한다고 해서...”
그렇게 통곡하는 현혜연 옆의 간씨 일가의 가주인 간병철은 뒷짐을 하고 씁쓸한 얼굴을 보였다. 간병철은 늙은이만이 내는 한숨을 내쉰 채 중얼거렸다.
“...... 왜 공산주의인가... 뭔가 해서... 에휴... 쯧쯧쯧. 아마 죽지는 않을 거야. 죽지는...”
일제의 악랄한 고문을 생각하면 산다고 하여도 몸성히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간병철은 그나마 지푸라기의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순사부장에게 몰래몰래 뇌물이라도 찔러주었으니 아마 죽일 만큼 고문을 하지는 않을 거다. 간병철은 그렇게 생각해야 지금 정신 잃을 상황에서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할 것 같았다.
간성호를 차 뒷좌석에 짐짝처럼 우겨놓고는 이내 일이 끝난 듯 순사부장은 철수라고 외치며 차에 탑승했다. 그리고 인원들을 다 태운 차량은 신속하게 마을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간 씨의 유일한 독자였던 간성호는 공산주의 운동을 했던 혐의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그렇게 일이 끝나자 마을사람들은 자신들의 집으로 흩어지거나 친분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수군거리면서 자신들의 앞일을 걱정했다. 그 것은 길씨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길씨 가족의 가장인 아빠 길남효에게 방씨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이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허참. 간씨 일가의 유일한 독자가 공산주의 혐의로 잡혀가버리다니.”
“그러게. 말이에요. 마름나리. 지금 간씨네는 이 마을 유일한 지주 어르신 아닙니까. 이거 우리들한테 불똥이 튀면 큰일 날 거 같은데요.”
방씨 아저씨도 자신의 앞길이 걱정되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
“맞는 말이야. 맞는 말.”
그렇게 아빠와 방씨 아저씨가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때, 병재와 병주, 그리고 병윤이 모여서 이야기했다.
“이거 어쩌지. 괜히 말해줄 걸 그랬나?”
“에이! 형님. 걱정 말아요. 말해봤자 저 사람들이 믿어줄 것 같아요? 괜한 역정 낼 게 분명해요. 형님 잘한 일이에요. 신경 끄세요.”
“병주 말이 맞아요. 신경 끄는 게 그나마 신상에 이롭죠. 뭐.”
“제길...”
병재는 마음에 양심이 찔린 듯 얼굴이 착잡했다. 공산주의자는 필히 고문할 것이다. 그건 분명했다. 사상범이라고 해서 공산주의자는 일제에 협력적인 지주의 아들이라도 이렇게 빠른 시간에 잡아갔다.
“하아... 그래. 신경 써봤자지. 양심이 찔리긴 하지만 어쩌겠어.”
병재는 이내 불안감과 찝찝함을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든다.
그 이후, 박출환과 이봉호의 음모는 결과적으로 말하면 일정의 성과만 달성했다. 자기들이 계획한 것 중 첫 단계만 달성했다는 것이다. 바로 간성호를 밀고하고 체포하는 것으로 음모는 끝났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박출환은 여기서 그칠 생각은 없었다. 원래 이 음모의 최종목표는 간씨네 땅을 빼앗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간병철이 수십년을 지주로 삶아온 경험이 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간병철이 맺은 인맥들을 이용하여 음모를 분쇄한 것이다. 다만 박출환과 이봉호를 가만히 놔둔 것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뭐 소문으로 듣자면 간병철이 박출환과 이봉호를 가만 놔둘 생각은 없었는데 인맥 중 일본인 몇 사람이 박출환과 이봉호를 가만히 놔두도록 압박했다고 한다. 결국 이 일은 간성호만 피를 보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1937년 5월, 그렇게 사건이 일어난 후 시간은 지났다. 그 세월동안 별 일은 없는 것 같았다. 공산주의자로 체포된 간성호를 간병철이 몰래몰래 경찰에게 뇌물로 찔러 주어서 그나마 빨리 풀려난 것과 박출환의 횡포가 더욱 극심해진 것을 제외하면 별 일은 없었다.
