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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조학준은 병주를 살펴보고는 이내 한 마디 말한다.
“흠... 전쟁이 그렇게 돌아갈 것 같나?”
“이런 말을 하기에는 뭐 하지만 저 역시 전황을 살필만한 눈은 갖췄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학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하기야 그렇겠지. TV에서 나온다면 자네는 군에서 상당한 야전 지휘관이니 말이야. 하지만 전장에는 변수가 많다고 이야기를 들었네만.”
“예.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런 변수까지 상정해서 생각하고 예측하는 것은 물론 돌변사태에 빠르게 판단하여 대비책을 만들어 실행하는 것이 군 지휘관의 역할입니다. 머리가 우왕좌왕하면 손과 발이 이리저리 움직이지요.”
“흠. 그렇군. 한 번 장기를 둬보는 것이 어떻겠나?”
병주는 의아한 표정으로 조학준을 바라보며 묻는다.
“장기라면...”
“실제 전장은 아니지만 장기의 묘가 전장에서 쓰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생각되나?”
병주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조학준에게 대답한다.
“좋습니다.”
결국 병주와 조학준 두 사람 사이에 장기판이 만들어졌다. 조학준이 ‘한’, 병주가 ‘초’였다. 갑작스러운 장기판에 조학준의 아내와 조혜수는 영문을 모를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아니 왜 갑자기 장기야?”
“저도 모르겠어요. 어머니. 뭔가 남자들에게 있는 것이 있나 봐요.”
“흐으음...”
두 여성은 이내 조용히 병주와 조학준의 장기 싸움을 지켜본다. 조학준이 먼저 움직이며 말을 움직였고, 병주 역시 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장기는 당장의 수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수를 예상하는 방법이다. 장기 말의 이동과 운용은 한정되어 있기에 여러 수를 예측하기 좋았다.
두 사람 모두 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서로간의 차례를 넘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장기판은 어느새 긴장하는 분위기로 가득 찼다. 그러나 병주의 얼굴은 여유 그 자체였다. 병주가 ‘車’를 움직인다.
“아...”
병주의 ‘車’가 조학준의 ‘馬’를 먹어치운다. 그러나 더더욱 무서운 것은 ‘車’의 운신이 한껏 여유롭다는 것이다. 다시 조학준의 차례가 온다. 이번에 ‘象’을 움직여 병주의 ‘卒’을 먹지만 이내 병주는 이 때를 노렸다는 듯 자신의 ‘包’로 조학준의 ‘象’을 먹어 치운다. 결국 조학준은 ‘馬’와 ‘象’을 잃어버렸고, 병주는 대신 ‘卒’을 잃어버렸다.
승부는 계속 되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말들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불리해지는 것은 조학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병주의 ‘馬’에 유용한 패인 ‘車’를 잃어버렸고, 다음 차례에도 병주의 ‘包’에 ‘車’를 잃어버린다. 결국 여러 수가 진행되면서 병주는 한 번 외친다.
“장군입니다.”
조학준은 ‘漢王’의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살펴보았지만 이리로 가든 아니면 저리로 가든 죽는 수밖에 없었다. 조학준은 ‘뭐 이런 승부가 다 있지?’라는 회의감이 들 정도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포기하는 것은 일렀다. 조학준은 병주를 바라보며 요청한다.
“두 차례 무를 수 있는가?”
병주는 그 말에 생각을 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좋습니다. 얼마든지 무를 수 있습니다.”
결국 수는 두 차례 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조학준은 마치 머리에 김이 나듯 판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병주의 예측 수를 생각하지만 이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결국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무슨. 허참...’
승부가 나지 않았는데도 졌다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조학준은 어떤 수를 놓던 자신의 패배를 막을 수 없었다. 조학준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병주를 바라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이거 참. 엄청난 대패군. 괜한 지휘관이 아니야. 하아아...”
“다시 한 번 해보겠습니까?”
그 말에 조학준은 손사레를 치며 대답한다.
“한낱 범부가 천재를 재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네. 이번 한 번으로 자네의 기량은 얼마만큼인지 알 수 있겠어.”
“......”
조학준은 이내 조혜수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한 마디 말한다.
“혜수야.”
“예. 아버지.”
“너 정말로 자신 있느냐?”
조학준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조혜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버지?”
“너 정말로 저 사람을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말씀은...”
“내가 보기에 솔직히 조혜수 네가 못나지는 않았지만 지금 네가 데려온 사내와 비교했을 때, 나로써는 차마 말을 못할 심정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짝도 맞는 짝이 있다. 난 그렇게 말을 하고 싶구나.”
조학준의 말에 조혜수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기 가문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던 자신의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다니? 조혜수에게는 이런 조학준의 모습이 의외일 정도였다. 그 때, 병주가 조학준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저. 어르신.”
