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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병주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계획을 세워 둘 무렵, 서울 경무대 만찬실에서 이 대통령은 주한미국대사인 존 무초 대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대통령이 초청하는 형식이 아니라 존 무초 대사가 먼저 방문하겠다고 미리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 대통령은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존 무초 대사를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잠시 말없이 조용한 분위기가 흘러가자 이 대통령은 흠흠 거리며 한 마디 말한다.
“요새 이 한국에서의 생활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예. 이 대통령의 하해와 같은 배려에 무척이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존 무초 대사의 말에는 의례적인 말투가 섞여 있었지만 감정에는 이 대통령을 그리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귀에 들린다. 하기야 작년 존 무초 대사가 부임하면서부터 한미관계는 조금씩 틀어지고 있었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이 대통령에게는 한반도에서 손을 떼고 싶어 하는 미국의 태도에 조금씩 실망감을 느꼈고, 존 무초 대사는 이 대통령이 무모한 짓을 할까봐 염려스러웠다.
“아 그래요? 다행이시군요.”
그 후부터는 두 사람 간 개인적인 대화를 오고 갈 뿐이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한 탐색전 같은 것이다. 말들이 돌리고, 돌리며 서로 간의 분위기를 살펴보는 시간들이 흘러간다. 결국 먼저 본론을 꺼내는 것은 이 대통령이었다.
“영 궁금하신 것이 있는데 말을 들어줄 수 있습니까?”
그 물음에 존 무초 대사는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왜 이 대통령을 찾아왔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본질을 던지는 이 대통령의 말에 존 무초 대사는 흠 거리며 말한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것 같군요.”
그렇게 말하는 존 무초 대사에게서 뭔가 분위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 말에 이 대통령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할 자세를 갖춘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우리 미국의 입장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현지에 잘 아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찾은 방법인데 우리 미국과 또 동시에 이 대통령에게 있어서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
윈-윈 이라는 존 무초 대사의 말에 이 대통령은 조금 갈피를 못 잡았지만 일단 들어보기로 하였다.
“제가 이야기를 듣기로는 이 정치판에서 이 대통령의 세가 조금씩 밀린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말에 이 대통령은 ‘뜨금’ 정곡을 찔린 표정을 짓는다. 한편 속으로는 ‘그걸 알고 있으면서 왜 이제 이렇게 말하는 것인가?!’ 라는 원망의 감정도 어느 정도 섞여 있었다. 존 무초 대사의 말은 계속 되었다.
“하지만 우리 본국에서는 이 대한민국이 자주적으로 나서서 행동했으면 합니다.”
자주적으로 나서서 행동하라는 존 무초 대사의 말에 이 대통령은 그 속에서 한반도에서 발을 빼고 싶다는 미국의 의사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 본국은 대한민국이 북한을 침략하여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까? 라는 불안감도 어느 정도 존재합니다.”
존 무초 대사의 말에 이 대통령은 강한 압박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현실을 바라볼 수 있었다. 결국 여기서 타협점을 찾겠다는 존 무초 대사의 말에 뭔가 느꼈는지 이 대통령은 먼저 말을 꺼낸다.
“혹시 그 타협안이라는 것이 대사가 말한 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들어가는 일입니까?”
존 무초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바로 맞췄습니다. 우리 미국으로선 대한민국이 자주적으로 나서면서 함부로 남을 침략하는 그런 국가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럼 북한이 이렇게 우리에게 무장 도발을 하는데도 가만히 참으란 말씀입니까?”
이 대통령의 한 마디에 존 무초 대사는 흠흠 거리며 말한다.
“도발에 대한 방어와 반격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이 알아서 하면 좋겠습니다. 다만 우리 본국에서는 이 도발이 전쟁의 도화선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 본국에서는 남한이 더 이상 국방전력을 증대시키고, 또 남한이 함부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면 안심이 되겠습니다.”
이 대통령의 시선은 존 무초 대사를 바라보더니 이내 한 마디 말한다.
“거기에 무슨 타협점이 있습니까? 순 우리에게 가하는 족쇄들이지 않습니까?”
“족쇄라는 표현은 조금 불편하군요. 하지만 대신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새가 태어나서 날개 짓을 할 때, 여러 번 연습을 하여 비로소 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으음. 하지만 그런 연습에는 그 몸이 자랄 때 필요한 먹이들이 있습니다.”
“예. 그 먹이를 우리가 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존 무초 대사의 말에 이 대통령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한 마디 말한다.
