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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밤이 되었다. 이제 슬슬 군대에 복귀할 시점이었다. 병주는 군복을 입었다. 양복에서 군복으로 복장을 바꾼 병주의 분위기는 완전 달라져 있었다. 양복의 병주는 뭔가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군복을 입은 병주는 엄숙하고, 또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조혜수는 그런 병주를 배웅하러 여기까지 찾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병주를 바라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다음 휴가는 언제에요?”
병주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 이내 이렇게 말한다.
“몇 달은 그 곳에 더 있어야 될 거 같네요.”
“군인이신 제 오라버니의 말을 들어보면 한 달에 2~3일은 휴가를 준다고 하던데. 왜 몇 달이라고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조혜수의 물음에 병주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대답한다.
“제가 단순히 후방에서 업무를 보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혜수씨를 만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입니다. 전장에서 전투의 규모가 작아졌다고 말을 하지만 청춘들이 그 곳에서 목숨을 걸고, 전투하고 있습니다. 책임지는 자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혜수씨. 죄송합니다. 다만... 기다려 줄 수 있겠습니까?”
조혜수는 그 말에 ‘아’ 소리를 내며 병주를 바라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그래도 만약 휴식할 때가 되면 언제든 여기에 와줄 수 있나요?”
“얼마든지 그러죠.”
병주의 대답에 조혜수는 환한 미소를 품으며 대답한다.
“얼마든지 기다릴게요. 그리고 혹여 병주 씨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면 얼마든지 전화해도 되나요?”
“예. 얼마든지.”
조혜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주에게 다가서며 이렇게 말한다.
“저 병주씨. 만약 괜찮다면 제가 병주씨가 있는 곳으로 직접 면회와도 괜찮을까요?”
“가급적 면회를 오라고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전장 중인데도 면회 오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휴우. 알겠습니다. 다만 면회를 오기 전에는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병주의 대답에 조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다시 묻는다.
“저 병주씨. 만약 다시 온다면 이번에 제가 병주 씨의 가족 분들을 만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하하. 혜수씨라면 제 가족이라도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그럼 이제 슬슬 시간이 되었군요.”
병주는 이내 조혜수를 살포시 안으며 작게 소곤거린다.
“그럼 이만 저는 가볼게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죠.”
“예...”
그렇게 두 사람은 잠깐의 대화를 마쳤고, 병주는 이내 자신을 데리러 여기까지 찾아온 헬기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병주를 비롯한 휴가자들을 태운 헬기는 헤치를 닫은 뒤 양 옆 덕티드 팬이 맹렬하게 회전하고, 그와 더불어 헬기는 서서히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자 이윽고 북쪽을 향해 날아간다. 조혜수는 그런 헬기의 모습을 끝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지켜본다.
한편, 창문 너머 지표면에 있는 조혜수를 바라본 병주는 조혜수의 모습이 멀어지자 아쉽다는 듯 고개를 다시 돌린다. 그 때, 병주 옆에 있는 사람이 한 마디 말한다.
“멀리서 지켜봤는데, 참한 아가씨네요.”
병주는 그 말에 눈을 지그시 감고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꼭 굳이 휴가 복귀에 고 준장이 이렇게 나서서 나를 데리러 와야 되겠는가?”
고호윤 준장은 희희덕거리며 한 마디 대답한다.
“제가 오면 안 됩니까?”
“그 말은 꼭 자기 할 일은 없다고 말을 하는 것 같군.”
“봐주십시오. 저 역시 할 일은 있지만 지금 사령관님 모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제가 직접 왔습니다.”
“흠. 전장은 어때?”
“전장이야 별 거 있습니까? 이런 시국에 병사를 움직이는 것은 미쳤다고 말을 할 정도입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군을 움직이기 더 힘들 것입니다. 미군 역시 북부의 추위에 ‘Fuck’을 외쳐대며 후방 쪽에 다시 군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전방에는 우리를 앞세우고, 비상사태가 터지면 지원을 하겠다는 의미이군.”
“어차피 자신들은 도우는 입장이니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병력 보충 계획에 대한 것은 어떻게 되었나?”
“그게 좀. 뭔가 수상합니다.”
“수상하다?”
“예. 국방부 쪽에서 계속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요. 나중에 한꺼번에 처리를 한다고 해놓고선 미루고 있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국방부 장관이 또 쓸데없는 짓을 꾸미는 것 같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금 전투가 뜸해지고, 중공군과 우리군 모두 겨울을 버티기 위해 한껏 준비하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전투가 격렬하게 이어졌다면...”
