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112화 (11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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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병재를 포함한 의사들은 터벅터벅 힘이 빠진 몰골로 재생치료센터 건물 안으로 되돌아갔다. 1층의 안내 사무원으로 있는 신디는 그들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병재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나요? 왜 다들 힘이 빠진 몰골들이죠?”

“밖에 시위를 하고 있어서.”

신디는 그 말을 듣고 아! 하는 표정을 짓고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휴우. 하필이면 의사들이 외식하겠다고 한 날에 이러니.”

“요즘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말도 마요. 사실 오래되지도 않았어요. 요즘은 퇴근할 때, 시위가 있나 없나 살피고 다닐 때도 많아요.”

신디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병재에게 요즘 있는 사실을 전한다.

“끄응.”

병재는 그 말에 침음성을 흘리고 다시 의사들에게 터벅터벅 걸어간다.

“안타깝지만 식당에서 밥이나 먹읍시다.”

정필중을 포함한 의사들은 지겹다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는지 결국 식당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식당에는 역시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밖에 나가 해결하기 귀찮은 환자들과 간호사들, 그리고 외식하러 가지 않고 여기서 먹겠다는 의사들이 있었다.

식당에서 한창 식사를 하고 있던 김강연은 의사들에게 의아한 표정을 짓고는 정필중에게 다가가 물었다.

“뭔 일 있어요? 왜 다들 얼굴표정이 그래요?”

“하아. 나가려다 시위대를 만났어?”

“아. 그러시구나. 저처럼 여기서 해결하시지.”

“넌 여기 밥이 안 지겹냐?”

“예. 안 지겨운데요.”

“그렇게 말 하다니 내가 할 말이 없어지는데.”

“여기 식사도 신경 써서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뭘.”

“그 것도 그렇네.”

정필중은 곧 터벅터벅 계산대로 가서 식권 하나를 구입한다. 그리고 식판을 한 손으로 집고는 조금 지겹다는 눈빛으로 오늘 배식하는 메뉴들을 살펴본다. 오늘 배식의 목록들은 미국식 빵 2개, 옥수수 스프 하나, 소시지 2개, 셀러리, 마지막으로 계란 하나가 있었다. 별도로 초콜릿과 우유 하나가 있었는데 그건 돈 주고 사먹어야 했다.

“쩝. 이거라도 먹어야겠지.”

정필중은 차례대로 배식 받고는 우유는 돈을 지불하고 하나 산다. 그리고 김강연 옆에 앉는다. 그리고 그 둘을 따라서 의사들이 줄을 지어 앉는다.

“넌 이제 어느 수준에 도달했냐?”

“저번에 아저씨처럼 되고 싶다는 신경계를 이을 정도로 되었어요. 왜요?”

“뭐 왜요? 이 자식 말꼬라지 하는 것 보고는.”

“뭘 또 말투 잡고 그래요.”

김강연의 태연하기 그지없는 대꾸에 정필중은 ‘끄응’하고 침음성을 흘린다.

“요즘 안 힘드냐? 너에게도 환자들이 몰렸다며?”

“저번에 아저씨에게 부럽다고 말한 것 있죠? 그거 취소할 게요. 실력이 느니까 환자들의 배당이 저에게 쏠리는 것 같아요.”

정필중은 힘들어 죽겠다는 말투의 김강연의 표정을 보고 고소했는지 키득키득 웃는다.

“넌 임마 고생 좀 해봐야 돼.”

“고생은 왜놈들에게 끌려가 징용 당할 때부터 했어요. 전 이미 충분히 고생했으니 신경 끄시면 좋겠네요.”

정필중은 징용 들먹이는 김강연의 말에 할 말이 없었는지 ‘끄응’하고 침음성을 흘린다. 그 뒤 정필중은 식사에 집중하면서 간간히 동료 의사들과 대화한다. 그렇게 점심시간도 끝나가고 있었다.

한편, 오늘도 시카고 시장 에드워드 조셉 켈리가 사무소장 시렌을 찾아왔다. 시렌은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켈리 시장에게 말한다.