“단순히 두 개의 조약만 맺어주면 그렇게 한다는 뜻이겠지요?”
“예.”
“정확히 얼마정도 내어줄 생각입니까?”
이 대통령의 구체적인 질문이 들어가자 존 무초 대사는 눈빛을 반짝이며 한 마디 대답한다.
“최대 1억 달러까지 줄 수 있습니다.”
“1억 달러라...”
“그 정도 금액이면 여기서의 돈은 대략 20억원정도 되겠군요.”
“최대라는 말은 곧 최소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데. 최소는 얼마 정도 입니까?”
“흠흠. 아무래도 최소 1500만 달러 정도로 생각됩니다.”
“미국이 우리 측에게 주는 금액이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이겠지요.”
“......”
존 무초 대사는 그 말을 듣자 조금은 위기감을 느낀다. 만약 미국이 1500만 달러도 주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거지를 부리겠다는 어조가 확 느껴졌다. 그 때, 이 대통령이 한 마디 바로 말한다.
“만약 북한 쪽이 우리를 침공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존 무초 대사는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대답한다.
“우리 본국에서 평가하기로는 남북한과의 대결을 한 번 토론을 해보았는데, 결과적으로 그냥 북한이 망하는 수순으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것을 북한 당사국에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전쟁에 미친 작자라고 하더라도 질 것이 뻔한 전쟁을 일으키겠습니까?”
존 무초 대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의 얼굴은 변하지 않고 반문한다.
“제가 그래서 만약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조건을 제쳐두고, 두 국가 간 전쟁이 벌어졌다. 이럴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우리 미국에서는 최선을 다해 대한민국을 도와줄 생각입니다.”
“휴. 그 정도 대답이면 다행이군요.”
“다만 애치슨라인 밖이니 지원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애치슨라인’이라는 단어에 이 대통령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하기야 그 것 때문에 자신의 세력 기반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을 대통령의 세력에게 말씀드려 그들을 안심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이 대통령은 정곡이 찔렀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으음...”
“이 정도면 제가 할 말은 다 한 것 같군요. 뭔가 더 이야기하실 것이 있습니까?”
이 대통령은 그 말에 생각을 하다 한 마디 말한다.
“원조가 발효된다면 그 전의 원조처럼 물자로 지급할 생각입니까? 아니면 현금으로 지불되는 것입니까?”
존 무초 대사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대답한다.
“제가 말한 원조의 범위가 최소이면 현금이고, 최대이면 물자로 나갈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부탁이라도 있습니까?”
“가급적이면 현금이 좋겠습니다.”
“흠. 제가 국무부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는 잠시 끝이 나고, 한창 있다가 이 대통령이 존 무초 대사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런데 그 타협점에 대해서는 대사 혼자서 생각하신 것입니까?”
그 말에 존 무초 대사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양국 간의 사이가 멀어질 뿐입니다. 서로 필요로 하는 것을 겨우 잡아서 가까스로 이어붙인 결과물일 뿐입니다.”
“......”
“기본적인 뼈대는 제가 만들었지만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까?”
“굳이 들어보고 싶습니까?”
이 대통령은 그 말에 손사레를 치며 대답한다.
“말하기 거북해하면 어쩔 수가 없겠군요.”
“......”
이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존 무초 대사에게 한 마디 말한다.
“당신이 건넨 제안에 대해서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확답을 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현명한 답을 내놓기를 바랄 뿐입니다.”
존 무초 대사에게서 나오는 ‘현명한 답’이 미국이 바라는 답이라는 것을 이 대통령은 곧바로 눈치를 챘다. 이 대통령은 알게 모르게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존 무초 대사와 이 대통령 간의 이야기는 끝이 나고, 존 무초 대사는 다시 주한 미 대사관으로 돌아간다. 그 후 경무대 자기 방으로 돌아온 이 대통령은 누군가를 부른다. 얼마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몇 몇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이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참모이기도 한 윤치영, 그리고 같은 비서이기도 한 이기붕, 마지막으로 국방부 장관과 더불어 동북청년단의 최고 수뇌부라고 부를 수 있는 신성모 이 셋이 들어왔다.
이 대통령은 이 셋을 자신의 심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 셋을 보면서 아까 존 무초 대사와 이야기를 나눴던 것을 말해서 그들의 생각을 떠본다.
“그래.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가?”
셋은 그 의견을 듣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윤치영 비서실장이 한 마디 대답한다.
