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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29)화 (29/167)

제29화

크라이베리 신문 1페이지에 실린, 리벨 이벨라와 시스테인 폰 디란타 대공의 결혼 소식은 파격적이었다.

아마 근 몇 년간 가장 큰 이슈일 것이다.

그리고 이슈가 된 만큼 파생 기사도 우르르 쏟아졌다.

[리벨 이벨라, 그녀는 누구인가?]

[한순간에 자작 영애에서 디란타 대공비로…… 인생 역전 스토리]

물론 그 기사들 대부분은 추측이나 소문을 늘어놓은 것에 불과했지만, 그만큼 두 사람에게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다.

특히 언론은 리벨에게 집중했다.

최근 파혼 아닌 파혼을 당했던 리벨 이벨라 자작 영애.

[얼마 전 디엘렌 영식과의 ‘결혼 농담’으로 사교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이벨라 자작 영애는…….]

물론 당시에는 그녀를 ‘농담을 약혼으로 치부하는 철없는 귀족 영애’로 취급하던 기자들은 이제 입이 마르도록 그녀에 대한 칭찬을 쓰고 있었다.

대공가의 시선을 다분히 의식한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그 난리 통 속에 디엘렌 가의 결혼 소식은 자연스럽게 묻혀 버렸다.

원래 결혼이라면 짧게라도 올라올 법한데, 크라이베리는 물론 모든 신문에서 ‘롤란드 디엘렌’이라는 이름은 한 글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대공비가 될 사람을 곤란하게 한 자였으니, 그게 고의였든 타의였든 진담이었든 농담이었든 아예 언급도 하지 않고 몸을 사리는 것이었다.

“이…… 이……!”

롤란드 디엘렌은 며칠째 조간신문과 석간신문에 매달렸다.

디엘렌 가나 상대 가문인 알레로 가문에 대해서 나온 기사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가장 유명한 신문인 크라이베리는 물론이고 블랙스트리트 등, 귀족들은 품위가 떨어진다며 잘 보지 않는다는 온갖 신문들까지 뒤져 보았지만 어디든 디엘렌 가의 ‘디’ 자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래선 결혼식이 화려해도 아무 이득이 없잖아!”

―콰직!

롤란드는 앞에 펼쳐진 가지각색의 신문들을 두 손으로 뭉쳐 구겨 버렸다.

구긴 자리에도 리벨 이벨라나 디란타 대공의 사진이 보였다.

“이익!”

더 화가 난 롤란드는 아예 벽난로 속으로 신문을 던져 넣어 버렸다.

결혼식은 물론 한 쌍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장이기도 하지만, 인맥 확장의 장이기도 했다.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화려하게 준비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묻혀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도련님! 의전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 기사 한 명이 부리나케 방 안에 들어섰다. 롤란드의 표정이 폈다.

“그, 그래! 며칠로 미뤄졌나? 응?”

어차피 의전원에서 결혼식을 안 미뤄 줄 이유는 없었다.

서류를 좀 바꿀 게 있어서 의전원 사람들이 좀 번거로울 뿐, 절차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니까.

“그, 그게…….”

그런데 기사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롤란드의 얼굴이 팍 찌푸려졌다.

“뭐야?”

“그, 그게, 결혼식을 미루시는 게 불가능하답니다.”

“뭐라고?”

롤란드는 뒤통수를 망치로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앞이 아찔했다.

“대체 왜?”

의전원에서 안 미뤄 줄 이유가 없을 텐데?

결혼을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는 건 귀족가에서 은근히 자주 있는 일이었다.

“바쁘다면서 내쫓는 통에 이유는 잘…….”

기사는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익……!”

―퍼억!

신경질이 난 롤란드는 기사의 얼굴에 잉크병을 집어 던졌다.

―쨍그랑!

기사의 얼굴에 맞고 떨어진 잉크병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대체 왜 안 되는데!”

그렇다고 황성 부서에 따질 수도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한낱 백작가가 어떻게 의전원에 영향력을 행사한단 말인가?

“이걸 어떻게…….”

입술을 깨물던 롤란드가 문득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디엘렌의 힘으로 안 되면 윗선에 이야기해 보는 게 좋겠다.

“아버지께 당장 연락해.”

디엘렌 가 영지를 돌아보느라 바쁜 디엘렌 백작이었지만, 이번 연락은 들어주실 것이다.

“친우이신 페티아 후작님께 부탁해 보시라고.”

페티아 후작은 황성 의전원에 연줄이 있는 사람이었다.

“알, 알겠습니다!”

다시 백작가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하지만 며칠 후, 롤란드 디엘렌은 더 골 때리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  *  *

한편 리벨, 아니 벨 기자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물론 처음은…… 시스테인 대공의 비밀(?)에 대해 폭로(??)했을 때였다.

반면 슈 기자는 입지가 확 좁아져 버렸다.

“아예 크라이베리에서 기사를 안 받겠다고 했다던데?”

“슈라는 기자 말이지.”

“어, 그 저번에 이벨라 영애에 대해서 썼던 그 기자 말이야…….”

신문사 앞에 있던 기자들이 떠드는 소리였다.

리벨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음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흠흠.”

그래도 꼬시다! 아무리 남자 모습으로 변신한 상태라지만 박장대소해서는 시선이 끌릴 게 분명했다.

그녀는 크라이베리 신문사에 비밀스러운 투고를 위해 온 길이었다.

크라이베리는 큰 신문사답게 여러 비밀스러운 통로로 기사 투고를 받고 있었다.

특히 ‘귀족가의 폭풍’ 벨 기자에게는 더더욱 친절했다.