“그럴 때는 내가 직접 국방부 장관의 멱살을 잡아야지.”
“그러다 사령관님이 잘리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흥. 그 양반이 한 짓거리 때문에 우리 군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하여튼 계기만 있어봐라. 얼른 교체를 시켜야지.”
“저 역시 그러면 좋겠습니다만. 그건 그렇고, 사령관님이 이렇게 여자에게 다가가서 사랑을 속삭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에 병주는 부끄럽다는 표정 보다는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왜? 나는 여자 만나면 안 되냐?”
“지금까지 여자를 멀리하신 분이 그런 소리를 하면 되겠습니까?”
“난 된다고 보는데.”
“알겠습니다. 뭐 축하드립니다. 하여튼 사령관님의 연인이시라니. 이거 참. 혹여나 이 쪽으로 면회 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올 수도 있지. 그런데 그게 왜?”
“뭐 그렇다는 것입니다.”
고호윤 준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키득키득 거린다. 고호윤 준장의 반응에 병주는 왠지 조금 기분이 나빴지만 이내 조혜수를 생각하자 조금 기분이 좋아진다. 병주는 고호윤 준장을 바라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그건 그렇고, 자네 부인은 어떻게 잘 지내고 있나?”
“어. 사령관님 연인 이야기를 꺼냈다고 제 부인 이야기를 꺼냅니까?”
“답하기 싫으면 상관이 없는데.”
“연숙이는 잘 있습니다. 현재 저 닮은 남자아이를 데리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냐? 이거 제수씨에게 잘 해줘야 되겠는데.”
“하하. 사령관님이 돌봐주신 덕분에 그리 어려운 일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매불망 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휴가를 나올 때마다 아기였던 제 아이가 커지더군요.”
“자네 아이는 자네보고 뭐라고 말을 하던가?”
“뭐 별거 있겠습니까? 군인 아버지를 둔 아이가 저를 보고 싶다고 칭얼거린다고 말을 하더군요.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면 계속 볼 수 있다고 말을 해서 진정시켰지만요.”
“그래. 이 빌어먹을 전쟁을 빨리 끝내야지.”
“동감입니다.”
그렇게 군인들의 염원을 실은 헬기는 계속 상공을 날아간다.
1950년 10월 26일, 중국 북경 관저의 한 회의실, 모택동은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한 사람을 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그래. 중화민국간의 전쟁은 어떠한가?”
중화민국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남부군 총사령관 임표는 그 말에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암울합니다.”
“......”
“시간이 지날수록 전선은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 저희들에게 일전의 패배를 당했던 중화민국의 장군들이 칼을 갈고 대반격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안휘 성 전체를 함락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안휘 성이 넘어가면 남경과 그리고 상해, 강소성이 위험하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세를 멈출만한 방법이 없습니다. 병력들을 이 쪽으로 더 투입해야 간신히 전선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데...”
“방비 시설들을 만들어 버티는 것도 안 되는가?”
임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그랬다가는 국부군의 지진폭탄에 의해 모조리 몰살당합니다.”
“......”
“그들을 대항하기 위해서는 대공 무기를 비롯한 것들을 투자하고, 또 그 쪽 군내부를 교란시키기 위해 모든 총력을 다 하고 있지만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그 쪽에 병력을 보태줄 수는 없다. 이유는 알겠지?”
임표는 그 말에 얼굴을 찡그리며 모택동에게 이야기한다.
“국부군이 더 문제입니다! 지금 동쪽의 가오리방쯔(중국인의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멸칭)놈들에게 왜 이리 신경을 쓰십니까!? 국부군은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 총공세를 다하고 있습니다. 가오리방쯔 놈들은 자기 영토를 수복하는 것에 최선을 다할 뿐 굳이 그 쪽에 병력을 보내서 쓸데없는 전쟁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임표가 그렇게 외치자 모택동의 얼굴은 차츰 굳어져 간다.
“신의주에서 북경 까지는 지척이다.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계획을 하고 있습니까? 만약 북경을 노렸다면 이미 며칠 전에 병력들을 신의주에 배치를 시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들은 바로는 함경도에 병력들을 배치했다고 하더군요. 그걸 보면 모르십니까? 우리 신의주를 공격할 의지가 없고, 아니 있다고 쳐도 유엔군이 그걸 말린다는 소식이 있더군요.”