“시위대 어떻게 할 수 없습니까?”

“휴우. 나도 그게 문제야. 이곳의 의료수준과 혜택이 이 도시의 대형 병원보다 월등하니까 말이야.”

“아니 수익 줄어든 대형병원에서 뭐라 할 말이 없습니까? 이곳을 이전하라는 둥 말이죠. 제가 그 곳의 경영자라면 필시 시장에게 로비해서라도 시골구석으로 쫓아내라고 할 것 같은데 말이죠.”

“로비야 당연히 하겠지. 다만 로비 내용은 틀려. 재생치료센터와 제휴하겠다고 발 벗고 뛴다네. 생각해봐. 이곳을 쫓아낸다고 지들 줄어든 수익이 복구되겠어? 차라리 제휴해서 몇 가지 기술을 따내려거나 아니면 이곳에 근무 중인 의사들을 회유할 기회를 가지는 것이 낫겠지.”

“으음. 그 쪽에서는 그렇게 분위가 돌아갑니까? 사람 심리라는 것이 협력보다는 견제를, 존경보다는 시기를 먼저 떠올리는데요.”

“그 것도 어느 정도 의료 수준 차이가 나야지 말이야. 너무 월등하니까 그렇게 생각을 안 하나봐. 그들은 오히려 이것을 도약할 기회로 삼나봐. 어차피 재생치료센터는 전쟁이 끝나면 개방될 테니 말이야.”

켈리 시장의 말에 시렌 사무소장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충격적인 얼굴을 짓고는 재빠르게 입을 놀린다.

“솔직히 군인들이 이곳에 쏠리는 것도 한계인데 개방이 되면 재생치료센터는 죽어 나갈 것입니다. 상상 해보십시오. 그 끔찍한 환자들의 파도를 말이죠.”

“그 대신이라 하기는 뭐하지만 돈은 그래도 많이 벌게 되잖아.”

“그럼 시장님은 돈 많이 받고 일이 10배 100배 폭증되었으면 좋겠습니까?”

“그건... 아니지. 걱정 마. 어떻게든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글쎄요. 해결은 안 될 것 같은데요. 불구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여기잖아요.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경찰들을 시켜서 시위대를 물리든 해야지 뭐.”

“정말 괜찮겠어요? 요즘 시위대들도 장난이 아니던데. 더욱이 시위대에 전국 각지에 모인 사람들이 합류한다고 알고 있어요.”

“뭐 방법은 있어. 그 사람들을 연방정부에게 책임을 돌린다거나...”

“그거 괜찮은 방법 같은데요.”

“물론 그 방법이 성공적이라고 하기는 그렇지. 결국은 미스터 길처럼 능력 있는 의사들이 배출되어야 해결될 문제는 아닌가?”

시렌 사무소장은 켈리 시장의 말에 납득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렇죠.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과는 있어 보입니다. 원래 미스터 길이 이야기하기로는 재생치료를 활용하는 의사는 적어도 5년에서 최대 10년까지 걸린다고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성과 있는 의사들이 있으니.”

“성과 있는 의사라? 그 성과가 어느 정도인가?”

“예를 들자면 기본적인 재생치료를 할 수 있는 의사들이 8명 정도 있고, 신경계를 이을 수 있는 의사들은 20명 정도 됩니다.”

“으음. 요즘 의사들이 이곳에 지원한다며?”

“예. 그렇죠. 재생치료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으니까 말이죠. 뭐 돈은 월급제로 받아서 부족하기는 하지만 만약 온전히 배우고 병원을 차린다면 돈벼락을 맞게 되겠죠.”

켈리 시장은 시렌 사무소장의 설명에 이해가 간 표정을 짓는다.

“그렇군. 내 아들 녀석이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데 말이야. 요즘 재생치료센터에 가고자 매번 나에게 졸라. 내 힘으로 어떻게든 이곳에 배치할 수 없는지 청탁이라도 할 수 없냐고 말이야.”