병재는 어느새 심의호 할아버지에게 침을 제대로 배웠고, 심의호 할아버지는 침술까지 습득한 것이 빠른 병재보고 ‘이런 괴물같은 놈. 내가 20년 힘들게 배운 것을 1년 만에 배운 인간이 있다니. 이런 세상에 불공평한 일이 따로 있냐.’며 중얼거렸지만 말이다. 또 병재는 큰일을 해냈다. 간병철의 어머니인 윤정희의 그동안 유지되었던 중풍을 완치시켰기 때문이다.
심의호 할아버지는 그 걸 보고 넋이 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이야기하기를 ‘역시 조상님들의 말씀이 맞는구만. 청출어람이 이렇게 쓰이네.’라고 하시면서 씁쓸한 미소까지 지었다.
병주, 병윤만 알고 있는 병재의 재생의학은 큰 폭으로 올라갔다. 이제 재생의학은 숙련등급이 명인에 도달했다. 웬만한 동물들이 사지가 잘라도 병재는 다시 자라나게 만들 수 있었다. 사람에게는 하지 않았지만 막상 사람 팔과 다리를 재생시키라고 하면 병재는 자신 있게 할 정도였다.
그렇게 병재는 독립해도 될 만큼 어엿한 한의사가 되었다. 물론 병재는 심의호 할아버지 옆에서 계속 있겠다고 했다. 나는 아직까지 배울 것이 많다며 계속 잡일과 혹은 심의호 할아버지 대신해서 침을 놔드리고 있다. 그리고 간병철의 어머니 윤정희를 완치시킨 일 덕분에 간씨네에서 병재의 필요한 부탁을 몇 번 들어주었다. 예를 들자면 양학에 대한 서적들을 준다는 것과 아빠가 소작하시는 것에 대해 편의를 봐준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병재에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날로 수입이 높아지는 병재의 자금사정을 보고 박출환이라는 똥파리가 왱왱거리며 날라 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병재는 간씨네와 맺은 인맥을 동원해서 박출환이라는 똥파리를 매번 쫓아냈지만 말이다. 박출환은 둘째치고 심의호 할아버지와 같이 일하는 그나마 마음이 통했던 조신혜가 간성호와 결혼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간씨네도 정략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간성호가 덜컥하고 조신혜와 단 둘이 짜서 결혼해버린 것이다. 물론 간병철이 대노한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간성호는 자신의 고문후유증을 치료해준 조신혜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생명의 빚이 있던 지라 호적을 파서라도 난 결혼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내 간병철로선 크게 한숨을 내뱉고 결혼시켜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병재의 첫사랑은 끝나고 말았다.
병윤은 송씨 아저씨에게 일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대장간 일을 시작했다. 시계 고치는 일 외에 농기구 수리하는 일도 겸해서 했다. 그리고 병윤의 기술들도 이제는 명인급에 도달했고 또 자주 해왔던 기술 정밀기계는 달인급에 도달했다.
그리고 병재에게 받은 기술 화학을 습득하여 그 것도 최고급정도 만들었다. 사실 병윤의 솜씨를 보면 왠만한 대공학자를 초월할 지경에 이를 정도이다. 공장제 농기구보다 더욱 단단하고 기능이 좋은 농기구를 엄청 싸게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교육숙달, 훈련, 정치숙달, 정치학도 어느새 명인에 이르렀다. 송감연의 일솜씨도 이제는 병윤과 비슷했다. 송씨 아저씨는 날로 깊어가는 송감연의 솜씨에 ‘이제 나도 슬슬 은퇴할 때가 되었는가?’하고 씁쓸하게 자조할 지경이었다. 뭐 송감연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몇 년 정도 기다려야 하지만 말이다.