조학준은 병주를 바라보며 대답한다.
“대답해보게.”
“전 비록 혜수 씨와는 며칠 만난 사이에 불과하지만 저랑 혜수 씨랑은 뭔가 맞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조학준은 그 말에 고개를 가로 저으며 이내 병주에게 한 마디 말한다.
“봉황 옆에 닭이 말이 되겠는가?”
“하하. 전 봉황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상대방에 따라 서로 맞출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조학준은 병주를 다시 살펴보더니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자네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가 없겠지. 혜수야.”
“예? 아버지.”
“한 번 잘해봐라.”
그 말에 조혜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이더니 자신의 아버지 조학준에게 대답한다.
“예. 예. 맡겨주세요. 아버지.”
조혜수의 기쁨에 조학준 역시 미소를 짓는다. 병주는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해가며 이내 자신 역시 미소를 짓는다.
‘휴우. 장기 한 판으로 깨질 뻔 했네.’
병주는 ‘장기를 둘 때, 수위를 조절할 껄’ 이라는 후회감이 조금 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조금 사소한 이야기가 거실 안을 오고 간다. 그 때, 조학준이 병주를 바라보고 한 마디 묻는다.
“그런데 자네 아버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제 아버지를 말씀입니까?”
“그래. TV로나 신문으로나 대충 추측은 할 수 있지만.”
“하하. 지금은 재단을 맡아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재단이라. 그 대학교 법인 재단 말인가?”
“원래 할 일이 그 것이지만 지금은 전쟁으로 인해 피난민들이 떠돌고 있지 않습니까? 아버지께서는 재단의 자금으로 하여금 피난민들을 구호하는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피난촌 건설에 매진하고 계시지요.”
조학준은 그 말에 눈을 깜빡이며 놀랍다는 듯 병주를 쳐다본다.
“허어... 그런 일을 할 줄이야. 나 역시 남는 쌀로 피난민들을 구호하는 일에 앞장선다고 하지만. 역시 단위가 다르군.”
“이런 때일수록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그나마 사회의 망명 높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병주의 말에 조학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나 역시 동의는 하지.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그런 구호도 하지 못할 수도 있지.”
“당연한 말씀입니다. 원래 구호라는 것이 여유로울 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자네 아버지는 그런 일을 할 정도로 여유로운가?”
병주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제 동생 녀석은 이걸 구호라고 말을 하지 않고, 투자라고 하더군요.”
“투자? 구호, 기부가 아니라. 투자라고?”
“예. 투자입니다. 남들 눈에는 이런 행위가 돈을 버리는 일이라고 말을 하던데. 동생은 정확히 돈을 더 벌 수 있는 투자라고 말을 하더군요.”
“그건 뭐 때문에 그런가?”
“저 역시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한 마디로 말해서 충성심이라는 것을 노린다고 하더군요.”
“충성심 허어...”
“정확히 말하면 제품에 대한 충성심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제품에 대한 홍보성이라고 해야 하나? 구호를 받은 사람들 일부는 상관없지만 거의 반 수 이상은 동생의 그룹이 생산하는 제품을 우선 구매한다고 말을 하더군요.”
그 말에 조학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타당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하기야 나 같아도 피난 도중 자신의 집과 먹을 것, 살 것 다 해준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만든 물건을 우선적으로 눈을 보겠지. 설마 그 것 때문에 투자라고 말을 하는가?”
“뭐 그 것 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허참. 왜 사람들이 동협 그룹, 동협 그룹 하는지 알 수 있겠군.”
“......”
“군정시기에도 동협 그룹이 직접 외국의 곡물들을 수입하여 배분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뭐 그 것 때문에 쌀 도매상을 하는 친구 녀석이 망하고 말았지.”
광복이 이루어지고 난 뒤, 나라에 혼란이 찾아오자 자동적으로 쌀을 비롯한 생필품들의 가격이 폭등했다. 하지만 문경에 자리를 잡은 동협 그룹이 적극적으로 외국의 곡물들을 수입하고, 또 전국 각지에 식량창고를 세워서 곡물 가를 안정시킨 것이 있었다. 아마 그 때문에 매점매석을 노리던 도매상들이 동협 그룹에 저주를 내뱉으며 망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사람의 어려움을 보고, 등골부터 빼먹으려는 인간은 망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흠흠. 내 친구가 그 말을 들으면 서운하겠군.”
“하하. 그렇습니까?”
“뭐. 그 친구도 매점매석은 안 된다는 것을 알자 식량과 관련된 일은 때려치운 것으로 알고 있네. 지금은 미국 혹은 영국이나 중국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을 수입해와 파는 일을 하고 있어. 헬기가 등장하니 그 쪽 일이 쉬워졌나봐. 하기야 헬기 하루면 미국까지 갈 수 있고, 한 번에 8000관(한 관에 3.75kg, 8000관이면 30톤)을 실을 수 있으니 차라리 운수업이 그나마 살판 난 거지.”