“글쎄요. 힘들겠는데요. 아까 미스터 길이 영국정부와 계약을 맺는 바람에 영국 출신의 의사들이 이곳에 배치될 예정이라서.”

“뭐? 영국 놈들은 또 왜? 여기에 뭐 먹을 것 있다고 기어 들어오지.”

“침을 흘릴 것들은 많기 하죠.”

“끄응. 그 것도 그렇군.”

“그런데 시장님은 매번 여기를 찾아오는 군요. 솔직히 시카고 시장 직을 맡으면서 일이 많지 않습니까?”

“여기 찾아오는 것도 일이야.”

“찾아오는 것도 일이라. 한 마디로 좋아서 가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이...”

“그 무슨 소리야?! 당연히 좋아서 가는 거지.”

“......”

침묵한 시렌 사무소장의 눈빛은 온통 켈리 시장에 대한 의심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켈리 시장은 그 눈빛에 흠흠 거리며 말한다.

“요즘 이 곳에 의약업체들이 설립되고 있지 않나? 물론 목적은 예상대로지. 지금 미스터 길의 약학 지식을 따내려고 나에게 계속 로비중이라 말이야.”

“이러다 이 곳 대학병원이 될 것 같네요.”

“그거 좋은데. 시카고 의과대학, 내 업적을 남길만한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말이지.”

“......”

결국 시렌 사무소장은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켈리 시장을 쳐다봤다.

저녁 식사가 다가오는 시간의 재생치료센터 안에 위치한 한 휴게실, 병재는 할당된 환자들을 전부 처리하고 한 군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렇게 쉬어도 되겠습니까? 저는 엄청 바쁠 것이라고 예상되는데 말이죠.”

“아 그건 각 의사마다 할당제로 돌리고 있어서 할당된 환자들의 치료가 끝나면 쉬어도 상관없습니다.”

“하기야 선생님의 환자 치료는 빠르고 정확하니까 말이에요. 그런데 선생님은 일이 안 힘드나요? 다른 의사 같은 경우는 이 시간대에 파김치가 되던데.”

“워낙 일이 익숙한 나머지 체력 소모할 것도 없습니다.”

“허. 부럽습니다. 또 그 말은 이곳에 입원중인 우리 군인들에게 축복이나 다름없네요. 요즘은 바깥에서 요양 중인 제 동료들의 말을 들어보니 시카고에 있는 시민들이 이곳을 개방하라고 시위를 벌이고 있던데요.”

“오늘 점심시간에 외식하려고 나가려던 찰나에 그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이 곳에 입원 중인 군인들의 숫자도 많은데. 시민들도 이곳에 몰려온다면.”

“저야 상관없지만 이곳에 입원중인 군인들의 치료 순서는 늦춰지겠죠.”

“으음. 이 경우에 대해 뭐라 할 수 없고. 차라리 시골지역에 재생치료센터가 건립되었다면 말들이 없었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선생님은 이거 끝나고 강의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병재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예. 그렇죠. 이 강의도 이곳이 세워진 후 맺어진 계약조항 중 하나니까 말이죠. 요즘 제가 의학교수들을 이곳에 초청하려고 요청 중이기는 한데. 오히려 그 교수들이 강의를 배우겠다고 하는 바람에 난감하네요.”

군인은 키득 웃으며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제가 만약 의학교수가 된다면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겠어요. 수준 차이가 일반 의학교수보다 훨씬 차이 나는데. 다른 의사들에게 강의하는 편보다 차라리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편이 의학교수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겠네요.”

“......”

“그런데 선생님 한 가지만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요?”

“예. 대답할 수 있다면 말씀드리죠.”

“선생님은 이곳을 개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으음. 그건 저로서는 답변할 수가 없네요. 한 마디로 뭘 해도 고자 되기?”

“고자 되기? 아... 비유가 참.”

“하하. 조금 외설적이었나요?”

“하기야 선생님이 난감하시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병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을 이해하는 군인의 얼굴을 지켜본다. 그러다 언뜻 자신의 손목시계를 쳐다보면서 시간을 확인한다.