어느새 병윤과 송감연의 일솜씨는 마을을 넘어 옆 마을까지 찾아올 정도였다. 어떤 인간은 고장 난 라디오까지 고쳐달라는 요청에 애를 먹었지만 병주에게 부탁해 받은 전자기학과 전기에 관련된 기타책등을 읽고 기술들을 습득해서 라디오까지 수리했지만 말이다.
병주는 평상시에 수업을 받다가 집에선 병재와 병윤이 익혔던 기술들을 공유 받는 편이었다. 즉 병재의 재생의학과 병윤의 공학관련 기술들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병주는 그런 기술들을 익히는 것으로 만족했다.
병주는 학교에서 성적이 전부 수에 도달했고, 그 덕분에 병주는 마을의 인재로 소문이 났다. 그 덕분에 병주는 보통학교 5학년 때 급장까지 해보았다. 평소 돈 많고, 성적 좋은 아이가 급장을 하는 편인데, 병주는 성적과 선생의 신임으로 급장을 한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시기와 질투를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말이다.
병주는 현재 문경공립보통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현재 6학년에 재직 중이었다. 지금은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입학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반의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지만 병주는 이미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마치 입학시험을 통과한 것처럼 여겼다.
그런 병주의 모습을 올해 부임한 최주평이라는 선생이 눈 여겨 보았다. 최주평은 현재 보통학교의 교사로 4학년 선생님에 재직하고 있었다. 현재 21살, 교사 중에 초임이었고, 팔팔한 청년 중 하나였다. 비교적 교사들보다 엄했으며 꼼꼼한 지라 반의 아이들이 많이 어려워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최주평이라는 사람이 병주의 모습을 주목하는 건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병주가 5학년 때 급장을 맡으면서 그 반의 성적을 2배 이상 끌어올린 것은 전설에 가까웠다. 오히려 어려운 선생의 설명을 쉽게 풀어주어서 그 때의 아이들은 선생보다 병주에게 수업을 듣는다고 할 정도이니까 말이 필요한가?
그런 병주의 행적에 최주평이 주목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최주평이 병주를 만난 것은 병주가 혼자서 교재를 들고 공부했을 때의 일이다.
“네가 길병주니?”
갑작스러운 어른의 목소리, 병주는 교재를 휘리릭 넘겨보다가 목소리를 듣자마자 얼른 일어나고는 최주평을 바라보았다. 최주평은 4학년 선생님 중 초임이라고 해도 4학년 후배들이 어려워하는 사람이었기에 병주도 은근히 긴장했다. 그리고 바로 인사를 올렸다.
“오셨습니까? 선생님.”
반듯한 병주의 인사에 최주평은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소문대로라고 여겼다. 최주평은 병주는 무엇을 공부하기에 열심히 하는 지 궁금한지라 병주 책상위에 놓인 책을 확인했다.
“... 이거 영어인가... 허 꽤 어려운 책을 읽는군.”
한 눈에 보기에도 영어 원문으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최주평은 솔직히 감탄했다. 자신도 저런 책을 읽지는 못하리라 여겼다. 저런 영어 원문 책은 학생이 읽는 것보다는 영어에 그나마 능통한 선생들이 읽는 편이었다.
“과찬이십니다.”
최주평은 찬찬히 책을 읽다가 이내 머리가 아픈 듯 얼굴을 조금 찌푸리고는 이내 책상 위에 조용히 책을 놓았다. 그리고 병주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거리를 던졌다.
“너 사는 곳이 어디냐?”
“농암면 사현리에 살고 있습니다.”
그 말에 최주평은 머리를 더듬다가 사현리가 어디인지 생각하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사실 문경에 온 지는 별로 안 되었기에 최주평이 사현리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깡촌 중 하나입니다. 기억나는 것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최주평은 그 말이 맞다 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물어볼 것이 산더미 같았다.
“뭐 가족은 어떻게 되나?”
“저야 부모님이 계시고, 형, 누나, 동생이 있습니다.”
“호오? 동생은 학교 다니고?”
그 말에 병주는 고개를 젓고는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대답했다.