“그 친구 분은 헬기를 보고 뭐라 하십니까?”
“뭐 이렇게 대답했네. 동협 그룹은 나에게 있어서 애증이라고 말이지.”
“적절하겠군요. 하기야 동협 그룹 때문에 한 번 망하다가 동협 그룹이 만든 헬기 때문에 사업이 흥하니 말입니다.”
“뭐 그렇지. 돈 좀 가지거나 아니면 공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헬기부터 사두는 편이거든. 8000관을 실을 수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하늘로 가기 때문에 지형과는 상관없다는 거지.”
“흠. 어르신께서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나? 난 그냥 대구 외곽에서 작은 공장을 하나 운영하고 있다네. 방직은 경성방직이 꽉 잡고 있으니. 지금은 유리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네.”
“유리라...”
“유리는 어떤 물건이든 꽤 많이 필요한 물건이지 않나? 수요가 이미 보장된 사업이지. 문제는 내가 공장을 처음 운영해서 그런지 꽤 손해를 자주 보거든.”
“무엇 때문에 손해를 자주 보십니까?”
“뭐. 판매로와 비롯하여 공장 설비와 기술까지 총망라해서 말이야.”
조학준은 자신의 공장을 생각하자 조금 암담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 그의 모습에 병주는 잠시 생각하다 한 마디 말한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습니까?”
그 말에 조학준은 병주를 살펴보다 한 마디 묻는다.
“적어도 상담은 받아보고 싶군.”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조학준에게 조학준의 사업에 대해서 캐묻기 시작한다. 조학준은 병주의 동생인 병윤의 지원을 얻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병주의 묻는 말에 일일이 대답해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조혜수는 자신의 아버지와 병주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한다.
‘아니 내 혼사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왜 아빠 사업 이야기를 하는 거야?’
하지만 여기서 일을 그를 칠 수는 없는 일, 조혜수는 불만이 생겼지만 참고 조학준과 병주의 대화를 지켜본다. 병주는 전반적인 것을 다 듣자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학준에게 대답한다.
“일단 제가 아는 범위 안에서만 대답을 해드리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나야 좋지.”
병주는 흠흠 거리면서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전역 후 병윤에게서 돈을 갚아야 되는 자기의 입장 상 공장을 경영하거나 아니면 경영 상담으로 돈을 벌기로 마음을 먹은 병주의 입에서 떨어지는 대답들은 조학준의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자금 융통 관련된 일은 이 은행이 좋습니다. 상공부와 관련된 은행이니 필수산업이라 할 수 있는 유리공장은 융자 혜택을 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리고...”
판매로의 개척 법, 향후 유리한 기술 도입, 조직에 관련된 일, 모든 것들이 병주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특히 병주의 [교육]과 관련된 기술의 수준이 꽤 높아서 그런지 병주의 설명은 이 일에 문외한인 조혜수가 이해할 만큼 쉽고 간편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조학준 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직접 수첩을 꺼내들고, 연필을 들면서 병주가 말한 사항을 적어댔다. 병주가 말한 것은 돈을 주고도 가치가 높은 그런 것이었다.
전반적인 검토와 그리고 해결 방안, 향후 대책과 방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2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 시간동안 조학준은 꽤 많은 것을 얻었다. 조학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병주를 향해 묻는다.
“이건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차라리 군대를 때려 치고 이 쪽 일을 하는 것이 어떤가? 그 쪽 관련된 일은 한다면 아마. 떼돈을 벌 것 같은데 말이야.”
병주는 그 말에 후후 웃으면서 대답한다.
“군대 전역 할 일을 위해 익혀둔 것입니다. 동생에게 메인 빚이 있어서 말이죠.”
“흠... 혜수야.”
가만히 있던 조혜수는 갑작스러운 조학준의 부름에 집중한다.
“예. 아버지 말씀하세요.”
“난 진심으로 두 사람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호호호. 아버지도 참.”
그 말은 꼭 ‘제발 두 사람이 결혼했으면 좋겠다’라는 의지가 간절하게 있었다. 조학준은 병주를 바라보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집안 배경이 아니라 가진 능력이 있기에 이렇게 당당할 수 있군.’
============================ 작품 후기 ============================
병주 : 집안, 재산 다 떼놓고, 나 혼자만 평가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조학준 : 잠시만. 생각해보고. 내 사업이 이러한데...
병주 :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됩니다.
조학준 : (이 자식. 집안, 배경 다 떼놓아도 성공할 팔자구나. 올인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