“슬슬 강의 시간이 된 것 같네요.”

“강의 시간은 알차게 보내세요. 전 선생님과 대화했다고 병실 환자들과 자랑이나 하러 가야겠습니다.”

병재는 그 말에 희미한 미소를 보이고 일어나 휴게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홀로 휴게실로 남은 군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쩝. 우리들이 이곳의 위치를 시골 한 구석으로 옮겨달라고 탄원서라도 돌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한편, 강의 자료들을 챙긴 병재는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복도에는 퇴근하려는 간호사들이 눈길에 보였다. 지금 이 시간에는 간호사들과 사무직 직원들은 퇴근시간이었다. 의사들은 자신과 따로 강의시간을 갖는다. 물론 의사도 퇴근하고 싶다면 퇴근해도 괜찮다. 하지만 이곳에 근무 중인 의사들 백중의 백은 퇴근하지 않고 강의를 들으러간다.

요즘은 간호사들도 퇴근하지 않고 강의를 들으려고 시렌 사무소장과 협상 중이라고 하던데. 병재는 그 소식까지는 자세한 것은 모른다.

병재가 강의실 문 앞에 당도하자 문 너머 방 안에는 넘치는 열기와 분위기로 가득한 것을 느꼈다. 병재는 그 것들을 확인하면서 문고리를 잡고 돌린다.

-끼익!-

안에는 서로 이야기하는 의사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는 정필중을 포함한 조선인 의사들도 있었다. 그런데 병재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오자 의사들의 눈길은 온통 병재에게 순간 모여들었다. 각자 볼펜을 들고 병재의 숨소리,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집중을 하고 있었다.

병재는 강의 연단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의사들을 깊은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리고 강의 자료들을 정리한 후 연단에 설치된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아아. 오늘도 빠짐없이 참석하시는 군요. 조금은 퇴근해서 쉬시는 것도 좋은데 말이죠.”

의사들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절대 그럴 리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 오늘은 제 진료 기록서들과 사진을 가지고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의 있으신 분 없나요?”

의사들은 그 물음에 침묵한다. 만약 이의가 있다면 조용히 손을 들지만 지금은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곧 병재는 그 모습들을 확인하고 강의를 시작한다.

약 2시간의 강의 시간이 지났다. 병재는 강의하는 것에 대해 별로 힘들지 않다는 표정을 짓는다. 오히려 의사들이 오늘 강의 내용을 적은 노트들을 가지고 복습했다. 비록 2시간의 강의이지만 그 시간동안의 내용은 매우 알찼기 때문에 노트에 필기한 것으로 공부를 끝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마 집에서 몇 번은 복습해야 가능할 일이다.

“그럼 오늘 강의는 이것으로 끝마치겠습니다.”

병재는 그 말을 하고 강의 자료들을 챙긴 후 연단에서 내려간다. 의사들은 서로 들었던 강의내용들을 가지고 연신 토의하고 있었다. 어떤 의사는 병재에게 물어본다. 병재는 그 물음에 친절하게 답변해준다.

“그럼 근육 소실의 재생치료는 이런 식으로?”

“예. 근육소실을 재생시키려면 이 방식으로 해야 효율적이겠죠.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만.”

“그 방법도 설명해주세요.”

병재는 묻는 말에 다른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리고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병재는 다 답변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이 끝나서야 병재는 강의실 밖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 때 정필중이 병재를 찾으면서 말한다.

“오늘도 그 여동생 방에서 잘 건가?”

병재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효순이도 복 받는군. 이렇게 오라버니가 지극정성으로 챙겨주니까.”

“복 받은 것이 아니라 그게 당연한 겁니다. 그게 가족이니까요.”

정필중은 병재의 말 속에서 가족이라는 단어에 납득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을 한 뒤 병재의 발걸음은 효순이 입원한 방으로 향한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에는 영국국적의 의사들을 받고 아르덴 공세로 이야기를 잡을게요.

풍성한 댓글은 여러분의 마음도 풍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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