“역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는 것이 좋다고? 이유는?”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로 우리에게 많은 이득이 있습니다. 그 사실을 토대로 국민들, 그리고 다른 정치세력들에게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이 원조를 겨우겨우 얻어냈다고 말입니다.”
윤치영 비서실장이 핵심을 말하자 이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더불어서 우리 세력을 안심시키는 용도로 쓸 수 있겠군.”
“미국이 그런 요구를 걸어오는 것은 이미 예상한 바입니다. 실질 적으로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전력상 북한 측에서 전면전을 내거는 것은 상상도 못합니다.”
신성모 국방장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 대통령에게 말한다.
“맞습니다. 전하. 남북한 전력차이를 비교해보면 상당한 격차를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쪽에서 생각이 있다면 이런 것을 모를 리는 없을 것입니다.”
이 대통령은 그 말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말한다.
“그럼. 그렇고 말고. 그런 군대를 누가 만들었는가?”
신성모 국방장관은 그 말에 바로 대답한다.
“바로 전하이십니다. 전하야말로 신이 내린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독립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이런 강군과 그 강군의 보급을 유지할 경제체계를 만드신 것은 우리 전하밖에 없습니다.”
신성모 국방장관의 과한 아부에 윤치영은 속으로 ‘꼴값은 떤다.’고 냉소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저 역시 국방장관의 말에 찬성합니다. 이런 나라를 만드신 것은 전하 밖에 없습니다. 역시 앞으로의 태평성대를 만드실 분은 전하뿐입니다.”
이기붕 역시 아부를 하며 칭찬에 나선다.
“험난한 인생 역경의 경험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투사하니 이 어찌 발전하지 못하고 배기겠습니까?”
이 대통령은 세 사람의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 국가의 발전을 이끌어낸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업적들이 있겠지만 이 대통령은 그런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부리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즉 이 사람들을 잘 이끌어 나라의 발전에 대한 공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한동안 이 대통령에 대한 아부들이 쏟아지다 금세 분위기는 바뀌었다. 신성모 국방장관이 어려운 표정으로 이 대통령에게 말한다.
“전하. 혹시 인사를 바꿀 수 있습니까?”
“인사라 한다면?”
“사람을 바꿀 수 있습니까?”
“왜? 국방부에서 뭐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상당히 거슬리는 사람이 있기는 합니다. 예를 들자면 문경에 웅크리고 있는 길병주이든가 말입니다.”
이 대통령의 얼굴은 금세 바뀐다.
“......”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그 작자가 아무리 길씨 집안이라고 하지만 행동하는 것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저번 제주도의 사태 때도 전하의 체면을 어지럽히지 않았습니까?”
이 대통령은 손사레를 치며 한 마디 말한다.
“자네가 그렇게 원하면 한 번 해보게나. 단, 자네가 직접 말이지.”
이 대통령의 얼굴에는 필사적으로 네 일은 돕지 않겠다는 의미가 보였다. 신성모는 그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각하도 그들을 대적하기에는 어렵습니까?”
그 말에 이 대통령은 한숨을 지으며 대답한다.
“이대로 중립을 유지했으면 별 상관이 없네. 만약 그들을 함부로 적대하다가는 우리 세가 바로 그 쪽으로 가지. 또 김구에게 완전히 넘어간다고 해보게. 어떻게 되겠는가?”
“......”
윤치영 비서실장은 그 말에 상상을 하자 끔찍하다는 얼굴을 짓는다. 그리고는 신성모 국방장관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일단 그의 행동에 대해서 용인해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길병주의 행동이 너무 과하다는 측면이 있을 때, 증거를 잡으십시오.”
“하지만 그 미꾸라지 같은 작자는...”
“제 말을 들으십시오. 기회를 잡을 동안 소닭 보듯이 하십시오. 전하께서도 알겠지만 그들을 잘못 건드리다가는...”
이 대통령은 그 말에 답이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 5년 동안 그들이 이렇게 클 줄이야 예상이라도 했는가? 쯧. 대통령 자리는 내가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다스리고 있는 이들은 그들이야.”
그렇게 말하는 이 대통령에게서 뭔지 모를 푸념이 섞인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세 사람은 그런 이 대통령의 표정을 보자 속으로 ‘쩝’ 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리고 신성모 국방장관은 이야기를 잘못 꺼냈다는 것에 얼굴이 사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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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510편까지는 전쟁 전 상황을 그리겠습니다. 511편부터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