“학교는 저 혼자 다닙니다.”
“으음 그래? 그렇군. 더 이상 묻지 않는 게 예의겠지.”
최주평은 병주의 신세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최주평도 사범학교에 가고자 했을 때, 가족들이 얼마나 반대를 하였는가? 돈이 없어서 고개를 저은 가족들이 생각났다.
“그건 그렇고, 다른 애들은 입학시험에 대비하고자 공부하는 게 보통인데, 너는 꽤나 여유로운 모습이군.”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하지만 입학시험은 이미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오?”
병주의 당돌한 모습에 최주평은 흥미가 일었다. 얼마나 자신만만하면 저렇게 여유로울까? 하기야 저런 실력이 되니까 최주평이 병주에 대해 관심을 가졌지 않은가?
“내 이름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모를까봐 말해주지. 내 이름은 최주평이다. 여기 초임에 근무 중이기는 하지만 뭐 그래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나에게 물어봤으면 좋겠군.”
그 말에 병주도 꽤 기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믿는 선생도 많지만 이렇게 가깝게 접근하는 선생은 없었는데 최주평이라는 선생이 해당되게 되었다. 그렇게 시일이 지나면서 어느새 최주평과 병주는 선생과 제자 사이를 넘어서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1937년 11월 26일, 어느새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며 가을이 지나 겨울 초입에 다가왔다. 병재는 여전히 심의호 어르신 밑에서 일하고 있었고, 병주는 고등보통학교 입학시험을 당당히 통과했다. 병윤이야 여전히 송씨 아저씨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길씨 가족들에게 거대한 일이 닥쳐왔다. 아주 거대하고도 해일 같은 일이 말이다. 이런 일은 병재, 병주, 병윤까지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허억 허억! 이봐 남효. 큰 일 났네. 큰 일!”
아빠와 가까운 친우인 장씨 아저씨가 별안간 집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급하게 뛰어왔는지 마당에서 크게 숨을 고르면서 말이다. 아빠는 집에서 덜컥 문을 열면서 장씨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 사람아. 왜 이렇게 뛰어다니고 그러나? 그런데 큰일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그... 그게... 자네 딸 길효순이 있지 않은가?”
“길효순? 내 딸이 왜?”
장씨 아저씨의 심각해진 말투에 아빠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지고 굳어져갔다. 필시 좋은 일은 아니다.
“자네 딸 길효순이 위안부로 끌려갔다네.”
“뭐... 뭐야?!”
아빠는 장씨 아저씨의 청천벽력같은 말에 넋을 잃었다. 해준 것이 없어서 서울에 상경시켰던 길효순이 위안부에 끌려가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경성에 잠깐 볼 일이 있어서 상경해서 간만에 길효순을 찾아갈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 자식들이 길효순을 해고시켰더라고. 그래서 길효순은 어디에 지내냐고 물어봤는데, 그 자식들 길효순을 위안부에 넘겼다고 했어.”
“그 자식들이 누군데 누구냐고?!”
아빠는 흉신악귀같은 표정을 지으며 장씨 아저씨의 대답을 요구했다. 아빠는 피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오쿠보 방직인가? 거기에 길효순을 소개시켜줬는데, 그 자식들 1년동안 부려먹고는 위안부 징발업자에게 팔아넘겼네. 그 자식들이 팔아넘겼다고...”
장씨 아저씨는 아빠만큼이나 분한 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장씨 아저씨의 얼굴과 몸을 살펴보니 멍이 가득했다. 아마 장씨 아저씨도 분해서 그 오쿠보 방직인가 따지고 난리피운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구타당한 것이 분명하고 말이다.
그 모습에 아빠는 매우 화가 났지만 장씨 아저씨에게 화를 풀 수 없었다. 장씨 아저씨도 필히 분노했으리라. 그 때문에 아빠는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효순아! 효순아! 대답해다오! 효순아! 어어엉! 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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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프롤로그 수정이 끝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