“으음...”
“만주에 모은 100만 대군을 이 쪽에 몰아주십시오. 지금 화동 지역을 지키는 것이 급우선입니다. 우리들을 굳이 위협하지 않고, 아니 위협할 생각이 없는 가오리방쯔놈들에게 우리의 아까운 병력을 투입시켜야 되겠습니까?”
모택동은 임표의 외침을 묵묵부답으로 듣다가 이내 결심을 했다는 듯 이내 회의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외친다.
“지금 이 시각부터 제 4야전군과 제 2야전군의 사령관을 교체한다.”
그 말에 순간 회의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대경실색했다. 제 2야전군은 임표가 사령관을 맡아 국부군과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군부대였고, 제 4야전군은 현재 한반도로 출병한 군부대였다. 순간 임표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 이 무슨...”
그 말에 총리 주은래가 손을 들고 말한다.
“지금 이 시점에 사령관을 교체하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맞습니다! 지금 이런 시국에 사령관을 교체했다가는...”
“저 역시 동의합니다. 군 장악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이어지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택동은 이미 결정을 내렸는지 굳은 눈빛으로 회의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고선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 이 시점에 우리는 잘못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현재 팽덕회 사령관이 이번 패배의 책임을 지게 해달라고 청원해오고 있다.”
주은래는 그 말에 조금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렇다고 지금 이렇게 사령관을 교체하다가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전쟁을 이끌 것인가? 임표.”
임표는 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모택동을 바라본다.
“예. 하명하십시오.”
“임표 사령관은 만약 제 4야전군을 맡는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공세는 절대 무리입니다.”
“그렇군.”
“만약 공세를 명령한다고 하여도 저는 명령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유엔군과 남한 군이 만주에 진입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때는 사력을 다해 수비할 것입니다.”
모택동은 짝짝 박수를 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좋아. 그럼 제 4야전군의 사령관은 자네가 적당하겠군.”
그 말에 임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모택동을 바라본다. 그러나 주은래 총리는 뭔가 눈치를 챘다는 눈빛으로 모택동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흠. 이제 한반도에서 슬슬 발을 떼려고 하는군.’
길림성을 제외한 구역에 유엔군과 남한 군이 침공한다면 소련군이 즉시 출병을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니 모택동의 입장으로는 답이 없는 한반도에서 발을 뺄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 자신들을 보고 울부짖는 소리들이 들리기야 하겠지만 주은래 총리 자신은 이렇게 생각한다.
‘자업자득이지. 누가 멋대로 전쟁을 일으키래?’
김일성과 박헌영이 이 생각을 안다면 즉시 주은래 총리를 암살할 계획을 꾸미겠지만 지금 그들은 겨울나기에 바쁜 처지이고, 또 그들도 생각이 있다면 지금쯤 전쟁이 졌다고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주은래 총리의 추측이 맞아 떨어지는지 모택동은 임표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임표 자네는 한반도에서 발을 빼기를 원하지? 그렇지 않은가?”
임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입장이 바뀌었다고 번복하는 것은 아니겠지?”
“으음...”
“자네가 생각한 대로 군을 움직이게. 나 역시 허락할 테니.”
그 말에 임표는 무언가 눈치를 채고는 모택동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럼 한반도에서 슬슬 발을 빼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비록 소련의 보증이 있다고 하지만 그 인간들은 못 믿을 인간들이야. 한반도에선 소극적으로 수비하면서 만주의 수비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좋을 것이야.”
임표는 그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다만 뭔가?”
“만주에 있는 100만 군사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 말에 모택동은 미소를 지으며 임표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까 자네가 애원하지 않았던가? 그 군사들은 남부군에 써야 한다고 말이야.”
그 말에 순간 임표의 얼굴은 굳어진다. 모택동은 이걸 노린 것이 틀림없었다. 회의장에 있던 사람들도 놀라운 표정으로 모택동을 바라본다.
“설마 이 시점에서 재고해달라고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
임표의 얼굴은 삽시간에 굳어진다.
============================ 작품 후기 ============================
휴우. 조혜수와 병주의 러브 스토리는 여기서 끝. 사실 임표, 즉 린바오는 원래 한반도 출정에 대해서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원래 자신의 세력은 만주의 부대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택동이 그 임표에게 한반도 출정을 명하자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입니다.
그런 상황에 맞춰 모택동은 한반도에서 발을 뺄 수 있는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경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