귀족가에 정체가 탄로 나서는 안 되는 그녀의 입장을 헤아려, 철저히 비대면으로 기사를 받을 정도로.

그리고 그 비대면 기고 통로는 크라이베리 신문사 뒤편에 있는 상자 무더기였다.

―툭.

리벨은 그 위에 마치 쓰레기를 던지는 것처럼 기사를 말아 놓아 던져 놓고는 길을 나섰다.

그녀와 크라이베리 편집장만 알고 있는 사인이 되어 있는 기사였다.

크라이베리에서 제대로 기사를 받았다면, 오늘 오후에 여기 상자가 하나 더 쌓여 있을 것이다.

정확히 그녀가 종이를 던져 놓았던 위치에.

“가자.”

리벨이 기사를 투고하는 걸 지켜보던 나인은 그녀의 말에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예.”

“길에선 너무 그렇게 깍듯하게 굴지 말라니까.”

평민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 눈에 안 띄려고 평민 복장으로 온 길이었다. 눈에 띄어서는 곤란했다.

그러자 멈칫했던 나인이 그녀의 어깨에 다짜고짜 팔을 걸쳤다.

“오늘 저녁은 버섯볶음이다!”

나왔다, 찐형제 바이브!

“으, 응!”

리벨은 나인의 갑작스런 변화에 이번엔 당황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들에게 한번 시선만 주고는 말았다.

누가 봐도 기분 좋게 떠들며 지나가는 평민 형제 같았으니까.

그니까 황태후 폐하께서는 대체 뭘 양성한 거냐고!

물론 속으론 진땀 가득이었다.

나인의 성격 변화는 그녀의 변신 능력보다도 더 변신 같아 보였던 것이다.

―달칵.

물론 나인은 외진 곳까지 가서 마차를 타고 나서는 다시 기사 모드로 돌아왔다.

“제대로 기사를 받았는지 밤에 보러 와야 돼.”

리벨의 말에 나인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마부 역할을 해 주는 기사가 따로 있어 그 역시 마차 안에 앉아 있었다.

“제가 보고 오겠습니다.”

“아, 그래 줄래?”

그럼 훨씬 편할 터였다. 고개를 끄덕인 리벨이 몸을 기댔다.

이번에 올린 기사는 별것 아니었다.

바로 얼마 전에 ‘리벨 이벨라와 디란타 대공의 파격적인 결혼 선언’이라는 짧은 기사로 온갖 소문을 무성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소문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 주는 것뿐이었다.

[우연한 만남이 영원의 가약으로]

리벨은 제가 기깔 나게 뽑은 제목을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다.

지금쯤 롤란드는 어떻게든 결혼을 미루려고 기 쓰고 있겠지?

“지금쯤 잉크병 몇 개랑 화병 몇 개는 부수지 않았을까?”

성질나면 물건 박살 낸다는 게 콩깍지 씌어 있던 시절엔 구라인 줄 알았지.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그녀의 짐작은 거의 정확했다.

그녀가 마차를 타고 있을 즈음, 성질이 머리끝까지 뻗친 롤란드는 화병을 네 개째 깨부수고 있었으니까.

리벨이 이번에 신문사에 기고한 기사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리벨 이벨라와 벨 기자의 전격 인터뷰!]

[벨 : 두 분께서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은데요. 혹시 어디에서 만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리벨 이벨라 : 그건…….]

리벨은 연달아서 자기 자신과 인터뷰한 기사를 쓰자니 소설을 쓰는지 기사를 쓰는지 헷갈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기사에 쓴 내용은 마냥 뻥만은 아니었다.

기분이 가라앉아 있던 어느 날, 디란타 대공과 서로의 정체도 모르고 우연히 만났고, 연애 끝에 결혼하게 되었다고.

그게 하루 만에 이루어진 날치기라는 게 문제지만 사실이기는 했다.

이 기사들로 ‘디란타 대공과 이벨라 자작가는 무슨 관계인가?’, ‘두 남녀의 은밀한 이야기’ 따위로 자극적인 기사를 써 대며 엉뚱한 곳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던 기사들도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슈가 무슨 기사를 써서 만회하려고 했든, 당연히 그녀가 기고한 건 한 번 더 묻힐 것이고.

“그럼 오늘 일정도 끝!”

리벨은 가벼운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

덜컹거리는 마차가 자작저가 보이는 곳으로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표정은 환했다.

“……?”

하지만 자작저 앞의 꼴을 본 그녀의 표정은 점점 이상해졌다.

“저건 또 뭐야?”

이벨라 자작저는 원래 사람이 그리 많이 오가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온갖 화려한 옷을 입은 자들이 그들 자신만큼 화려한 마차를 타고 오가고 있었다.

리벨은 순식간에 시장통이 되어 버린 자작저의 모습에 입을 떠억 벌렸다.

“귀족가의 사람들인 듯합니다.”

“나도 그렇게는 생각해.”

나인의 말에 리벨이 창문에 매달린 채 중얼거렸다.

그녀는 일단 재빨리 모습을 리벨 이벨라의 것으로 바꾸었다.

“잠깐만 나가 있어 봐.”

그리고 나인을 툭툭 두드려서 쫓아냈다. 그리고 의자 아래에서 재빨리 리벨의 평상복을 찾아 입었다.

일단 옷을 갈아입긴 했는데, 대체 뭐지?

옷매무새를 정리한 리벨은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일단 기자들은 아니고.”

특종 찾는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은 저렇게 여유롭게 행동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작저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에는 가문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은 심지어 제각기 다르기까지 했다.

“……귀족가?”

한눈에 보이는 마차만 여덟 개가 넘었다. 그 모든 것이 다 귀족가의 마차였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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